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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지], 2장 유럽 니힐리즘의 역사

2020.5.25. 정웅빈

 

1. 현대의 우울

57.

젊음으로 인한 “붕괴, 말하자면 불확실성은 이 시대에 특이한 현상이다. 단단한 토대 위나 건전한 신앙 위에 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58. 실패로 인한 쇠퇴

이 시대의 쇠퇴는, “지나치게 많은 실패한 실험들”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59. 현대 우울의 역사

국가 유목민(공무원 등): “집 없는 사람”.

소진의 한 증후로서 “선한 인간”

권력 의지로서의 정의正義(양육)

가족의 해체

음란과 신경증

암울한 음악

아나키스트

인간의 경멸, 혐오

굶주림으로써 낭만주의의 이상들

북부의 부자연성

알코올의 필요성: 노동 계급의 “궁핍”.

철학적 니힐리즘

 

60. 중류층과 하류층의 출현

중류층과 하류층의 출현과 향상이 야기한 현상들

1) 고통을 너무나 쉽게 표출하는 것(정신의 우울). 고급 문화는 금욕적인 모습과 경박스런 겉모습을 함께 나타낸다.

2) 동정, 염려, 절제와 같은 무리 동물의 가치들에 의한 도덕적 위선

3) 고통과 기쁨에 ‘진정으로’ 크게 공감하는 현상(애국심과 공공심)

 

61.

“고통을 완화시키고, 고통에 경의를 표하고, 고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미리 예상하면서 고통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시대의 “부유한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62. 현대인에 대한 비판

“선한 인간”을 자처하는 현대인

높아진 이성理性의 권위

과거를 오류들을 극복한 과정으로, 미래를 진보로 여기는 것.

기독교도의 결혼(사실은 성적 충동.)

“정의”, “자유”, “인간애” 숭배.

“체절적으로 실패하고 망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라”라고 하는 역사가들과 소설가들의 모토

금욕주의자.

무관심을 기술과 지혜로 여기는 현상.

공리주의(가장 정직하지 못한 형태의 이기주의)

이타심(가장 감상적인 형태의 이기주의)

이 모든 것들은 정신적인 것들이 관능성을 얻게 된 루소의 18세기이다..

 

63.

“인간애”에 대한 커다란 감수성은, 현대인이 사소한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해졌으며, 이는 상당한 데카당스 운동(쇠퇴)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 세상이 나쁘고 비참한 곳으로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것들을 부당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

1) 과민증, 그리고

2) 염세주의적 괴로움과 우울을 통해 우리의 도덕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

3) 도덕과 종교로부터 과학의 자유. 이것은 매우 훌륭한 신호이다.

 

 

64.

니힐리즘은 불교 문화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전조 현상은, 동정의 감정이 증대되고, 모든 문제를 쾌락과 고통의 문제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65.

전통의 본능과 의지와의 단절은, 우리 시대는 파괴의 원리들이 우세를 갖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어느 한 의지를 오랜 세월에 걸쳐서 확장하는 것, 즉 수 세기의 세월을 미리 좌우할 수 있게 하는 조건과 가치 평가를 선택하는 것“은 전통의 본능과 의지와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66.

인간에게 “자연적인 존재가 되어라!”라고 하는 요구는 부당한 것이다.

 

120. “자연으로의 회귀”

자연스럽다는 것은 감히 자연처럼 비도덕적인 존재가 되려 한다는 뜻이다.

여가시간이 있고, 남녀 간의 사랑은 일종의 유희이며, 사람들은 서로를 즐겁게하고, 쾌락과 육체적 강점이 중요하며, 호기심과 대담을 추구하는 것,

병적이고 성직자 같은 태도를 혐오하며,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것에서 기쁨을 누리고, 습득 행위 자체가 지겨운 그런 지식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원칙과 “의무”가 아니라, 본능에 따라 유익하고 자비로운 도덕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모든 권리를 정복으로, 권리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를 정치로 이해하는 것,

모든 위대한 것을 항상 어떤 범죄를 수반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도덕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는 것,

자연을 순수하고 이성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악마적이고 바보스런 것”으로 보는 것,

엄격한 실증주의에 따라 예술로부터 아름답고 공허한 거짓말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

본능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느끼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인간의 무조건적인 자연성과 부도덕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루소가 원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것들이며, 17세기 말의 취향인 것이다.

