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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동물,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니체에 따르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인간은 단지 너무 극도로 결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인간의 동물성이 아직 그 감추어진 본질의 안식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확정에 다다르기 위해 플라톤 이래 서구 유럽의 형이상학은 분투했으나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았다.(하이데거 『언어로의 도상』 해제, 이선일)

니체는 당대 학계의 패권인 ‘인식론-철학’과 ‘기계론-자연과학’에 드러나는 권력의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권력의지」 3권 1장(과학에 나타나는 권력의지)에서는 인식론의 구조와 개념들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통해 그 허상을 드러낸다. 2장(자연 속의 권력의지)에서는 근대물리학, 화학, 진화론 등 기계론적 세계관을 관통하고 있는 권력의지의 속성들을 검토한다.

니체의 관점주의의 독특성은 인식론 비판에서도 여지없이 진가를 발휘한다. 인식능력과 인식요소들이 벌이는 인식작용의 이면에 있는 정작을 통찰하여 개념의 새로운 지경에 직면케 함으로써 기존의 형이상학적 가치에서 ‘생물학적 가치’로 인식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베이컨의 귀납법,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콩트의 실증주의 등의 계보로 대별되는 인간 이성의 위대한 작용 모두는 궁극의 진리를 향한 심리적 갈망의 한 유형(진리의지)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그런 노력들은 언제나 마지막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비껴가며 권력의지로만 남는다. 결국 유동하는 향진성(向眞性)으로서의 인간 본성은 ‘방법론’ 외에 그 무엇일 수 없다는 필연적 운명을 깨닫는 지점에서 니체의 퍼스펙티비즘 역시 하나의 위대한 방법론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니체의 인식론 비판은 특히 칸트의 핵심 사상인 ‘물자체’와 현상의 구분을 비판하는 데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른바 비판철학으로 불리는 칸트의 사상은 이성의 한계를 짓고, 이성의 작용과 각종 요소간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자니 의식의 사태를 작은 단위로 쪼개야 하고,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고, 차이를 부각시켜 특징을 설명해야 했다. 니체는 그 경계지워진 것들 사이의 윤곽이 그리 썩 분명치 않다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뚜렷한 선을 지우고 망각되어졌던 본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식에 관한 이야기는 꾸며내고 가장 터무니없는 것, 물자체를 알고자 하는 의지와 물자체는 절대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는 욕망 사이의 모순 앞에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안단 말인가?’라는 자조적 언명은 니체의 큰 이성관을 웅변한다.

그에게 인식은 ‘나를 무엇과의 관계 속에 놓고 그것과의 영향을 주고받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나 사물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저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원근법적인 방식으로 그저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의미의 편향을 확정지을 뿐이다. 그 질문은 곧 ‘저것은 나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고, 어떤 사물의 본질이란 그 사물에 관한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다’라는 표현은 ‘그것은 ……인 것 같다.’라는 뜻이다.”(#555~556)

서양 철학사에서 인식론의 틀거리는 플라톤이 이데아와 현상계의 도식을 구축한 이래 일방향의 형이상학적 욕구가 전승되며 고착된 것이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이 동일 맥락에서 다룬 공상적 세계는 그들의 순진함뿐만 아니라 도덕과 형이상학적 욕구의 발작을 보여준다. ‘이데아에 가까이 가면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끔찍한 사상이다.(#571~572) ‘이 세상은 겉모습일 뿐이고 따라서 진정한 세계가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조건적이고 따라서 무조건적 세계가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모순적이어서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변화하는데, 변화하지 않는 정적인 세계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식의 엉터리 결론이 많다. 이런 형이상학의 기저 심리는 공포의 대상인 고통의 원인들, 즉 권력욕망, 육욕적 쾌락 등을 적대적으로 다루며 ‘진정한’ 세상에서 제거하였다. 하지만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인 천성의 소유자는 열정과 불합리성, 변화, 위험, 대조와 파멸 등을 훌륭한 것으로 본다.(#576~579)

