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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전집15 > [우상의 황혼]① :: 2020.10.5(월)

 

#니체의 언어습관(말투)에 대하여

1. 심리학자들/우리 심리학자들, 철학자들/우리 철학자들, 우리 실험자들, 우리 비도덕가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니체가 어떤 인칭앞에 '우리'라는 말을 쓸 때, 이는 니체와 같은 동류를 뜻한다. 우리라는 말이 없는 경우는 일반적인 대상을 말한다.

2. 미래, 실험, 시도 / 위대한, 디오니소스, 차라투스트라

    이 표현들은 한결같이 니체철학에서 능동적 힘과 긍정의 의지를 나타낸다.

3. 도덕/강자의 도덕 : 일반적으로 '도덕'은 부정적 가치인 반면, '강자의 도덕'은 긍정적 가치이다.

    힘에의 의지/약자의 힘에의 의지 : 일반적으로 '힘에의 의지'는 긍정적 가치인 반면, '약자의 힘에의 의지'는 부정적 가치이다. 

4. 무리/다수자/무리적/평균적 <······> 예외자/소수자/예외적/특이적  |  약자(노예) <······> 강자(주인) 

    이타주의(동정.연민.이웃사랑) <······> 이기주의(자기배려)  |  집단(전체, 공동체, 국가)  <······> 개인(주권적 개인, 자기입법자) 

    진리(참된 세계, 정신, 이성, 본질)  <······> 오류(가상의 세계, 신체, 본능, 허위-위장-가면)  자유의지 <······> 자유정신

(1) 전자는 부정적(약자적) 가치, 후자는 이것과 반대되는 긍정적(강자적) 가치로 쓴다. 

     그밖에, 민주주의ㆍ평등은 무리적 가치로 / 정의ㆍ박애는 약자적 가치로 해석한다. 

(2) 종교ㆍ도덕ㆍ철학 같은 지배적 가치는 데카당스로 비판한다. 근본적으로 모든 지배적 가치(*다수적 가치)는 부정적으로, 모든 새로운 가치(*소수적 가치)는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 *[참고] "나는 대중예술(*대중으로부터 지지받는 예술)을 싫어한다. 무대 위의 성공: 이로써 그 예술은 나의 경의를 잃어버리고 나는 그것을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무대 위의 실패: 내 귀는 곤두세워지고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니체 대 바그너] 내가 반박하는 곳 

니체는 철학, 예술, 도덕 등 가치의 내용이 아니라 가치의 표현(지배적인가, 새로운가)에 따라 가치평가를 한다! 왜 니체는 지배적 가치에 비판적(부정적)이고 새로운 가치에 호의적(긍정적)인가?

 

0. 《우상의 황혼》:: 기본적인 것들

-《우상의 황혼》 제목 :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을 패러디한 것 ······> '현대인들이 우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들이 이제 몰락하는 유형'이라는 의미

 《우상의 황혼》 부제 : 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 ······> ‘망치를 들고 우상에 대한 파괴작업을 하겠다’는 의미

 《우상의 황혼》 목표 : 모든 가치의 전도 ······> ‘우상의 파괴작업을 통해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겠다’는 의미

= 서문 :: 《우상의 황혼》의 목표, 방법, 태도를 드러냄

= 소크라테스의 문제 :: 소크라테스(이성=덕=행복이라는 공식, 변증론)라는 우상

=  철학에서의 ‘이성’ :: 철학(당시 철학자들의 특이체질, 이분법)이라는 우상

=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꾸며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지 :: 형이상학(당시 형이상학의 이분법, 초월론)이라는 우상

= 반자연으로서의 도덕 :: 도덕이라는 우상

= 네가지 중대한 오류들 :: 인과관계(특정원인에 의해 특정결과가 생긴다는 믿음)라는 우상

= 인류를 ‘개선하는 자들’ :: 개선의 도덕(인류를 개선시킨다는)이라는 우상

=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 독일정신과 독일문화라는 우상

=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 당시 독일의 철학자, 예술가의 우상

= 내가 옛 사람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 ::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로부터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들

= 망치가 말한다 :: 나의 철학은 낡은 우상을 망치로 파괴하는 작업이다.

 

 

1. 서문 :: 우상의 황혼에서 다루는 것들 - 가치전도(과제), 명랑함(태도), 우상의 파괴(수단)

(1)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과제로 삼은 '모든 가치의 전도'란 무엇인가?

(2)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과제를 위해 '명랑함'이라는 태도는 왜 필요한가? 

"암울하지만 대중에게 책임있는 일을 하면서 명랑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 어떤 것이 명랑함보다 더 필요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힘이야 말로 힘에 대한 증거이다. 모든 가치의 전도. 이 과제는 너무나도 무겁게 되어버린 진지함을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버리라고 강요한다."

