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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문서는 서론,1부,2부를 다시 재정리한 파일입니다. 게시판 본문에는 2부에 해당하는 글만 옮겼습니다.

 

<2부 아이러니즘과 이론>

4장 사적 아이러니와 자유주의의 희망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현재 마지막 어휘에 의심을 가진다. 이 마지막 어휘는 의심을 해결할 수도 해소할 수도 없다. 사르트르는 이를 ‘준안정상태’라고 불렀다. 우연성과 취약성을 항상 의식하는 그는 유명론자이며 역사주의자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전통적인 학문분야들의 어휘를 부분적으로 채용하고 부분적으로 변용한다. 시적인 재능을 지니고 재서술에 뛰어났던 인물들(피타고라스, 플라톤, 밀턴, 뉴턴, 괴테, 칸트, 키에르키고르, 보들레르, 다윈, 프로이트 등)의 저술을 변증법적 맷돌을 통과하는 곡물로 간주한다.

아이러니스트의 서술은 발견하기가 아닌 만들기라는 메타포에 의해, 이미 주어진 바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화와 참신성이라는 메타포에 의해 특징지어진다.(시적인 성취)

형이상학자는 두 명제 간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합리성에 근거하는 형이상학자의 패러다임이다. 형이상학자의 ‘직관’은 아이러니스트에게는 상투적인 말투이다. 이 상투적인 말투를 버린다면,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변증법’이란 추론이 아니라, 어휘들을 서로 대결시키는 것이다. 추론을 재서술로 대체하는 것이다. 헤겔이야말로, 플라톤-칸트의 전통을 종언하면서 재서술이 가능한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헤겔은 낡은 상투어들을 끊임없이 전환되는 어휘들로 변화시켰다. 이로써 니체-하이데거-데리다로 이어지는 아이러니스트 철학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를 진리와의 관계가 아니라 선행자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규정하는 철학자들이다.

 

 

변증법의 최신 이름은 ‘문예비평’이다.

헤겔에게는 철학이 예술보다 우위에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고도 변증법적이게도, 헤겔은 철학을 탈인식적이며 탈형이상학적으로 만들어, 철학을 문예 장르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문예비평의 주요 활동은 서로 다른 어휘들의 재서술을 비교하는 것이고, 그런 인물들 간의 대결을 다룬다. 어휘들을 초월하는 규준은 없기 때문에, 비평이란 재서술에 답하는 재-재-재서술이다. 아이러니스트들은, 정반대의 책들을 한자리에 놓고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 수 있을지 어느 비평가가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비평하는 모든 것을 포섭하도록 ‘문예’란 용어는 확장되었다. 문예는 무엇이 가능하며 중요한가에 대한 느낌을 변경시킬 만큼, 도덕적 연관성을 가졌다고 보이는 모든 종류의 책을 망라한다. 이에 비평가는 문학적 특질을 추적하거나 해설하는 자가 아니라, 도덕적 반성을 촉진시키는 자로서 기대된다.

민주주의 지식인 문화에서 문예비평이 현저하게 성장한 것은 아이러니스트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여전히 존재하는 도덕적인 것과 미적인 것의 대립, 자유주의 문화에 걸림돌이 되는 대립은 아이러니스트 지식인들에게 ‘무책임성’이라는 혐의를 부여한다.

 

 

하버마스는 헤겔-푸코-데리다를 관통하는 아이러니스트적 사유노선을 비판한다. 그들은 상호주관적인 의사소통의 철학을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주관성의 철학에 고착되어 사회적 희망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러니스트 사유노선은 공적인 삶과 정치적 물음에 무관하다고 본다. 사적인 자아 창조는 정치 영역에서는 쓸모가 없다.

하버마스는 보편성과 합리성에 대한 계몽주의 이야기를 사회적 접착제로 쓰려고 한다. 그는 철학의 진정한 의미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합리/비합리, 논리/레토릭, 철학/문학 등의 구분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서술은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을 시시하고 진부하며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재서술은 종종 굴욕을 안겨준다. 이것을 무력하다고 본다면, 반대로 형이상학의 재서술은 우리를 진리의 환한 곳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힘을 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방식의 형이상학적 재서술은 권력과 모종의 연관성을 가진다.

