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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_토론주제] 권력의지 > 3권 새로운 가치평가의 원리 > 1장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2020.7.6)

 

  # 전체맥락과 연결고리    

1권 유럽의 니힐리즘 :: 현재의 니힐리즘은 지배가치들이 세상을 가치평가한 결과이다.  

2권 지배가치들에 대한 비판 :: 종교, 도덕, 철학에 대한 비판작업

3권 새로운 가치평가의 원리 :: 인식, 자연, 사회(개인), 예술에 나타나는 권력의지

 

 [참고] 칸트(mmanuel Kant)의 인식론, 『순수이성비판』 

출처 : 『칸트의 비판철학』, 『과학자의 철학노트』, 『철학과 굴뚝청소부』

 

1. 칸트의 비판철학과 ‘물 자체’

 

[1] 칸트의 비판철학 :: 기존철학에 대한 비판

흄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 즉 인식주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진리는커녕 인과법칙조차 증명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지각의 묶음만이 있다고 비판했다. 칸트는 흄의 비판을 받아들여, “자명한 것으로 가정된 주체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이 근거없는 독단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이것이 칸트 비판철학의 출발이다. 칸트의 3대 비판서

- 인식에 대한 책 :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순수이성 비판] ······ 진리와 주체에 대한 질문

- 행동에 대한 책 :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실천이성 비판] ······ 인간의 행동ㆍ당위ㆍ도덕에 대한 질문

- 목적에 대한 책 :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판단력 비판] ······ 인간의 목적개념에 대한 질문

 

[2] 『순수이성비판』 :: ‘물 자체’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월적 세계로 물러나게 되었다!

칸트는『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다. 인간의 이성이 인식할 수 없는 초감각적ㆍ초경험적인 것들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기존 철학을 비판하면서, 이성이 인식가능한 세계만을 다루려고 했다.

칸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현상이며, 물 자체Dingen an sich는 알 수 없다.” 즉 ‘물 자체’는 진리의 실체로서 전제되어 있지만, 인식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가 물자체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필요없게 되었다. 『순수이성비판』에 의해 물자체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로 물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니체는 "칸트가 말하는 지성의 인식능력은 진리의 존재(물 자체)를 전제하지만, 진리(물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3] 진리의 주관화 :: 진리는 대상(사물)이라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주체(인식)라는 내부세계에 있다

- 칸트는 ‘(사)물 자체’와 ‘현상’을 구별하고, 감각기관(거울)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고 한다.

  (사)물 자체 ······ 감각기관(거울) ······> 현상(인식)

  즉 우리가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친 현상이며 사물 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 진리의 개념전환 = 진리의 주관화

  근대적 진리개념 :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지식 ······>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

  칸트의 진리개념 : 진리는 대상에서가 아니라, 대상을 만드는 주관(주체)의 판단형식(선험적 종합판단)에서 찾아야 한다. 

  대상이 인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식이 대상을 만든다. ······> 진리 개념의 재건

  진리를 외부의 사물이나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의 내부에서 찾자는 것 ······> 진리의 주관화

 

2. 『순수이성비판』 :: 서양철학사의 인식론 혁명, ‘철학의 코페르니쿠스’ 칸트

칸트의 인식론 전환.jpg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인식론 혁명]

 

[1] 칸트의 인식론,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칸트 인식론의 시작은 우리의 이성(마음, 의식 등 내적 세계)을 분석하는 것이고,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은 이성이라는 내적 세계를 해부하는 과정에 있다. 외적 세계가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원리가 결국 우리의 이성(내적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칸트의 인식론은 철학사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같았다. 칸트가 서양철학사 안에서 일으킨 변화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어서, 서양사상사는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 칸트는 거대한 관점의 변화를 이루어낸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였다.

 

[2] 칸트 이전과 이후의 서양 인식론의 변화

칸트 이전의 서양 인식론에서 부동의 위치에 있었던 것은 인식의 대상이었고 그 주위를 인식의 주체가 회전을 했다. 주체가 그것을 인식하든 말든 대상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주체가 그렇게 존재하는 대상을 표상한다는 것과 같다. 이때 주체의 마음은 수동적으로 대상을 비추는 거울에 비유된다. 그리고 참된 인식과 거짓된 인식을 결정하는 기준은 대상에 있으므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관념이나 생각이 그 대상과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런데 칸트 이후에는 인식의 주체가 고정된 중심의 자리에 있고 대상이 그 둘레를 회전하게 된다. 주체는 대상이 대상으로서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되며, 주체와 무관하게 현상하는 대상은 없다. 오로지 주체와의 의존관계에 의해서만 대상은 대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마음은 대상을 수동적으로 재현하는 거울이 아니라 감성상상지성이성과 같이 표상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인식능력들의 집합체다. 우리는 칸트가 그리는 이런 마음을 일종의 정보처리장치에 비유할 수 있다. 대상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이 정보처리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마음에 활력이 일어나고, 이러한 활력 자체에 진리가 있다는 것!