 

67.

오랜 세대에 걸쳐서, 재산 상속과 부모공경(조상으로서의 신과 영웅에 대한 신앙의 기원)이라고 하는 하나의 이해관계가, 동질적이고 지속적인 유형의 인간을 가능케 하는 토대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재산 분할뿐만 아니라 신문, 철도, 전신 등(언론과 매체)을 통해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를 하나의 영혼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68.

도덕 또는 법전이 창조(해야) 하는 것은 삶과 일에서 자동성과 완벽을 가능하게 할 깊은 본능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완벽한 것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다. 이러한 본능은 조상들의 유산을 통해 훈련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행위와 의지의 완전함으로부터 쇠퇴하고 있으며, 지식을 추구하는 방식(과학)에 있어서도 생명의 자기 방어 및 보호 본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69. 니힐리즘적 특징

과학: 인과론, 기계론, “법칙 신봉”. “무의미성”

정치: 자신의 권리와 순수에 대한 믿음의 결여

경제: 노예제 폐지, 인간의 결함을 보완할 계층의 결여

역사: 운명론, 다윈설

예술: 낭만주의와 그에 대한 반발. 순수한 “예술가들”. 심리학적 낭만주의(고해 신부와 청교도의 심리학). “인간”에 대한 순수한 예술적인 태도

 

70. 내면의 힘

나는 환경과 내부 원인들의 영향에 대해 가르치는 데에 반대한다. 내면에서 나오는 힘이 그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똑같은 환경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이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 사실 같은 것은 전혀 없다.

 

 

71. 소화 능력의 퇴화

현대인들은 무엇이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사람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기술을 잊고, 이제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환경에서 오는 자극에 반응하는 것뿐이다. 자발성의 약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천성을 “거울” 같은 것으로 인위적으로 변형시킨다. 역사학자, 비평가, 분석가, 해설자, 관찰자, 수집가, 독자. 이 모두가 수동적인 재능에 불과하지만, 과학이라고 불린다.

 

72.

현대 세계의 다양성과 불안은 가장 높은 형태의 의식意識으로 인해 생기고 있다.

 

73.

과로, 호기심, 동정은 현대의 악덕이다.

 

74. 현대성의 특징

본능(무의식)의 우세, 전형들의 소멸, 전통과 학파들의 해체, 중개적인 형태들의 과도한 발달

 

75-76 현대적 “대표자들”에 대한 반대

노동의 모든 영역과 분야에 진정한 노동자들 위에 “대표자들”.

학자 외에 저널리스트, 고통을 대표하는 게으르고 무가치한 떠버리 군중.

의회에서 불만을 대표하는 직업 정치인.

과거와 현재 사이의 중개자로서 역사학자.

이국적인 것을 동경하는 세계주의자.

자연과학과 철학 사이의 중개자, 반半신학자.

그러나 사실 “훌륭한 것은 어떤 종류의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창조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의미에서 말하는 우수성, 즉 비르투(virtu)이다.” 고대 정신의 메아리가 들리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대표자나 중개자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

 

77. 지성의 기식자들

지금까지 내가 가장 혐오했던 인간들은 지성의 기식자寄食者들이다. 그들은 별다른 계산 없이 매일 정신을 아낌없이 쏟는 것이 풍요한 정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78. 현대의 가면극(?)

79. 도덕적으로 치장된 현대인의 정신

"‘예스’나 ‘노’라고 답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덮고 있는 것, “관용”

3분의 1은 무관심, 3분의 1은 호기심, 3분의 1은 병적 민감성, 동정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력, “객관성”

규칙으로부터의 자유, “낭만주의”

“구성”이 아니라 “추가”를 의미하는 과학정신.

무질서와 무절제, “열정”

상징들의 혼란과 깊은 카오스, “깊이”

 

 

 

80.