[참고]   "진지한 사항을 웃으면서 말한다." [바그너의 경우] 표지 / *춤, 웃음, 놀이: 니체에게 춤, 웃음, 놀이는 가치전환ㆍ가치생성을 위한 신체의 긍정적인 힘들이다. 춤, 웃음, 놀이는 모두 가벼움, 경쾌함, 명랑함의 원천이다!

(3) 우상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시대의 우상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들이 더 많다. 이것이(*우상들) 이 세계에 대한 나의 '못된 눈길'이자, 나의 '못된 귀'이다. ...... 이 책은 어느 심리학자의 휴식이자 새로운 우상들에 대한 중대한 선전포고이다. 캐내는 우상은 한 시대의 우상들이 아니라, 영원한 우상들이다. 이 영원한 우상들을 망치를 가지고 치게 될 것이다. ...... 이 우상들보다 더 오래되고, 더 설득적이며, 더 뽐내는 우상들은 없다. 또한 더 공허한 우상들도 없다. 이런 점이 그 우상들이 가장 많이 신봉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가장 절실한 우상일 경우, 결코 우상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참고] "(*데카당스와 대결하기 위해서)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현대적 ‘인간성’을 포함해서 내게 들어와있는 온갖 병증에 대항하는 것이 필요했다." [바그너의 경우] 서문

 

 

2. 잠언(*아포리즘)과 화살

(1) 시대성 / 반시대성 / 비시대성

#15. 철학의 시간성: 철학은 어떤 시대에 존재해야 하나? > 사후의 인간들은(예를 들어 나는) 시대에 적합한 인간들에 비해 이해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더 잘 경청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결코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권위가 (*형성된다.) ······> *[해석] ‘지금 시대로부터 이해받는다’는 것은, 시대적 가치다. 반대로 ‘지금 시대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은 비시대적 가치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의 권위는 만들어진다.)

#28. 니체의 여성관: 여성은 어떤 시간을 살게 되는가? > 여자가 남성적인 덕들을 갖는다면,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달아나버린다. (*남성 같은 여성_반시대적 여성. 사람들은 남성 같은 여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여자가 남성적인 덕들을 갖지 않는다면, 여자는 자신에게서 달아나버린다.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 순종적인 여성_시대적 여성. 여성 자신은 ‘순종적인 여성’을 부정한다.)

*[참고] 데리다의 [에쁘롱] - 니체의 여성관 '거세된 여성(시대적 여성) / 거세하는 여성(반시대적 여성) / 여성 자신(비시대적 여성)'

#37. 앞서-가기의 방식(강자의 존재론): 목자, 예외자, 탈주자 > 네가 앞서서 달리고 있다고? 목자(*시대적 존재)로서? 아니면 예외자(*반시대적 존재)로서? 세 번째 경우는 탈주자(*비시대적 존재)일 것이다.

#41. 시대와의 거리: 같이-가기, 앞서-가기, 홀로-가기 > 너는 (*시대와) 같이 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대보다) 앞서 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대를 넘어) 홀로 가리를 원하는가? ......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42. 그들을 넘어서는 것 vs 그들 위에 있는 > 그들은 내게 계단들이었고, 나는 그 위를 올라갔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그들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자기들 위에 정주하기 원했다’고 생각했다.

< 강자의 유형: 목자 vs 예외자, 탈주자 >

*참고 [힘에의 의지] #879. 양치기, 무리적 존재 > 도덕적 고려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낮은 수준의 지성을 전제한다. 그런 상태가 특별한 권리에 대한 본능, 홀로 서려는 본능, 창조적 천성들의 자유의 감정, '신의 자식들(악마의 자식들)'의 자유감정(*강자의 본능)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배적 도덕을 설교하느냐 비판하느냐에 상관없이, 그는(*도덕적 고려에 사로잡힌 자) 자신이 무리에 속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가 무리에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 즉 '양치기'일지라도, 그 사람이 무리에 속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참고 [힘에의 의지] #902. 양치기 vs 군주 > 지배하는 유형들에 관하여. 양치기는 '군주'와 반대이다. (*양치기는 오직 무리를 유지하는 수단일 뿐이며, 군주는 무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참고. [힘에의 의지] #358. 선도자 vs 다른 존재 > 그것은 선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필요한 것은 기껏 목동이 되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무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만 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보다는 홀로 잘 해낼 수 있는가(*주권적 개인, 자기입법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가(*탈주자) 하는 문제이다.

