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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_발제] 우상의 황혼② :: 10.12(월)

로고스의 짐작 2020.10.12 16:59 조회 수 : 32

우상의 황혼2

-네 가지 중대한 오류들.

1.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오류를 이성의 본래적인 타락이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습관 중 하나이자 우리 사이에서 신성시되고 ‘종교’나 ‘도덕’이라는 명칭을 갖는다.

 

 

2.모든 종교와 도덕의 기초에 놓여 있는 가장 일반적인 정식:모든 도덕, 모든 종교가 ㅇ런 식의 명령이다. 이것을 이성의 중대한 원죄, 불멸하는 비이성이라고 부른다. “모든 가치의 전도”의 첫 번째 예:좋은 체질을 갖추고 있는 자, ‘행복한’자는 특정 행위들을 해야만 하고, 다른 행위들은 본능적으로 피해야만 한다.

 

 

3.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원인으로서의 의식(‘정신’)이라는 구상과 그 다음에 나오는 원인으로서의 나(‘주체’)라는 구상은 의지에 의해 인과관계가 주어진 사실로서, 경험적인 것으로 확립된 다음 나중에 생겨난 것이다.(원인정신→원인주체→인과관계→경험적 확립) ‘경험영역’을 점잖게 오용하여, 이것을 기초로 해서 세계를 원인의 세계로, 의지의 세게로, 전싱들의 세게로 만들어냈다.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심리학이 여기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심리학은 다른 작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세가지(경험영역,의지의세계,정신들의 세계) ‘내적 사실들’을 그가 가장 확고하게 믿었던 의지와 정신과 나를 자신의 외부 세계에도 투사했던 것이다.

 

 

4.가상적 원인들이라는 오류:감각은 말하자면 원인을 만들어내는 충동이 그 감각으로 하여금 의미부여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들이 갖는 일반 감정의 대부분이 기관들이 펼치는 유희 작용과 반작용에서의 온갖 종류의 좋은 상태에 있든, 나쁜 상태에 있든, 이유를 갖고 싶어한다. 단순히 우리가 이러저러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하는 것으로는 우리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5.첫 번째 본능은 이런 불편한 상태들을 없애면서 사라져간다. 안정시켜주고 성가신 것을 없애주며 가볍게 해주는 원인으로 사라진다. 특정한 종류의 설명들이 원인으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정선되고 친숙한 종류의 설명들이 찾아지며 다른 원인과 설명들은 간다히 배제되어 버린다.(은행가는 즉시 ‘이윤’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교인은 즉시 ‘원죄’를 생각하며, 소녀는 즉시 그녀의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다.

 

 

6.도덕과 종교 영역 전체가 가상적 원인들이라는 이런 개념 밑으로 포섭된다. 불쾌감이라는 일반 감정에 대한 ‘설명’ 불쾌감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존재에 의해 야기된다. 쾌감은 신에 대한 믿음에서 생겨난다. 쾌감은 선한 행위들을 의식할 때 야기된다.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충만함과 힘의 느낌이 그를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도덕과 종교는 전적으로 오류의 심리학에 속한다: 개개의 모든 경우에 원인과 결과가 혼동되어 있다: 또는 진리와 진리로 믿어진 것의 결과가 혼동되어 있다.

 

 

7.자유의지라는 오류: 책임이 첮어자는 곳 그 어디서든 그 책임을 차즌ㄴ 것은 벌을 원하고 판결을 원하는 본능이게 마련이다. 성직자들이 자신들이 벌을 규정하는 권한을 갖고자 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판결하고 처벌될 수 있기 위해 죄지을 수 있기 위해, 인간은 ‘자유롭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개개의 행위는 원해진 것이어야만 했고, 각자의 행위의 기운은 의식 안에 있다고 생각되어야만 했다.

그리스도교는 사형 집행인의 형이상학이다.

 

 

8.우리의 유일한 가르침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의 존재의 숙명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 될 수 없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고안해낸 것이다. 사실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필연이며, 한 조각 숙명이다. 사람들은 전체에 속하며, 전체 안에 있다. 우리의 존재를 판결하고 측적하며 비교하고 단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신’ 개념은 지금까지 인간 삶에 대한 최대의 반박이었다. 우리는 신을 부정하고, 신을 부정하면서 우리는 책임을 부정한다. 이렇게 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다.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1.도덕판단은 존재하지도 않는 실재성을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판단과 공통된다.

