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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13] 몸 페미니즘 1장_ 후기

날날 2022.03.27 22:50 조회 수 : 106

청인지 세미나 <몸 페미니즘> 두 번째 모임 후기

 

  지난 3월 26일 토요일, <몸 페미니즘> 두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 서론을 함께 살피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새학기도 시작되고 꽃도 피는 바쁜 3월이라 다들 치열하게 지내는 가운데 귀한 시간을 내어 여덟 분이 참석하였습니다.

 

  일주일 전, 첫 모임을 마치고 무척 고양된 기분으로 그로스의 책을 펼쳤던 저는 채 한 페이지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진땀 흘렸던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참여하고 싶은 의욕과는 별개로 페미니즘에 대한 철학적 지식과 서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이 책을 읽기엔 걸려 넘어지는 단어와 문장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낯선 개념들은 제 머릿속에서 의미로 연결되지 못하고 날것의 글자로 둥둥 돌아다니며 춤을 추었습니다. 결국 서론을 끝까지 읽지 못하였지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안 그래도 바쁜데 그만두는 게 맞을까 고민하며 하루 하루 흘려보내다 결국 모임이 있는 날 아침엔 괴랄한 꿈까지 꾸었습니다. 다리가 없고 오줌을 못싸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남편이 ‘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할거야’라며 영아살해를 시도하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잠깐만 잠깐만 아직 살아있어, 아직 살아있다고!’하며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기를 끌어안고 숨을 쉬는지 확인을 하고 말을 걸었지요. 아이가 반응을 하며 웃는 것 같았습니다. 안도하면서도 과연 이 아이를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그냥 살해되도록 못 본 척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갈등했던 게 생각납니다. 그러다가 난데 없이 ‘앗 벌써 세미나가 끝나버렸다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어요. 꿈이라는 걸 알고 다행이다, 생각이 드는 저를 발견하고서는 그제서야 세미나를 끝까지 참여해야겠구나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아기는 저에게 무엇이었을까요. 모자란 아기를 죽이려는 남편은 저의 무엇이고, 구해놓고도 의심하는 저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몸 페미니즘>세미나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고 나니 발제 도서의 서론을 못 읽어낸 게 나에게 왜 이렇게 괴로운 일이었길래 괴랄한 꿈까지 꾼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나는 세미나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되어 있었나 생각하다 이제까지 페미니즘에 대해 접했던 책을 떠올려보았어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헝거],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  김현 외 10명의 공저자가 함께 쓴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케이트쇼팽의 [각성].. 일반인을 위한 대중서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다가가기 쉬운 책들을 자연스럽게 찾아보았던 것 같아요. 책 목록을 보니 제가 제 몸과 화해하기 위해, 아이들을 키우고 만나면서 성인지감수성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들이 엿보이네요. 싸우는 여성, 마녀같은 여자들에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것도 빠뜨릴 수 없을 것 같고요. 어쨌든 페미니즘에도 여러 관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여기까지 저를 데리고 왔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책을 제대로 못 읽어 왔다고 검사하거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눈총받으면 어쩌나 하는 저의 부정한 상상과는 달리 세미나는 무사히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리였습니다. 발제를 맡아주신 선생님의 요약과 질문도, 튜터선생님의 부연도, 참여한 선생님들의 경험과 해석도 대화로 연결되며 그로스가 왜 ‘몸 페미니즘’에 주목하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을 살필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어요.

 

  그로스는 서양 철학에서 플라톤-데카르트로 연결되는 이원론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여성과 남성을 종속관계로 만들었는지, 스피노자의 일원론이 어떻게 몸 자체의 주체성을 회복시켰는지 짚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스피노자-푸코-들뢰즈 유의 비데카르트적인 접근을 활용해 몸 페미니즘의 논의를 전개할 것이라 예고하였고요. 지금의 페미니즘 철학 갈래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몸-마음의 이분법적인 관점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으로 ‘성차’라는 개념에 주목합니다. 이 책은 몸이라는 장소를 어느 하나의 특질을 가진 정체성으로 보는 대신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 문지방이자 경계선으로 간주하면서 몸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기 위한 논의라는 것을 밝히며 서론을 마무리 합니다. 체현된 주체성과 정신적인 육체성,이라는 표현이 앞으로 어떻게 탐구되어갈지 기대가 됩니다. 1994년에 발표되었던 이 책이 논의가 현재의 페미니즘 철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하고요.

 

  서론을 읽고 나니 제가 토요일 아침에 꾼 꿈이 왜 저를 괴롭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이성적인 것이 감성적인 것보다 우월하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에 반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저 자신 또한 이원론적 명제들을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 명제들에 대해 ‘그럼, 아니야?’라고 묻는다면 저는 거기에 대답할 말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종속관계를 뒤집는 것이 해결방법이 아닐진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상상과 언어를 발견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로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리가 없고 오줌을 못 싸는 그 아기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로스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은 이미 논의를 이어오고 있었던거죠. 공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세미나에 참여해 주신 분들 모두 무척 수고하셨고, 자리를 이끌어 주신 튜터님과 발제자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 후기를 쓰고나니 무척 홀가분합니다. 다음 주에 후기 쓰실 분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괜찮다 사양말고 꼭 먼저 이 기쁨을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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