아이러니스트가 비난받는 까닭은 아마도 힘을 부여해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자유주의 형이상학자’가 주장하는 사회적 희망을 줄 수 없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굴욕에 대한 공통된 감수성의 인식이야말로 유일한 사회적 유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적인 목적을 위한 재서술과 공적인 목적을 위한 재서술을 구분하는데, 공적인 부분은 나의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이 굴욕 받을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반면 자유주의 형이상학자는 자신과 타인 모두를 위한 적합한 단일한 서술을 찾아내는 일에 헌신하고자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기도한다. 이들은 공적 레토릭이야말로 타인과의 연대를 가능케 하기 때문에, 마지막 어휘에서 형이상학적 레토릭이 핵심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스트에게 인류의 연대는 공통의 언어에 있지 않다. 단지 위험에 대한 공통의 느낌, 고통에 대한 감수성, 굴욕이라는 특별한 고통(짐승과는 다른)에 대한 감수성에 있다. 그것은 공통의 진리나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휘를 직조해가는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통을 보살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발생할 때 반드시 그 고통에 주목하는 일이다. 그래서 타인들에게 굴욕을 주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재서술에 의해 확장되기를 원한다.

 

 

자유주의 형이상학자는 신학, 과학, 철학 등이 인간 존재를 하나로 묶어주어 잔인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한다. 반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사적이며 특이한 것들에 대한 두터운 서술이 그 일을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소설과 민족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연대는 사소한 조각들로부터 구성되어야 하는 일이지, 모두를 깨닫게 하는 원초적 언어가 행하는 것이 아니다.

 

 

5장 자아창조와 동화: 프루스트, 니체, 하이데거

프루스트와 니체는 자아창조의 과정을 우연성의 문제로 자각하고 있었다. 프루스트가 형이상학을 단순히 또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간주했다면, 니체는 형이상학에 깊이 사로잡힌 비형이상학자이자 반형이상학자였다.

사르트르의 ‘무용함’은 시간, 우연, 재서술을 넘어서는 더 강력한 어떤 것을 발견하고자 할 때 발생한다. 프루스트와 니체에게는 재서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과 우연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사용하려고 한다. 올바른 서술도 없고, 그저 재서술됨으로써 재배열되는 사소하고 덧없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프루스트는 그가 몸소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반응하고, 그들을 재서술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들의 모음집 자체이다.

반면 니체는 그가 책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반응하고 그들을 재서술했다. 니체의 어휘는 프루스트와 같은 컬렉션이 아니라, 훨씬 더 큰 삶을 서술하는 변증법이다. 자신보다 더 큰 영웅의 발견은 헤겔-니체-하이데거를 프루스트와 떼어놓는다. 그들을 소설가가 아닌 이론가이다.

 

 

아이러니스트의 ‘이론’은 형이상학자들의 다양한 시도의 근저에 놓여 있는 통일성을 바라보고자 한다. 수직축이 아니라 수평축을 따라 역사주의적 메타포로 이를 시도한다. 이 아이러니스트 ‘이론’은 선행자들을 이론화하게 몰아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자마자 치워버려야 할 사다리이다.

아이러니스트 이론가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거대한 것도 새롭게 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주의자가 되기 힘들다. 니체의 초인, 헤겔의 세계정신, 하이데거의 존재는 마치 그리스도의 성육화와 유사한 것을 공유하고 있다.

 

 

프루스트는 그가 서술했던 사람들을 다시 서술하면서 자유로워졌다. 그들 중 누구도 특권적 관점을 가지지 못한다. 그들 모두 우연적 위치에 놓인 동료들임을 자신에게 설명한다. 그는 책을 썼고, 그럼으로써 그 책의 저자인 자신을 창조해냈다.

그는 권위있는 인물을 우연적 상황의 산물로 보았다. 그들을 시간 속의 인물로 만들고 유한한 존재로 만들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권위의 정체를 폭로했다. ‘진정으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간파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관찰하고, 또 다른 인물들이 제공한 용어로 재서술하였다. 이 작업은 프루스트로 하여금 자신의 유한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그가 직면한 우연성이 단순한 우연성 이상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니체는 어떤 서술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워진 특정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인간’에 대한 전제로 내세워진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극히 제한된 시기의 인간에 대한 증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니체는 과거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 미래를 원한다. 초인의 출현, 형이상학의 종말 같은 이런 사건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이 ‘최후의 철학자’라는 환상을 갖게 했다. 이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이 만드는 패턴 속의 사소한 요소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순수한 자아창조로서의 초인(순수한 자발성)을 상상하는 니체는 자신의 관점주의를 망각하고 있다. 자아가 ‘힘에의 의지’의 저장소인 양 말하는 니체는 전도된 플라톤주의자라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을 추구했으나, 동시에 형이상학이 이제는 지나가버렸다고 주장하고도 싶어했다. 그래서 그의 과제는 ‘마지막 어휘가 스스로 그 우연성을 드러내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 어휘가 마지막이라는 심각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였다. 끊임없이 해체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심각한 것으로 여기는 어휘를 구성하고자 했다. 헤겔과 니체의 역사주의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다.

