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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지󰡕 中 제2권 1장 「종교에 대한 비판」 뒷부분(p157~197 / 201~252)

 

기독교를 정복한 권력들: 1. 유대교(바오로), 2. 플라톤 철학(아우구스티누스), 신비 숭배, 금욕주의

 

1. 유대교: 非정치성 + 무리본능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이어받은 과대망상증. 예수와 바오로는 무가치한 사람들의 머리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었다. 하찮은 사람들의 겸손한 미덕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듯이. 이것 때문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미덕과 인간의 소중한 자질들이 불명예스럽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과 자기 존중이 서로 마찰을 일으킨다. 강한 인간의 성향들을 길 잃게 만들고 자기 파멸의 길로 걷도록 한다.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는 비정치적 유대인 사회였다. 기독교는 유대 전통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정치적 삶을 부정하고 로마 통치 영역 안에서 일종의 기생하는 민족에서만 기독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플라톤 철학(아우구스티누스): 反자연주의 + 거세

 

그리스 도덕 철학자 플라톤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이것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길을 닦아 놓았다. 그는 善이라는 개념을 빌려 최초로 도덕에서 자연을 보길 거부했다. 우리는 미덕으로부터 남자의 기관이 잘려나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내시를 떠올리면 혐오감을 느낀다. 그런데 거세된 이상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왜 이것에서는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가. 목소리가 더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거세하도록 한다. 네 적을 사랑하라고 가르칠 때 도덕에서 자연이 추방된다. 유용성은 배제되고 도덕의 자연적 기원은 부정된다.

 

아담 시대 이후로 인간은 비정상적 상태에 처해있다. 삶의 자연스런 성격은 일종의 저주이다. 신을 믿는 자에게 예수는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켜주는 존재였다. 예수는 사람들을 행복하고 게으르고 순진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은 노동 없이 열매 맺지 못하고 고통 없이 출산하지 못하며 질병도 사라지지 않았다. 신자들도 불신자와 똑같이 좋지 않는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구원의 교리를 더욱 강조했다. 이 주장을 검증할 길은 없다. 인간은 천국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다. 자기 노력 없이 구원자의 죽음에 의해 속죄 받았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경향들이 충족되는 것은 속죄의 감정 따위로 해석된다. 부정할 수 없는 모든 쾌락의 감정은 자만심과 방탕이 된다. 기독교도는 과도한 자제를 한다. 자신의 열정을 길들이기 위해 십자형이 필요한 것이다.

 

거세하는 자의 자기 보존적 조치들: 제도를 확립하면서 의존하는 입법적 수단을 마련. 신의 권위에 기대어 죄와 처벌 개념을 이용했다. 옛날의 이상에 딸린 부속물들을 다 이용하면서 해석만을 달리한다.

→ 처벌의 내면화. 양심의 가책.

이것은 고립되어 있을 때만 생존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이들의 유일한 천적은 자신이 성장한 토양. 그 토양과 싸우려면 공격적 열정과 방어적 열정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이들의 반대자는 옛 이상을 신봉하는 자들이다. 이런 과거와의 적대 행위 중 가장 약한 것이 최초의 불교도들의 행위였다.

 

3. 가치전도 전쟁(신약 전쟁)의 양상: 노예도덕을 주인마저 수용하게 된 까닭

 

법은 공동체 보존을 위한 현실적 조치이지만 그 마음까지 금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도덕적 이상주의자들 마음의 태도까지 공격한다. 보통은 이런 말을 비웃을 테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 예외적 상황은 공동체가 평화로우면서 지적으로 지쳐있을 때이다.

신약성경은 불성실한 형태의 증오들을 담고 있다. 높은 천성의 소유자들의 자질들에 대한 지식을 결여하고 속물근성을 남용한다. 반대자들을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태도가 고귀함과 비천함을 가르는 기준이다.

 

신약 전쟁은 교활한 여우를 연상케 한다. 이 전쟁은 어떻게 치러지는가. 물리적 수단은 가능하지 않고 오로지 정신적 전쟁이 가능하다.

ⓛ모든 미덕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그것들을 이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만든다. 옛 이상들을 부정하면서 정반대로 바꾼다.

