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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전집15》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기 위한 예비작업

《니체전집15》 :: 이 책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니체의 마지막 작품이다. 1889년 1월 3일 토리노광장에서 정신착란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니체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한 듯이 1888년 한해 동안 이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니체가 자신의 철학작업 전체를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니체철학의 정수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기 위한 예비작업이기도 하다.

청년니체와 바그너극복 ::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에서 니체는 바그너예술을 힘에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낭만주의적 허무주의로 비판하고 예술에서의 데카당스로 규정한다. 니체는 바그너를 극복하면서 청년니체를 넘어선다.

이행기니체와 현대성비판 :: [우상의 황혼]과 [안티크리스트]는 ‘현대성에 대한 공격’을 주제로 한 쌍둥이 작품이다.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현대인이 숭배해온 우상들에게 황혼이 닥쳐왔음을 알리고, ‘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 우상의 파괴작업을 보여준다. [안티크리스트]에서 그리스도교를 삶을 병들게 하고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데카당스의 현대적 전형으로 간주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성숙기니체와 위대한 긍정 ::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의 철학적 자서전으로, 니체가 쓴 자기작품과 자기철학에 대한 비평서이다. 니체는 ‘어떻게 사람은 자기의 모습이 되는가?’라는 부제로, 오랫동안 세상의 외면과 오해를 받은 사람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송가] ‘디오니소스’는 니체적 존재론의 표상으로 목표도 의지도 없이 생성하는 존재자이며, 영원히 스스로를 파괴하고 영원히 스스로를 창조하는 영원회귀의 상징이다. [디오니소스 송가]에서 니체는 번득이는 광기로 위대한 긍정의 디오니소스를 노래한다.

 

 

2. 니체철학의 3가지 변신 / 니체의 가치전환 도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부. 3가지 변신 :: 정신의 3가지 변화 
······> 『들뢰즈의 니체』 (1965년) 들뢰즈 :: 니체철학의 3가지 변화 (생애 p9~27)
······> 『힘에의 의지』#940 (1901년) :: 니체의 존재론, 니체의 시간성

니체철학_가치전환 도식.png

’너는 해야 한다. Du sollst’ (존재에 복종)······> ‘나는 의욕한다. Ich will’ (생성을 의지)······> ‘나는 존재한다 Ich bin’ (존재 자체가 생성)

 

① [청년 니체] 기성의 가치에 의존한 철학자 / 낙타의 시대 (복종의 정신) / 시대성

- 생애 : 1864~1876(19~31세) / 1844(탄생), 1864(19세) 본대학, 1869(24세) 대학교수, 1876(31세) 바그너와 결별

- 작품 : 『비극의 탄생』1872(27세). 『반시대적 고찰』1873~1876(28~31세).

- 철학 : 부르주아문화 비판 /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통해 자기사상을 대변

             기성의 가치에 기반한 철학자 ······> 기성의 가치에서 해방으로!

 

② [이행기 니체] 기성의 가치를 비판하는 철학자 / 사자의 시대 (비판의 정신) / 반시대성

- 생애 : 1876~1882(31~37세) / 질병과 치유(병과 건강)의 반복.

- 작품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33~35세). 『아침놀』1881(36세). 『즐거운 학문』1882(37세).

- 철학 : 형이상학적 가치 비판, 모든 가치의 전환 / 관점주의(관점의 이동에 따른 가치(평가)의 이동)의 확립

■ 가치전환 (긍정······부정, 하나의 자아······다양한 자아) : 사유의 퍼스펙티비즘

신체(병-건강)의 관점을 철학적 방법으로서 ‘가치전환’의 근거로 삼는다.

신체(병-건강)의 관점을 탁월한 긍정을 위한 부정의 사례로 삼는다.

신체(병-건강)의 전환을 통해, 하나의 자아-다양한 자아-새로운 자아가 출현한다.

■ 위대한 건강 (병······건강) : 신체의 퍼스펙티비즘

건강(긍정적인 것)과 병(부정적인 것)의 이분법적 가치평가를 넘어서,

병에서 건강을 보는 동시에, 건강에서 병을 보는 퍼스펙티브를 획득하는 것!!