(2) 좋은 아포리즘

#1. 도덕 비판 > 게으름은 모든 심리학의 시초다. 뭐라고? 그럼 심리학이 악덕이란 말인가? ······> *[해석] 게으름(쓸데없는 여유)이 있을 때 심리학(인간의 심리를 해석하는)이 만들어진다. 도덕에서는 게으름을 악덕이라고 했는데, 그럼 심리학이 악덕이란 말인가? 절대적인 악덕/미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법(배치)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4. 니체의 진리관 > “모든 진리는 단순하다.”(쇼펜하우어) 이것은 이중의 거짓이다! ······> *[해석] (절대) 진리는 없다. 진리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7. 신과 인간 > 인간이 신의 실책인가? 아니면 신이 인간의 실책인가? ······> *[해석] 인간이 신의 실패한 창조물인가? 신이 인간의 실패한 창조물인가?

#8. 고통에 대한 퍼스펙티브 >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9. 이기적 관점의 이웃사랑 > 너 자신을 도와라. 그러면 모두가 너를 도울 것이다. 이웃사랑의 원리. ······> *[해석] 무리적 관점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타주의) vs 니체의 이웃사랑(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기주의)

#11. 비극적이란? > 나귀가 비극적일 수 있는가? 짊어질 수도 던져버릴 수도 없는 무거운 짐 밑에서 사람들이 몰락한다는 것. 철학자의 경우. ······> *[해석] 나귀는 비극적일 수 없다, 몰락 후에 생성이 없으므로!

#12. 삶에 대한 자기 이유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를 가진 자는, 모든 방법(어떻게?)을 견뎌낼 수 있다. 단지 영국인만이 그럴 뿐, 인간은 행복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 *[해석] 유용성, 효용성 같은 자본주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공리주의자 영국인에 대한 비판 / *[참고] [힘에의 의지] #2. “도덕은 ‘왜 그것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이유를 가지지 못한다. 도덕은 가치평가되지 않고 전제된 가치이므로!” 반대로 우리가 자기 삶에 대한 이유를 갖는다면, 삶의 모든 방법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ex. 우리가 니체를 읽어야할 이유를 갖고 있다면, 어려움이나 방법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26. 체계주의자 비판 > 나는 체계주의자들을 불신하며 피한다. 체계를 세우려는 의지는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 *[해석] 체계주의자는 하나의 체계를 세워 그를 기준으로 사물을 해석ㆍ배열하려 한다. 따라서 사물의 변화를 해석하려는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34. 생각하는 신체 > 앉아있을 때만 생각하고 쓸 수 있다.” 플로베르. 이로써 나는 허무주의자를 잡았다! 꾹 눌어앉아 있는 끈기야말로 성스러운 정신을 거스르는 죄이다. “걸으면서 얻은 생각만이 가치있다.” 니체.

#36. 도덕을 저격하라! > 우리 비도덕주의자들이 덕(*미덕. Tugend)에 해를 입히는가? ‘아나키스트들이 군주들에게 입힌 정도의 해를 입혔다’고 할 수 있다. 군주들은 (*아나키스트들에게) 저격당한 후에라야 비로소, 다시 확실히 왕좌에 앉게 된다. 교훈: 도덕(Moral)을 저격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석] Moral(도덕) <··Tugend(미덕)··> Virtue(덕) / Moral(도덕)은 지배적인 가치이고, Tugend(미덕)은 일상의 습관, Virtue(덕. 가상)은 니체적 의미의 역량을 의미한다. 따라서 Tugend(미덕)은 맥락에 따라 Moral(도덕)에 속할 수도, Virtu(덕)에 속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일상적인 Tugend(미덕)이 아니라, 지배적인 가치인 Moral(도덕)을 공격해야 한다는 의미)

#39. 위대한 인간과 인간을 흉내내는 원숭이 > 실망한 자가 말한다. 나는 위대한 인간을 찾아보았지만, 언제나 그 인간(위대한 인간)을 흉내내는 원숭이들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 *[참고]. [차라투스트라] 머리말 4 >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43. 옳음이 아니라 강함 > 내가 옳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지나칠 정도로 옳다. 가장 잘 웃는 자가 최후에도 웃는다. ······> *[참고] 진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이다. 우리는 진리 없이도 권력을 차지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힘에의 의지] #749

#44. 니체의 행복관 > 내 행복의 공식 : 하나의 긍정, 하나의 부정,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

 

 

3. 소크라테스의 문제

*제목 '소크라테스의 문제' : 철학자들 사이의 '소크라테스의 문제'를 패러디한 것

 