도덕은 단지 특정 현상들에 대한 해석이고,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릇된 해석에 불과하다. 도덕판단은 종교적 판단처럼 실재라는 개념도 갖고 있지 않고, 실재와 가상을 구별조차 하지 않는 무지의 단계에 속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의 ‘진리’란 것은 순전히 오늘날 ‘공상들’이라 불리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이러 한에서 도덕 판단을 결코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 판단은 증후학으로서는 대단히 가치 있다 : 그것은 적어도 자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문화나 내면 세계의 가장 귀중한 실상을 알려준다.

 

 

2.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인간을 ‘개선시키기’를 원했다 :

무엇보다도 이것이 바로 도덕이 의미하는 바다. 짐승같은 인간을 길들이는 것뿐 아니라, 특정한 인간 종류의 사육도 ‘개선’이라 불리어왔다. ‘개선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성직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으며 –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곳에서 야수들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그 야수들은 유약해지고 덜 위험스럽게 만들어지며 침울한 공포감과 고통과 상처와 배고픔에 병든 야수가 되어버린다. 고귀한 게르만인을 ‘개선시켰다’

 

 

3. 특정한 계급과 종을 사육하는 면을 보자.

예로는 종교로까지 인정받고 있는 <마누 법전>에 나오는 인도 도덕들 들 수 있다. “깨끗하지 않은 야채에 관해서”라는 세 번째 칙령은 찬달라에게 허용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으로 마늘과 양파만을 정해놓고 있다. 이것은 성전이 그들에게 씨앗이나 싸앗을 갖는 열매, 또는 물과 불을 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동일한 칙령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을 강물이나 샘 또는 연못에서 얻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은 그들에게 자비에 의해 허용되는 것으로, 단지 갈증을 없애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생 규정의 결과가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야 말았다 : 치명적인 전염병, 끔찍한 성병들이 발생했고, 그래서 다시 남자 아이에게는 할례를, 여자아이에게는 소음순 제거를 명형하는 ‘수술법’이 생겼다. - 마누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찬달라는 간통, 근친상간,범죄의 열매이다.

그들에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는 것이 금지되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금지된다. : 오른손을 사용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은 단지 덕 있는 자들, 즉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의 권한이다.

 

 

4.이런 규정들은 다분히 교훈적이다:

‘순수 혈통’이라는 개념이 무해한 개념과는 정 반대라는 점을 배운다.

그리스도교는 사육과 계급과 특권의 도덕 각각에 대한 반대 운동을 표현하고 있다 : 그것은 사육과 계급과 특권의 도덕 각각에 대한 반대 운동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전형적인 반아리안적 종교이다 : 그리스도교는 모든 아리안적 가치들의 전도이자, 찬달라적 가치들의 승리이며, 가난한 자와 천한 자들에게 설교된 복음이고, 짓밟힌 자, 불우한 자, 실패자, 처우를 잘 받지 못한는 자들이 모두 ‘계급’에 맞서 벌이는 총제적 봉기이다.

 

 

5.사육의 도덕과 길들임의 도덕은 그것들이 자신을 관철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서로 완벽하게 어울린다 :

내가 가장 오랫동안 몰두해온 엄청나고도 섬뜩한 문제 : 인류를 ‘개선시키는 자’의 심리학에 관한 것이다. 비소하지만 근본적으로 겸손한 사실, 소위 말하는 종교를 빙자한 성스러운 거짓말이 내게 이 문제에 접근하는 첫 도입구를 제공했다 : 이것이 인류를 ‘개선시켰던’ 모든 철학자와 신학자의 유전질인 것이다.

 

 

독인인에게 모자란 것.