병자에게서 건강한 가치들을 관찰하고, 생명의 고지로부터 쇠퇴의 본능을 보는 것이다.

건강의 가치평가로서의 병, 병의 가치평가로서의 건강!

건강으로부터 병으로, 병으로부터 건강으로의 이동이 탁월한 건강이며,

그러한 이동에서의 경쾌함이 ‘위대한 건강’의 표시이다.

 

③ [성숙기 니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철학자 / 어린아이의 시대 (생성의 정신) / 비시대성

- 생애 : 1881~1888(36~43세) / ‘영원회귀’의 영감 1881(36세), 1889(44세) 토리노에서 정신착란, 1900(55세) 죽음

- 작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4(38~39세).

『선악의 저편』1886(41세). 『도덕의 계보』1887(42세). ‘힘에의 의지’(포기_1888 / 출판_1901유고)

『우상의 황혼』1888-『안티크리스트』1888, 『바그너의 경우』1888-『니체 대 바그너』1888,

『디오니소스 송가』1888, 『이 사람을 보라』1889 (1888~1889년_43~44세)

- 철학 : 위대한 건강 / 새로운 개념ㆍ가치ㆍ철학의 창조 (권력의지, 영원회귀, 차라투스트라, 위버멘쉬)

 

 

3. 니체철학과 바그너의 극복

 

# 니체철학과 바그너의 극복 :: 개요

니체(1844~1900)에게 바그너(1813~1883)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존재가 또 있을까? 바그너예술은 청년니체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니체가 바그너와 결별한 이후에도 바그너는 여전히 니체철학의 중요한 비판대상이었다. 그것은 바그너가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를 대변하고 있었고, 시대를 넘어서는 과제를 철학적 목표로 삼았던 니체에게 바그너는 대결하고 넘어서야 했던 존재였다. 바그너는 니체철학 전반에 걸쳐 모습을 달리하면서 등장하였고, 니체는 바그너를 극복하면서 철학적 성숙을 이루어나간다.

 

① 니체철학의 시작과 바그너음악

바그너ㆍ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철학 시작 > 니체의 철학작업은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 예술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초기사상을 대표하는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예술을 통한 삶의 구원을 생각하면서, 바그너예술에서 그 전형을 보았고 바그너의 문화프로그램을 위한 전위대를 자처한다. 그러나 바그너예술이 변질되면서, 니체는 바그너로부터 멀어진다.

바그너예술의 변질, 바그너에 대한 숭배 > “이 책(*『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서두는 바이로이트 축제주간에 쓰여졌다. 거기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고 바그너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바그너가 독일어로 옮겨지고, 바그너주의자가 바그너 위에 군림해버렸다!” (*바그너예술의 변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 『이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그너와 결별, 청년니체의 극복 >「바이로이트Bayreut의 리하르트 바그너」가 출판된 한달 후 1876년 8월, 바이로이트에서 <1회 바그너축제>의 마지막 리허설의 준비가 한창일 때, 니체는 바그너에 대한 숭배분위기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축제 도중 바이로이트를 떠난다. 바그너로부터 니체의 결별을 예고하는 행보였다. (*바이로이트Bayreut: 독일 바이에른지방의 도시로 바그너극장(바그너오페라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제(바그너오페라를 상연하는 축제)로 유명하다.) 바그너와의 결별은 니체철학이 청년기에서 이행기로 넘어가게 된 직접적인 사건이다.