(0) 소크라테스(기원전 469년~399년. 그리스 아테네 출생)의 맥락

소크라테스의 문제 (Socrates Problem)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에 대해서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과 크세노폰, 그리고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남긴 글을 통해서만 알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부르는 35편의 책은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한 기본자료이다. (그 가운데, [변명], [파이돈], [향연],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4대 복음서로 불린다.) 그러나 제자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모습이나 생각은 서로 다를 뿐더러,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에서도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플라톤은 상상력이 뛰어난 문학가였으며, 크세노폰은 군인,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는 패러디전문가였다. 그런 이유로 소크라테스 연구자들은 무엇이 진짜 소크라테스의 모습인지에 대하여 지금도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Dialetiké, Dialektik (문답법,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어떤 주제에 대하여 논쟁(대화ㆍ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플라톤의 대화편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장에서 아름다운 청소년들이나 마을의 유력한 사람 등 상대를 불문하고 논쟁을 즐겼다고 한다. 심지어 아테네의 법이 이 즐거움을 금지시키면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스스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독배를 마시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옥리에게 뇌물을 주고 도망가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소크라테스에게 토론은 공기와 물 같은 것이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논쟁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상대가 ‘무지’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을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이라고 하는데, 모순과 오류를 끌어내는 부정적 논증(elenchus. 부정의 논법)이다. 그리고 묻고 답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문답법을 통해 불완전하고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여 참된 인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는 산파술에 비유하여 ‘소크라테스의 산파술’로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용기’가 무엇인지 확신하고 있는 한 장군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 장군은 소크라테스와 20분 정도 대화한 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용기’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상태인 혼돈에 빠져버렸다. ‘현명하다는 사람의 무식이 폭로되는 토론’은 아테네 젊은이들 사이의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고, 여기에서 자기의 무지를 폭로당한 사람들은 때로는 소크라테스의 음흉한 수법에 분노하였다. 바로 이런 논쟁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 중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이것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변증술Dialektik :: 어원은 dialectic(대화하다는 동사). 변증(辨證분별변-증명증. =논증)

*산파술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148e~151d “당신은 산고를 겪고 있는 산모와 같아요. 당신의 속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 이미 지혜의 씨앗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대화를 통해 지혜를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Ironie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지자知者’의 가면을 벗기는 대화기법으로서 아이러니.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무지를 가장하면서 대화를 통해, 스스로 지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의 무지를 역으로 폭로했는데, 이를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고 하는데 야유 혹은 풍자의 의미를 지닌다.

 

(1) 삶에 대한 평가 :: 현자들의 평가와 니체의 평가는 어떻게 다른가?

#1. 어느 시대든 최고의 현자들은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삶은 별 가치가 없다." 회의와 우울 가득한, 삶에 완전히 지쳐버리고 삶에 대한 저항이 가득한 소리를 했다. 그들은 몽땅 더이상은 제대로 서지 못하는 자들, 뒤처진 자들, 힘없이 흔들거리는 자들, 데카당은 아니었을까?

#2. 위대한 현재들은 몰락하는 유형들이다. 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쇠약의 징후로, 반그리스적이라고 파악했다. <비극의 탄생>  현자들의 의견일치(*삶에 똑같이 부정적 태도를 취하는)는 그들이 생리적인 의견일치(*몰락하는 유형)를 보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삶에 대한 판단은 삶에 긍정적이득 삶에 적대적이든 간에 결코 참일 수 없다. 삶에 대한 판단은 단지 징후로서의 가치만을 가질 뿐이며, 그 자체로는 우매할 뿐이다. 사람들은 "삶의 가치라는 것은 평가될 수 없다"는 놀랍고도 미묘한 사실을 알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살아있는 자는 삶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는데, 그들은 논의의 대상이지 판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또다른 이유 때문에 안된다. ······> *[참고_에피쿠로스의 ‘죽음의 무의미'에 대한 증명]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고,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소크라테스의 변증론은 어떤 점에서 천민적인가? 소크라테스의 변증론과 니체의 '대적할 만한 적', 맑스의 '내재적 비판'과 비교해보자!

Q. '축적된 논리와 가시 돋친 악의'로서의 변증법은 니체에 의하면 '고귀한 취향을 전복'시킨 '천민'적 인식방법이다. 그 이유는 변증법이 첫째, 정당화를 요구하고, 둘째, 설득력이 부족하며, 셋째, 복수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 (변증론 비판1. 변증론은 정당화를 요구한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취향은 변증론에 유리하게 돌면했다. 고귀한 취향이 정복되고 천민이 변증론을 수단으로 상부로 올라셨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변증론은 나쁜 수법으로 간주되고 조롱받았다.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보이는 것은 불신되었다. 품위있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품위있는 것들은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점잖치 못한 일이다.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권위가 미풍양속에 속하는 곳, '근거를 들어 정당화'하지 않고 명령하는 곳이라면, 변증론자는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그들은 비웃음을 사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크르테스는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어릿광대였다. 

#6. (변증론 비판2. 설득력이 부족하다)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에만 변증론이 선택된다. 변증론으로 인해 불신이 조장되며, 변증론은 설득력이 없다. 변증론자의 감명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지워진다. 변증론은 다른 무기를 갖추지 못한 자들의 정당방위이다. 

