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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 The Mechanical Interpretation of the World

#618      … 기계론적인 해석이 오늘날 전면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부상하는 것 같다. 확실히 기계론적인 해석은 선한 양심을 자기편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은 더없이 어리석을 수 있는 이 원리에 진정으로 존경을 표하고 있다… 압력과 응력 자체는 “설명될 수 없으며,” 인간은 “원격작용”을 제거하지 못한다. [발제자 주 : 원문에 Actio in distans. 뉴턴의 만류인력과 같이 비접촉이지만 움직임, 변형, 영향을 주는 물리작용을 말함] 지금은 설명하는 능력에 대한 믿음까지도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만 가능하다는 점을, 또 세상에 대한 역학적 해석이 “빈공간”을 주정하고 원자들의 응집 작용을 제시하면서 곧 물리학자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

#619      물리학자들은 “에너지”라는 의기양양한 개념을 갖고 신과 세상을 창조했다…. 내가 “권력의지”라고 부르는 내적의지를 에너지에 부여해야 한다. 권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욕망이 에너지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623      화학에는 불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There is nothing unalterable in chemistry. 이것은 오직 겉모습일 뿐이며, 학교를 통해 얻게 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불변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우리였다.

#624      물리학적 원자에 반대하며. … 현실에서 그런 불변의 원인 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날조해서 원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원자이론의 기원이다.

#625      “운동”이라는 기계론적인 개념은 이미 원래의 과정을 시각과 촉각의 상징 언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진리truth”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진리와 거짓”의 영역 전체는 절대적인 것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존재들 사이의 관계에만 적용된다. “존재 자체”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존재를 이루는 것은 오직 관계들이다) “인식 자체”도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다.

#626      “어떤 물질(뇌)안에서, 감각이 전달된 운동(자극)을 통해 생산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도 오직 표면적인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이때 감각이 생산되었는가?”… 따라서 감각은 물질의 한 특성이다. 실제로 감각을 갖고 있는 물질이 있는 것이다.[감각은 전기적인 정보의 전달이라는 것이 현대 생물학의 분석결과임. ]

#627      요약하면, 반드시 인과성을 믿으려 드는 경향을 심리학적으로 보면 목적이 없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도 당연히 진리나 非진리에 대해선 아무런 이야기(그런 믿음에 대한 정당화)를 들려주지 않는다.

#631      어떤 현상들의 불변하는 순서는 어떠한 “법칙”도 증명하지 못하며, 두개 이상의 힘들 사이의 권력 관계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연속의 문제가 아니고 상호 의존의 문제이며, 또 순간들의 연속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 그런 문제이다.

#634      기계론적인 이론에 대한 비판. 여기서 “필연”과 “법칙”이라는 두가지 유명한 개념을 폐기하기로 하자. “필연”이라는 개념은 거짓 속박을, “법칙”이라는 개념은 거짓 자유를 세상 속으로 불러내기 때문이다. … 권력의 크기는 그것이 일으키고 있는 효과와 그것이 저항하고 있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상태는 그 자체로 상상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폭력 의지이고, 폭력에 맞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지이다.

#635     … 우리는 “통일체unities”라는 개념을 아주 오래된 신앙 조항에 속하는 “자아ego”라는 개념에서 차용했다. … 지금 우리는 “자아”개념이 실제적인 통일체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허구를 어느 정도 이용해야 한다. 하나는 운동 개념 (우리의 감각언어에서 나왔다)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 개념(통일체이며, 우리의 정신적인 “경험”에서 나왔다)이다. 이렇듯 기계론적인 이론은 어떤 감각 편견과 심리적인 편견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숫자들의 개념과 사물의 개념(주체 개념), 행위의 개념(원인과 결과의 분리), 운동개념(시각과 촉각)이 결합한 것은 현상이며, 우리의 눈과 우리의 정신이 여전히 현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원근법주의는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의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생각엔 모든 구체적인 육체는 모든 공간에서 주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힘(권력의지)을 확장하려 노력하며 그 확장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든다.

#636      그리고 최종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깨닫지도 못한 가운데 그 배열에서 무엇인가를 빠트렸다. 꼭 필요한 원근법적인 (상대적인) 요소였다. 인간만 아니라 모든 힘의 중심이 바로 이 요소를 이용해서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의 나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자신이 가진 힘에 따라 세상의 나머지를 측정하고 느끼고, 주형을 만든다는 뜻이다. … 원근법주의는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의 특성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생각엔 모든 구체적인 육체는 모든 공간에서 주인되려고 노력하고 힘(권력의지)을 확장하려 노력하며 그 확장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든다.