 

② ‘예술을 통한 삶의 구원’ 부정 (예술적 삶의 관점에서)

‘예술을 통한 삶’의 긍정 > 『비극의 탄생』에 의하면, 오직 예술에서만 삶을 미화하는 가상이 가능하며, 미적 체험이 창조적 삶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 된다. 특히 몰락과 생성을 주제로 하는 비극적 예술은 ‘삶의 자극제’로 인간이 삶의 용기를 잃지 않도록 ‘형이상학적(*정신적) 위안’을 제공한다. 예술을 통해 진리를 표현하고 삶을 긍정할 수 있으며, 예술이 쇠퇴하는 삶을 추구하는 데카당스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 자체가 예술이 되는 ‘예술적 삶’ >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타난 예술에 대한 새로운 입장은, ‘예술가의 형이상학(*정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예술이 우리를 데카탕스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니체는 예술을 매개로 한 삶의 구원이 아니라,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창조적 작업으로 관점을 이동한다.

 

③ 바그너의 낭만적 허무주의 비판 (창조적 자유정신의 관점에서)

계몽주의적 자유정신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바그너음악의 낭만주의에 대한 환멸에서 볼테르철학의 자유정신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옮겨가던 시기에 집필되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허무주의바그너의 낭만적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계몽철학자 볼테르의 자유정신의 영향이 컸다. 니체는 바그너라는 인물에 집중되었던 낭만주의적ㆍ국가주의적인 문화이념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한다. 그는 이제 자신을 ‘바그너 숭배자가 아니라, '철학적 계몽가'로서 지배적인 사유에 대한 비판적 파괴작업을 시작한다.

과학적 실증주의 > 한편 니체는 과학과 학문이 자유정신과 창조정신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임을 강조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근대 부르주아문화의 위선에 반대하여 심층의 예술적 진정성을 추구했다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는 그 모든 것이 ‘낡은 형이상학’임을 알게 되고, 점차 물리학ㆍ생물학ㆍ의학 같은 실증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과학적 실증주의를 무기로 예술적 형이상학(*낡은 정신)을 비판하면서, 니체철학은 새로운 시기를 맞게 된다.

바그너의 낭만적 허무주의 비판 > 이전 시기에 니체는 바그너음악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어두운 내면의 힘을 강렬하게 느끼고 고통을 직시하는 ‘삶의 비극성’(*몰락과 생성의 삶)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제 니체는 바그너음악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는 대신 현실의 허무에서 도피하여 과거로 달려가 중세적 이상을 꿈꾸는 낭만주의, 기독교적 사랑과 구원으로 변질되었다고 느낀다. 니체는 창조적 자유정신의 관점에서 바그너의 낭만적 허무주의를 파괴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주제 > ‘쇼펜하우어의 염세적 허무주의’와 ‘바그너의 낭만적 허무주의’ 극복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문 > “외견상으로는 승리자였지만 사실은 부패해버린 절망적인 낭만주의자 바그너가 갑자기 무너져버린 채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 나는 모든 낭만주의적 음악(정신의 엄격함과 즐거움을 빼앗고, 모든 불명료한 동경과 들뜬 욕망을 만연시키는 애매하고 허망하며 답답한 예술)을 근원적으로 금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음악을 조심하는 것’은 정신의 일들에서 순수함을 지켜나갈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나의 충고이다. 낭만주의적 음악은 우리의 신경을 쇠약하게 하고 이완시킨다.”

 

④ 바그너의 독일 민족주의 비판 (세계 시민주의 관점에서)

독일 민족주의 > 19C 많은 민족주의자가 과거로 달려가 신성한 민족사를 구성했다. 독일낭만주의는 19C 민족주의의 선두에 있었고, 바그너음악은 독일낭만주의를 대표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렌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에는 독일민족의 단합, 독일통일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는데, 18C 중반의 민족주의 열풍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에 독일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국민오페라로 불렸으며, 히틀러가 가장 좋아한 곡이기도 했다.

『이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바그너예술은 세련된 예술가와 세계시민주의에만 말을 건넸는데, 이제 독일예술-독일거장-독일맥주라는 독일적 ‘덕들’로 치장한 바그너로 변했다. ······ 쇠약해지고 있는 독일인들은 바그너를 하나의 아편으로 요청하며, 자기 자신을 잊고 한순간 자기 자신을 놔버린다.”