#7. (변증론 비판3. 복수수단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는 반항에 대한 표현이며, 천민이 품는 원한에 대한 표현이다! 소크라테스는 피압박자로서 자신의 잔혹선을 삼단논법의 칼처럼 찔려대며 즐기고, 그가 매혹시킨 귀족들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변증론자들은 변증론이라는 무자비한 도구에 의해 폭군이 될 수 있다. 그는 승리하면서 자신을 웃음거리고 만드는데,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적수에게 입증하도록 한다. 그는 적수를 분노하게 하고 속수무책으로 만들며, 적수의 지성을 피로하게 만들어버린다. 변증론이란 소크라테스에게 복수의 형식일 뿐이다!

[참고_힘에의 의지] #431. 소크라테스, 변증법에 유리하게끔 그리스의 취향을 변화시킨 그는 하나의 커다란 의문부호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런 변화를 일으킨 평민 소크라테스가, 그것으로써 고귀한 취향을 극복하기에 이르렀다. 천민이 변증법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에 변증법적 방법은 모든 우월한 사회에서 거부당했다. 그것은 (*상대의 약점을) 폭로하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청년들은 그런 방법에 대해 경고를 받고 있었다. 명령, 이것으로 충분했으며, 동료들 사이에는 내려져오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도 또한 하나의 권위이며, 최후에는 '서로 이해했다.' 변증법이 들어설 여지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스스로의 논거를 공공연하게 대려는 태도는 신뢰받지 못하였다. 모든 건실한 사물은, 근거를 그런 식으로 손안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섯손가락을 죄다 펴보인다는 것에는, 뭔가 야비한 데가 있다. 증명해야 하는 것은 별로 가치가 없다. 모든 연설가는 본능적으로 변증법은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설득력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증가의 효과만큼 소실되기 쉬운 것도 없다. 변증법은 오직 정당방위에 지나지 않는다. 곤혹 속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강탈당할 때가 아니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참고] 니체의 대적할만한 적 :: 기독교 이상, 도덕에 대한 니체의 퍼스펙티브 

(p279_#361) 내가 빈혈증세를 보이고 있는 기독교이상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기독교이상을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이상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이상(보다 강한 이상)을 위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이다. 기독교이상이 지속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 중 하나이며, 기독교이상과 나란히 또는 앞질러 부상하려는 다른 이상을 위한 것이다. 다른 이상들은 강해지기 위해서 강한 적대자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리하여 우리 비도덕자는 도덕의 권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자기보존 충동은 우리의 적대자가 언제까지나 강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을 지배하는 자가 되기를 욕구하는 것이다.

[참고] 맑스의 내재적 비판 :: 자본의 공식(가치증식) vs 노동가치론(등가교환) ...... 이율배반의 해소 [자본을 넘어선 자본]

맑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정치경제학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제대로 해결해 주려한다. 상대방을 작게 만들어서 쉽게 비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잠재성까지 따라가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논지를 비판하는 방법. 니체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자랑할 만한 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맑스는 적을 자랑할 만한 것으로 키우면서 자산의 능력을 더욱더 키우고 있다.

 

(3)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이성성"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믿음은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당시 그리스에서 '이성 중심주의'가 등장하는 배경 > 도처에서 동일한 퇴화가 준비되었고, 옛 아테내가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본능들이 아나키상태(자연적 욕구들 사이에는 그것들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자연적 힘이 없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자연적 욕구들의 아나키상태는 생리적으로 퇴화된 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그들에게 커다란 위험이다. 그래서 이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 그것도 자연적 욕구들과는 대립되는 능력이자, 그것들의 비정신적 상태를 정신화시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해서 '이성'에 막강한 권력이 부여되고, 이성은 '구조자'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 '구조자'가 자연적 욕구 대신에 새로운 '폭군'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성 '중심주의'가 공고해진다.

#9.여기저기서 본능들이 아나키 상태에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무절제 직전에 놓여있었다 : 정신의 괴물상태가 전반적 위험이 되어있던 것이다. "충동들이 폭군노릇을 하려 한다. 그러니 그것보다 더 강력한, 그것에 대적적인 폭군을 하나 고안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10. 그 당시에 이성성은 구조자(*구원자)로 여겨졌다. 소크라테스도 그의 환자들도 자기 마음대로 이성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거나 할 수는 없었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어길 수 없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최후 수단이었으니. 그리스적 숙고 전체가 이성성에 몸을 던지면서 보여주었던 열광은 특정한 위급상황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고, 오직 하나의 선택권만을 갖고 있었다. 몰락하든지, 아니면 불합리할 정도로 이성적이든지. ...... 이성=덕=행복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를 모방해야 한다. 그래서 어둠의 욕구들에 대항하여 영원한 햇빛을 창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 이성의 햇빛을. 어떤 대가를 치르든 일단은 똑똑하고 명료하며 총명해야만 한다. 본능들에 굴복하는 것, 의식되지 않는 것들에 굴복하는 것은 사람들을 저 아래쪽으로 끌어가는 것이다.

