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시 읽어주는 걸 듣기 좋아해서 종종 듣는데요.
이 시가 참 좋기도 하고,
어제 니체 세미나를 참가하고 들어서인지 니체를 떠오르게 해서 적어봐요.
저 나름의 해석을 적어놓으면
시 보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수업 때 기회가 되면 잠깐 같이 이야기 나눠봐요. ㅎㅎ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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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라클님!
1. 안도현 시인과 함께 동아리를 하셨다니 참 부럽고, 역시 그래서 오라클님도 통찰과 감성이 풍부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
2. 이런 관점에서도 안도현의 시가 니체를 떠올리게 하네요. 더욱 풍부하게 해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에서 "그 누구" 혹은 "그 누가"가 "나"가 될 수도 있겠다고 느껴 니체를 떠올린 것 같아요.
문학을 잘 몰라 부끄러운 저 나름의 해석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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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재연샘~ 아름다운 시 감사해요. 빗소리가 좋아서 또 조용히 아무도 없을 때 일하는 것도 좋아해서..... 여전히 집에도 가지 않고 사무실인데..(사무실에 창이 많거든요~^^).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네요. 재가 되도록 사랑하는 것... 아.. 그런 열정이 있다면.. 좋을 것도 같네요(물론 동시에 아.. 피곤하다.. 그냥 꼴리는대로 살다 죽는 게 저의 목표인데.. (전 니체적이지 않아요.. 엄청 게으르고 지멋대로고 타협도 잘하는 ㅋㅋㅋ 너구리라...) 라는 생각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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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비록 나 자신일지라도 저는 같은 맥락으로 이 시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아마 너구리님은 이미 사랑을 잘 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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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안녕하세요.프라하입니다.
비오는 저녁 니체세미나에서 안도현시인의 연탄 한 장 시를 읽게 되다니.깜놀.ㅎ 감동입니다. 더불어 오라클이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였다니 ㅎ 더 깜놀 ㅎ 더 감동입니다.^^.
저도 안도현시인의 연탄시리즈를 읽으며 안도현식의 삶에 대해 성찰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석탄 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해요.19개의 구멍. 타오르는 불에 밥을 짓고,김치찌게를 끊여 본 사람은 한번쯤 연탄가스를 마시고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도 있겠네요.^^
어릴적에 천재성을 인정 받은 안도현시인은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가로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인지도가 높은 시인이죠.^^
한번 불이 붙으면 제 몸 죄다 태워 어떤 생성을 해내는 ~ 연탄의 정신 ** 잘 감상하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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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님 오랜만이에요~! 댓글 감사해요.
시를 쓰시는 프라하님이 댓을 달아주셔 기쁜 마음으로 읽었어요!. ㅎㅎㅎ
안도현 시인은 어떤 상황, 어느 순간에 읽어도 항상 여운을 남겨주고 다시, 또 다시 낭송하고 싶게끔 만드는 시인이신 것 같아요.
저는 잘은 모르지만 접할 때마다 안도현 시인에게 감탄합니다.
차이의 생성을 연탄의 정신으로 해석하는 것도 멋지네요! ^^
답글 감사하고 또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1.
이 시는 안도현의 '연탄 3부작'(으로 부르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 시가 <너에게 묻는다>이고, 두번째 시가 <연탄 한장>이고, 세번째 시가 <반쯤 깨진 연탄>입니다. '연탄 3부작'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개념을 이해하기에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동일한 소재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 관한!! <반쯤 깨진 연탄>역시 <연탄 한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3줄짜리 시, <너에게 묻는다>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ㅎㅎ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1994
안도현은 대구출신의 시인으로, 제가 시를 쓰던 한때 같은 문학동아리 선배였지요. 그래서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
2.
재연샘이 이 시를 떠올린 것은 아마 #787 때문인 듯 해요^^ "목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거나, 자신을 등한시하려 해서는 안된다. 생성의 무구야말로, 우리에게 최대의 용기와 최대의 자유를 부여해준다." 우리가 자신을 목적으로 여기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것들과 자유롭게 결속하고 분리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목적이 아닐 때, 우리는 하나의 계기로서 생명의 순환에 기꺼이 참여하고 아름답게 소멸될 것입니다. 한장의 연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