나는 “이상”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싫어한다. 나는 “고상한 감정들”이 어느 정도 악의 원천이라는 것을, 말하자면 인간을 작아지게 만들고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독교, 혁명, 노예제 폐지, 평등권, 박애, 평화에 대한 사랑, 정의, 진리. 이 모든 허풍의 단어들은 오직 투쟁에서 하나의 기치(:군중에서 쓰는 온갖 기.flag)로서만 가치를 지닐 뿐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그 단어들이 뜻하는 것과는 꽤 다른, 심지어 정반대의 것을 의미할 때도 있다.

 

81.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환멸에 빠진 사람이다. 모든 것에 용서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거기엔 경멸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정심으로 둘러싸인 이것은 낙담의 철학이며, 그들은 낭만주의자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 보잘 것 없이 되고 사라지는지를 지켜보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예술을 위한 예술”, “객관성”이라고 부른다.

 

82. 염세주의의 주요 징후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 염세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 “기술(묘사)”

쇼펜하우어

무정부주의

“동정의 종교”, 불교적 준비

낯설고 색다른(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 세계주의

도덕적 염세주의, 나(니체)

 

83.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이 없다면, 사람은 자연과 역사처럼 괴물이 되고 혼란이 될 것”이고, “진리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은 우리가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쇠퇴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는 “이성의 타락이 깊을수록, 구원의 교리가 그만큼 더 절실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들의 구원의 교리는 곧 부정不定의 교리와 같다.

 

84. 쇼펜하우어의 의지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오해함으로써, 더 이상 의도하지 않는 데서, “목표를 갖지 않은 주체가 되는”데서 탁월한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심지어 탁월성 자체를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피로를 보여주거나 의지의 약함을 보여주는 중대한 징후이다. 의지라는 것은 열정을 주인으로 섬기며 열정에게 길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85.

바그너와 쇼펜하우어가 대표하는 (인간) 유형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면,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질 것이다.

 

86. “힘에의 의지”가 겪는 변형들

1)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정의正義를 요구한다.

2)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자유”에 대해 말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3) 자신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지 않은 이상 자신의 경쟁자들이 권력을 키우는 것을 막기를 원한다. 즉 “평등권”을 주장한다.

 

87.

프로테스탄티즘이 쇠퇴한 만큼, 반反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예컨대 바그너의 ‘파르지팔’) 역시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보다 고상한 지성은 모두 가톨릭이다.

 

89.

나는 프로테스탄티즘을 기독교의 동종요법(:인체에 질병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유발시켜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부른다.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은 정말로 초라한 기독교이다.

 

90. 진보

19세기는 16세기에 비해 어느 면으로도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1888년의 독일 정신은 1788년의 독일 정신과 비교할 때 퇴행의 예이다. “인류”는 발전하지 않았으며, 인류는 존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의 발흥은 쇠퇴의 한 움직임이며, 독일의 종교 개혁은 기독교의 야만을 다시 정비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사회가 대규모로 조직하던 본능을 파괴시켰다.

 

2. 지난 몇 세기

91. 독일의 염세주의

우울과 염세주의의 영향은 필히 계몽의 전철을 밟게 되어 있다. 나(니체)는 계몽 운동에서 볼테르나 그보다 훨씬 더 심오했던 갈리아니에 비해 1세기나 2세기 앞서 있다. 나는 “신이나 도덕 없이” 홀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종의 역逆지지대 같은 것을 발명해야 했다.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동물인 이유는, 인간만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우울한 동물이 가장 쾌활한 동물인 것이다.

 

93.

르네상스는 “개인”의 지배가 짧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르네상스는 모든 것이 지출되고, 부를 축적하고 자본화하는 데 투입되어야 할 힘이 낭비되는 그런 시대이다. 또한 종교개혁(“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직자가 되는 것”)은 르네상스와 비슷한 충동에서 일어난, 야생적이고 평민적인 방종을 위한 공식에 지나지 않았다.

 

94.

프랑스 혁명을 통한 기독교의 연장. 그것을 유혹한 자는 루소이다. 루소는 여자를 한 번 더 해방시켰고, 노예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노동자들, 사악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해방시켰고 이들을 고통 받는 자들로 묘사하였다. 이어서 관능에 대한 저주가 오고(보들레르와 쇼펜하우어), 지배하려는 욕망이 최악의 악이라는 확신, 도덕과 이타심이 동일한 개념이라는 믿음, 그리스도의 하늘의 왕국(“전체의 행복”)이 팽배해진다.

