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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 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제1~10)

 

[도덕의 계보] 전체

[도덕의 계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한 나의 결정적인 3가지 준비이다.

[1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 : 그리스도교의 심리학_원한정신

- 가치전도 :: 그리스도교는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정신에서가 아니라, 원한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 핵심주제 :: “강자_좋음Good은 어떻게 약자_선Good이 되었나? 어떻게 가치전도가 일어났는가?”

[2논문] ‘죄, 양심의 가책 및 기타’ : 양심의 심리학_양심의 가책

- 가치전도 :: 양심이란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인간 내부의 신의 음성이 아이라,

                     외부를 향해 폭발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자기를 향해 반전하는 잔인함의 본능이다.

- 핵심주제 :: “죄의식, 양심의 가책은 도대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는가?”

[3논문]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성직자의 심리학_금욕주의

- 가치전도 :: 금욕주의(성직자의 이상)의 거대한 힘은, 보통 믿고 있는 것처럼 신의 사제들이 배후에서 활동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금욕주의가 지금까지 유일한 사상이어서 금욕주의에 대항하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 핵심주제 :: “금욕주의는 예술, 철학, 종교, 과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간에게 금욕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의 계보] 3논문

① 1논문-2논문-3논문 관계

[1논문] 그리스도교의 심리학에서 ‘원한의 정신’을 / [2논문] 양심의 심리학에서 ‘양심의 가책’을 거쳐 / [3논문] 성직자의 심리학에서는 ‘금욕주의’에 도달했다. 먼저, 금욕주의는 원한의 정신양심의 가책의 복합체이자, 이것들이 실존할 수 있는 방식들이다. 특히, 금욕주의는 원한의 정신과 양심의 가책 배후에 있던 하나의 충동을 드러내는데, 바로 허무주의이다. 결국, 금욕주의의 최종형태는 허무주의이며, 금욕주의에 표현된 의지들은 ‘허무를 향한 의지’이다.

② 허무주의(니힐리즘) & 금욕주의

*허무주의 :: 허무를 향한 의지, 삶에 대한 적대 & 금욕주의 :: 금욕에 대한 의지, 생명의 본능인 욕망에 대한 억압

- 니힐리즘 :: “삶은 허무하고 고통스럽다”는 전제 속에서 ‘삶에 적대하고 생성을 부정하는 의지’

                     인간의 유한성으로부터 실존의 허무함을 느끼고, 생성(소멸)을 부정하고 영원성을 추구하는 태도

- 금욕주의 :: “욕망에서 고통이 생긴다”는 전제 속에서 ‘생명의 본능인 욕망을 적대하고 억압하는 의지’

                     욕망에 대한 억압(적대). 삶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평가. 힘의 원천(욕망)을 봉쇄하기 위한 힘의 사용

 

[0] 금욕주의는 허무주의로부터 힘을 얻는다 :: 허무주의, ‘허무에 대한 의지’ (#1)

*3논문의 서술구조 > 3논문은 하나의 잠언(#1)이것에 대한 주석(#2~28)’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

금욕주의(#1) : “인간에게 금욕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금욕주의에 표현된 의지의 유형들.

예술가의 경우 (#2~5) : “예술가들에게 금욕주의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거나,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② 철학자의 경우 (#6~10) : “철학자들에게 금욕주의는 더 높은 정신성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찾는 후각과 본능 같은 것이다.” ③ 성직자의 경우 (#17~22) : “성직자들에게 금욕주의는 본래의 믿음이나, 권력의 최상의 도구 혹은 권력 자체를 지향하는 최고의 면허이다.” ④ 소위 금욕주의의 적대자들 :: 과학자들(#23, 24, 25), 역사학자들(#26), 무신론자들(#27) : “금욕주의는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힘도 금욕주의의 작업을 위한 도구로 믿는다.”