#639      “신”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을 원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의 상태로, 신기원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권력 의지의 추가적 발달이 일어나는 한 지점으로 보는 것이다. 권력의지 Will to power를 빌리면, 신이 지금까지 이룬 진화 뿐 아니라 앞으로 이룰 진화까지도 잘 설명된다. 기계론적으로 보면, 생성의 집단적 에너지는 항상 일정하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에너지는 영원히 순환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권력의지”는 해석에서, 그리고 힘이 사용되는 방식에서, 말하자면 에너지를 생명으로 전환하는 것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가장 큰 잠재력을 지낸 생명”이 하나의 목표로 나타난다. 똑같은 에너지의 크기도 발달 단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2. 삶으로서의 권력의지

#643      권력의지는 해석한다(형성 과정에 있는 신체 기관은 해석되어야 한다.) 권력의지는 권력의 크기와 차이를 정의하고 결정한다. 단순한 권력의 차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그런 것으로 정의하고 결정한다. 단순한 권력의 차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그런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무엇인가가, 말하자면 성장하길 원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자신의 가치에 따라 해석하려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다른 모든 것들도 똑같이 자기 외의 다른 것들을 해석한다. 해석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것이 똑같다. 해석은 그 자체로 무엇인가의 주인이 되는 한 수단이다. (유기적인 과정은 지속적으로 해석을 전제한다)

#647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며. … 다윈은 “환경”의 영향을 터무니없을 만큼 과장했다. 생명의 과정에서 근본적인 요소는 바로 행태를 규정짓고 형태를 창조하는 내부의 거대한 힘이며, 이 힘은 단순히 “환경”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 내부의 힘에 의해 구축된 새로운 형태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655      약한 사람(the weaker vessel)은 영양섭취의 필요성 때문에 강한 사람에 끌린다…. 강한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한다… 무엇인가에 접근하려는 본능과 무엇인가를 물리치려는 본능은 유기물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무기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결합의 끈이다. 이 두가지 본능을 뚜렷이 구분하는 것은 하나의 편견이다. 힘들의 모든 결합에서 권력의지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강한 자에게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약한 자에겐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권력의지 말이다. (the will to power in every combination of forces, defending itself against the stronger and coming down unmercifully upon the weaker, is more correct)

#656      권력의지는 오직 장애물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의지는 저항할 것을 찾아 나선다. 원형질이 위족을 뻗으며…. 주변환경에서 무엇인가를 낚아채서 동화시키는 행위[1]는 무엇보다도 압도하려는 욕망의 결과이다. 그것은 종속된 생명체가 탁월한 존재의 권력 영역의 일부가 되어서 그 권력을 증대시킬 때까지 형태를 추가로 형성하고 건설하는 과정이다.

#657      “수동적”이란 무엇인가? 밖으로 움켜쥐려는 움직임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능동적”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위해 팔을 뻗는 것이다. “생식”은 파생적인 현상이다. “쾌락”은 권력감정이다.

#659      단서로서의 육체. 모든 시대에 육체body는 우리의 실제 소유물로서, 우리의 가장 확실한 존재로서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자아로서 정신spirit보다 훨씬 더 강한 신뢰를 받아왔다. … 그러나 사람에겐 자신의 모든 생각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자신의 모든 가치들을 “어떤 신이 내린”것으로, 자신의 모든 본능을 행위의 조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거꾸로, 논리와 신앙심 때문에 육체를 하나의 허상으로 (그리고 극복되고 처분된 허상으로) 볼 이유를 충분히 많이 갖고 있는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육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어리석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체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에서 가장 예기치 않은 증거 일부는 사도바오로에서, 또 다른 일부는 베다 철학에서 발견될 것이다.

#662      창조하는 것은 선택하고, 이어서 선택한 그것을 마무리하는 행위이다. (의지의 모든 행위에서, 이것이 근본적인 요소이다)

#663      의도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은 모두 권력 증대의 의지로 환원된다. All phenomena which are the result of intentions may be reduced to the intention of increasing power

#665      … 이 경우에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행동”은 냉정하게 따로 서 있다. 마치 두개의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666      우리 인간은 어떤 행동과 성격과 존재의 가치를 그 의도에서, 말하자면 그 행동이나 성격이나 존재가 추구하는 목표에서 찾았다. … 모든 현상 또는 사건에 의도와 목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우리의 의식에서 점점 뚜렷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가치들을 한꺼번에 훼손시킬 길이 준비되고 있는 것 같다. “의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All is without sense”… 이 같은 가치평가에 맞춰서, 사람들은 부득이하게 삶의 가치를 “사후의 삶”에 두거나, 사상이나 인류나 민족의 점진적 진보에 두거나, 인간을 넘어 초인으로 발달하는 것에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목표에 “무한한 진전 progressus in infinitum”이 일어났다. …

#667      과학은 …. “의지”와 “목적”에 대한 믿음은 착각이라는 것이 과학의 입장이다. 과학은 행위의 동기들을 찾지 않는다.