『선악의 저편』 8장 민족과 조국 > (*바그너 음악으로 인해) "우리 ‘선한 유럽인들’(*니체의 동류) 또한 결연한 조국애에 빠지거나, 국민적 흥분이나 애국적 중압감에 휩싸이는 때가 있다."

 

⑤ 바그너의 자기극복 (독일 낭만주의와 독일 민족주의의 극복)

바그너에 의한 바그너의 극복 > 니체는 '모든 존재는 자기 내부에 극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위버멘쉬로 상징되는 '자기극복'의 주제이다. 바그너의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국가주의)가 그 시대의 지배가치를 대표하는 한, 니체의 바그너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이 진행되었다. 특히 '모든 가치의 전환'이 철학적 과제였던 이행기_사자시대는 바그너에 대한 비판과 대결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자기 가치를 생성하는 성숙기_어린아이의 시대에 니체는 바그너예술의 자기극복 가능성을 검토한다.  

독일적인 것에 의한 독일 낭만주의 극복 >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의 서곡>에는 독일적인 것, 독일식의 다양한 것, 독일식의 무형식적인 것이 있다. 거기에는 독일적 영혼의 강력함과 충만이 있는데, 이 영혼은 퇴폐의 세련됨 아래 자신을 감추고 있다. 여기에는 젊으면서도 늙었고, 너무 무르익었으면서 미래가 풍부한 독일영혼을 나타나는 상징이 있다." 『선악의 저편』 8장 민족과 조국

프랑스 낭만주의에 의한 독일 민족주의 극복 > "4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와 바그너는 내면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프랑스 낭만주의와 바그너가 다양하고 격정적 예술을 통해 열망하는 것은 하나의 유럽이다. 이들은 모험적이며 비상하는 보다 높은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대중의 세기에 보다 높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르쳐야만 했다. 바그너의 예술이 독일을 초월한 근원ㆍ충동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숙고해야 한다. 바그너예술이 형성되는 데 파리가 불가결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바그너의 본능은 파리를 그리워하게 했다. 바그너 예술의 등장방식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모범을 눈앞에 봄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바그너는 자신의 독일적 본성의 명예를 위해, 19C 프랑스인들보다 더 강하고 대담하고 엄격하고 고귀하게 행했다." 『선악의 저편』 8장 민족과 조국

 

 

4. 니체의 생애 (1844.10.15 ~ 1900.8.25)

 

[#] 출생 : 1844~1863년(0~18세) / 탄생 ~ 유년시절

- 생애 : 1844년 10.15일 탄생

1844년_0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1884년 10.15일 독일 뢰켄(Röcken)에서 전통적인 목사집안의 첫 아들로 태어난다. 1851년, 칸디다텐 베버(Kandidaten Weber)라는 사설 교육기관에 들어가, 종교ㆍ라틴어ㆍ그리스어를 배운다. 1858년, 추어 포르테(Zur Pforte)라는 학교에 입학하여 철저한 인문계 중등교육을 받는다. 소년 니체의 고전어에 대한 탁월한 재능, 문학적 능력, 음악에 대한 자질들이 표출되기 시작한다.

 

▶청년 니체(정치교육자): 1864~1876년(19~31세) / 대학 입학 ~ 바그너와 결별

- 생애 : 1964(19세)_본대학 입학, 쇼펜하우어 입문 / 1868(23세)_바그너 만남 / 1869(24세)_대학교수

             1876(31세)_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바그너와 결별

- 작품 : 『비극의 탄생』1872(27세). 『반시대적 고찰』1873~1876(28~31세).

- 철학 : 부르주아문화 비판 /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통해 자기사상을 대변

            기성의 가치에 의존한 철학자 ······> 기성의 가치에서 해방으로!

 

1864년_19세: 1864년, 본(Bonn)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예술사 공부를 시작한다. 한학기 후에는 신학공부를 포기하고 문헌학자 리츨(F. W. Ritschl)의 문헌학강의에 전념한다. 1865년 겨울학기에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학교를 옮긴다. 라이프치히에서 니체는 리츨의 지도를 받은 문헌학 공부와 쇼펜하우어의 발견에 힘입어 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늦가을에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니체를 철학적 사유로 입문하게 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에 그는 한동안 매료되었으며, 『비극의 탄생』은 그 자극 하에서 쓰여진다.

