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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철학자들: '조커'를 말하다

아포리아

 

참가자 : 나(사회), 칸트, 막스, 니체

때, 곳 : 2020년 4월, [수유너머104] 2층 세미나실

 

*

조커_호아킨 피닉스_.jpg

칸트 : 니들은 이런 영화가 재미있냐? 한심하군.

막스 : 참 형님도. 꼰대같은 소리 하시네요. 이런 걸 리얼리즘 영화라고 하는거예요.

나    : 글쎄요. 리얼리즘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조커는 슈퍼히어로 영화 캐릭터라서 좀 애매하지 않을까요.

니체 : 내가 쓴 '선악의 저편'이나 '도덕의 계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봅니다.

칸트 : 넌 피아노 좀 치더니 이젠 영화에도 관심을 갖냐?

니체 : 그럼요. 영화는 예술이고, 우리 삶도 예술이 되어야 하니까요.

막스 : 부럽다. 난 요새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책만 쓰는데… 팔자 좋네.

니체 : 막스 형님은 다 좋은데 그게 문제예요. 옛날엔 시도 쓰시고 하시더니... 나이 들수록 책도 좋지만 인생과 인간에 대해 좀더 폭넓은 관심을 가져보세요.

막스 : 아주 설교를 하는군. 넌 그래서 살로메한테 차이고 그 꼴로 사냐?

니체 : 우이씨. 아픈 데를 막 찌르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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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그만들 싸우시고, 영화 얘기나 좀 해보죠. 일단 아서 플렉이라는 주인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에게 공감하시나요?

칸트 : 내가 무슨 얘기할지 니들도 이미 알겠지. 아서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짓이야.  도덕은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니 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데, 아서는 그걸 헌신짝처럼 차버린거야.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이야.          

막스 : 형님,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해 박수를 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중요한 건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해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형님이 얘기하는 그 잘난 도덕을 왜 그가 지키지 못하는 됐는지 말입니다.

니체 : 그 부분에선 막스 형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전 무엇보다 주인공을 포함해 한 개인에 대해 선한 사람이니 악한 사람이니, 단정적으로 얘기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영화에서 아서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고, 그의 여러 행동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요.  그의 살인행각만 보고 그가 악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이전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악인이었지만…

나    : 맞아요. 그래서 이번 조커는 악인의 탄생 기원을 다뤘는데 그게 논란을 불러 일으킨거죠.

막스 : 사실 감독은 리얼리즘 논쟁을 막기 위해 애를 쓴 것 같아요. 특히 영화 마지막에 아서가 의사에게 한 독백은 이 모든 것이 다 아서의 망상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대사를 살짝 흘리는데, 이는 현실과 환상을 뒤섞음으로써 폭력의 배경이 불평등으로 직진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한 것 같아요. 물론 일부러 논쟁을 유도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고담시에 만연된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아서에게서 일정 부분 연민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이 영화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리얼리즘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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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 지금 리얼리즘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니들이 아서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잖아.

막스·니체 : .....  지금 리얼리즘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니들이 아서에 대한 평가를 물어봤잖아.

칸트 : 아서의 불우한 성장과정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이 그의 행동을 합리화시켜줄 수는 없어. 물론 인간은 악과 선, 본능과 이성 등 양면성을 지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그러나 인간은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도덕법칙을 준수할 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해. 그게 바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위'의 세계이지. 이 세계가 사실은 자연의 인과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보다 더 중요한 실천이성의 세계인 거야.

막스 : 형님께서는 도덕을 인간이성이 부여했다는 이유로 절대시하고 있는것 같은데, 도덕이야말로 시대의 산물 아닌가요. 게다가 무엇보다도 도덕은 가진 자들이 착취의 구조를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죠. 아서의 살인이 결코 올바른 행동은 아니지만, 그가 지켜야했던 도덕은 사회가 일방적으로 그에게 강요한 가치관이자 행동체계예요. 아서는 결국 그같은 환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니체 : 도덕적 가치평가는 해석에 불과해요. 그 해석은 특정한 정신적 수준에 대한 징후이구요. 형님께서 옹호하시는 개인의 도덕은 일종의 양심의 가책인데 저는 그것이 저지된 인간본능이 내면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가의 폭력과 억압이 애초에 양심의 가책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구요. 그러면서 그 가책은 자기희생, 이웃사랑, 자기부정, 이타주의와 같은 비이기적 가치들을 정형화했어요. 한마디로 그건 인류의 심각한 병입니다.

칸트 : 어처구니가 없군. 그럼 넌 아서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는거냐.