금욕주의와 허무주의 (#28)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금욕주의가 그토록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예술가들, 철학자들, 성직자들) 그 안에는 인간 의지의 근본사실, 즉 무에 대한 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목표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의지는 아무것도 의지(의욕)하지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das Nicht)조차=라도 의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그토록 의지의 동물이다! 도덕의 계보학은 이러한 인간의 의지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1)······> ① 금욕주의의 최종형태는 허무주의다. 금욕주의는 어떻게 허무를 의지하게 되었나? 그것은 금욕주의가 공허에 대한 공포’(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를 대신하는 허무에 대한 의지’(무를 의욕하는 것)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이다. ② 하나의 의지로서의 허무주의. 우리는 허무주의에서 인간적 본질인 ‘힘에의 의지’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허무주의에서 의지 자체가 구출되었다. 허무주의는 삶에 대한 적대이고 삶의 기본전제에 대한 저항이지만, 그 때조차 하나의 의지이다.

 

[1] 예술가의 경우 :: ‘예술가들에게 금욕주의는······’ (#2~5)

“예술가들에게 금욕주의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거나,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예술가에게 금욕주의는 (예술가가 예술적 관능을 부정하고, 현실적 가치를 추구할 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거나(예술의 종속화(가치하락), 예술가는 도덕ㆍ철학ㆍ종교의 시종이 된다),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예술의 독립화(가치상승), 예술가는 신탁을 제공하는 자, 성직자 이상의 존재.....).

····> 예술가가 예술적 관능(예술적 욕망ㆍ허구)을 부정하고, 현실적 가치(도덕ㆍ철학ㆍ종교의 가치)를 추구할 때,

       예술가는 현실적 가치에 종속적거나 독립적이거나, 어느쪽이든 자기가치를 잃게 된다.

 

3-2. 바그너 말년의 ‘순결과 관능의 대립’ > 바그너는 만년에 금욕주의적 의미에서 순결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의 전환을 보인다. 바그너의 가장 쾌활하고 용기있던 시절, <루터의 결혼>에서 순결의 찬미뿐 아니라, 관능에 대한 찬미도 다루어졌고, 순결과 관능은 필연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바그너가 말년에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순결과 관능의 불쾌한 대립이었다.

3-3. 바그너의 파르지팔 - 정신과 관능에 대한 증오, 그리스도교적이며 반계몽주의적 이상으로의 전향 > (*파르지팔 : 바그너 최후의 오페라. 파르지팔은 성배의 기사로 순수하게 어리석은 사람을 상징. 핵심주제는 죄의식과 구원 / 사티로스 드라마 : 고대 그리스의 4부작 연극의 4번째 극. 비극적 3부작에 이어, 반수신 사티로스가 등장하면서 디오니소스 찬가를 부르는 희극) ① (니체 :: 파르지팔의 반금욕주의적 가능성) 바그너의 파르지팔은 종막극이나 사티로스드라마처럼 명랑하게 취급되었으며, 이것으로 바그너는 금욕주의의 반(反)자연 속에 있는 가장 조야한 형식에 대해 작별을 고하고자 했다. 이는 자기 자신조차도 비웃을 수 있는 바그너의 은밀한 우월감의 웃음이며, 그가 최후에 도달한 최고의 예술가의 자유, 예술가의 초연성의 승리이다. ② (바그너 :: 파르지팔의 금욕주의] 파르지팔은 인식과 정신과 관능에 대한 광적인 증오이며, 감성과 정신에 대한 저주이며, 그리스도교적이며 병적인 반(反)계몽주의적 이상으로의 개종과 전향이다. 이는 최고의 정신화ㆍ관능화를 추구해왔던 바그너 예술을 부정하고 말살하는 것이다.

(#2, #3) ······> 바그너가 용기있고 쾌활했던 시절 <루터의 결혼>은 순결과 관능을 동시에 찬미하는 것이었지만, 바그너가 만년 <파르지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순결과 관능의 불쾌한 대립이었다. 바그너는 포이어바흐의 ‘건강한 관능’을 부정하고, 전향ㆍ개종ㆍ부정ㆍ기독교ㆍ중세를 설교하고 작품의 테마는 구원이 되었다.