1866년_21세: 또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에 의거한 세계해석은 니체에게 물자체와 현상을 구분하는 칸트철학에 관심 갖게 한다. 1866년, 테오그니데아(Theognidea)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Diogenes Laertius)의 자료들에 대한 문헌학적 작업을 시작한다. 디오게네스에 관한 논문은1867년 「라이니쉐스 뮤제음 퓌어 필로로기(Rheinisches Museum fürPhilologie)」라는 잡지(이하 RM)에 게재된다. 이 논문과 스승 리츨 교수의 니체에 대한 높은 평가는 문헌학자 니체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1868년_23세: 활발한 문헌학적 활동을 하면서도 니체는 철학으로의 학문적 전회를 꿈꾼다. 피셔(K. Fischer)의 책을 통해 친숙해진 칸트에 관계되는 철학박사논문을 기획한다. 1868년 11.8일 동양학자인 브로크하우스(H. Blockhaus)의 집에서 바그너를 처음 만난다. 쇼펜하우어와 독일철학 그리고 오페라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눈 바그너라는 인물은 니체에게 깊이 각인된다. 이 시기에 니체는 첫번째 철학적 글인 「목적론에 대하여(Zur Teleologie)」를 쓴다.

1869년_24세: 1869년 4월, 24살의 니체는 바젤대학에 고전어와 고전문헌학의 비전임 교수(außerordentlicher Professor)로 위촉된다. 라이프치히 대학은 RM에 발표된 논문과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대한 연구를 인정하여 니체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1869년 이후에 니체는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언어의 근원에 대하여」(1869/70), 「디오니소스적 세계관」(1870), 「수사학」(1874) 등이 대표적인 글들이다. 1870년 4월에 정교수가 된다. 7월, 독일-프랑스 전쟁에 자원의무병으로 참가하기 위해 대학에 휴가를 낸다. 그렇지만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려 9월에 의가사 제대를 한다.

1872년_27세: 1872년, 니체의 첫 철학적 저술인 『비극의 탄생』이 출판된다. 이 책은 니체의 독창적이고도 철학적인 초기사유를 제시하고 있으며, 니체의 후기 철학적 사유들로 향하는 통로역할을 한다. 예술가 형이상학, 신화의 포기불가능성 제기, 디오니소스적 예술충동과 아폴론적 예술충동의 관계,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에 의한 그리스비극의 몰락 등 이 책이 포함하고 있는 사유는 문헌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성격의 것이다. 그 결과 『비극의 탄생』은 비문헌학자들로부터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동료 문헌학자들로부터는 극도로 모욕적인 평가와 공개적인 반박들을 받게 된다. 이로써 문헌학자 니체의 이름은 실추되어버린다.

『비극의 탄생』이 남긴 여파로 상처를 받은 니체는 바그너의 문화프로그램을 위한 전위대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한다. 5월에 행한 '우리교육의 미래에 대하여'에 대한 5개의 강연에는, 문헌학자가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 교육자가 되기를 원하는 니체의 소망이 놓여 있다. 그 이후 니체는 철학적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의 조건들에 대해 물으며, 이 조건을 찾기 위해 그리스문화로 항상 되돌아간다. 초기 그리스를 그는 문화적 자기창조의 전형으로, 독일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이 의도에 의해 1873년까지 「쓰이지 않은 다섯권의 책을 위한 다섯서론」, 「그리스비극 시대의 철학」, 「독일인에 대한 경고」등이 작성된다. 이외에도 니체의 초기 철학적 사유를 아주 명료하게 결집한 텍스트인 「도덕외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허위」가 작성된다.

