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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왜.끊.곁 8장 후반부 발제

창근 2021.02.05 22:57 조회 수 : 56

건강한 신체란 고통 없는 신체가 아니라 고통을 잘 넘어가는 신체이다. 삶에 고통이 없을 수 없으며 그때마다 고통은 모두 다른 고통으로 나타난다. 이때 고통과 관계하는 방식이 건강을 정의한다. 건강이란 지금 현재 고통의 상태를 넘어 다른 신체로 변환시킬 수 있는 이행의 능력이다. 따라서 건강이란 자신의 신체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행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앞선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통을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고통의 원인을 삶의 신체적 원인에서 찾아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을 단순히 완화하거나 고통 자체를 없애려는 방법이다. 전자가 고통에 대한 생리학적 접근이라면 후자는 심리학적 접근이다. 여기서 금욕주의 성직자는 고통을 삶의 근본적 죄와 연결해(종합!) 병자들의 삶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한다.

고통에 대한 생리학적 차원의 접근에서 치유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 병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때그때 다가오는 고통에 대해 서로 다른 치유 방법을 적용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학적 접근에도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신체는 물론 사회의 신체에는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 존재한다. 개인의 신체나 사회의 신체를 치유의 상태로 옮기는 이행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다시 금욕주의 성직자가 추구하는 고통의 완화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불치병에 걸린 신체에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병에 걸린 사회 역시 완화의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가령 혁명이란 병든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넘어가는 이행의 능력이자 근본적인 치유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삶의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는 완화의 기술은 유용한 것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같은 것도 다르게 이용하는 새로운 종합의 힘, 새로운 힘에의 의지의 작용이다.

고통의 완화기술을 생리학적 관점에서 이용하는 것, 그것은 고통을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고통이 없을 수 없는 조건에서 실질적으로 고통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선-판단을 갖지 않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을 집착하지 않는 것, 반복적 행위 등이 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방법들이다. 불교에 대한 니체의 오해와 달리 불교는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 아니며 고통이 있는 현실 세계에서 그것과 관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는 고통을 잊고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금욕주의 성직자의 ‘완화’와 다르다.

고통의 완화기술에서 공동체와 무리를 형성하는 방식이 있는데 니체는 공동체를 약자들의 무리라며 비판한다. 그래서 이러한 방식은 공동체 안에서의 작은 행복 속에서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공동체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는 다르다. 이는 약자들의 공동체, 강자들의 공동체를 구분하게 한다. 약자와 강자 모두 자신의 힘의 증가, 즉 기쁨을 얻기 위해 공동체를 이룬다. 이때 약자들의 공동체는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찾으며 자신과 비슷한 신체들의 양적 증가 속에서 오는 쾌감을 추구한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무리 짓기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반면 강자들은 다른 이의 이질적인 신체와의 연결 속에서 현재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를 이룬다. 다른 신체와의 연결 속에서 그 이질성을 넘어서 좀 더 강한 신체를 구성하는 것에서 오는 쾌감을 추구한다. 강자들의 공동체는 넘어섬의 공동체다.

니체는 금욕주의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을 끝까지 밀고 나가 종교와 무관한 곳에서 최후의 금욕주의를 발견한다. 금욕주의의 특징은 오직 하나의 의지만을 상정한다. 최후의 금욕주의는 오직 하나의 의지만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기에 다른 모든 것은 이 의지에 의해 평가되고 해석된다. 이때 다른 의지나 목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최후의 금욕주의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이들에게는 오직 진리만이 옳은 것이 되고 그렇기에 오직 진리만이 추구되어야 한다. 즉 니체가 찾아낸 최후의 금욕주의는 진리에의 의지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러한 의지는 그 자체로 진리일 수 없는데,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로써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검증 가능성과 그 대칭물인 반증 가능성은 모두 그 자체로 검증된 적이 없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리인지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 또한 받아들여져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라면 진리가 아닌 것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학의 공리계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기하학은 평행선 공리와 다른 공리를 인정하고 허용한다. 하지만 다른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진리에의 의지는 공리계가 아니라 신앙의 체계가 된다. 왜냐하면 검증되지 않고 그 자체로 진리일 수 없는 것을 자명하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진리에의 의지에 대한 비판은 진리에 대한 거부나 비판이 아니라 오직 진리‘만’이 허용되는 체계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른 의지와 방향을 가지는 생명의 능동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무구성은 하나의 방향만을 가질 수 없다. 생명을 추동하는 의지는 그 자체로 복수적이고 제각각이다. 그러나 진리, 법칙 등은 삶의 다양성을 오직 하나의 의지에 종속시킨다. 금욕주의 이상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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