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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지_문학] 에세이

승환 2019.12.06 16:25 조회 수 : 67

문학편인데, 철학편 에세이를 쓰게 됐네요...

 

어둠의 존재론, 왜 우리는 어둠을 사유해야할까?

고승환

 

1. 어둠의 존재론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어떤 존재자 인근에 펼쳐진 특이성(규정성)의 장으로, 인간이외에도 모든 존재자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갖는다. 이러한 전제 아래 인간인 한에서 생각해볼 때 사회에서 규정해놓은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빛의 세계’라고 한다면 그러한 규정에 속하지 못한 채 혹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어둠의 세계’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어둠의 존재론’에서는 그러한 규정에 속하지 못한 자가 규정된 사회에 속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것(존재자의 존재론)보다는 규정에서 벗어나 어긋난 채로 살아가는 것(존재의 존재론)이 낯선 세계를 불러낼 수 있기 때문에 가치(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사회의 규정으로부터 거절당한 자가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빛의 세계의 존재자들에게 잠시 존재감 있는 특이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인정받은 이후에는 지속하기 어렵다. 사회에 편입되면 당연시 되어 잊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채로 그들의 시선(빛의 세계의 존재자)에서 어긋나 불편하게 존재하는 삶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에 이르더라도 또 다른 어긋난 자들에게 기억되고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의 특이점으로 계속 불려나오는 것이다.

 

 

2. 어둠의 존재론을 모두가 사유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세계)로부터 거절당한 자라면 거절당한 경험이 그가 미규정적인 어둠의 세계를 사유하게 하는 계기를 주고 그 세계를 긍정할 수도 있다지만, 거절당하지 않고 규정된 세계에서 이미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어둠으로 들어가 낯선 세계를 긍정해야할까? 왜 굳이 있지만 없다고 간주되는 것들을 찾아나서야 할까?

나의 욕망을 스스로 들여다볼 때 낯선 세계를 굳이 찾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지적욕망으로 표현되는 놀라움이 삶의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어떠한 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설명들이 만족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때 그냥 체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고민하다가 새로운 설명을 찾게 되거나 현재 별다른 설득력있는 설명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을 느낀다. 또한 질문을 거듭할수록 거의 마지막에 남는 전제조차 완벽히 증명된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허망감도 있지만 놀라움이 지배적이다. 지금과는 온전히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창조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때 지적인 욕망은 인식의 차원이고, 여기서의 낯선 세계를 긍정하는 미규정성조차 결국 규정성을 향한 빛의 존재론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존재의 차원에서 어둠의 존재론적 사유는 어떤 경우에 해당될까? 내가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미약할지라도 거절당한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계기로 ‘진정’ 거절당한 타자의 경험을 공감하는 경우일까? 맞다면 그렇게까지 공감해야하는 이유는 왜일까?

공감해야하는 이유의 답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아니 존재자의 본성은 다규정성, 미규정성이고 하나의 규정으로 포섭하려는 세계 안에서 자신 또는 타인의 본성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 함께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의 규정성에 갇혀있는 줄도 모르 채 갇힌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고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저항하여 규정성으로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내 본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본성에 충실하라며 거짓말하지 말라할지도 모른다.

수유너머에서 기억에 남는 슬로건 중의 하나는 “우리 모두가 소수자”라는 말이다. 이 말을 존재론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규정으로 포섭되지 않는 미규정적이고 다규정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물론 타인의 소수성이 현재 나의 소수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면 연대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타인의 소수성이 현재 나의 소수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함께 저항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가령 비장애인이 장애인운동에 동참하여 활동가가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나 또한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장애인이 될지 모르기 때문일까? 실제 활동가의 대답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궁금하다.

 

 

3. 어둠의 존재론을 사유하는 것은 능력일까? 본성일까?

책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에서는 어둠의 존재론을 사유하는 것을 능력으로 본다. 세계의 규정성에서 벗어나 그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삶을 사는 것은 드문 것이고 그 드문 길을 가는 사람은 능력있는 자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규정성의 세계에서 명예와 성공의 유혹에 빠져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과감히 뛰쳐나와 규정되지 않은 채로 스스로를 긍정하라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만 하고 어둠의 존재론을 사유하는 것이 능력있는 삶일까?

나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모든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믿는다.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선택하는 시점에서는 최선(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의 선택을 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는다. 김시종 시인이 어긋난 삶을 택한 것은 편한 삶을 놔두고 억지로 자신이 불편한 삶을 감수했다기보다는 규정된 세계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것이 더 불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긋나 살아가는 것이 차라리 그의 삶에 비교적 편한 선택이었고 그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김시종 시인의 위상이 떨어질까? 또한 예술가들은 일상세계에서 소통되지 않는 말을 내뱉지 않으면 갑갑해 미쳐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애써 낯선 세계를 불러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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