 

1. 연구방법    (철학에서의 과학적 방법에 대한 비판)

 

1. 니체가 비판하는 과학적 방법이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철학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p354_#466, 467, 468) 과학적 방법의 승리 (현상) :: 19C 근대를 특징짓는 것은 과학에 대한 과학적 방법의 승리이다. (*심지어) 과학적 방법철학 자체라고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데카르트, 오귀스트 꽁트는 과학적 방법의 대(大)가들이다.

(p355_#469) 과학적 방법의 승리 (과정) :: ① (과학적 방법에 대한 중세신학의 반대 : 경멸스러운 것) 현재 과학의 모든 방법은 몇천년에 걸쳐 심하게 경멸되어 왔다. 과학적 방법 때문에, 사람은 성실한 인간들로부터 소외되어 왔고, ‘하나님의 원수’로 최고이상Idea의 경멸자로, ‘광인Besessener’으로 간주되어 왔다. (ex.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브르노의 범신론 '신과 자연은 하나', 갈릴레이의 지동설 포기) / 우리는 인류의 모든 파토스(*신에 대한 신앙)를 적으로 삼아왔다. “진리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진리는 무엇에 봉사해야 하는가”에 관한 우리의 방법(*과학적 방법), 우리의 조용하고 신중하며 의심많은 방식은 완전히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② (과학적 방법에 대한 19C의 비약 : 진리에 대한 미적 취향) 인류를 오랜 기간 동안 저해한 것은 하나의 미적 취향(*진리에 대한 미적 취향)이었다. 인류는 ‘진리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인식자(*과학자)에게 공상력을 작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것은 마치 한가지 반대가 달성되고 하나의 비약이 행해진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온건한 종류의 파토스(*과학적 방법에 의한 진리에 대한 열정)가 준비되었던 것인데, 온건한 파토스란 도덕적 과장에 의해 훈련되어 과학적 성격으로 혈육화된 것이다. 하찮은 것에 대한 양심, 종교적 인간의 자제력(*금욕주의), 특히 어떤 결과에서 개인적 영향을 제외하는 태도(*객관주의)는 과학적 성격을 위한 예비적 훈련이었다. (*과학적 방법 : 절대적 진리를 위한 실증주의)

 

2. 인식론적 출발    (인식론에 대한 퍼스펙티브 : 칸트의 인식론 vs 니체의 인식론)

*칸트의 인식론(물 자체)에 대한 비판

 

2. 니체적 인식론은 무엇이며, 현재 인식론은 이것과 어떻게 대립하고 있나?

(p356_#470, 471) 인식론의 출발은 ‘하나의 총체적 세계관’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것들의 자극’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식론은 총체적 세계관의 전형인 신학적 세계관(사물은 도덕적으로 전개되고, 인간의 이성은 올바르고, 신은 만물의 창조자라는)을 전제하고 있다.

 

3. 우리의 인식과 관련하여 니체가 비판하는 칸트의 인식개념인 '의식의 사실들'와 '물 자체' 그리고 내적 세계의 현상성이란 무엇인가?

< 의식의 사실들 > Thatsachen des Bewußtseins / Facts of Consciousness ······ 주체 (의식)

*니체 : '의식의 사실' 같은 실체(고정불변의 진리)는 없고, 오히려 내적 세계 역시 현상적(피상적, 기만적)이다.

(p356_#472) ‘의식의 사실’에 대한 항의. “의식의 관찰은 천배나 어렵고, 오류가 의식을 관찰하는 절대조건일지도 모른다.

(p357_#475) 현대철학에 대한 비판. 현대철학은 마치 ‘의식의 사실’(*실체)이 존재하고 있어서, 내적 세계에 있어서는 현상같은 것(*기만성)이 없는 것처럼 믿는다. (*'의식의 사실' 같은 실체(고정불변의 진리)는 없고, 오히려 내적 세계 역시 현상적(피상적, 기만적)이다.)