 

95. 3개의 세기

17세기) 귀족주의, 데카르트, 이성의 지배, 의지의 주권: 질서를 강요하고, 동물성을 경시하고, 감정이 없으며, 일반화의 경향이 있으며, 주인으로 남기 위해 금욕적인 습관을 많이 갖고 있다.

 

18세기) 염세주의, 루소, 감정의 지배, 감각의 주권: 여자에게 지배당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을 도우려는 정신이 강하며, 온갖 권위를 약화시킨다.

 

19세기) 인간 동물설, 쇼펜하우어, 갈망의 지배, 동물성의 주권. 정직하지만 우울함: 의지가 약하고, 슬프고, 엉큼한 갈망으로 가득하고, 숙명론적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의 철학의 특징으로 순수한 의지의 부재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다. 쇼펜하우어에게는 결정론이 성공을 거두고, 환경과 적응의 우너리가 강조되고, 의지가 반사작용으로 환원되며, “하나의 동인으로서 선택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주체”로서 의지가 하나의 동력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서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객관성의 원리가 제시되고 있다.

 

97.?

 

98.

루소는 자기 경멸과 허영의 한 징후이며 지배적인 계급에 대한 원한을 품은 인간이다, 자기 경멸과 허영은 지배하려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타락이 아닌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야 말로 인간에게 저주로 작용하고 있다. 17세기의 프랑스인,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루소가 맞서 싸웠던 그 영역에서 여전히 강한 유형의 인간이, 힘에의 의지, 향유하려는 의지, 명령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아직 살아 있는 인간이 나타나고 있다.

 

99-100. 볼테르 vs 루소

볼테르는 “자연의 상태는 무시무시하고 인간은 맹수이며, 우리의 문명은 자연 속의 이 맹수를 상대로 거둔 장엄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루소는 자연을 정의의 원천으로 여기며, 인간은 자연에 가까워지는 만큼 완벽해진다. 볼테르는 인간의 본질과 미덕을 르네상스적인 의미로 이해했다.

루소의 섭리 옹호(자연주의). 루소는 사회와 문명을 저주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했다.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선해야 했으며, 오직 인간만이 인간을 타락시켰다. “자연스러운” 인간이 “선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공상이지만,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교리를 적용하면 “선한 인간”도 근거가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루소의 낭만주의: “열정의 최고 권리”, “자연성”, 허약한 자의 허영, 심판자로서 군중의 원한.

 

101. 칸트

칸트는 독일인들에게도 영국인의 회의론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1) 독일인의 도덕적 및 종교적 필요에 대한 공감을 회의론의 원인으로 제시함으로써

2) 형식의 측면에서 독일인의 과학적 취향에 맞는 회의론을 학문적으로 장식함으로써

칸트는 루소 스타일의 도덕적 광신자이고 기독교적 가치들을 갖고 있으며 철저한 교조주의자이지만, 이러한 경향에 염증을 아주 강하게 느낀 나머지 이 경향을 눌러버리길 원하지만 마찬가지로 회의론에도 빨리 물린다. 그는 세계주의적 취향과 고대의 아름다움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있으면, 지연시키고 중개하지만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

 

104. 18세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진 두 가지 위대한 시도

1) 나폴레옹이 유럽을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구상하면서, 남자와 군인을 다시 일깨우고 권력을 둘러싼 대투쟁을 촉발시킨 것.

2) 괴테가 지금까지 성취한 인간의 모든 유산으로 이뤄질 그런 하나의 유럽 문화를 상상한 것.

이 시대의 음악에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모든 것을 서로 연결시키는 그런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107.

독일 정신에게 리하르트 바그너는 하나의 의문부호이다. 독일인들 사이에, 그는 별난 존재로, 제대로 이해를 받지 못한 상태에 서 있다.

 

108.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그것이 온갖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독일인들이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는, 성취한 것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고, 의지와 일과 훈련과 교육을 통해 보다 훌륭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3. 힘의 증대를 보여주는 신호들

109.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그 원인들이 보다 강하고 귀한 개인들에게는, 위대함을 성취하도록 몰아붙이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110.

