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_후기] 선악의 저편 8장 민족과 조국

최현우 2019.12.09 01:23 조회 수 : 81

최현우

제8장에서 니체가 기획하고 있는것은 ‘미래의 유럽인’이다. <선악의 저편>을 미래 철학, 혹은 도래하는 것에 대한 서곡으로 간주하는 니체의 태도를 상기해보았을 때 제8장은 일관된 주제를 가진 일종의 작은 변주곡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니체는 미래의 유럽인은 어떻게 등장한다고 보았을까? 그는 그 근본조건으로 민족주의의 극복을 말한다. 니체가 보기에 민족주의란 겉으로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신을 협소하게 만든다. 달리말해, 하나의 집단을 민족화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착취적인 생명의 기질을 강제로 평준화하는 것이며, 취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가 비스마르크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다가 종국에는 비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스마르크는 명령하는 인간으서 강력한 민족주의를 통해 애국심과 단결력을 이끌어냈지만 끝내 국민들의 영혼을 천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어떤 형태의 유럽인을 전망할까? 민족주의가 해체된 유럽은 결국에는 민주화될 것이다. 그 말은 즉, 풍토적, 지리적인 조건들이 점차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두가지 유형의 인간이 등장하는데, 바로 무리동물적 인간과(이는 민주화에 대해 니체가 일관적으로 비판한 특징이다)과 노마드적 인간이다. 노마드적 인간이란 근면하고 복종적인 무리동물적 인간 사이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매력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민주화의 결과인 초국가적 상황을 이용해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한다. 니체는 흥미롭게도 이들이 전제적 지배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노마드적 인간이 획득한 다양한 기술과 가면은 다른 무리동물적 인간을 지배하고 이끌 수 있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니체는 독일인과 유대인, 프랑스인, 영국인의 민족적 기질을 비교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니체가 독일민족을 그제와 모레가 없는 민족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몇몇 회원들은 이 말이 곧 독일인을 아직까지는 일종의 야만 상태에 머물러있음을 니체가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즉 고정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혼합되어있고, 생성중인 상태인 독일적 상태는 니체가 열거한 유럽 민족들의 특이성을 종합하는 계기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8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고대인의 읽기 방식에 관한 니체의 통찰이었다. 그가 보기에 소리를 내서 읽는 고대인에게 읽기는 스스로에게 그 내용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토론 중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목은 나에게 몸과 정신의 미묘한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이를테면, 눈으로만 글을 읽는 현대적인 읽기는 ‘몸’이 결여된 읽기이다. 텍스트는 몸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정신으로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인인의 방식인 낭독은 스스로의 몸을 이용해(즉 입과 귀를 실천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정신에게 텍스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대인의 읽기는 그렇다면 몸과 정신이 적극적으로 상응하는 활동이 아닌가? 어쩌면 이 대목은 육체과 생명, 혹은 본능을 중요시하는 니체의 태도를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통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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