 

3-4. 완전무결한 예술가의 욕망에 사로잡힌 바그너 > 어떤 예술가를 그의 작품에서 분리시키고, 예술가 자신을 그의 작품처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이다. 파르지팔의 작가나 창작자(바그너)는 중세 영혼의 명암 속으로 침잠해가는 것을, 정신의 모든 높이나 엄격함이나 훈련에서 적대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일종의 지적 도착을 면할 수 없다. 완전무결한 예술가란 실재적인 것이나 현실적인 것과는 동떨어진 존재이며, 그것이 되고자 시도하는 것은 예술가의 전형적인 불완전한 욕망이다. 늙어버린 바그너도 이 같은 불완전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3-5. 금욕주의적 이상과 예술가 : 바그너의 금욕주의 > ① (바그너의 금욕주의) 예술가에게 금욕주의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예술가들의 가치평가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지 못했는데, 예술가들은 도덕철학종교의 시종이었으며 철학적 권위와 보호벽이 필요했다. 예술가 바그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선행자ㆍ보호벽으로 삼았다. “예술가 바그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선행자ㆍ보호벽으로 삼았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후원 없이, 바그너의 금욕주의에 대한 용기는 생각할 수 없다!” ② (쇼펜하우어 철학의 후원) 쇼펜하우어의 이론과 혁신으로 음악의 가치상승이 이루어졌는데, 음악이란 다른 예술과 다른 위치에 있으며 독립적인 예술 자체가 된다. 쇼펜하우어 철학으로 음악가의 가치상승도 이루어졌는데, 음악가는 신탁을 전하는 자, 성직자, 성직자 이상의 존재, 사물 그 자체를 부는 일종의 파이프, 저편 세계의 전화기가 되었고, 그 후 신의 복화술사인 음악가는 형이상학과 금욕주의적 이상에 대해 말했다.

(#4, #5)······> 바그너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바그너가 ‘건강한 관능’을 부정하고 ‘금욕주의’로 변한 이유는, 바그너가 ‘완전무결한 예술가의 욕망(예술가의 전형)’에 사로잡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현실화되려는 순간, 그는 예술적 관능을 부정하고 현실적 가치를 추구하는 금욕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런 예술가들은 어느 시대나 어떤 도덕ㆍ어떤 철학ㆍ어떤 종교의 시종이었다. 예술가들에게는 항상 보호벽이나 후원자나 이미 세워진 권위가 필요하다. 바그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선행자나 보호벽으로 삼았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으로 음악의 가치상승이 이루어져, 음악가는 신탁을 전하는 자ㆍ저편 세계의 전화기가 되었다.

 

[2] 철학자의 경우 :: ‘철학자에게 금욕주의는······’ (#6~10)

“철학자들에게 금욕주의는 더 높은 정신성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찾는 후각과 본능 같은 것이다.”

······> 철학자라는 동물도 최대한의 힘의 감정에 이르는 최선의 좋은 조건들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철학자에게 금욕주의(청빈, 겸손, 순결)는 철학에 필요한 유리한 조건들을 추구하려는 본능이다.

 