1.오늘날 독일인 사이에서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그들은 정신을 취해야만 하고, 자신으로부터 정신을 꺼내야만 한다.훨씬 뛰어난 용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 훨씬 안정적인 타인과의 교제 및 상호 간의 의무 이행, 현저한 근면함과 지구력- 그리고 제동보다는 자극을 필요로 하는 물려받은 절제가 그것들이며, 여기에 나는 복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서 복종하는 것을 덧붙이겠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대를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의 덕이다. 권력을 향해 간다는 것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2. 알코올과 그리스도교라는 유럽의 두 가지 대단한 마약이 이렇게까지 부도덕하게 오용된 곳은 없었다. 여기에다가 최근에는 세 번째 마약이 첨가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정신의 섬세하고 대담한 모든 움직임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 살해해버릴 수 있는 음악이고, 그것도 변비에 걸려 있고 변비를 일으키는 우리의 독일 음악이다.

 

 

3.나는 독일 정신에 대해 말했다:

정신적인 것에 있어서 독일적 진지함,깊이,열정이 어찌해서 점점 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지,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한갓 지성뿐 아니라, 파토스가 변해버리다니. 우리의 문화는 오만불손한 게으름뱅이와 휴머니티의 파편들이 과다하다는 점으로 고통받는다.

 

 

4. 대략 계산해보자:

권력이나 큰 정치나 경제 등등의 관심에 힘을 다 써버리면 –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오성, 진지함, 의지, 자기극복의 힘을 이런 방면에 다 주어버린다면, 다른 방면에서 그 힘은 결여되게 마련이다. 문화와 국가는 대척자이다 ‘문화-국가’ 란 단지 근대적 이념일 뿐이다 이 중 하나는 다른 것에 의존해 살아간다. 오늘날에는 이미 상당히 새로운 정신적 진지함과 상당히 새로운 열정이 파리로 옮겨가 있다 ; 이를 테면 염세주의 문제, 바그너 문제, 거의 모든 심리적이고 예술적인 문제들이 그곳에서는 독일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도 근본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 독일인은 이런 종류의 진지함에는 무능하기까지 하다.

 

 

5. 독일의 고등교육 제도 전체에는 핵심요소가 빠져버렸다:

자신들도 교육을 받은 교육자들, 자기 자신을 탁월하고 고귀한 정신으로 입증하며, 말과 침묵으로 입증하고, 성숙하고 감미로워진 문화인들이 필요한 것이지 – 고등학교나 대학교가 오늘날 젊은 이들에게 ‘고급’ 보모‘로서 제공하는 배워먹은 무례한 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독일의 ’상급 학교들‘ 이 사실상 달성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잔인한 조련으로서, 많은 젊은이들을 국가의 봉사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고등교육‘과 다수의 사람- 이것은 처음부터 모순된 것이다. 모든 고급 교육은 예외지들에게만 해당된다 : 그런 높은 특권을 누릴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특권자여야만 한다.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은 모두 결코 공유 재산이 될 수 없다.

 

 

6. 긍정하고, 부득이할 경우에만 간접적으로 반박하고 비판하는 내 방식을 위해 세가지 과제를 설정해본다. 사람들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이 세가지 과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두 고급 문화이다. -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눈으로 하여금 평정에, 인내, 그리고 자신에 판단을 유보하고,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보고 포관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결정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바로 그럴 능력이다. 비정신적인 것, 천박한 것은 모든 특정 자극에 저항 할 수 없는 무능력에서 나온다 – 사람들은 반응해야만 하며, 개개의 자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철학적인 조잡함이 ’악덕‘이라고 칭하는 것은 거의 전부 반응하지 못하는 생리적 무능력일 뿐이다.

 

 

7.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우리가 춤을 배우려고 하듯 생각하는 것도 배우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 춤의 일종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희미하게라도 상기시켜주지 않는다. 정신의 가벼운 발이 모든 근육으로 옮기는 그 정교한 전율을 지금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독일인이 누가 있단 말인가!- 정신적인 동작의 뻣뻣한 무례함, 파악할 때의 굼뜬 손- 이것이 독일적이다. 독일인은 뉘앙스를 타진할 손가락이 없다.

춤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이든 고급 교육과 불리 될 수 없다. 다리를 가지고 춤출 수 있지만, 개념들과 말을 가지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 펜을 가지고서도 춤을 출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도 말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런 글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독일 독자들에게 완전히 수수께끼가 되어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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