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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들

 

니체의 저서 『선악의 저편』의 9장, 끝에서 두 번째인 295절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언젠가 그 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상황에 따라 나는 인간들을 사랑한다―이때 그 신은 그 자리에 있었던 아리아드네(Ariadne)를 넌지시 암시했다― : 나에게 인간이란 지상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나는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 나는 종종 현재의 그보다 어떻게 하면 그를 앞으로 진전시키고 그를 좀더 강하게, 좀더 악하게, 좀더 깊이 있게 만들 것인가를 숙고하곤 한다.”―“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게라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 그렇다.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그리고 게다가 유혹하는 자인 신은 마치 그가 방금 매혹적인 인사말이라도 한 것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여기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이 신에게 없는 것이 수치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로 몇 가지 점에서 신들도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추측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295절)

위대한 양의(兩義)적인 신이자 유혹자인 신인 디오니소스를 언급하면서, 니체는 자신이 배운 디오니소스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맛보이고자 한다. 그런데 ‘신들도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는 것’, 그 이유는 ‘우리 인간들이―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막판에 뜬금없이 등장한 ‘인간적’이라는 말에 니체 초심자인 나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초심자답게, 『선악의 저편』을 더 깊고 꼼꼼하게 읽는다는 소박한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해답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선악의 저편』 전체를 통틀어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였다.

오 볼테르여! 오 인간애여! 오 어리석음이여! 이와 같은 것은 ‘진리’나 ‘진리탐구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때 인간이 이것을 너무 인간적으로 추진해나간다면―“오로지 선을 행하기 위해서만 진리를 추구한다”―단언하건대, 그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35절)

다른 한편 오늘날 유럽에서 무리의 인간은, 그가 유일하게 허용된 유형의 인간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자신을 온순하게 하고 협조적이게 하며 무리에 유용하게 하는 자신의 성질을 진정한 인간적 덕목이라고 찬양한다 : 즉 공공심, 친절, 배려, 근면, 절제, 겸손, 관용, 동정 등이 그 덕목이다.(199절)

오늘날 유럽에서의 도덕은 무리 동물의 도덕이다 :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일종의 인간적인 도덕에 불과하며 그것과 나란히 그것 앞에 그것 뒤에 다른 많은 도덕이, 무엇보다 좀더 차원 높은 도덕이 가능하며, 가능해야만 할 것이다.(202절)

요컨대 개략적으로 생각해보면, 철학에 대한 외경에 손해를 가장 입히고 천민적인 본능에 문을 열어주었던 것은 무엇보다 근대 철학자 자신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 즉 간략히 말하자면 그들의 궁색함이었을 수도 있으리라.(204절)

인간성을 자랑하게 되는 최근의 시대에도 ‘사납고 잔인한 동물’에 대한 공포와 공포의 미신이 많이 남아 있어, 그것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것이 좀더 인간적인 시대의 긍지를 이룬다.(229)

성자의 동정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의 더러움에 대한 동정이다. 그리고 동정 그 자체도 성자가 부정이나 더러움으로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정도와 높이가 있는 것이다……(271)

니체가 보기에 동세대 유럽의 인간은 도덕에 절여진 무리 동물이며, 나약한 노예이자 더러운 천민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염두에 둘 때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게 된다. 하지만 니체는 같은 말이라도 문맥에 따라 정반대로 쓰기 일쑤고, ‘인간적’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다음은 『도덕의 계보』에서‘인간적’이 긍정적으로 쓰인 예다.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이것은 하나의 냉혹한 명제이다. 하지만 그 밖에도 아마 이미 원숭이도 시인하게 될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근본 명제이다 : 왜냐하면 원숭이는 기이한 잔인함을 생각해냄으로써 인간을 이미 충분하게 예고하고 있으며, 마치 인간의 ‘서곡을 연주하는 것’ 같다고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제2논문 중 6)

여기서 니체는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도 시인할 만큼 잔인한 존재를 가리켜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자연적 본성을 지닌 야만인인 인간에게라면 신들도 한 수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인간적’이라는 말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니체의 또 다른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다. 1878년 자유사상가 볼테르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여 니체가 바친 글로, 자유정신을 위한 글’ 이라는 부제로 출판되었다.

그대들이 이상적인 것을 보는 곳에서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본다.

기존의 가치와 진리를 거부하고, 이상주의를 크게 비판하며 니체가 남긴 말이다. 모든 이상주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필요와 동경에 불과한 것임을 니체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모든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정신을 갖고자 하는 니체의 고독한 몸부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자유정신에 대한 생각은 『선악의 저편』 제2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그 장의 마지막 절인 44절에 명쾌한 어조로 응집되어 있다.

잘못해서 자유정신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은 간단히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평균인(Nivellirer)에 속한다. 즉 그들은 민주주의적 취향과 그 ‘현대적 이념’을 표현하는 능변과 달필의 노예일 뿐이다 : 이들 모두는 고독을 모르는 인간, 자신의 고독을 가지지 못한 인간, 졸렬하고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용기와 존경할 만한 예절을 갖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웃을 수밖에 없을 만큼 천박하며, 특히 지금까지의 낡은 사회 형식 속에서 대략 모든 인간적인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보는 근본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중략) 우리는 가혹함, 폭력, 노예 근성, 뒷골목과 가슴속에 있는 위험, 은군, 금욕주의, 유혹의 기술, 모든 종류의 악마성 그리고 인간이 가진 모든 악과 공포스러운 것, 포악스러운 것, 맹수 같은 것과 교활한 것이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이라는 종을 향상시키는 데 잘 기여한다고 생각한다.(44절)

‘잘못해서 자유정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척자로서 니체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을 제시하며, 그들이 즉 미래의 철학자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사상가’와는 다른 존재이며, 스스로 이러한 ‘현대적 이념’의 용감한 대변인으로 불리기 좋아하는 그러한 모든 존재와도 다른 존재이다.(44절)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우리는 심지어 궁핍이나 자주 변하며 엄습해오는 병에 대해서조차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우리를 어떤 규칙이나 그 ‘선입견’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신, 악마, , 벌레에게 감사하며 악덕에까지 호기심을 갖게 되고 잔인할 정도로 몰두하는 탐구자가 된다.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모색하는 손가락을 가지고 있고 소화할 수 없는 것을 소화시키고자 하는 이와 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미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민한 감각을 요구하는 수공업적인 작업이 되며, 넘치는 자유의지 덕분에 어떤 모험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44절)

디오니소스의 말처럼 인간 중에는 아리아드네처럼 미궁 속을 빠져나올 지혜를 가진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인간이라면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 될 수 있다(295절).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로운 정신으로 날아오리라.

평소 니체라는 철학자가 궁금했다. 그 덕분에 철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좀더 강하고 악하고 깊이 있고 또한 아름답게’라는 말에는 깊이 수긍이 간다. 이 말을 달게 새기며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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