#11. '가장 눈부신 햇빛,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이성성이라는 것, 본능에 대적하는 삶'은 하나의 병증일 따름이다. 결코 덕과 건강과 행복으로 향하는 귀로는 아니었다. '본능들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데카당스의 공식이다. 삶이 상승하는 한, 행복은 본능과 같은 것이다.

 

4. 철학에서의 '이성' /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꾸며낸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

*주제: 철학자의 특이성질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서양철학을 지배하는 일반적 경향을 철학자의 '특이성질'Idiosynkrasie이라고 부르고, 서양철학의 허무적이고 데카당스적 경향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 철학자의 특이성질1. 이분법Dualismus적 사유 (이분법이란 무엇이고, 니체철학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분법 : 세계를 생성과 존재의 2가지 극단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태도

[참고] 니체는 이분법적 사유를 서양철학의 근본토대로 보았다. 이분법적 세계관은 존재(참된세계)와 생성(가상세계)로 세계를 이원화하고, 생성(가상세계)에 대한 존재(참된세계)의 우위를 전제한다. 여기서 생성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은 한갓 가상이자 오류로 평가절하되는, 반면 존재의 세계는 '참된 세계'로 상정된다. 존재세계는 생성 없이도 있을 수 있는 자존적인 것이며, 생성세계의 근거가 된다. 이런 것으로서의 존재세계는 곧 있어야만 하는 당위의 세계다. 니체는 이분법적 사유의 예를 플라톤, 그리스도교, 칸트의 경우를 통해 보여준다. 니체는 '참된 세계'로 표현되는 존재 개념을 허구라고 비판하는데, 존재 개념이 허구인 한에서 이분법 자체는 불가능하다. '가상'으로 불린 현실의 생성세계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로 인정된다.

철학에서의 '이성' #1.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지 않는다;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생성되지 않고, 생성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참된 세계'가~ #1. (플라톤의 이분법: 현실세계과 이데아) 참된 세계에 지혜로운 자, 경건한 자, 덕 있는 자들은 이를 수 있다. ― 그는 그 세계 안에 살고 있으며, 그가 그 세계다. (가장 오래된 형식의 관념. 비교적 똑똑하고 단순하며 설득력 있다. '나 플라톤이 진리다'라는 문장을 바꿔 쓴 것)

어떻게 '참된 세계'가~ #2. (그리스도교의 이분법: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 참된 세계에 지금은 이를 수 없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자, 경건한 자 덕 있는 자에게는('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약속되어 있다. (관념의 발전 : 그 관념이 더욱 정교해지고 더욱 위험해지며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관념이 여자가 된다. 관념이 그리스도교적이 된다)

어떻게 '참된 세계'가~ #3. (칸트의 이분법: 현상세계와 물 자체) 참된 세계는 이를 수 없고 증명할 수 없으며 약속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미 위안으로서, 의무로서, 명령으로서 생각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옛 태양과 같은 것이지만, 이제 안개와 회의를 통과한다; 관념이 숭고해지고 창백해지며 북방적이고 쾨니히스베르크적이 되었다.)

어떻게 '참된 세계'가~ #4. (이분법의 극복1. 실증주의) 참된 세계 ― 이를 수 없다? 어쨌든 이르지는 않았다. 이르지 않았기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위로하지도 구원하지도 의무적이지도 않다 :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무를 갖는다는 말인가? (잿빛 아침. 이성의 첫 하품. 실증주의라는 닭 울음소리.)

어떻게 '참된 세계'가~ #5. (이분법의 극복2. 자유정신)  '참된 세계' ― 더 이상 아무 쓸모 없는 관념. 더 이상은 의무적이지도 않다. ― 불필요하고 쓸데없어진 관념. 그래서 반박된 관념 : 이것을 없애버리자! (밝은 날; 아침 식사; 양식과 명랑성의 복귀; 무안해져 붉어진 플라톤의 뺨; 모든 자유정신들의 야단법석)

어떻게 '참된 세계'가~ #6. (이분법의 극복2. 가상과 실재의 일치)  예술가가 가상을 실재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 이 명제['참된 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별은 하강하는 삶의 징후다']를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가상'은 다시 실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선택되고 강화되고 교정되었을 뿐이다......극적 예술가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 그는 의심스럽고 끔찍한 것을 모두 긍정한다. 그는 디오니소스적이다.....

(2) 철학자의 특이성질2. 생성에 대한 부정 (생성과 존재는 무엇이며, 이것은 어떤 관계에 있나?)