니체는 이러한 모순을 회피한다. 니체의 초인은 어떠한 어휘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로 암시된다. 니체는 어린아이가 어떤 특정한 언어를 말하는 데서 오는 단점을 하나도 갖지 않으면서, 사유의 모든 장점을 갖게 될 거라는 모호한 암시를 한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궁극적인 과제는 현존재가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기초적인 낱말들의 힘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가장 기초적인 낱말들’은 아이러니스트 ‘이론가’의 곤경을 표현한다.

이 낱말들은 진정한 본질의 표상도 아니고, 고차원적인 무엇을 위한 통로도 아니다. 자아창조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소모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마지막 어휘이다.

하이데거는 우리를 있게 한 결정적인 철학자들과 낱말들을 확인하려고 했다. 왜 우리가 현재의 마지막 어휘를 사용하는지를 설명해 줄 ‘마지막 어휘의 계보학’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철학자들과 낱말들이 우리를 만들어냈다. 이건 사물의 존재 방식과는 무관한, 단지 ‘우리’에게 더 근접해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하이데거와 프루스트의 공통점은, 우리를 창조해낸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을 통해 되찾을 수 있다면, 이렇게 되찾는 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하이데거는 특정한 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대의 ‘모든’ 유럽인이 마주하고 있는 특정 낱말들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초적인 낱말의 기초성은 사적이며 특이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읽은 책들이 수많은 다른 책들보다 특별히 더 중심적이지도 않다. 이런 식의 역사주의적 연출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사유를 밀어내는 또 다른 시도일 뿐이다.

 

 

하이데거가 시를 이야기한 것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보편적인 시, 형이상학과 아이러니즘을 모두 넘어서는 보편적인 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다. 아이러니스트 이론은 문예 전통 이상의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은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결합하고자 하며, 둘을 결합할 마지막 어휘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적인 규모에서는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크고 공적인 규모에서는 숭고함을 보여주길 원한다. 아이러니스트 ‘이론’은 내러티브를 통해서 이와 같은 종합을 이뤄내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사적/공적의 대립은 이론 속에서 종합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삶 속에서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분열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어휘에 관한 의심을 해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고통과 모욕에서 구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없다. 사소한 것들을 재서술하는 일은 우리 자신보다 큰 어떤 것을 이해하는 데로 귀결되지 않는다.

자아창조와 정치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 이것이 한계인 듯. 새로운 결합, 새로운 공생은 가능하지 않을까.

 

 

6장 아이러니스트 이론에서 시적인 암시로 : 데리다

후기 데리다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사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는 아이러니즘과 이론화 사이의 긴장을 무너뜨렸다. 그는 선행자들을 일관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버렸다.

하이데거에게 숭고한 것의 추구는 ‘힘’을 갖는 기초적인 낱말에 대한 추구였다. 그래서 그가 공적인 방향으로 가자마자 그의 ‘기초적인 낱말’은 쓸모를 획득함으로써 힘을 잃었다.

데리다는 다른 스타일을 창조해서 선행자들의 책과 통약불가능한 책을 쓰고자 했다. 그는 기초적인 낱말로 줄여나가는 대신 언어를 증식시킨다.

 

 

‘발송’은 데리다의 장점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는 일련의 연애편지로 되어 있다. 연애편지만큼 사적인 것도 없고, 연애편지만큼 일반 개념을 적용하기에 부적절한 것도 없다. 연애편지는 사적인 연상에 의존한다.(269쪽 전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비난하면서 자신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지시적 비판’의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의 무게 중심을 주변적인 ‘물질적’ 특징들로 옮겨놓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사적인 연상일 수 밖에 없다.

데리다는 자기 자신의 언어놀이를 창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창조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아이를 잉태하지 않으려 했고, 플라톤에 대한 또 다른 주석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합리-비합리의 구분을 가로지르는 놀이를 한다.

 

 

프루스트의 소설을 사회적 역사로 읽어야 할지, 성적인 강박 관념에 대한 연구로 읽어야 할지를 프루스트에게 묻는 것은 매우 조잡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데리다의 저술을 해부하는 것 대신 물러나 앉아서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데리다가 ‘해체의 방법’을 전개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개념은 그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죽이지 않는다. 해체, 즉 위계를 뒤엎는 잎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데리다의 일은 충격적으로 다르다. 그 이유는 데리다가 낱말의 ‘우연적인’ 질료적 특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담론들을 가능케 하는 규칙들, 이 규칙들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물음에 데리다는 ‘발송’이라는 실제 실험으로 답하고 있다. 그래서 이 텍스트를 기표로 보아야 할까, 표식으로 보아야 할까 라는 물음은 곧 흥미를 잃게 된다.

데리다는 프루스트가 자신의 개인사에 대해 행한 일을 철학사에 대해 이루어내고 있다. 데리다는 모든 권위 있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부여했다고 생각되는 모든 서술들을 가지고 놀고 있으며, 그들을 서로 다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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