니체는 근대 인식론을 통째로 비판하지만, ‘과학적 태도나 방법’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 왜곡된 이성의 편향을 지적하는 것에 가깝다. 울타리에 갇혀 답답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다락방에서 세상을 내다보는 의식의 좁은 관점으로 현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유 주체는 이미 비판된 바 있다. “인식에 이르는 길로서 과학이 새로운 매력을 얻고 있다. 과학에서만 일관성이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을 생명보존의 일에 도움줄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 이것이 인식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우리 존재조건에 실질적 숙고를 하게 만들고 있다.”(#594)

철학이 정도를 벗어나게 된 까닭은 이성의 범주들을 단순히 공리주의적 목적 하에 진리의 기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기실 ‘진리의 기준’이라 할라치면 그러한 체계적 왜곡이 생물학적으로 유용한지의 여부를 따져 물어야 한다. 동물에게 자기보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그럼에도 철학자들은 세상을 관리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도구로 만들어 이용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광기의 공상을 품은 채 이 범주들에서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어떤 다른 세계의 개념에 집중해왔다. 결국 수단이 가치의 척도로 오인되고, 심지어 원래 목적을 비난하는 데 동원되었다.(#584)

인간은 진리의 이상성을 신봉한다. 그러나 인간이 변화와 기만, 모순을 고통의 기원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이며, 나아가 그런 것들이 행복의 기원이 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사라지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보고 있노라면 진리욕구란 것은 그저 안정적 세계에 대한 갈망일 뿐이다. 우리는 제정신을 찾아야 한다. 진정한 세계를 폐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얼마나 유혹당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또 다른 세계’의 개념은 철학, 종교, 도덕의 영역에서 각각 기원을 두고 창출되었다. 첫째 철학자는 이성과 논리적 기능들이 적절하게 통하는 합리적 세계를 발명했고, 둘째 종교인은 탈자연적이고 반자연적 세계의 뿌리로 신성한 세계를 발명했으며, 도덕론자는 선한 완벽한 세계로 자유로운 세상을 발명하였다. 이와 같은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 것은 삶의 본능이 아니라 쇠퇴의 징후이자 병증이다.(#586)

니체가 태어난 19세기 중엽은 칸트의 후예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이 약화되고, 기계적 유물론이 크게 대두되었다. 칸트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한 도덕세계 구축을 목적했다면, 기계론적 해석은 그런 목적과 이유를 고려하지 않는다. 가령 물리학자들은 원자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생명체에 똑같이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러나 원자 개념은 의식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해낸 것으로 그 자체로 주관적 허구이자 오류다. 물리학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계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불변하는 원인들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것은 세상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날조된 개념이 원자이고, 그렇게 원자이론은 탄생된 것이다. 그나마 물리학자의 그림이 좀 더 확장된 감각으로 그렸을 테지만, 결국 그 감각도 우리 인간의 감각에 불과하다. 또한 물리학은 ‘에너지’ 개념으로 신과 세상을 대체했지만, 그 자체는 과학의 방식으로 증명할 수 없다. ‘힘’은 물리학의 핵심개념이지만, 실험과 관찰로 증명할 수 없는 공허한 단어일 뿐이다. 나아가 화학에서의 ‘변화, 반응, 안정, 분자, 분리, 결합’, 물리학의 ‘운동, 위치, 장(場), 전기, 온도, 밀도, 빛, 세기, 강약’, 생물학의 ‘발생, 진화, 계통, 습성, 분화’, 지구과학의 ‘천체, 기원, 생성, 소멸’, 그 외 자연과학에 사용되는 보편개념인 ‘법칙’, ‘규칙성’, ‘일치’ 같은 것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도리가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세상 모든 현상에 대한 계산가능성을 밀고 나가 공식으로 귀결된 것을 이해라 할 수 없으며, 발생한 일들에 대해 정리한 수학공식을 보며 무엇인가 알려졌다고 가정하는 것은 희미한 착각이다. 공식은 그저 무언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일 뿐, 알려지지 않은 힘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상의 법칙을 알아냈다고 짐작하는 것은 순전히 신화일 뿐이다.(#628~629)

니체는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과 변화 양상에 대해 특정 조건에서는 반드시 특정 결과가 도출된다는 식의 절대 법칙성을 강조하는 기계론 역시 내적 현상의 징후로, 하나의 권력의지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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