철학에서의 '이성' #1. 철학자들한테서 나타나는 특이성질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가? 그들의  역사적 감각의 결여, 생성이라는 생각 자체에 대한 증오(*생성에 대한 부정), 그들의 이집트주의가 그 예다. ...... 생식과 성장, 그리고 죽음, 변화, 노쇠 역시 그들에게는 이의제기이며 심지어는 반박인 것이다.(*삶에 대한 부정) ......그들은 절망하면서까지 존재자를 믿는다.

철학에서의 '이성' #2. 존재가 공허한 허구 중의 하나라고 하는 한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영원히 옳다. '가상 세계'(*감각적 세계, 생성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이다. '참된 세계'(*진리의 세계, 존재의 세계)란 가상 세계에 덧붙여 날조된 것일 뿐이다. 

철학에서의 '이성' #5. 이전에 사람들은 변화, 변동, 생성 일반을 가상성(*긍정적 가치)에 대한 증거로서 받아들였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단일성, 동일성 지속, 실체, 원인 물성, 존재를 강요하는 이성의 편견이 우리를 오류에 빠지게 한다고 본다. ...... 의식은 도처에서 행위자와 행위를 본다. 의지를 일반적 원인이라고 믿는다. '나'를 믿고, 나를 존재라고 믿으며 나를 실체로서 믿는다. 이렇게 하면서 의식은 '사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존재는 원인으로서 어디서든 슬쩍 밑으로 밀어넣어진다. '나'라는 구상으로부터, '존재'개념이 비로소 파생된다. 맨 저음부터 의지가 결과를 일으키는 어떤 것이라는, 의지가 일종의 능력이라는 오류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의지라는 것이 단지 단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에서의 '이성' #6. '이' 세계를 가상이라고 일컫게 한 근거들이 오히려 이 세계의  실재성의 근거를 만들어낸다. ― 또 다른 종류의 실재성은 절대로 증명될 수 없다. 사물의 '참된' 존재에 부여되었던 특징들은 비존재의 특징들, 즉 무의 특징들이다. ― 참된 세계는 실제 세계와 모순되는 것으로부터 구축되었다 : 사실 그것이 도덕적이고 ― 시각적인 착각에 불과한, 하나의 가상세계다.

철학에서의 '이성' #6. 이 세계와는 '다른' 어떤 세계에 관해 허황된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은 삶을 비방하고 왜소화하며 의심하는 본능이 우리에게서 강력하지 않아서라고 전제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 그런 본능이 강력하면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삶, '더 나은' 또 다른 삶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삶에 복수를 하는 것이다. [⋯] 세계가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로 나뉜다. 그 방식이 그리스도교식이든, (결국은 교활한 그리스도교인인) 칸트식이든 단지 데카당스(하강하는 삶의 징후)를 암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철학자의 특이성질3. 감각에 대한 불신 (감각과 이성은 무엇이며, 이것은 어떤 관계에 있나?)

철학에서의 '이성' #1. 그들은(*철학자들) 절망하면서까지 존재자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존재자를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감각이 그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존재자를 지각하지 못하는 데에는 속임수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 감각기능이 세계의 참모습을 우리에게 속이고 있다. 교훈: 감각의 사기에서, 생성에서, 역사에서, 허위에서 벗어날 것..... 교훈: 감각에 믿음을 선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할 것. 철학자일 것. 미리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육체를 버릴 것." 

철학에서의 '이성' #2. 다른 철학자가 '감각이 다양성과 변화를 보여준다'는 이유로 감각이 제시하는 증거를 버렸다면, 헤라클리에토스는 '감각이 지속성과 단일성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감각이 제시하는 증거를 버린다. ...... 감각은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감각의 증거를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성)이 거짓을 집어넣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일성이라는 거짓, 물성이라는 거짓, 실체나 지속이라는 거짓 등. '이성'이 우리에게 감각의 증거를 변조하게 하는 원인이다. 생성과 소멸과 변화를 보여주는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철학에서의 '이성' #3. 감각이란 얼마나 섬세한 관찰도구인지! 코는 어떤 철학자도 경외심을 갖지 않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기관 중 가장 섬세한 도구이다. 그것은 망원분광기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학문은 감각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정도(우리가 감각의 증거를 예리하게 무장시켜 감각에 대해 배우는 만큼)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 나머지는 실패작이고 아직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형이상학, 신학, 심리학, 인식론 또는 논리학, 응용논리인 수학 같은 형식학문, 기호이론 등.

철학에서의 '이성' #5. 그들은(*철학자들) 이성범주들이 경험영역에서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험영역이 이성범주와는 모순관계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5. 반자연으로서의 도덕 :: 니체가 비판하는 '반자연으로서의 도덕'이란 무엇이며, 니체의 '도덕적 자연주의'란 어떤 것인가?