1873년_28세: 1873년,『반시대적 고찰』의 1권이 발간된다.(「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가와 저술가」) 여기서 니체는 자신을 정치저술가 혹은 정치교육자로 이해하고 있으며, 지배적인 시대정신을 타파하고 새로운 문화의 지반을 준비하고자 한다.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을 원래 10~13개의 논문들로 구성할 계획이었지만, 4개의 주제들로 대체한다. 1권은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교양있는 속물의 전형으로 보고 있으며(「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문필가」), 2권은 역사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를 다룬다(「삶에 대한 역사의 이로움과 해로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라는 제목의 3권은 원래의 의도인 독일인들에 대한 경고에 충실하다. 바그너와의 문제를 다룬 4권(「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서는 바그너에 대한 표면적인 긍정적 평가 밑에 가시돋친 비판을 숨기고 있다. 2권과 3권은 1874년에, 4권은 1876년에 출간된다.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가 출판된 한달 후 1876년 8월, 바이로이트에서 <1회 바그너축제>의 마지막 리허설의 준비가 한창일 때, 니체는 바그너에 대한 숭배분위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축제 도중 바이로이트를 떠난다. 바그너로부터 니체의 결별을 예고하는 행보였다.

 

▶이행기 니체(철학적 계몽가): 1876~1882년(31~37세) / 『인간적인』 집필 ~ 『즐거운 학문』 출판

- 생애 : 1876~1882(31~37세) / 질병과 치유(병과 건강)의 반복.

- 작품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33~35세). 『아침놀』1881(36세). 『즐거운 학문』1882(37세).

- 철학 : 형이상학적 가치 비판, 모든 가치의 전환 / 관점주의(관점의 이동에 따른 가치(평가)의 이동) 확립

 

1876년_31세: 1876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니체는 바그너라는 인물에 집중되었던 낭만적ㆍ국가적인 문화이념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한다. 그는 이제 자신을 바그너숭배자 겸 새로운 독일문화에 대한 예언가가 아니라, 계몽가와 심리학자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3월에는 제네바에 있는 볼테르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정신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잠언에 수록하고자 한다. 이때 니체의 육체적 고통이 점점 심각해진다. 심한 편두통, 만성적 위장장애, 정상적인 빛마저도 견디지 못하는 그의 눈은 니체에게 일상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한다.

1879년_34세: 그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신선한 공기와 온화한 기후를 찾아다니는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사회적 삶은 꼭 필요한 사교와 편지왕래로만 제한된다. 1876년(?) 9월에 요양생활에서 돌아온 니체는 다시 바젤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내용을 페더 가스트에게 받아적게 할 정도로 그의 몸은 여전히 불편했다. 결국 니체는 1879년 3월에 강의를 중단하고 제네바로 휴양을 떠나게 된다. 5월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직을 그만둔다.

1880년_35세: 자유정신으로의 이행을 시도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Ⅱ권에서 니체의 사유는 파괴의 시기로 들어선다.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계몽가로서 그는 새로운 가치와 더 높은 삶의 조건들을 제시하고 싶어한다. 이 과제를 위해서 전승된 가치와 덕목들에 대한 비판적 파괴와 해체작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1879년 9월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부의 「혼합된 의견 및 격언들」이, 1880년에는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가 발간된다.

1881년_36세: 7월에는 『아침놀』이 발간된다. 며칠 후 실스 마리아로 간다. 11월에는 처음으로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감격한다. 후에 니체는 이 작품을 바그너의 음악과 맞서는 음악의 이상적 전형으로 제시한다(『바그너의 경우』1, 2). '아침놀'은 신의 황혼 후에 따르는 인간의 아침놀이다. 인간의 아침놀은 기존의 도덕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리고 초월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인간의 힘을 의식하면서 준비된다.

1882년_37세: 1882년 초에 니체는 『아침놀』의 뒤를 이을 것들을 쓰기 시작하여, 8월에 『즐거운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다. 4월에는 로마의 모이센부르크의 집에서 살로메(Lou-Andreas Salomé)를 소개받고, 5월에는 누이동생과 살로메와 함께 타우텐부르크에서 정신적 긴장이 감도는 생활을 하게 된다. 『즐거운 학문』에서 니체는 실험적 철학의 분위기와 방법론을 보여준다 : 인식자와 실험자는 모든 것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명랑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 명랑성은 모든 것의 무토대성에 대한 인지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 근거하며, 특히 『즐거운 학문』에서 처음 선포되는 신의 죽음에 대한 확실성을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에는 니체 후기 철학의 거의 모든 주제들이 이미 제시되어있다. 진리비판이 격렬해지고, 비도덕주의가 명료하게 드러나며, 힘에의 의지나 가치의 전도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가 예비되고 있다.