(p357_#476) '의식' 표상된 표상ㆍ표상된 의지ㆍ표상된 감정만을 우리는 숙지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얼마나 피상적인가! 우리의 내적 세계도 마찬가지로 '현상일 뿐이다. (*표상_외부세계ㆍ사물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 현상_우리의 인식에 따라 외부세계ㆍ사물이 ‘나타나는 것’)

< 물 자체 > Dingen an sich / "things in themselves ······ 객체 (사물)

*니체 : 칸트의 ‘물 자체’는 진리의 실체로서 전제되어 있지만, 인식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p356_#473) 지성은 스스로를 비판하지 못한다. (*칸트의 비판철학을 겨냥한 것.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지성의 인식능력은 ‘실재의 현실성’에 당면해서야 명백해지기 때문에, 지성을 비판하기 위해서 우리가 ‘절대적 인식’을 가진 고차원의 존재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관찰이나 감각적 정신적 지각을 통한 모든 종류의 퍼스펙티비즘(allen perspektivischen Arten der Betrachtung. every perspective kind of outlook)에서 떠나, 무엇인가의 존재 '그것 자체 An sich’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믿음의 심리학적 기원은 ‘물 자체 Dingen an sich’에 관해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p357_#474) '주체과 객체의 사이에 적합한 관계가 존재하고, 객체란 내부에서 보면 하나의 주체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사상은 우호적인 날조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형편없는 의식의 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의식의 이러한 편협한 퍼스펙티비즘(Winkelperspektive. nook-perspective)이 우리에게 ‘주체와 객체’의 실재성을 진술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p366_#488) '현상 세계'로부터 '물 자체로서의 세계'를 분리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범주는 전혀없다. 이성의 모든 범주들은 전부 감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범주들이 예외없이 경험적인 세계로부터 추론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자아'의 개념들도 가장 오래된 구분('숨결과 생명')을 보여준다. 물질적인 것이 없으면, 비물질적인 것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개념은 더이상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 칸트의 물자체와 니체의 비판 : [칸트의 물 자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현상이며, 물 자체Dingen an sich는 알 수 없다.” 즉 ‘물 자체’는 진리의 실체로서 전제되어 있지만, 인식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것! [니체의 비판] "칸트가 말하는 지성의 인식능력은 진리의 존재(물 자체)를 전제하지만, 진리(물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 내적 세계의 현상성 > die Phänomenalität auch der inneren Welt / the phenomenality of the inner world

*니체 : 내적 세계의 현상성 :내적 세계도 외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단지 '현상'에 불과하다.

*내적 감각 inner sense - 내적 경험 inner experience - 내적 세계 inner world

(p357_#477) 지각의 실제과정:: 내적 감각

[0.내적 세계. 지각의 실제과정] 나는 내적 세계에 관해서도 현상성을 확신한다.(*현상성=기만성 / 내적 세계의 현상성: 내적 세계도 외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단지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것은 조정되고 단순화되고 도식화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내적 ‘지각’의 실제과정은(여러 사상ㆍ여러 감정ㆍ여러 욕망 사이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인과적 결합은) 우리에게 완전히 숨겨져있고 순전히 상상일지도 모른다. 이 내적 세계의 현상외적세계와 동일한 형식ㆍ절차로 이뤄져있다. 우리는 ‘사실’을 절대로 만나지 못한다. 쾌락과 고통도 추후의 파생적인 지성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1.‘인과성’에 대하여] ‘인과성’은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간다. 논리학이 그러러듯이, 여러 사상 사이에 하나의 직접적인 인과적인 매듭을 상정하는 일은 거칠고 서툰 관찰의 결과이다. 2개의 생각(*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여전히 온갖 종류의 감정이 개입할 수 있지만, 그 상호작용은 너무나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것이 우리가 그 감정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런 감정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이다.

[2. ‘사고’에 대하여] 인식론자가 실마리로 삼고있는 ‘사고’는 전혀 나타나는 법이 없다. 사고는 과정 가운데서 한가지 요소만을 선택하고 나머지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달성되는 순전히 제멋대로인 허구이며,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인 조정이다.

[3. ‘정신’에 대하여] 사고작용을 영위하는 어떤 것인 ‘정신’(심지어 ‘절대적인ㆍ순수한ㆍ순연한 정신’)이라는 착상은 ‘사고'를 믿는 그릇된 내적 감각inner sense로부터 나타나는 둘째 결과이다 여기에는 첫째로 ’사고‘라는 전혀 나타나는 법이 없는 하나의 작용이 상상되고, 둘째로는 이 사고의 모든 작용의 기원으로 주체가 상상되고 있다. 말하자면, 행위와 행위의 주체가 똑같이 가공되고 있는 것이다.

(p358_#478) 내적 세계의 현상론:: 내적 감각

[0. 내적 세계의 현상성(기만성)] 현상론을 찾아야 할 장소를 잘못 알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저 유명한 ‘내적 감각’으로 관찰하는 이 내적 세계보다 더 현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혹은 좀더 명료하게 말하면) 내적 세계만큼 심한 착각은 없다.

[1. ‘의지는 원인(의도는 사건의 원인)’이라는 믿음에 대하여] 우리는 의지를 원인이라고 믿어왔으나,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 경험 일반에 따라서 사건 속으로 그 원인을 끌어들였다. (즉 어떤 의도가 사건의 원인으로 상정되었다.)

