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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과도 같은 철학자! 중고등학교에서 꼭 한 반에 한 명씩은 니체를 읽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름마저도 니체(Nietzsche)다. 이미 그의 이름에 니힐리즘(nichts)이 흔적기관처럼 남아있다. 이 중 누군가는 그를 학생 때부터 알고 그의 저작을 이미 읽었을 테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떠도는 말들, ‘신은 죽었다’라니 얼마나 대담한 문장인가? 그래서 난 그가 그냥 별로였다. 대학에 와서야, 그것이 사실을 따지는 명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당시에 짜라투스트라를 읽으면서 아무 감흥도, (너무나도 격정적이었기에 나는 되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감동도 느끼지 못한 것에서 니체의 말에서 텅 빈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폭풍은 나에겐 찻잔 속의 폭풍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 그의 말들이 나를 휘젓고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오즈의 에메랄드 시로 나를 날려버리려는 듯.

 

이것은 분명히 [서울대 선정 필독서 100]이란 강력하고도 엄격한 주문, 출판사들이 건 마법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이 주문은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들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 마법으로 나도 모르게 다들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니체를 삼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텅 빈 주어들에 나도 모르게 잠식되었던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쩌면 무언가와의 첫 만남은 대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멋도 모르고 만났다가, 후에 다시 찾게 되는 것, 그 멋 혹은 가치를 알게 되는 것 - 대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나 생각해본다. 니체는 첫 만남에서 반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직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본 책에서 니체는 답을 주기보다는 물음을 던지는 인물이기에. 답을 찾아 니체에게 도달하지만, 물음만 더 지우게 만드는 이 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니체를 결정적으로 싫어하게 된 이유가 있다. 사실은 니체가 싫은 것이라기보다는 그 열성 팬이 싫어진 경우인데, 바로 대학에서 만난 니체추종자였다. 그는 하나처럼 확신에 차서 말하는, 오로지 힘에 의한 사고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긍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동아리에서 니체의 어구들을 자기 맛에 맞도록 인용하면서, 간단하게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들은 수시로 했었고 또 그것을 자신의 강함을 뽐내는 수단으로 삼았기에 ─나는 그에게 도덕주의자란 비판을 받았었다─ 나는 그를 좋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론 내내 나의 염두는 사실 반-니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직 온전히 그리고 마음 편히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경험들에 의해 이루어진 나의 방어기제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것을 뒤로하고 나는 직접 니체와 대면해보려고 한다. 정말로 그런 사람인지. 실은 진경 선생님의 책만 읽어봐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만남 이야기는 각설하고, 오늘 놀라웠던 모험의 첫 단락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자 한다.(모든 것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궁금해할 온라인 조들을 위해 간략히 옮겨 적는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다면, 후기에 답글로 전에 했던 이야기를 올려주면 좋겠다)

 

1. 『선악의 저편』의 제1 논문의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구분에서 나타나는 어원론적 분석의 자충수에 대한 니체의 의도에 관한 이야기

 

ⓐ이것은 니체가 어원론적인 분석의 허점을 스스로 드러내기 위해 의도한 것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우왜끊곁’에서 지시한 바와 같이 이것은 니체의 실수이다.

 

 

2. 계산, 이익 (공리주의) ↔ 사유

계산과 사유가 이루어지는 토대는 과연 어떤 곳인가? 이것은 주체의 심리적인 토대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체적 이득과 최소한의 동작으로 많은 토끼를 잡는 그 결과는 어떻게 분할될 수 있는가? 최소한의 동작으로 많은 토끼를 잡는 것과 신체적인 이득이 분리가 과연 가능한가?

→ 이는 3번 질문과 이어지는 듯하다.

 

 

3. 생리학적 근거가 좋고 나쁨을 결정짓는가? 그렇다면 생리학적 근거가 정확히 무엇인가? 의학적 소견에 따르는 것이 좋다는 것인가? (e.g. 마약의 경우, 술의 경우, 자해 etc.) 마약 없이는 음악을 하지 못하는 《본 투 비 블루》의 쳇 베이커의 예시와 흥분제 없이는 글을 못 쓰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경우. 자신의 신체적인 것들과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희생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던 작가들의 경우 (카프카와 고흐의 경우).

 

ⓐ마약, 술의 경우 적정량을 복용하면 그것을 섭취하는 자에게 생리학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것은 사유하면서 그것을 즐기고 이용하는 받는 자가 이득을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자신을 제어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받는 자가 그것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생리학적 근거는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조금 더 종합적인 의미에서의 다뤄져야 한다. 작가나 예술가들이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이 용납되는 경우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을 희생하는 데 있어서 손실보다는 더 큰 고양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4. 무구함과 무지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 5. 선악과를 왜 따먹으면 안 될까?

선악과를 먹기 이전, 선악을 구별하는 이전의 상태는 무구한 상태인가, 아니면 무지한 상태인가?

무구함은 무지함과 달리 번뇌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집중, 무심, 초연한 상태를 뜻한다.

 

6. 주는 것과 받는 것의 모호한 경계 / 이기심이 이타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것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

e.g. 주는 것이 강자이다. 주는 것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주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빠진다. 곧, 주는 것의 자긍의 심리가 아니라 받은 자의 이익의 생리학에 따라야 한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이익으로 기뻐할 때, 주는 사람은 강자가 된다.

7. 취향 존중 (취향의 고귀함과 저급함에 대해, 취향의 우열에 대해)

트로트와 소주 : 취향의 존중 여부를 떠나 이 취향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미에 갇혀, 자긍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가져야 한다. 이 취미가 저급하거나 싸구려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을 모두 맛보고 난 뒤에도 스스로가 트로트와 소주를 긍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닫힌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8. “강자의 감함이란 상대에게 제공하는 촉발능력의 강도가 상대의 촉발능력보다 강한 자”라고 했을 때, 강자의 이미지는 군주, 권력자, 독재자 혹은 팜므 파탈처럼 후광을 쓴 자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 이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산적인 촉발을 주는 관계가 아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명확하며, 계산된 움직임에서 나오는 행동들이다. 이들은 대개 심심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후기

먼저 발제자이셨던 강벼리님 재연님 그리고 튜터 효영, 재림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혼자 공부하던 습관이 아직 몸에 배어있는 저로서는 말을 할 때 항상 내 속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있기에 말을 하면서도 긴장을 몹시 심하게 하고 자기 검열을 수시로 하는 편입니다. 그 결과 갈피를 잃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튜터 두 분의 적절한 지도 아래에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각하고 세미나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아닌지, 아직 니체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져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네요.  화이팅!

 

위의 문제의식에 관한 관련기사가 있습니다. 영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니체를 오독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링크 : https://www.vox.com/2017/8/17/16140846/alt-right-nietzsche-richard-spencer-naz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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