3-6. 쇼펜하우어 :: 미적 관조효과 – 성적인 관심을 억제하고, 의지를 진정시키는 > (쇼펜하우어_미적 관조효과 <······> 스탕달_미에 의한 의지의 자극) 쇼펜하우어는 미학적 문제에 관한 칸트의 견해를 인용했는데, 칸트는 “미란 무관심하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스탕달은 ‘미를 행복의 약속’이라고 정의하는데, 여기서 칸트의 무관심은 거부되고 삭제되었다. 쇼펜하우어는 ‘무관심하게’라는 용어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석하여, 미적 관조효과에 대해 말했다. 그는 미적 관조야말로 성적인 관심의 상태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며, ‘의지’에서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미적 상태의 장점이자 효용이라고 찬양했다(의지를 진정시키는 미의 효과). (이에 반해) 스탕달은 “미는 행복을 약속한다”는 미의 또다른 효과를 강조하는데, 미에 의한 의지의(‘관심의’) 자극이야말로 그에게 사실로 생각된다. 쇼펜하우어에게도 미는 ‘관심’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나온 것이다. 한 철학자가 금욕주의적 이상을 신봉한다면, 그 철학자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6)······> 먼저, 쇼펜하우어는 미적 관조=금욕주의를 통해 의지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칸트의 ‘미적 관조’를 성적인 관심을 억제하고 의지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해석하여, 금욕적 가치를 표명했다. “의지에서 해방되는 것은 오직 미적 표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적 관조의 순간이야말로 보잘 것 없는 의지의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3-7. 쇼펜하우어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철학자에게 - 높은 정신성을 위한 최적조건과 자신만의 생존을 의미 > ① [쇼펜하우어 개인적인 경우] 쇼펜하우어는 성욕을 개인적인 적으로 취급했으며, 이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자신의 적이 없었다면, 여성이나 관능이나 생존하고 거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는 병들고 염세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② [철학자 전형적인 경우] 철학자들은 관능에 대한 과민함과 악감정이 있으며, 금욕주의적 이상 전체에 대한 선입견과 애착이 있다. 철학자라는 동물도 최선의 좋은 조건들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며, 최적에 이르는 길을 막는 온갖 종류의 방해자나 장애물을 기피한다. 이와 같이 해서 철학자는 결혼을 회피하는데, 온갖 부자유를 부정하고 어딘가의 황야로 가버린다. 금욕주의란 철학자에게 최고의 정신성을 추구할 수 있는 최적조건이며, 따라서 그는 ‘생존’을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생존을,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긍정한다. “세계가 망할지언정, 철학은 살고, 철학자도 살고, 나도 살아남으리라!”는 불경스러운 소망.

3-8. 철학(자) & 금욕주의 :: 금욕주의적 청빈, 겸손, 순결은 철학자에게 - 지배적인 정신성을 위한 조건 > ① 금욕주의적 이상의 3가지 수식어인 청빈, 겸손, 순결은 그들의 최선의 생존과 가장 아름다운 생산성을 이루는 가장 고유하고 자연스러운 조건들이다. 이 경우 그들의 지배적인 정신성은 (겸손에 대해) 억제할 길이 없는 민감한 자부심이나 (순결에 대해) 제멋대로의 관능을 제어했어야 했고, 또한 그들의 정신성은 (청빈에 대해) 사치품이나 특산물을 좋아하는 성향에 대해서 낭비적인 자유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황야’를 향하는 의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② 철학자는 3가지 현란하고 요란한 것, 즉 명예제후여성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인정받게 된다. 철학자의 겸손에 관한 한, 어둠을 참아내듯이 어떤 종류의 종속이나 위장도 참아낸다. 철학자들의 소유하는 자는 소유당한다”는 표어는 높은 정신성이 이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며, 철학자들은 시간ㆍ힘ㆍ사랑ㆍ관심 등 모든 것을 높은 정신성을 위해서만 모은다. 철학자들의 순결은 운동선수가 여자를 멀리하는 것처럼, 어떤 금욕주의적 가책이나 관능에 대한 증오에서 오는 순결같은 것은 전혀 없다.