[2. ‘생각과 생각이 인과관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서 계속하여 일어나는 생각과 생각이 무언가의 인과적 연쇄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현실 속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추상적 사례들에 관하여 실제로 논하고 있는 논리학자는 사상이 사상의 원인이라는 선입견에 붙잡혀있다.

[3. ‘쾌락과 고통이 행위의 동기’라는 믿음에 대하여] 쾌락과 고통이 반응의 원인이라고, 또 쾌락과 고통의 의미가 반응을 유도하는 원인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현재의 철학자들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몇천년의 기간에 걸쳐, 쾌락과 고통의 회피가 모든 행위에 대한 동기로서 확립되어 왔다. 약간의 반성을 보탠다면, ‘쾌락과 고통’의 상태가 없을 때에도, 동일한 인과의 연쇄에 따라서 경과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도 좋다. 따라서 쾌락과 고통의 상태가 무언가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게 속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상태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질 수 있는 수반현상이며, 이미 개시되어 있는 반응과정 안에서의 결과이다.

[4. ‘의식(사고ㆍ감정ㆍ의욕)이 원인’이라는 믿음에 대하여] 요약하면 의식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최종현상하나의 결론이지, 결코 무엇인가를 유발하는 원인은 아니다. 의식 속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완전히 별개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사고하는 활동(*사고), 느끼는 활동(*감정), 의욕하는 활동(*욕망) 이외에는, 어떤 것도 결과를 낳는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듯이!

(p359_#479) 내적 세계’의 현상론:: 내적 경험

[1. 감각의 현상성 : 시간적 전도 전도,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전도] ‘내적 세계’의 현상론. 시간적 전도가 일어나고, 그 때문에 원인이 나중에 가서 결과로 의식되기에 이른다. 우리가 이미 배운 것은, ‘고통은 육체의 어떤 부분에서 투사되지만, 실제로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배운 것은, 외적 세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여겨지는 감각기관이 오히려 내적 세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즉 외적 세계의 본래적 작용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외적 세계의 단편적인 조각은, 외부 세계에 의해 일어난 효과가 의식에 기록된 뒤에 생겨나고, 그 조각이 효과의 원인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2. 생각과 꿈의 현상성 : 원인과 결과의 전도] ‘내적 세계’의 현상에서, 원인과 결과의 시간적 순서가 역전된다. ‘결과가 의식에 기록된 뒤에야, 그 원인이 상상된다'는 점이 '내적 경험'의 근본적인 사실이다. (*내적 세계에서는 결과가 의식에 기록된 뒤에야 원인이 상상된다.) 이것이 사고의 순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 생각의 원인을 찾는데, 그러면 원인이 먼저 의식에 들어오고 그 뒤에 결과가 의식에 닿게 된다. ...... 우리의 꿈은 가능한 원인을 찾기 위해 우리의 복합적인 감정을 해석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상태가 연결되는 것으로 짐작되는 인과관계가 의식으로 들어올 때, 그 상태가 의식된다. 

[3. 내적 경험의 과정 : 기억(이전의 내적 경험)에 근거한] 모든 ‘내적 경험’은 다음과 같은 사실 위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신경중추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흥분을 설명할 원인이 찾아지고 상상된다. 이런 식으로 찾은 결과 의식에 닿게 되는 것이 원인인데, 물론 이 원인은 진짜 원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이전의 '내적 경험'(기억)의 도움을 받아 더듬어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억은 낡은 해석의 습관(엉터리 인과성)을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내적 경험'은 이전에 만들어진 엉터리 원인과 결과라는 모든 허구까지 수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매 순간 인식하는 '외적 세계'는 예전의 엉터리 인과성이라는 낡은 오류에 단단히 묶여있다. 우리가 '사물들'의 도식을 가지고 외부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4. 내적 경험의 과정 :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발견] ‘내적 경험’은 그 사람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를 발견할 때만(어떤 조건이 그 사람이 잘 아는 그런 조건으로 번역될 수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해한다'는 표현은 새로운 무엇인가익숙한 무엇인가를 빌려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어,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고 말할 경우 (그러한 판단은 관찰자의 위대하고 원숙한 중립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단순한 인간은 ‘이러이러한 것이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사람은 기분 나쁘게 만드는 원인을 발견한 다음에야 자신의 기분에 대해 명쾌하게 알기 시작한다. ...... 이것을 나는 ‘문헌학적 지식의 결여’라고 부른다. 해석을 개입시키지 않고 어떤 텍스트를 그 자체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발달하는 형식의 '내적 경험'이다. 그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한 형식인지도 모른다. 