②어떤 인간 유형(신으로써)을 보편 기준으로 제시한다.

③자신의 이상과 반대하는 자들을 향해 신에 반대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한다.

④온갖 고통과 무서운 것들을 자기 이상에 반대한 결과라고 선언한다.

⑤자연을 이상의 정반대로 여기고 자연을 인내심의 테스트기 정도로, 자연적 조건을 견디는 것을 순교로 여긴다.

⑥이로써 반자연성과 거세가 승리 → 신의 왕국의 도래로서 미래를 투영한다.

모든 미덕은 자연스런 목적과 유용성 대신 신과 관련될 때만 소중하게 여겨진다.

 

신약을 유혹의 책으로만 읽자. 신약이 가진 미덕은 소박하고 군집 동물만을 인정하는 미덕이다. 사소하고 부드럽고 자비롭고 이롭고 크게 만족하는 미덕이다. 이런 미덕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분리시킨다.

 

4. 군집성: 사적인 기독교 → 낮은 인간들에 대한 편애 → 낮은 인간들의 군집화 → 현실 권력 욕구

 

-1. 초기 기독교와 현재 기독교의 차이

 

기독교는 가장 사적인 형태로만 가능하다. 편협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비정치적 어떤 사회를 전제한다. 이런 사회는 비밀 집회에 속한다.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정치는 뻔뻔함의 극치이다. 교황조차도 그리스도의 방식을 수행한 적이 없다.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에 몰두하는 개혁가들은 독재자와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의 추종자가 된다.

 

그래도 기독교는 언제든 가능하다. 기독교는 교리들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삶의 방식이지 신앙체계가 아니다. 처세술을 가르지는 것이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군인이 되길 거부하고 심판에 초연하고 경찰의 봉사를 요구하지 않는 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기독교 가르침도 그 중력의 중심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기독교는 낮은 계층의 가치 없는 사람들을 총애한다. 전형적 기독교인은 오늘날 기독교가 부정했던 모든 것들을 점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기독교는 한때 부정했던 삶으로 들어가고 있다. 기독교인 삶 전체가 예스가 버리라고 설교했던 그런 삶이 되어 버렸다. 교회도 적그리스도의 승리에 현대 국가와 현대 민족주의 못지않게 기여하고 있다.

 

-2. 낮은 무리에 대한 편애: 사회주의와 연관성

 

기독교는 국가의 폐지를 말한다. 원시 기독교는 공동체 방어를 금지하고 조국의 동료와 이방인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예스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사도들이 보호하는 것도 금지했다. 또, 기독교는 사회의 폐지를 말한다. 사회가 경멸하는 모든 것을 높이 평가한다. 기독교의 성장은 버림받은 자들, 세리, 죄수, 매춘부, 어부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부자와 학자, 고귀한 자들, 덕 있는 자들, 격식 차리는 자들을 경멸한다.

 

기독교는 사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가르침과 같다. 낮은 계층과 가난한 사람에게도 행복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온갖 제도와 전통, 높은 계층의 후원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뿐이라는 점을 알린다. 재산과 획득, 신분과 지위, 이런 것들을 장애물이자 악마의 농간으로 여긴다. 이로써 주인들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고 있다.

 

-3. 낮은 무리가 정치권력을 갖게 되기까지: 민주주의와 연관성

 

군집도덕에서 자연성을 배제한 도덕이 기독교이다. 자연성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자기기만이 수반되었다. 민주주의는 이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런 형태의 군집도덕으로 거짓이 덜하다. 억압당한 계층과 낮은 계층, 노예와 혼혈 집단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이제 하나의 사실이 되었다.

 

빈곤, 겸양, 순결은 명예를 훼손하지만 로마제국에는 필요했다. 공동체의 본질은 존속을 추구하는 것이고 지배자의 본질은 피지배자들을 유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주인 종족이 기독교에 굴복하는 것은 기독교가 군집에게 복종을 가르친다는 확신을 품은 결과이다.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보다 통치하기에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 교황이 중국 통치자에게 기독교 교리를 권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예이다

 

*낮은 자들이 권력을 얻는 과정

①낮은 자들은 스스로를 자유의 몸으로 만든 뒤 자신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릴 것.