우리의 감정은 가치를 결정하는 수단인데, 시대에 맞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퇴행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들(새로운 생존 조건들)을 의심하고 금지하게 한다.

 

111.

‘성장’이 폭력적인 긴장 –19세기의 이상들의 다양성과 그 이상들의 상호 모순- 속에서 일어난다면, 이는 위대함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니힐리즘도 하나의 좋은 징후가 될 수 있다.

 

112. 성장의 징후

모든 중요한 성장은 엄청난 규모의 붕괴와 사라짐을 수반한다. 역사적으로 유익하고 강력한 운동은 모두 니힐리즘적인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염세주의인 니힐리즘은 인류에게 근본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새로운 존재 상태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113.

A) 강한 육체에 필요한 실질적 조건에 대한 인식, “금욕주의”를 고운 눈길로 보지 않는 것, 극단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것, “옳은 길”에 대한 확신, 열광하지 않는 태도, “조국애”나 “학식” 같은 보다 편협한 가치들에 대한 일시적 순응은, 생명의 상승 운동일 수도 있고 하강 운동일 수도 있다.

B) 지성의 보다 높은 영역에서 보면 “진보”는 하강하는 삶으로 보인다.

관점이 통일되지 않고, 가치의 기준이 확실하지 않으며, “헛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것. 니힐리즘

 

114. 니힐리즘을 바로 잡을 수단

우주를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것(“신”이라는 가설)은, 니힐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불합리성과 우연을 더 많이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훈련 수단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115.

인간의 진보는 인간이 더 이상 과도한 반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감각들을 모든 면에서 고상하게 다듬고 예술적으로 가꾼다는 점이다.

 

116. “찬달라”

성직자들은 사람들의 의지를 타락시키고 생명을 중상하는 생명의 적이고,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 사이의 반항아이다. 이전 시대에는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사람들, 비도덕가, 방랑자, 예술가, 유대인, 음유시인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유형의 인간들이었다.

우리는 “고귀함”을 스스로 결정한다. 우리는 생명의 옹호자이며, 비도덕가이고, 우리의 이미지에 따라 세상을 창조하는 자이다.

내세의 선생인 성직자들, 기독교 사회와 같은 기원을 가진 염세주의자와 니힐리스트, 동정의 낭만주의자, 범죄자, 사악한 중독자들, 즉 “신”이라는 개념이 구세주로 상정하는 자들이야 말로 진정한 “찬달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하거나 삶을 중상하고 비방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17. 19세기가 18세기를 거스르며 이룬 진보

1)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과 정반대로 전원시와 오페라를 멀리 하는 것.

2) 반反이상주의적이며 반反혁명적이고, 용감하고 부지런하며 온건하고 돌발적인 변화를 의심하는 태도.

3) 육체의 건강을 “영혼”의 건강보다 우위에 놓는 것.

 

118.

감각을 대하는 태도가 순수해진 점, 괴테와 같이 관능 보다 유쾌하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점, 지식에 대한 자랑스러운 감정, ‘파르지팔’에게 큰 명예를 돌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하나의 성취이다.

 

119.

우리는 예전에 고통을 야기했단 수백 가지의 일에서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고, 온갖 상태의 고통을 흥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 우리는 고통 앞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더 강하게 느끼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 증대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부르주아의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상태를 추구하고, 성직자의 도덕을 부르주아의 도덕보다 더욱 멀리하고자 한다.

 

120. “자연으로의 회귀”

자연스럽다는 것은 감히 자연처럼 비도덕적인 존재가 되려 한다는 뜻이다.

여가시간이 있고, 남녀 간의 사랑은 일종의 유희이며, 사람들은 서로를 즐겁게하고, 쾌락과 육체적 강점이 중요하며, 호기심과 대담을 추구하는 것,

병적이고 성직자 같은 태도를 혐오하며,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것에서 기쁨을 누리고, 습득 행위 자체가 지겨운 그런 지식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원칙과 “의무”가 아니라, 본능에 따라 유익하고 자비로운 도덕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모든 권리를 정복으로, 권리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를 정치로 이해하는 것,

모든 위대한 것을 항상 어떤 범죄를 수반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도덕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는 것,

자연을 순수하고 이성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악마적이고 바보스런 것”으로 보는 것,

엄격한 실증주의에 따라 예술로부터 아름답고 공허한 거짓말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

본능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느끼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인간의 무조건적인 자연성과 부도덕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루소가 원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것들이며, 17세기 말의 취향인 것이다.