#668      “의욕하는 것willing”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무엇인가를 의욕willing of something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인식론 학자들이 목표와 상태를 분리시키고 있지만, 목표가 상태와 분리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무엇인가를 명령하는 것이 의욕에 필수적이다.

#670      감정은 지성의 창작물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원인들이 날조한 가공물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육체적 감각은 지적으로 해석된다. … “쾌락”과 “고통”안에 이미 판단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권력감정을 증대시키는지 여부에 따라서 자극이 느껴지는 것이다.

#671      자유 의지인가, 부자유 의지인가? “의지” 같은 것은 결코 없다. 의지는 “물질”처럼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한 개념일 뿐이다. Free will of no free will? There is no such a thing as “will” : that’s only a simplified conception on the part of the understanding, like “matter”

#673      우연 이론. 영혼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영향을 공급하는 존재이며, 또 언제나 대단히 똑똑하고 창조적이다. 나는 우연적인 사건에서 능동적이고 창조하려 드는 힘을 확인했다. 우연은 그 자체로 창조하려는 충동들의 충돌에 지나지 않는다.

#674      … 많은 현상들 중에서 의식이 된 부분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덕”과 “자기 부정” 같은 공상적인 발명품은 나머지 현상들 전체에 의해 철저히 부정당하고 있다. … 사실 동물적인 기능들이 영혼의 아름다운 상태들과 높은 의식보다 백만 배 더 중요하다. 영혼의 아름다움과 의식의 고상함은 과잉이기 때문이다. … 의식적인 삶 전체, 말하자면 영혼과 가슴, 선과 미덕,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 도움이 되는가? 기본적인 동물적 기능에 기여할 수단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는 일에, 무엇보다 생명의 고양에 이바지 한다. … 생명이 점점 더 강해지는 방향으로 생명의 사슬을 계속 이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 과제이다. … 삶의 쇠퇴를 부르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유별나게 오류를 잘 범하는 의식에 있다.

#675      모든 가치 평가들의 가치. 나의 소망은 행위자가 다시 행위와 동일시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 모든 “대상”과 “목표”, “의미”는 단지 온갖 현상들에 고유한 한 가지 의지, 즉 권력의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의지의 변형들이다. 대상과 목표,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의지를 품는다는 것은 보다 큰 힘이나 보다 완전한 성장, 추가적인 수단을 추구하겠다는 욕망을 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행위와 의도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본능은 바로 근본적이라는 이유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가장 깊이 숨어 있는 본능이다.

#676      가치평가들의 기원에 대하여… 한편, 우리는 어떤 합목적성이 우리의 이해력 밖에 있는 작은 현상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깊은 과학으로도 아직 불가능하다. 계획과 선택, 조정, 회복의 과정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우리는 의식적인 모든 것에 대해 옛날보다 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습관을 버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냐하면 목표를 결정하는 의식적인 존재로서의 우리는 우리라는 전체 중 아주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연이나 세상의 우연, 무의식 + 개인의 의식과 이성에 대한 판단] … 간단히 말하면, 정신적 발달의 전체(전제?)는 아마 육체의 문제일 것이다. 정신적 발달이 보다 높은 육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보다 높은 영역으로 올라간다. 자연을 알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은 육체가 완전에 이르는 수단이다. … 육체의 의식과 가치평가, 육체가 느끼는 쾌락과 고통의 종류들은 이런 변화와 실험을 말해주는 신호들이다.

#677      세상에 관한 해석들은 지배적인 본능을 어느정도 표현하고 있는가? 세상을 ‘예술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세상 앞에 앉아서 세상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과학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심리적 갈망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 가능하게 만들려는 욕망에 대해, 모든 것을 실용적이고 유익하고 착취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욕망이 어느 정도 반反미학적인지도 봐야 한다. … 이 모든 고찰 [미학적, 과학적, 종교적, 도덕적]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다. 지배적인 본능이 전반적으로 가장 높은 가치로, 심지어 창조적이고 지배적인 힘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이 본능들은 서로 반대하거나 서로 압도하려 드는 것으로 이해된다.

#678      우리의 표면적인 “인식knowledge”의 기원도 단순히 우리의 케케묵은 가치 평가의 한 파생물이 아닌가 하는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 세상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것은 그런 특별한 해석을 통해서 유기체의 생명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하나의 개체일 뿐만 아니라 유기체의 집단적인 삶을 어떤 명확한 방향으로 지속 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 하나의 체계로서 이 해석 방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로 그것이 “적응”이다.