 

▶성숙기 니체(니체 자신): 1881~1889년(36~44세) / 영원회귀의 영감 ~ 정신착란

- 생애 : 1881~1888(36~43세) / ‘영원회귀’의 영감 1881.7월(36세), 1889(44세) 토리노에서 정신착란

- 작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4(38~39세).

            『선악의 저편』1886(41세). 『도덕의 계보』1887(42세). ‘힘에의 의지’(포기_1888 / 출판_1901유고)

            『우상의 황혼』1888-『안티크리스트』1888, 『바그너의 경우』1888-『니체 대 바그너』1888,

            『디오니소스 송가』1888, 『이 사람을 보라』1889 (1888~1889년_43~44세)

- 철학 : 위대한 건강 / 새로운 개념ㆍ가치ㆍ철학의 창조 (권력의지, 영원회귀, 차라투스트라, 위버멘쉬)

 

1881년_36세: 실스 마리아의 한 소풍길에서 영원회귀에 대한 구상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883년_38세: 1883년 여름의 "완전히 청명한 날들의 연속"에 힘입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가 쓰인 이후, 아주 빠른 속도로 3부까지 집필된다. 1884년 1월에 4부를 완성하면서 니체는 자신의 최고의 책을 썼다고 믿었다. 그의 건강은 비교적 좋았고, 정신적인 고조를 경험하면서 그의 사유는 정점에 올라있었다. 그는 이 책과 함께 자신의 철학적 과제가 수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라는 페르시아 현자의 문학적 부활을 통해 니체는 자기극복의 고통과 기쁨을 갖는, 자유정신과 육체와의 통일이 마련하는 건강한 미래의 인간을 제시한다.

이 인간은 상승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자신 안에 있는 모순적인 면들을 창조적으로 연결하는 이상적인 삶의 비전을 제시한다. 한편 이 시기에 여동생 및 어머니와의 다툼과 화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여동생이 반유대주의자이고 바그너 숭배자이며, 종족주의적 원칙에 따라 파라과이에 독일 식민지를 세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푀르스터(B. Förster)와 약혼을 결정하면서 여동생과의 불화는 점점 심화된다.

1885년_40세: 1885년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그의 주저가 될 책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저술 제목으로서 '힘에의 의지'는 1885년 8월의 노트에 처음 등장한다. 그 사이 1886년에 『선악의 저편』이 출판된다. 늙은 페르시아 현자의 입을 통한 문학적 형식을 띤 예언은 이 책과 함께 끝을 맺고, 니체는 다시 개념적 사유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아포리즘 양식을 다시 사용한 이 책에서 니체는 자신을 자유정신으로 재등장시킨다. 자유정신이 제시하는 주제들은 니체 후기 사유를 이해하는 열쇠역할을 한다. 그 사이 니체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불러와 확대된 사유지평을 통해 구제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이전에 출판된 작품들을 위한 새로운 서문을 작성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새로운 서문, 『비극의 탄생』을 위한 「자기비판의 시도」라는 서문, 『아침놀』과『즐거운 학문』의 서문 등이 작성된다. 그가 불러온 과거는 새로운 창조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창조적 분위기에서 쓰인 유고들에는 니체 후기철학의 거의 모든 중심 사유들이 산발적인 형태로 담겨있다.