 

4.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란 무엇인가?

(p361_#480) 인식은 권력의 도구로 작동한다. 따라서 권력의 증대에 따라 인식이 늘어나는 것은 명백하다. ...... 인식욕구의 크기는 그 종의 권력의지가 커지는 정도에 좌우된다. 종은 실재성(주어진 현실)을 지배하기 위해, 그 만큼의 실재성(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으로서 권력의지의 ex) 지식공동체_수유너머 / 현대철학의 힘관계 :: 칸트, 헤겔, 하이데거 / 니체, 들뢰즈, 푸코.....

 

3. 주체: '자아'에 대한 믿음    (주체에 대한 허구, 세포들의 귀족정치)

*데카르트의 '코기토. 생각하는 주체'에 대한 비판

 

5. 니체는 어떤 점에서 '주체Subjckt를 자아Ich에 대한 믿음'라고 말하나?

(p362_#481) 사람들은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 자체가 해석이다. '주체'는 절대로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며, 발명되어서 거기에 있는 것으로 나중에 덧붙여지는 그 무엇이다. 

(p363_#483) '생각'이라는 현상 때문에, 자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는 생각한다 Ich denke"라는 것에는 얼마간의 직접적인 확실성이 있으며, 인과적 이해에 비추어 '자아'가 그 생각의 확실한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 허구가 생명을 보존하는 믿음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거짓인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생각하는 주체'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p363_#484) "무엇인가가 생각되어진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주장이 뜻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Substanz'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선험적 진리로 설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단순히 모든 행위에 어떤 행위자를 가정하는 습관을 공식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체: 고정불변한 것 / 선험적 진리: 경험 이전의, 경험에 앞서는 진리)

(p364_#485) 실체라는 개념은 주체라는 개념의 한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니다. 만약에 우리가 영혼을, 주체를 포기한다면 '실체' 일반에 대한 전제는 없어진다. (*영혼과 주체-개념이 실체-개념의 전제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생명감정, 힘감정의 정도(체험된 것의 논리와 연관)가 우리에게 '존재, 실재성, 비가상'의 기준을 제시한다. 주체는 최고의 실재감정(*힘감정)이 일어나는 다양한 순간에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실체(*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이다. 우리는 이 같은 믿음을 근거로 '진리, 현실성, 실재성'을 상상한다. 

(p365_#487) 종국적으로 모든 철학은 그 추론과정이 근거하고 있는 제1원리들을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자아'를 실체로(우리가 그것에 따라 사물에 실재성Realität을 부여하고 있는 유일한 근거로) 여기는 믿음을 발혀야 하지 않을까?

 

6. 니체는 어떤 관점에서 "오류와 허위가 생명을 보존하는 믿음"이라고 하는가?

(p363_#483) 이 허구(*자아가 생각의 원인이라는 믿음)가 생명을 보존하는 믿음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거짓인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P365_#487) 우리의 사고가 그 같은 믿음(실체와 우연성, 행위와 행위자 등의 구별 같은)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 믿음을 포기하는 것은 곧 사고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믿음이 생물의 보존에 아무리 이롭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예컨대 우리가 시간, 공간, 운동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생존보존의 차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절대적 실재성의 인정을 요구받지는 않는다(*진리의 차원).  

(P368,369_#492) 우리는 인식의 결여, 사물들을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 단순화와 왜곡, 퍼스펙티브적 접근도 하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 자신을 허위로 해석하는 것이 그 사람의 활동에 유익하고 중요할 수 있다.

 

7. 니체적 관점에서 '주체나 자아'란 무엇인가?

*니체 : (하나의 잠재성의 장으로서) 신체는 힘들의 복합체이며, (잠재성의 현행화로서) 주체 혹은 자아는 힘들의 잠재적이고 일시적 중심일 뿐이다. 

(p366_#488) 주체의 비실체성 :: '실재성'과 '존재'라는 개념은 우리가 '주체' 감정에서 비롯된다. '주체'는 우리 내면에서 자아가 하나의 실체로, 모든 행위의 원인으로, 행위자로 해석된다. 논리적 가정들(실체와 우연성과 속성 등에 대한 믿음)은 '모든 행동을 우리 의지의 결과로 여기는 습관'에서 설득력을 끌어내고 있다. 그 때문에 자아는 실체로서 변화의 복잡한 과정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지(*자아의 의지)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주체라는 '원자'는 없다. 주체의 영역은 계속 증대하거나 감소하거나 하며, 체계의 중심점도 계속 변동하고 있다. 주체가 자신의 것으로 만든 소재를 전체로 조직할 수 없는 경우에 둘로 분열한다. 반면에 주체는 보다 약한 주체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자기기능 내부로 개조하고 합체하여 하나의 새로운 통일을 구성할 수 있다. 주체는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서 강화를 향해 노력하는 어떤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간접적으로만 자기를 '보존'하려고 의욕하며, 자기를 '능가'하고자 의욕한다. 