#679      … 개체화individualization는 하나가 둘로 끊임없이 분열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체들이 소수의 개체를 위해서 끊임없이 소멸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수 개체들은 진화를 계속이어가고, 대다수는 언제나 사라진다. (“육체”) 근본적인 현상은 무수히 많은 개체들이 소수의 개체를 위해 희생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수의 개체들이 진화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민족과 종족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족과 종족은 위대한 과정을 지속할, 고립된 채 지내는 가치 있는 개인들을 출산할 “육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684      다윈에 반대하며. 다윈 학파는 … [인간을 길들이기]의 영향이 매우 깊고 근본적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 생물학자들은 생존 투쟁을, 약한 생명체들의 죽음과 강인한 존재들, 가장 유능한 전투원들의 생존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의 완벽성이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는 생존 투쟁에서 운이 강력한 자들의 명분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 못지 않게 약한 자들의 명분에도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을, 교활함이 종종 힘을 이긴다는 것을, 종의 다산성이 이상한 방식으로 종의 파괴 가능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느리지만 무제한적인 변형을 낳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선택의 예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절대로)

           나의 전반적인 견해. 첫번째 명제는 인간은 하나의 종으로서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다 높은 표본이 성취되지만, 그런 표본은 생존하지 못한다. 종의 전반적인 수준은 높아지지 않는다. 두번째 명제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때 어떤 종류의 진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 종에서도 마찬가지로 탁월한 사람들, 그러니까 진화의 행복한 예들이 운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동요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사라진다. 탁월한 사람들은 온갖 형태의 쇠퇴에 노출된다. 그들은 극단적이며, 바로 그 점이 거의 쇠퇴를 의미한다…. 아름다움과 천재성, 카이사르 같은 인물은 지속되는 기간이 짧은 점이 특징이다. 세번째 명제는 인간의 길들이기(문화)가 매우 깊이 각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순화가 피부 아래 깊이 들어갈 때, 그것은 즉각 쇠퇴가 된다. (유형: 기독교 교도). “야성적인” 인간(또는 도덕적인 용어를 빌리면, 사악한 인간)은 자연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회복을, “문화”의 효과로부터 치료되는 것을 나타낸다.

#685      … 오늘날 다윈과 그의 학파가 보고 있거나 보기를 원하는 것들, 즉 보다 강하고, 체질적으로 보다 훌륭한 생명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자연선택과 종의 진보와 정반대되는 현상이 언제나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운이 좋은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보다 훌륭한 것을 타고난 유형들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당하고…. 내가 모든 변화의 종국적 이유와 성격으로 인식하고 있는 권력의지가 자연선택이 예외적이고 운 좋은 인간들에게 절대로 유리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가장 강하고 행복한 천성의 소유자들이 조직화된 군집 본능과 공포의 지배를 받는 다수 앞에서 약해지 때문이다. … 참으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강한 자는 언제나 약한 자에, 체질적으로 훌륭한 자는 언제나 체질적으로 약한 자에, 건강한 자는 언제나 병들고 생리적으로 실패한 자들에 맞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현실로부터 도덕을 끌어낸다면, 그 도덕은 이런 내용일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이 예외적인 사람보다 더 소중하고, 쇠퇴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보다 더 소중하다. 따라서 비非존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생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보다 더 강하다’ 오늘날 전반적인 목표는 기독교와 불교, 쇼펜하우어의 어법을 빌어 표현하면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가 될 것이다. 나는 현실을 이런 식으로 도덕으로 공식화하는 데 반대한다. [약자의 도덕, 다수결, 평균하향화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다윈의 의견에 찬성하는 듯한 모순적인 글]

           … 요약하면 어떤 종의 권력의 증가는 아마 그 종의 운 좋은 자식들의 우위에 의해 보장되기 보다는 평균적이거나 낮은 유형들의 우위에 의해 보장될 것이다. 후자는 대단한 다산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수반되는 위험도 더 크고, 낭비도 더 심하며, 숫자의 감소도 훨씬 더 빨리 일어난다.

#686      지금까지의 인간이 미래의 인간의 배아이다. 미래의 인간을 형성할 능력은 이미 현재의 인간 안에 들어있다. 또 그 형성 능력이 거대하기 때문에, 현대의 개인이 미래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 많을수록, 그 개인의 운명에 고통이 닥칠 확률도 그 만큼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이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말하는 고통의 개념이다. … 개인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 가장 강한 자극으로 작용한다. 개인들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는 모두를 서로 함께 묶으면서 형성의 힘을 조절하고 개인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막는 수단이 된다.

 

 

 

 

 

 

 

 

[1] 동화작용 : anabolism. 에너지를 이용하여 단백질, 핵산 등 세포 구성물질을 합성하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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