 

121.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위대한 시기들은 항상 타락의 시기였다. 반면에 문명의 시기는 항상 지적이고 대담한 천성의 소유자들이 강제적으로 길들여진 시기였다. 어쩌면 문명의 목표와 문화의 목표를 서로 반대일지도 모른다.

 

122.

쇠퇴의 본능과 인간애의 본능, 문명을 해체하고 쇠퇴를 야기할 수단과 문화, 그리고 방종한 삶과 “무절제”의 원리와 힘에의 의지는 서로 다른 것이며,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123.

“진보”가 일어나면, 그 즉시 강화된 요소가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인간은 더욱 깊고, 더욱 불신하고, 더욱 “비도덕적”이고, 더욱 강하고, 더욱 자신있는 존재가 되었으며, 따라서 “더욱 자연스런”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진보”이다.

 

124. 오직 권력의 문제

죄의식, 처벌, 정의, 정직, 자유, 사랑과 같은 인간이 사물에 투여하는 개념은 사회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제거되어야만 하며, 정당들의 관계,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관계, 고용자들의 단체들 사이의 관계와 같은 정치의 문제들은 오직 권력의 문제로 해석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성”을 향한 전진을 의미한다.

 

125. 사회주의

경박하고 뇌를 갖지 않은 자들의 폭정, 다시 말해 피상적이고 시기하고 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을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사회주의 체제는, “현대 사상들”로 인한 논리적인 결론이지만, 이에 따라 결심을 세우는 능력이나 결실을 맺는 능력은 약화된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절망적인 문제인 이유이다. 사회주의의 가르침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려는 의지”가 엉성하게 숨겨져 있다. 유산자들의 “사람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욕망해야 한다.”는 믿음은, 모든 본능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건전한 본능이다. 이것은 발달의 도덕이며, 성장 자체를 삶으로 여기는 생명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늘 유산자들이 아주 많을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한 차례 질병의 공격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주의 안에는 생명이 스스로를 부정하며 뿌리를 자른다는 점을 보여줄 실험이 몇 차례 행해지기를 바란다. 사회주의자들 때문에 앞으로 유럽의 많은 곳에서 폭력적인 투쟁과 타락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실험이 생명의 엄청난 손실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이로 인한 “이 땅 위의 평화”와 민주적인 무리 동물의 성격이 약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현상은, 사회주의를 통한 긍정적인 성취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는 유럽인들에게 지성을 갖추고 교활함과 경계심을 더 많이 품을 것을, 남자답고 호전적인 특징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막고 있다. 사회주의는 유럽을 한동안 ‘활기 상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127.

유럽의 군사적 전개와 무정부적 상태에 따라 개인적 능력과 남자다운 능력, 육체적 능력이 가치를 회복하고 있으며, 가치 평가의 기준이 보다 육체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고, 식생활은 더욱 많은 육류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야만성이 긍정되고 야수성이 긍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멋진 인간이 다시 가능해지고 있다.

 

128.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

넓은 마음과 강한 의지를 획득하고 지키는 사람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기회를 누리고 있다. 현대 유럽 사회에서 인간의 유연성은 엄청나게 더 커졌고, 쉽게 배우고, 언제든 적응을 잘 하는 것이 원칙이 되었고, 보다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갖춘 군집 동물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129. 정신적 계몽

정신적 계몽은 인간들의 내면에 무리 본능을 발달시키는 수단이다. 중국의 공자, 로마 황제, 나폴레옹,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은 이를 이용하고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인간을 보다 작게, 그리고 온순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추구되고 있다,

 

134. 위대한 정오의 시대이자 계몽의 시대. 니체적 염세주의

1) 문명과 인간의 향상 사이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2) 도덕적 가치 평가는 힘에의 의지에 대한 비방의 기술이다.

3) 문화적 관점에서 군중에게 피해를 안기며 어떤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곧 모든 성장의 조건들이다.

4) 고대 세계의 귀족주의적인 가치들과 비교했을 때, 도덕적인 기독교 가치들은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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