②이들은 다른 계층과 갈등을 빚으며 자신에 대한 인정과 평등, 정의를 요구.

③이들은 특권을 요구.

④모든 권력을 원하고 전권을 확보한다.

 

한편, *기독교의 무리를 이루는 3요소들은

ⓐ피억압자: 정치적으로 고귀한 사람들과 이상과 싸운다.

ⓑ평범한 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특권 가진 자들과 싸운다.

ⓒ불만품거나 병든 자: 행복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반대한다.

이 싸움에서 승리가 쟁취될 때마다 ⓑ들이 전면에 부각된다. 이들은 행복하고 건강한 자, 권력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기독교에서 최고의 지지를 얻는 것은 모든 면에서 가치 있는 평범한 본성, 군집 본능이다. 이 평범한 본성은 최종적으로 정치권력까지 요구하고 나서게 된다.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기독교이다. 반자연성을 극복한, 자연으로의 회귀가 민주주의이다. 이로써 귀족주의적 이상이 자연스러운 성격을 잃기 시작.

 

5. 현재 기독교

 

중요한 인물 중에 기독교 이상을 닮은 사람이 있었나? 없었다. 우리가 더 탁월하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각이 강하다. 우리는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고통도 다른 방식으로 받는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적대를 감추지 않고 대단히 위험한 주제들도 공격한다. 기본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 학자들이다.

 

*현재 기독교

기독교의 건재함: 현대 과학을 통해 기독교를 극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십자가 예수는 최고로 숭고한 상징

문화의 단계: 기독교는 이제야 문화의 단계에 도달했다. 위장하지 않고 순수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수준.

 

초기 기독교 이상: 환경이 호의적일 때 실현가능하다. 비정치적이고 반민족적이고 비공격적이고 비방어적이고 엄격한 질서가 잡힌 국가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국가나 사회는 신성한 기생충들이 이웃에게 피해를 안기며 번창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현재 기독교 이상: 행복해지려는 의지이다. 살아가는 방법이나 살아가도록 하는 방법은 수단으로 전락했다.

- 높은 인간: 두려움을 모르는 태도. 언제든 불행에 도전하려는 자세

↔ 행복주의자의 가치: 생리적 피로와 의지력 약화

 

6. 기독교의 치료

 

-1. 질병의 도덕화

 

이상은 현실을 경멸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상은 독이지만 치료제로 쓰일 때도 있다.

신은 행복하고 게으르고 순진하고 불멸하는 인간을 창조했는데 우리의 실제 삶은 거짓되고 쇠퇴하고 죄 많은 존재이며 일종의 처벌이다. 고통, 투쟁, 일, 죽음이 삶에 대한 반대로 여겨지고 있다.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적 삶은 목적을 결여하고 있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이뤄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육체를 경멸하는 대신 아름다운 영혼을 제시한다. 육체의 모든 기능이 도덕적 가치로 환원되고 있고, 질병이 도덕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통한다.

 

긍지 대신 겸손. 열정 대신 조심성. 과장된 감정 표현. 이런 것들이 어떤 인간 유형을 만들어낸다. 이 유형에서 죽어가고 있는 육체의 과민성이 두드러지지만 신경과민이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된다. 이 유형의 인간의 본성은 날카로워지거나 과장된 수사에 몰입하거나 극단적인 감정에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신경계에 대한 지식이 낮아서 자기감정의 원인을 착각한다. 신을 관련지어 해석한다. 소진 이후에 나타나는 회복도 신의 기적으로 해석.

 

어떤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쇠퇴의 한 신호이다. 구원의 조건들은 단순히 병에 걸린 상태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간질발작을 과학적 해석이 아니라 종교적 해석에 따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 있을 때 그 사람의 善도 병에 걸린다고 보는 것. 정신적 치료과정은 심리학적 바탕에서 다시 다듬어져야 한다. 양심의 가책은 그 자체로 회복을 방해한다. 자기 잘못에 대해 앞으로 선한 인간이 되겠다고 말하고 회복하는 사람보다 진지한 태도로 자기 운명을 고수하면서 이미 저질러진 행동에 대해 욕하기를 거부하는 범죄자가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

 

후회는 소용없다. 후회한다고 행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용서받거나 속죄를 받는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것도 없다. 우리는 죄를 믿지 않는다. 행동은 근본적으로 똑같다. 불리한 행동이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유익할 수도 있고 바람직할수도 있다. 상황이 허용했다면 온갖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너는 이런저런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라고 말해야 한다.