#1. (열정에 대한 금욕) 모든 열정이 한갓 액운이었던 시기가, 그것들이 아주 심한 우매로 인해 그들의 희생양을 아래로 끌어내려버리던 시기가 있다. ― 그리고 그것들이 정신과 혼인해서 '정신화'되는 나중의, 훨씬 나중의 시기도 있다. 이전에 사람들은 열정에 내재된 우매 때문에 열정 자체와 투쟁했었다 : 그들은 열정의 멸절을 맹세했었으며 ― 옛 도덕-괴물들이 모두 '열정을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 [⋯] 정열과 욕구들을 한갓 그것들의 우매함이나 우매로 인한 달갑잖은 결과들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멸절시키는 것. 이것 자체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위급한 형태의 우매라고 간주된다. [⋯] 그러나 열정을 그 뿌리부터 공격한다는 것은 삶을 그 뿌리부터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1. (거세전략) 이전에 사람들은 열정에 내재된 우매 때문에 열정 자체와 투쟁했었다 : 그들은 열정의 멸절을 맹세했었으며 ― 옛 도덕-괴물들이 모두 '열정을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점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식은 『신약성서』의 산상수훈에 나온다. [⋯] 잘 알려져 있듯이 초대 교회는 진정 '마음의 가난'을 위해 '지성'과 투쟁했다 : 어떻게 그런 교회에 열정에 대한 지성적 투쟁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교회는 열정에 맞서 모든 의미의 잘라냄을 수단으로 싸운다 : 교회의 처방, 교회의 '치료'는 거세다. 교회는 결코 '어떻게 특정 욕구를 정신화하고 미화하고 신적으로 만드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 교회는 모든 시대에서 계율의 주안점을(감성, 긍지, 권력욕, 소유욕, 복수욕의) 멸절에 두었다. ― 그러나 열정을 그 뿌리부터 공격한다는 것은 삶을 그 뿌리부터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교회의 처치 방식은 삶에 적대적이다.

#2. (감성에 대한 금욕)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 척도를 세우기에는 너무나 의지가 약하고 너무나 퇴락한 자들이 욕구와 싸울 때, 그들은 거세와 멸절이라는 수단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 [⋯] 감성에 대한 적개심, 불구대천의 적개심은 생각해볼 만한 증후다. [⋯] 감각에 대해 가장 심한 독을 품고 있는 것은 무능력자에 의해 이야기되지 않는다. 금욕주의자들에 의해 이야기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금욕주의자라기에는 희한한 자들, 금욕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었던 자들이 말하는 것이다.

#5. (반자연적 도덕의 계보) 가치에 관해 논할 때 우리는 영감 아래, 삶의 광학 아래 논한다 : 삶 자체가 우리에게 가치를 설정하라고 강요하며, 우리가 가치를 설정할 때 우리를 통해 삶 자체가 가치평가를 한다...... 이것으로부터 신을 삶의 적대개념이며 삶을 유죄판결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도덕의 반자연성이라는 것은 단지 삶이 내리는 가치판단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그렇다면 어떠한 삶이 그러한 가치판단을 하는가? 어떤 종류의 삶이? 이 질문에 나는 이미 말했다 : 가라앉고 약화되고 지쳐버린 삶, 매도당해 유죄판결된 삶이라고. 이제껏 이해되어온 바대로의 도덕은 ― 결국 쇼펜하우어가 '삶의 의지에 대한 부정'이라고 정식화했던 도덕 ― 스스로를 하나의 명령으로 만들어버린 데카당스 본능 그 자체다 : 이 본능은 '몰락하라!'고 명한다. ― 이는 매도당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 자의 판단인 것이다....

#4. (도덕적 자연주의와 반자연적 도덕) 원리 하나를 정식으로 만들어보겠다. 도덕에서의 모든 자연주의, 말하자면 모든 건강한 도덕은 특정한 삶의 본능이 지배한다. ― 삶의 계명들은 '해야 한다'와 '해서는 안 된다'라는 특정한 규범으로 가득 차있고, 이러면서 삶의 노정에서 나타나는 방해나 적대 행위가 제거된다. / (반자연적 도덕) 반자연적 도덕, 즉 지금까지 가르쳐지고 경외되고 설교되어온 거의 모든 도덕은 이와는 반대로 다름 아닌 삶의 본능들에 적대적이다. ― 그것은 삶의 본능들에 대한 때로는 은밀한, 때로는 공공연하면서도 뻔뻔스러운 매도적 유죄판결인 것이다. /  (삶의 적대개념으로서의 신) '신은 마음 속을 꿰뚫어본다'라고 말하면서 반자연적 도덕은 삶의 가장 깊은 욕구들과 가장 높은 욕구들을 부정해버리며 신을 삶의 적대자로 만들어버린다. [⋯] 신이 기뻐하는 성자는 이상적 거세자다. [⋯] '신의 왕국'이 시작되면 삶은 끝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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