(p367_#489) 주체의 신체성 :: 하나의 '통일체 Einheit'로서 의식에 닿는 모든 것은 이미 대단히 복잡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통일체'라는 허울을 갖는데 지나지 않는다. (*정신의 현상에 대하여) 육체의 현상은 더욱 풍성하고 더욱 명확하고 더욱 확실한 현상이다. 따라서 육체의 현상을 조직적으로 전면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으며, 육체적 현상의 종국적 의미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p367_#490) 주체의 다수성 :: 하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다수의 주체를 가정하는 것도 허용가능하다. 우리의 의식과 사고의 바닥에서 이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배력을 가진 일종의 '세포들'의 귀족정치라고나 할까? (*의식이나 사고보다 세포들이 지배적인 힘이다!) 그것은 물론 서로 통치하는데 길들여져 있어서, 명령하는 법을 이해하고 있는동등한 자들 사이의 귀족주의(귀족정치)를 말한다.(*강자들의 공동체) 주체가 다수라고 간주하는 나의 가설.

고통은 의식적인 것이어서, '해롭다'는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즉, 해롭다는 판단이 투영된 것이다.) 결과는 언제나 '무의식적'이다.(즉, 추론되고 상상된 원인이 투영되는 것이며, 원인은 시간적으로 뒤에 나타난다.) 쾌락은 고통의 일종이다. 존재하는 유일한 힘은 의지의 힘(*힘에의 의지)과 동일한 것이다.(즉 힘은 다른 주체들에게 명령하는 것이며, 다른 주체들은 이것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주체의 끊임없는 일시성과 불확실성(*무상함과 덧없음). "죽을 운명의 영혼"(*영원회귀). 퍼스펙티브적 형식으로서의 수(수의 크기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p368-#491) 주체의 신체성 :: 육체를 믿는 것영혼을 믿는 것보다 한층 더 근본적이다. 영혼에 대해 믿는 것은 육체의 고통을 비과학적으로 고찰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간과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관찰. 그로 인해 끔들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p368_#492) (*정신과 현상학이 아니라) 육체와 생리학이 출발점이다.육체와 생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유는 이렇다. 1.주체라는 통일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즉, 그것은 공동체의 정점을 차지하는 다수의 통치자들('영혼'이나 '생명력'이 아니라)이라는 점을, 또한 통치자가 피통치자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그리고 전체와 부분들을 가능하게 하는 위계와 분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올바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2. 또한 살아있는 통일체들은 부단히 생성 소멸한다는 것, '주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관해서도 올바로 그릴 수 있다. 3. 또 '투쟁은 명령과 복종 가운데에도 나타나고, 권력의 범위가 변하는 것이 삶에 속해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올바로 그릴 수 있다.  

통치자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인들의 수행과 장애에 대해서까지 비교적 무지한 것이 통치의 조건일 수 있다. 요약하면 인식의 결여, 사물들을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 단순화와 왜곡, 퍼스펙티브적 접근 등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같은 종류(감정, 의지, 사고)로 여기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육체 가운데서 운동을 인식하는 곳마다 육체에 고유한 눈에 보이지 않는 주체적 생명(*힘에의 의지)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운동Bewegung은 눈으로 보이는 하나의 상징적 기호이며, 그것은 '무엇인가가 감각되고 의욕되고 사고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주체가 주체에 관하여 직접 물음을 건네는 일, 정신의 모든 내적 감각은 위험한 일이기는 하나, 그 위험은 스스로를 거짓되게 해석하는 것이 그 활동에 대해 유용하고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며, 예리해진 내적 감각의 증언을 거절한다. 말하자면, 주체들이 직접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육체를 통해) 시험해보는 것이다. 

 

4. 퍼스펙티비즘: 인식충동의 생물학    (인식충동, 진리에 대한 니체적 관점)

 

8. 니체 "진리는 생존을 위한 오류(믿음)이다"!?

(p369_#493) 진리란 생명의 보존을 위한 오류(믿음)이다 :: 진리란 그것 없이는 어떤 종의 생명이 보존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오류이다. 생명에 이로운 가치가 결정적이다. / (p394_#532) 진리는 삶의 한 조건이 된 믿음이다.

(p369_#494) 우리의 인식활동은 삶의 보존을 위한 것이다 :: 우리의 '인식활동'이 삶의 보존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형태학에 따르면, 감각ㆍ신경ㆍ두뇌는 영양을 얻는데 따르는 어려움(*생존조건)과 비례해서 발달했다.