(#7, #8)······> 다음, 철학자의 금욕주의는 최고의 정신성을 이루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찾는 본능적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철학자들에게는 특유의 관능에 대한 과민함/악감정과 금욕주의에 대한 편견/애착이 있다. “철학자라는 동물도 최대한의 힘의 감정에 이르는 최선의 좋은 조건들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철학자들은 ‘예민한 후각’으로 결혼이나 자식 같은 방해물들을 미리 알아차리고 피하거나, ‘부자유를 거부하고 황야로 떠나는 결단’을 택한다. 철학자들의 금욕주의에는 청빈ㆍ겸손ㆍ순결이라는 3개의 거창한 수식어가 있다. 이것은 최선의 생존과 생산성을 위한 조건들이지, 덕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3-9. 철학(자) & 금욕주의 :: 금욕주의적 이상과 철학의 유대 > 어떤 금욕주의, 최선의 의지가 품은 엄격하고 쾌활한 금욕은 높은 정신성을 이루기 위한 유리한 조건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욕주의적 이상과 철학 사이의 유대는 더 밀접하고 견고한데, 금욕주의적 이상의 걸음마 끈을 붙잡고서야 철학은 대체로 자신의 최초의 발걸음을 지상에 내딛는 법을 배웠다. 모든 좋은 것은 전에는 나쁜 것들이었는데, 하나하나의 원죄에서 어떤 유전적인 덕이 생겨났다. 결혼제도, 동정적인 감정들, 가혹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법에 대한 복종 등. 이러한 변화는 무수히 많은 고문의 고통이 필요했으며,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 감정보다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은 없다. (‘세계사’에 선행하는 ‘풍습의 윤리’에서는) 고통이 덕으로, 잔인성이 덕으로, 꾸밈이 덕으로, 복수가 덕으로, 이성의 부정이 덕으로 통용되었고, 이에 반해 평안이 위험으로, 지식욕이 위험으로, 평화가 위험으로, 동정이 위험으로, 동정받는 것이 모욕으로, 노동이 모욕으로, 광기가 신성으로, 변화가 부도덕이고 불행 자체를 품고 있는 것으로 통용되었다.

3-10. 철학(자) & 금욕주의 :: 금욕주의적 이상은 철학자의 출현형식, 실존전제 > 종교적 인간(성직자, 마술사, 예언가)은 자신을 가장하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금욕주의적 이상은 철학자에게 그 출현의 형식으로, 실존의 전제로 도움이 되었다. 그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 금욕주의적 이상을 표명해야만 했고 그것을 믿어야만 했다. 철학자들은 특유한 세계 부정적인, 삶을 적대시하는, 감각을 믿지 않고 관능에서 벗어난 초탈의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것이 철학자들의 태도 자체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은 철학이 일반적으로 발생하고 유지되어왔던 긴급한 조건들의 결과이다. 오랫동안 철학은 금욕주의의 외투가 아니라면, 지상에 전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금욕주의적 성직자는 불쾌하고 어두운 애벌레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형태에서만 철학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이제는 지상에 ‘철학자’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9, #10)······> 한편, 금욕주의는 철학의 출현형식이며 존재조건이다. 철학은 금욕주의의 ‘걸음마끈’을 잡고서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웠다. 철학자는 사유의 양식을 금단의 땅에서 찾는 자로서, 철학자가 지니고 있는 충동-덕-이성은 오랫동안 도덕과 양심의 요구에 역행했다. 철학자들은 ‘인과성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뒤에 숨은 목적이나 윤리라는 거미’와 싸우려 들었으며, 영혼조차 해부하려 들었고, 병이나 악덕에서조차 뭔가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려 들었으며, 법이라는 금지에 대해서도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철학자와 같은 ‘명상적 인간’은 자신들에 대한 경멸과 불신을 물리치고 외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잔인성과 독창적인 자기 거세’라는 금욕주의의 강력한 수단을 썼다. 철학자들은 세계 부정적이고 삶을 적대시하고 감각을 믿지 않고 관능에서 벗어난 초탈의 태도를 견지해 왔는데, 이것은 철학이 발생하고 유지되어왔던 조건들의 결과이다. ‘철학적 정신’은 살아남기 위해 이처럼 ‘금욕주의 외투’를 걸치고 ‘종교적 인간’으로 가장해야 했다. 금욕주의의 고치 안에서 ‘불쾌하고 어두운 애벌레’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서는 철학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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