니체 : 제 얘기를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안되죠. 일부 성미 급한 분들은 조커가 저의 화신이라나 뭐라나 그런 과격한 해석을 하시던데. 그건 오해예요. 전 사람들에게 학대받고 억눌리며 살아온 아서가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부분적으로 강자의 도덕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가 벌이는 살인 행각에 동조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아서에게 분출된 무차별적 폭력 행위는 원한에서 비롯된 약자적 태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서가 다른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그 모든 것을 거부하게 된 것에서 주권적 개인으로의 전환을 이룬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아서는 코미디쇼 진행자인 머레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무엇이 웃긴 농담인지 재미없는 농담인지 마음대로 정해버리지". 아서는 자신과는 무관하게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모든 가치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겁니다.

칸트 : 니가 말하는 식이라면 세상에 보편적 윤리는 어디로 사라진거냐. 보편성 없는 세상은 혼돈일 뿐이야.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이 명제야 말로 아서가 새겨들어야 하는 실천적 진리이지. 소외되고 학대받은 아서가 보편타당성에 맞춘 자신의 의지를 적용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거야.

막스 : 형님이 말씀하신 보편적 윤리는 결국 영화에서 볼 때는 고담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거부하는게 옳죠.

칸트 : 너희들은 가끔 보면 나를 관념론의 원흉으로 보면서 반민중적인 사람으로 취급하던데, 인간을 항상 목적으로 대우하고 수단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게 나의 일관된 주장인건 왜 무시하는 거냐. 나를 사회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 이른바 윤리적 사회주의라는거지. 그렇다고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줘. 그건 생각해본적도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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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너무 멀리 간듯한데, 다시 영화로 돌아오죠. 고담시의 시민들이 광대 마스크를 쓰고 벌이는 '킬 더 리치'(Kill the Rich) 시위는 분명히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인데 비해, 아서의 경우는 좀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 분노가 일차적일 것 같은데. 어찌됐든 개인 차원의 폭력과 집단적인 폭력사태가 뒤섞이게 됩니다. 이 부분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칸트 : 아서의 경우와 시민들의 시위가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지만, 난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해. 무엇이 동일하냐구? 이 세상에서 선한 것은 선의지 뿐이지. 그런데 선의지가 없다는 데서 둘은 같고. 또 폭력적 행동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종착지도 같아.

나    : 그렇다면 혁명의 대의도 인정하지 않는 건가요?

칸트 : 난 기본적으로 테러리즘을 수반하는 정치적 혁명은 옳지 않다고 봐. 내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인정하는 것은 사상적인 관점에서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야말로 혁명이지. 난 폭력 없는 인류의 평화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어. 그리고 그건 분명코 가능하다고 믿고 있지.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나의 책 '영구 평화론'을 읽어보도록.

막스 : 난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착취구조야말로 숨겨진 폭력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래서 가진 자는 늘 관대하고, 빼앗긴 자는 악다구니를 쓰고, 폭력적이 되는거죠. 은폐된 폭력에 분연히 들고 일어설 때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폭력은 저항적 폭력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겠죠.

니체 : 전 인류를 평균화시키고 하강과 몰락으로 가져가는 무리적 행동에 대해 반대합니다. 민중의 원한본능으로 인류가 도약의 기회를 놓치고 얼마나 퇴락하고 열등해졌는지 잘 아시잖아요. 프랑스혁명도 러시아혁명도 마찬가지예요. 전 아서가 자기입법자가 됐지만, 무리에 휩쓸려 버린다면 결국 노예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막스 : 넌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사람들이 너를 비판하고 니 책을 오독하고 심지어 나쁜 일에 이용당하기도 하는거 아니냐. 자중해라.

니체 : 그러니 형님이라도 저를 좀 이해해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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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그 얘긴 나중에 둘이 하시고. 시간 됐으니 대충 정리하시죠.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한마디씩 해주시죠.

칸트 : 악의 탄생 기원을 밝힌다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프리퀄적 성격과 리얼리즘을 고의로 혼동하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폭력을 미화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영화심의원회는 요새 뭐하는거냐. 상영금지하거나 최소한 경고를 줘야지.

막스 :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와 '코미디의 왕'(1983)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1936)가 있죠. 그런데 그 영화들은 모두 다 자본주의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일관된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니체 : 그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 사회적 맥락보다는 주인공들이 자신을 둘러싼 다수적이고 무리적인 가치체계를 거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나    : 아무쪼록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영화보고 토론회까지 참석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잘 실천해주세요.

막스 : 거리두기는 거리의 파토스를 주장하는 니체가 젤 잘하겠지 아마도 ㅎ.

니체 : 형님 거리의 파토스는 그런 뜻이 아니예요 ㅠㅠ

칸트 : 사회자도 한마디 하지.

나    : 아 저요? 제가 뭐 할말이 있나요. 형님들 다 존경합니다. 특히 니체 형님 오늘 선전하셨어요. 사실 오늘 토론회는 형님을 위한 자리였어요.

막스 : 너 요새 한동안 니체하고만 어울리더니 ㅠㅠ … 나중에 따로 시간 좀 내라 둘이 함 보자.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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