(p370_#498) 우리의 지성 또한 생존조건의 귀결이다 :: 우리의 지성 또한 생존조건에 따른 결과물이다. 우리가 지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지석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ex. 멍게가 처음에는 뇌를 활용하여 정착할 장소를 찾아 이동하지만, 일단 한 곳에 정착하고 나면 뇌를 먼저 먹어치운다. 그래서 멍게에는 뇌가 없다.)

(p373_#504) 의식과정은 개체의 생물학적 중심으로 다가서게 만든다 :: 인상들을 조정하고 인식하는 것으로서 의식은 처음에 그의 생물학적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만, 의식을 더 깊게 치열하게 하는 과정이 의식을 생물학적 중심으로 점점 다가서게 만든다. 

(p373_#505) 색깔에 대한 반응역시 생존의 표현이다 :: 의식은 유익한 범위까지만 확장하며, 감각에 의한 인식에는 예외없이 가치평가가 작용한다. 각각의 색깔은 모두 우리에게 가치의 표현이다. 이를테면, 곤충도 색깔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데, 어떤 개미는 이 색깔을 좋아하고, 다른 개미는 저 색깔을 좋아한다.

 

9. 니체 "진리는 권력의지(힘애의 의지)이다"!?

(p369_#495) 권력의지(조형의지)로서 진리의 감각 ::  ‘거짓말하지 말라’는 도덕성이 기각된다면, 진리의 감각 다른 법정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한다. 즉 인간보존의 수단으로서ㆍ권력의지로서! (*진리감각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도덕성이 아니라, 권력의지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형태를 만들려는 의지(*조형의지)이기 때문이다. 두 감각(진리감각,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서로 나란히 서있다. 진리감각은 사물들을 우리의 취향에 따라 조형하기 위해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이다. 이렇듯 조형하거나 변형하는 일에서 느끼는 쾌감(*힘감정)은 근원적인 것이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만든 세계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

(p372_#501)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 기억은 분류하고 배열하는 과정으로서 능동적인데, 이때 누가 능동적으로 나서는가? (ex. 인식행위는 사물을 자기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다. 은행나무, 단풍나무를 나무로 분류하고, 가지와 수박을 채소로 분류하는 것은 누구인가? ......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p372_#502)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 나 자신이 경험한 것들은 '기억' 속에서 계속 살고있다. 어떤 기억이 떠오를 때,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떤 기억도 나의 의지로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일어난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의식하게 된다. 지금 비슷한 무엇인가가 오고 있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불러냈는가? (ex. 화려한 색채의 버섯을 보고 독버섯이라고 의식하게 하는 것(과거의 기억에서 그것을 불러내는 것)은 누구인가? ...... 인식으로서의 생존의지

(p374_#506)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 '단어'가 일으키는 작은 감정, 바로 이 단순한 감정이 어떤 개념의 바탕이 되는 공통요소이다. ..... 서로 가까운 두가지 감정을 확인할 때엔 둘 사이에 혼동이 일어난다. 그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누구인가? (ex. 동정과 공감을 혼동할 때, 같은 것으로 혹은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누구인가? ...... 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10. 니체 "진리의 본질은 믿음이다."!?

(p374_#506) 어떤 것이 진리라고 믿는 믿음 :: 믿음이 모든 감각적 인상의 첫번째 단계이다. 일종의 단언 같은 것이 최초의 지적활동이다. "어떤 것이 진리라고 믿는 믿음"이 지적 활동의 시작이다! "어떤 것이 진리라고 믿은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ㅔ374_#507) 진리라고 믿는 믿음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 "나는 이것과 저것이 그러하다고 믿는다"는 식의 가치평가가 '진리'의 본질이다. 모든 가치평가에는 보존과 성장의 조건이 표현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인식기관과 감각들은 보존과 성장의 조건에 유리한 쪽으로 발달해왔다. 이성과 이성의 범주들에 대한 믿음, 변증법에 대한 믿음, 논리의 가치평가는, 단지 그것들이 삶에 유용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이 진리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지는 않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그들의 생명의 전제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물들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줄 알아야하고, 모든 근본적인 가치들에 의문이 전혀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가 반드시 진리일 필요는 없지만, 진리로 여겨질(*믿음) 필요는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조건들을 일반적인 존재의 속성으로 상정했다. 번영을 누리기 위해선 안정적인 믿음을 갖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세계는 변화ㆍ진화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존재의 세계라는 사상을 발달시켰다. (ex. 유사한 것들을 같은 것으로 믿은 믿음에 의해, 우리는 독버섯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5. 이성과 논리의 기원    (동일성의 오류, 생성과 존재)

 

11. 논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508-515, 510, 512, 516, 521)

 

