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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미나에서 저희는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의 서론에서 2장까지를 읽고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집착적으로 통제하면서 다양한 욕구들을 억압하는 양상을 매력적으로 서술했는데요. 세미나에서는 텍스트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책의 전반적인 주제였던 신체에 대한 억압이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강도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상적인 신체에 대한 욕망을 자극받고 그 이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압력에 노출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도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강하다는 점, 그래서 여성의 경우 그 억압이 책의 저자가 그러했듯이 거식증과 같은 식이장애로도 이어진다는 점은 많은 여성들에 의해 말해졌습니다. 여성과 남성에게 작용하는 억압의 차이는 ‘뚱뚱함’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되는 양상만 보아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남성의 뚱뚱함은 자주 푸근함의 이미지와 결부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요. 남성의 뚱뚱함은 허용되지만 여성의 뚱뚱함은 용인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세미나에서도, 몇몇 여성분들은 다이어트(혹은 다이어트까지는 아니어도 그와 비슷한 유형의 신체 관리)를 하면서 (책의 저자와 비슷하게) 스스로의 몸에 대해 집착적으로 감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남성분들의 경우, 여성들처럼 나름의 이상적인(흔히 말하는 남자다운) 몸에 대한 이미지를 의식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거식증에 이를 지경으로 거기에 구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상적으로 그려진 신체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달리 말해 새로운 주체성을 세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새로운 주체화의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우선 그것은 감각을 변화시키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몸의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을 바꾸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한 감각을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자는 지금까지 천대받아온 추한 몸에 대한 거부감을 신체 하나하나의 상이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대체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지점은 후자인데요, 여성인 사람을 신체의 여성성만을 가지고 규정하는 감각을 바꾸는 일이 보다 근본적인 과제입니다. 여성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그래서 여성을 사람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무의식이 변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체화의 문제는 비단 거울을 보며 괴로워하는 여성 개인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을 혹독하게 관리하는 고통이 애초에 사회적인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생겨난 만큼, 집단적인 차원에서 주체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러한 괴로움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될 테니 말이죠.

이런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써 ‘말하기’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겪는 불편함이나 괴로움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로써 자신까지도 바꾸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첫걸음입니다. 캐럴라인 냅이 자신의 책을 통해 그리 했듯이 말이죠. 물론 세상이 그 이야기를 차분하게 곧이곧대로 들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런 상황은 진정성 있는 말하기를 두려운 일로 만들어 버리지요. 그렇기에 변화를 위한 말하기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하기는 자신의 고통을 일방적으로 호소함으로써 단순히 위로를 구하는 데 그치는 말하기가 아닌, 듣는 이에게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그런 말하기인 만큼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용기 있는 실천은 말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듣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말하기를 듣는 것 또한 적극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하기 못지않은 용기가 요구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듣기란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저 위로나 격려 한 마디만 던져주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듣는 자는 말하는 이의 고통에 얼마나 자신이 연루되어 있는가를 직시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로써 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듣기에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단지 타인만의 것이라고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 또한 얼마나 깊게 거기에 관여되어 있었는지를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공감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대화 속에서 공감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고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공감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구분을, 혹은 너와 나의 구분을 전제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구분을 무너뜨리고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새로운 공동의 주체성을 생산해 나가야 합니다. 감정의 나눔을 넘어선 주체성의 발명. 이러한 발명이 작동할 때에야 비로소 말하기와 듣기는 해방적인 주체화 양식으로서 유효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하기와 듣기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함께 기존의 주체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가 되어가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따진다거나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자격 없는 대화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괴로웠던 체험, 그래서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할 기억일 수도 있고 반대로 기뻤던 체험, 그래서 더욱 확장해 나가야할 그런 경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말하기와 듣기의 시간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생성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삶의 방식에서 이탈해 다른 주체화의 과정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현재의 지배적인 주체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데 성공한다면 그 성공은 단지 그 사람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삶이 다른 이들의 좋은 모델이 되어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저희가 세미나에서 함께 다룬 캐럴라인 냅의 글이 그 사례일 겁니다. 한 사람의 삶의 변화가 그 변화를 목격한 주위의 다른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확장되어가는 긍정적인 피드백의 과정 자체가 연대의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 연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키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것입니다.

이제 막 시작된 저희의 세미나가 그런 연대의 과정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음 주부터 저희가 다룰 책의 난해함이 지난주에 저희가 나눈 실천적인 문제의식을 잠시 잊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론을 단지 이론으로서 다루고 마는 것이 저희 세미나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만큼, 실천적인 고민들이 세미나에 끊임없이 개입했으면 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조금씩 삶의 변화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8주간 저희는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를 함께 읽게 됩니다. 우선 다음 주 세미나에서는 책의 1장 ‘몸들을 재형상화하기’를 세미나 전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셨던 점이나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으시다면 밑에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 토요일(3/26)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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