 

-2. 기독교 치료의 필요성

 

인간이 여전히 야생적이고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독교가 필요해 보인다. 사람들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기준들은 야만적이다 어떻게 영혼의 구원이 어떤 책에 달려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어느 정도로 만연해있는가. 철학적 숙명론도 이 믿음에 대한 결과이다. 어떤 존재를 물 자체이고 선하고 현명하고 소중해 보이는 그런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 심리학적 거짓 중에서 최악의 거짓이다. 인과 과정을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이다.

 

치료: 진지한 사람들은 야수적 인간들을 길들여야 하는데 잔인하다 만큼 가혹하게 해야 경외감이 생긴다. 질서가 잡히면 다시 태어난 사람과 아직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간극을 최대한 무섭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이 간극은 높은 계급의 자부심을 키우고 자신들이 대표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여기서 찬달라가 발생하는데, 경멸과 경멸의 과잉은 심리학적으로 완벽히 옳다. 야수와 맞서는 투쟁에서 기독교적 치료는 야수를 병자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우리 시대는 성숙해졌고 터무니없는 잡종 문화에서 벗어난 기독교가 가능하다.

 

-3. 善(이상주의)과 種의 몰락

 

강자들에게는, 모든 강한 권력은 선악에서 자유롭고 진위에서 자유롭고 선의 요구사항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된다. 최고의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정직과 정의, 미덕, 선이 폐기된다. 그런 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스스로 구분하는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서 선에게 최고 권력이 주어지면 최악의 재앙을 초래한다. 지금도 인류는 삶에 적대적인 이상주의 때문에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교리로 내세우면서도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다. 개인의 이기심은 극도로 높인다. 기독교를 통해 개인이 너무나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종은 인간의 희생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개인들을 평등한 존재로 보면 종의 운명이 위험해진다. 그런 인식은 종의 파괴를 부를 수 있는 생활 방식을 고무한다. 기독교는 자연선택 원리와 정반대이다. 보편적 사랑은 실제로 보면 고통 받고 특권이 없고 쇠락하는 자들을 선호한다. 종은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 쇠락한 자들에게 사라질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독교가 그들을 보존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4. 기독교의 목표: 양심의 가책

 

기독교는 체질적으로 약하고 실패한 사람들에게 죽음과 자기 파괴를 권하지 않고 실제로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똑같은 종의 인간을 번식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엄격한 형태의 니힐리즘이 필요하다. 과학적 양심을 갖고 자발적 죽음을 가르치고 실행할 수 있는 그런 니힐리즘 말이다. 기독교가 개인 불멸과 부활을 전파하면서 자살과 같은 니힐리즘의 행위를 거부함으로써 위대한 정화의 가치를 훼손시킨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난은 결코 충분하지 않다. 기독교는 자살을 질질 미루도록 하면서 평범한 부르주아적인 삶을 권장했다.

 

진정한 기독교 교도는 아름다움과 긍지, 부, 자립 등 모든 문화를 의심하고 더럽힌다. 기독교인의 목표는 선한 양심에서 문화를 제거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파스칼 같은 사람들을 파멸시킨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기독교는 권력 의지와 성장 의지로 전체 인간 종이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게 할 그런 사람들을 파멸의 위협에 시달리게 한다. 높은 인간들이 더 높은 성장으로 이루는 시도를 더욱더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 기독교는 강한 자들을 파괴하고 그들의 정신을 깨뜨리고 그들의 자부심을 양심의 가책으로 바꿔 놓는다. 이런 경향 때문에 강한 사람들의 힘과 권력 의지는 자신의 뜻과 반대로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의 실례가 바로 파스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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