12. 동일성의 오류는 왜 생기나? 동일성을 추구하는 의지는 어째서 권력의지인가(인식으로서의 권력의지)? (#509, 511)

 

13. 생성하는 세상과 존재에 대한 인식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나? 사물들에서 불일치는 왜 생기나? (#517, 518, 519, 520)

 

6. 의식    (의식과 정신, 실체 / 의식=진보, 무의식=후퇴)

 

14. 의식과 정신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나? '정신으로서의 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의지=선의 도식은? (#524, 525, 526, 529)

 

15. 의식과 정신은 실제로 무엇인가? (#523, 524)

 

7. 판단: 진리냐 거짓이냐    (의식과 정신, 실체 / 의식=진보, 무의식=후퇴)

 

16. 판단은 믿음이지, 인식이 아니다!? (#530, 531, 532)

 

17. 진리와 삶 / 진리와 세상은 어떤 관계에 있나?

(p394_#532) 진리는 삶의 한 조건이 된 믿음이다.

(p395_#535) 나의 사고법에 따르면, 진리는 반드시 오류의 반대가 아니라, 다양한 오류의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오류는 그 밖의 오류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으며, 인간 같은 유기체가 살 수 없을 수 있다. 반면 그 밖의 오류는 삶의 조건으로서 우리를 압제하고 있지는 않다. 

(p397_#542) 존재의 성격이 거짓이라면, 진리는 거짓을 (*참이라고) 위조하는 것이며, 보다 높은 차원의 거짓이다!

(p397_#543) 기본적으로 허위인 세상에서, 정직성은 반자연적인 경향일 것이다. 

 

18. 진리와 권력의지는 어떤 관계에 있나?

(p395_#534) 진리-권력의지 :: 진리의 표지는 힘감정의 상승에 있다.  (*진리를 표시하는 것은 힘감정을 상승하는가에 있다. 진리는 힘감정을 상승시키는 것이고, 오류는 힘감정을 하강시키는 것이다.) / [안티크리스트] 좋음.나쁨-권력의지 :: 좋음이란 무엇인가? 힘 감정, 힘에의 의지, 힘 그 자체가 고양되는 모든 것이다. 나쁨이란 무엇인가? 약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힘이 커지면서, 저항이 극복되는 감정이다.

(p396_#537) 무엇이 진리인가? 타성이다. 정신적 힘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동질성의 만족을 일으키는 가설이 곧 진리이다.

(p397_#540) 다종다양한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역시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종다양한 '진리'(*truths)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Truth)도 없다.

 

19. 힘과 위장은 어떤 관계가 있나?

(p398_#544) 존재자의 위계가 높을 수록 '위장'도 증대한다. 무기물의 세계에서는 위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힘이 힘에 대하여 완전히 거칠다(*위장 없이 날 것이다). 유기물의 세계에 있어서 교활함이 시작되며, 식물은 이 점에 있어서 고수이다. 시저, 나폴레옹* 같은 최고의 인간, 보다 높은 종족(이탈리아인), 그리스인(오디세우스)도 그렇다. 대단히 교활함은 인간 향상의 본질에 속한다. 배우의 문제, 나의 디오니스소의 이상. 모든 유기적 기능의 모든 최강의 삶의 본능의 퍼스펙티브 (모든 삶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의욕하는 힘, 사고의 전제로서의 오류, '사고'되기 이전에 이미 '허구'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동일한 경우를 동일성으로 가상성을 형성하는 것이, 동일한 것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다. (*나폴레옹에 관한 스탕달의 말 :: 스탕달은 저서 [나폴레옹전] 서문 <"강력한 인간은 모두, 말할 때는 물론, 글을 쓸 때는 더더욱 거짓말을 한다"고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믿고 있다.>)

 

8. 인과론에 대한 반대    (인과론, 주체, 결정론, 목적론:: 비판)

 

20. 인과론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인과론과 '주체' 개념은 어떤 연관이 있나? (#545, 550, 551, 554)

 

21. '주체'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546, 547, 548)

 

22. 결정론과 목적론은 어떻게 반박되는가? (#552)

 

9. 물 자체와 현상    (인과론, 주체, 결정론, 목적론:: 비판)

 

23. 칸트의 '물 자체'란 무엇인가? 니체는 왜 '물 자체 같은 것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비판하는가? (#555, 557, 559)

 

24. '사실 자체'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556) 사물들의 객관성, 객관적 관점이란 엉터리 지각이다!? (#560)

 

25. 인식(의미)은 양의 영역과 관련하고, 감각(가치평가)은 질의 영역에만 국한된다!? (#565)

 

26. 니체 : "'진정한 세계'란 또다른 종류의 현상세계이며, 현상세계만이 진리이다."!? (#568,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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