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인간의 저 본능을 모두 거꾸로 돌려 인간 자신을 향하게 하는 일을 해냈다. 적의, 잔인함과 박해, 습격이나 변혁이나 파괴에 대한 쾌감 - 그러한 본능을 소유한 자에게서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 이것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 <도덕의 계보>, 제2논문 16절
니체는 양심의 가책을, "야만, 전쟁, 방랑, 모험" 등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 외부를 향해 발산되지 못하고 내부로 향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하나의 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니체에 따르면 양심의 가책은 흔히 생각하듯이 위법 행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계약 관계로부터 만들어진, 조상에서 신으로 이어지는 '채무감정'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죄(Schuld)라는 저 도덕의 주요한 개념이 부채(Schulden)라는 극히 물질적인 개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원초적인 채권-채무자의 계약 관계에서는 '주체에 대한 미신'과 더불어 '고통을 통한 보상'이라는 사상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가치를 재고 평가하고 측정하는 존재"인 인간은, "모든 것은 대가로 지불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고통'까지도 부채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이 고통을, 잔인함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이것은 하나의 냉혹한 명제이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무력한 자에게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쾌감이기도 하며, "악을 저지르는 즐거움을 위해 악을 저지른다"는 육욕적 쾌락이기도 하고 폭행을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채권자는 형벌로써 잔인함을 통해, 채무자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자신에 힘을 의식한다. '비극적 연민', '십자가에 대한 향수', 무아, 자기 부정, 자기희생과 같은 모순된 개념들을 수행하는 '금욕주의적 이상' 또한 마찬가지로 양심의 세계속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번역되어 드러나는" 그러한 잔인함에 대한 쾌감인 것이다.
이렇게 채권-채무자의 계약관계는,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양심의 가책이 "가장 무섭고 가장 숭고한 정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바로 채권-채무자의 관계가, 채무 감정이 조상을 넘어 신에 대해 나타나는 경우이다. 민족의 번영과 존속은, 조상의 희생과 공헌에 빚지고 있다. 이러한 채무 감정은 민족의 승리가 커질수록 비례하여 커지게 된다. 결국 "가장 강력한 종족"의 조상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존재로 변형된다. 신에 대한 채무 감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신에 대한 부채는 조상에게 하듯이, 복종과 예배를 통해 상환될 수 없다. 신 앞에 서게 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의 자연적인 본능을 "좀더 자연적인 출구"를 통해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본능은 "사유, 추리, 인과의 결합, 계산, 의식"으로 대체되었으며,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괴로워하게 되었다.
"그는 비이기적이라고 불리는 그 행위만을 할 수 있을 뿐인 존재, 그리고 사심 없는 사유 양식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면서 사는 존재, 즉 신과 자신을 비교한다. 이 밝은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그에게는 자신의 본질이 지극히 흐리고, 이상하게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징벌의 공정함으로 그의 환상에 떠다니는 한, 자신의 본질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3장 132절
"인간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자연적 성향을 '나쁜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이 성향은 인간에게서 마침내 양심의 가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정반대의 시도 자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할 만큼 강한 사람이 있는가?"
[도덕의 계보] 2논문 '죄, 양심의 가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죄의식, 양심의 가책은 도대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는가?"입니다. 지난 세미나에서 독해에 집중하다가 큰 맥락을 다소 소홀하게 다룬 면이 없지 않습니다. 웅빈샘의 후기 '못다한 이야기'가 이 지점을 말하고 있어 반가운 일입니다. ^ㅠ^
[1] 형벌의 유래(죄와 벌)의 유래에 대하여 :: 채권자/채무자의 계약관계 (#2-3 ~ #2-9)
*주제 : 형벌(죄와 벌)은 어디어세 유래했는가?
(#4) 죄와 벌에 대한 현대적 통념은 '범죄자를 자유의지를 지닌 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책임추궁하는 것을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고대인류에게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니체에 따르면, ‘죄Schuld'라는 도덕의 개념은 부채Schulden라는 물질적 개념에서 유래되었으며, ‘형벌'은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피해자의 분노(보복)에서 유래했다. 즉, 채무자의 부채가 '죄'가 되었고, 채권자의 보복이 '벌'이 되었다. '죄/벌'이라는 도덕의 개념은 '채권/채무'라는 물질적 개념에서 유래했으며, '피해자/가해자'라는 도덕적 주체는 '채권자/채무자'라는 물질적 주체에서 유래했다. (*피해자) 손해와 (*가해자) 고통은 등가라는 관념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계약관계에서 힘을 얻었다!