1887년_42세: 1887년 11월, 도덕에 대한 논쟁서인 『도덕의 계보』가 출판된다. 1887년 초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그의 건강상태는, 6월에 살로메의 결혼소식을 접하면서 우울증이 겹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정합적이고도 체계적인 해석을 내놓고 싶어 하는 그의 의지는 점점 강해진다. 이런 사유가적 의지는 1885년부터 구상되기 시작한 '힘에의 의지'라는 제목을 갖게 될 책을 계속 준비하게 한다. 하지만 사유의 아나키즘이 그를 엄습하면서, 이 저술계획은 1888년 8월에 포기되어버린다. 그 대신에 '가치의 전도'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책을 재구상한다. 1888년 9월 3일에는 이 책을 위한 서문까지도 작성하지만, 이 책도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이 결단이 엄청난 체계적인 작업을 위한 그 자신의 힘의 부족을 인식해서든, 아니면 자신의 기획이 원칙적으로 수행 불가능했음을 인식해서든, 니체는 이제 그 기획 대신 다른 작품들을 통해 현대세계에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다.

1888년_43세: 그 좌절된 저술기획의 일환으로 이미 작성되어있던 소묘들의 일부가 『우상의 황혼』과 이것의 쌍둥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티크리스트』라는 제목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특히 그리스도교는 데카당스 현대의 전형이자, 데카당스 현대를 만든 주범으로 니체의 분노를 산다. 이보다 먼저 1888년 7월에는 『바그너의 경우』가 완성된다. 여기서는 바그너의 예술이 그 전형인, 현대에 대한 공격이 감행된다. 『우상의 황혼』과 『안티크리스트』가 완성되는 동안 『바그너의 경우』에 대한 아주 격렬한 비판과 더불어 아주 긍정적인 반향들이 일었고, 이에 고무된 니체는 몇 주 안 가서 『니체 대 바그너』로 응답한다. 1888년 크리스마스에 완성된 이 책은 니체와 바그너의 대척자 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혹독한 판단은 니체 자신의 폭발적인 기분을 계속 유지하게 한다. 이런 기분은 1888년 가을에 완성된 니체의 작품들에 대해 세간의 주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고무된다. 특히 코펜하겐대학의 브란데스(G. Brandes) 교수가 니체철학에 대한 강의를 했다는 소식은 니체를 흥분시켰다. 당시 유럽에서 이미 저술가로 유명해져 있던 브란데스가 그를 높이 평가하자, 니체는 처음으로 자신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 내에서도 니체의 작품에 대한 공공연한 반향들이 점차로 늘어가자, 니체는 갑자기 자신의 영향이 백년 아니 심지어는 이백년에 이를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그는 철학적 자서전인 『이 사람을 보라』를 쓴다. 니체처럼 아주 오랫동안 세간의 외면과 오해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해명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1888년 말부터는 불행의 징조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는 거의 매일 친구들이나 여러 지기에게 편지를 써서 아주 위대한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고지하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닥쳐오고 있으며, 그 일은 바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전쟁이라는 경고성 편지를 독일황제에게 보내려 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현실적인 자기평가 능력이 사라지는 징후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작업을 수행하려는 그의 의지와 정열은 그를 아직은 쓰러지게 놔두지 않는다. 그는『이 사람을 보라』나 『디오니소스 송가』의 교정을 꼼꼼히 할 정도로 의식이 명료했으며, 출판사에 대한 요구나 반응도 지나치리만큼 정확했다.

1889년_44세: 하지만 『디오니소스 송가』의 교정을 마친 직후, 1889년 1월 3일(혹은 1월 7일),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니체는 결국 쓰러지고 만다. 이후 그는 정신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며, 바젤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 사이『우상의 황혼』, 『니체 대 바그너』,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가 출판된다.

 

[#] 죽음 : 1889~1900년(44~55세) / 정신착란 ~ 죽음

- 생애: 1900년(55세) 8.25일 죽음

1889년_44세: 그의 상태는 1891년부터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해서, 1893년부터는 사람을 식별하지 못할 정도가 되며, 집안에서도 휠체어에 의존할 정도로 육체적 기능도 약화된다. 1894년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1900년_55세: 1900년 8.25일 정오경에 니체는 더 이상 고뇌하지 않아도 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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