(#5) 채권자-채무자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에게 약속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냉혹함, 잔인함, 고통이 필요했고, 채무자는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 아내, 자유, 생명까지 저당잡힌다. 채권자/채무자 배상논리에서 채권자 손해와 채무자 고통의 등가는 채권자가 손해에 대해 직접적 이익(금전.토지.소유물)을 받는 대신, 쾌감(폭행)을 누릴 권한이 주어졌다. 채무자에게 형벌을 가함으로써, 채권자는 일종의 지배권에 참여한다.
(#6) ‘죄, 양심, 의무, 의무의 신성함’ 같은 도덕개념의 발생지는 채무법이다. 채무법-도덕개념의 발단은 철저히 오랫동안 피와 고문으로 물들었다. ...... 채무법-도덕개념의 발생지에서 ‘죄와 고통’이라는 무섭고 풀어버릴 수 없는 관념의 결합이 처음으로 고정되었다. 고통은 어느 정도까지 부채를 보상할 수 있는 것일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최고로 만족을 주는 정도까지이며, 피해자의 손해(불쾌감)를 반대의 쾌감으로 바꾸는 정도까지이다. ......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주며,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2] 양심의 가책(죄의식)의 기원에 대하여 :: 자유본능의 내면화(논리적 과정), 국가의 폭력(실제적 과정) (#2-14 ~ #2-18)
*주제 : '양심의 가책' 내지 '죄의식'은 어디서 기원한 것인가?
(#14, 15 :: 양심의 가책(죄의식)은 형벌에서 나온게 아니다!) 죄의식(양심의 가책)에 대한 현대적 통념은 '형벌에서 죄의식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형벌은 범죄자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형벌은 양심의 가책이나 회한이라는 정신적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형벌이 범죄자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오늘날은 물론 선사시대에도 전혀 맞지 않다고 한다. 형벌은 범죄자에게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했을 걸 = 나의 잘못이다!"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생각지 않은 나쁜 일이 벌어졌구나 = 재수없이 잘못 걸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대체로 형벌의 효과는 공포감과 신중함이 커지는 것이다. 선사시대 역시 형벌은 죄의식을 발전시키기 보다 오히려 억제했는데, 채무를 지불한 자, 형벌의 폭력을 당한자가 별도로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이런 토양에서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가장 섬뜩하고 흥미로운 식물"은 자라날 수가 없다.
(#16 :: 양심의 가책은 자유본능의 내면화에서!) 양심의 가책이란 '자기 스스로를 공격하고 학대하는 감정'이며, '인간의 인간 자신에 대한 고통'을 말한다. 니체에 따르면, 양심은 가책은 반동물의 자유본능이 국가폭력으로 인해 인간화되면서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안으로 내면화되면서 생긴다. "양심의 가책은 인간이 경험했던 가장 근본적인 변화의 압력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란 반동물인 인간이 '사회와 평화의 구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변화이다. 오래된 동물적 본능은 밖으로 발산되지 않고 안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내면화’이다. ... 오래된 자유의 본능에 대해 국가조직의 방어벽(ex. 형벌)은 거칠고 자유롭게 방황하는 인간의 저 본능을 거꾸로 돌려 인간 자신을 향하게 했다. 적의, 잔인함과 박해, 습격이나 변혁이나 파괴에 대한 쾌감의 본능을 소유한 자에게서 이 모든 것이 스스로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 ...... 이것은 인간이 동물적인 과거를 강제로 떼어놓은 결과이며, 동물의 영혼이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과 반대의 편을 드는 것이다. "
(#17 :: 자유본능의 내면화는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밖으로 향했던 반동물의 자유본능은 어떻게 안으로 향하는 인간의 내면화로 변화되는가? 그것은 국가의 출현, 국가의 폭력을 통해서이다. "양심의 가책의 기원에 관한 가설의 전제. 첫째, 이러한 변화(자유본능의 내면화)는 단절과 비약, 강제에 의한 것이며, 어떤 투쟁도 단한번의 원한도 없었던 불가피한 숙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 가장 오랜된 '국가'(*원국가 Ur-Staat)는 무시무시한 폭정으로 인정사정 없이 으깨버리는 기계장치로 나타나, 반동물은 마침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국가는 아직은 형태를 짓지 못하고 유랑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주저없이 무서운 발톱을 들이댄 금발의 야수무리, 정복자종족, 지배자 종족을 의미한다. 국가가 '계약'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몽상이다! 명령할 수 있는 자, 천성적으로 지배자인 자, 일에서나 몸짓에서나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자, 이런 자에게 계약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양심은 가책은 그들의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과 예술가적 폭력 아래 어마어마한 양의 자유가 억압되어 잠재적인 것이 되면서 생겨났다! 국가의 폭력으로 잠재적인 것이 되어버린 자유의 본능(억눌리고 뒤로 불러나고 내면세계로 유폐되어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만 발산하고 드러내게 되는 자유의 본능), 이것이야말로 양심의 가책의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