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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 요세미티

lavabo 2023.02.25 15:55 조회 수 : 1872

요세미티

요세미티는 1999년형 컴퓨터로 정식 명칭은 파워 매킨토쉬 G3인데, 파란색 케이스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폭포와 색깔이 같다고 해서 요세미티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나는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요세미티로 영화를 편집했는데, 요세미티의 사양이 좋지 않아 쓰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요세미티는 속도가 느리고 툭하면 다운되는 데다 어떨 땐 부팅하는 데만 24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나는 요세미티와의 이별을 결심했는데 그제야 내가 요세미티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세미티가 숨만 크게 쉬어도 가슴 철렁해가며 함께 일하는 동안 그만 정이 들고 만 것이다.

요세미티를 처음 만난 건 창익을 통해서다. 그때 나는 단편영화 웃음을 만들고 있었다. 컴퓨터 편집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나는 컴퓨터가 없고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영화의 편집을 편집실에 맡겼다. 편집기사와 나란히 앉아 내가 말하면 기사가 그대로 자르고 붙이는 식으로 작업했는데, 한번 붙인 걸 수정해달라고 할 때마다 기사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손동작에 짜증이 베어났다. 나는 뭐든 해보기 전엔 잘 모르고, 실은 해봐도 잘 몰라서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눈치를 보면서는 편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천리안 영화동호회 채팅방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만난 창익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다음 날 창익에게 이메일을 받았는데 자기가 편집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연락을 해서 홍대 앞 버거킹에서 창익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도 컴퓨터가 없었다. 그날 그의 차를 타고 컴퓨터를 빌리러 갔다. 그는 반지하에 사는 웬 여자에게 맥을 빌렸는데, 서로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는 걸로 봐서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왜 컴퓨터를 빌리는 수고까지 해가며 나를 도와주는 것일까? 의아했지만 그의 마음이 바뀔까 봐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동대문에 있는 그의 집으로 출근했다. 그는 마당이 있는 단층 슬레이트집에 살았는데 골목과 맞닿아 있는 그의 방에서 편집하고 있으면, 동네 친구들이 창문 너머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창익은 편집 경험이 많지 않아 편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돈이 안 들고 구박을 안 받았을 뿐 아니라 재미있었다.

나는 창익의 과한 친절에 그가 내게 딴 맘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나한테 컴퓨터를 팔려고 그러는 건 아닌가 의심한 건데, 그가 매킨토시 대리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하게 된 생각이다. 창익이 그래서 나를 도와준 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 대리점에서 컴퓨터를 샀다. 컴퓨터를 살 때 대리점 사장님이 컴퓨터로 무엇을 편집할 거며, 최종편집본의 길이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물으셨다. 나는 단편영화를 편집할 거고 완성본의 길이는 30분 미만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당시엔 그 컴퓨터로 단편영화 두어 편을 편집하게 될 줄 알았지, 10년간 만들게 될 모든 영화를 편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장님은 내 말을 듣더니 대리점에서 쓰던 G3 요세미티를 권했다.

나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요세미티로 영화를 편집했는데, 요세미티와 짝이 된 DV(Digital Video) 캠코더는 모두 세 대다. 첫 번째 캠코더는 SONY TRV900이다. 이 캠코더로 <웃음>과 <연애에 관하여>를 찍었는데 <바다가 육지라면>을 찍다가 잃어버렸다. 촬영을 마치고 차 트렁크에 장비를 실으면서 캠코더 가방이 열려 있는 걸 보고도 내버려 두었는데, 집에 와 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가방만 있고 캠코더가 없었다. 출발 전에 트렁크 문이 제대로 안 닫힌 것 같아 트렁크 문을 다시 열었다 닫았는데, 그때 캠코더가 트렁크 밖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사고현장에 방을 붙였지만 TRV900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두 번째 캠코더는 SONY PD100이다. 이 캠코더로 <뽀삐>를 찍었다. 뽀삐가 끝나고 이 캠코더를 메이킹 촬영팀에게 빌려줬는데 현장에서 교통사고가 나 캠코더가 박살났다. PD100의 죽음은 돈으로 보상받았고 그 돈은 수입이 없던 시절 생활비로 썼다. 나는 PD100의 보상금이 바닥 날 즈음 메이킹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선수금을 받아 SONY PDX10을 샀다. PDX10으로 <앞산전>과 <요세미티와 나>를 찍었는데, 이 캠코더는 두 영화를 편집하는 내내 플레이어로 혹사당한 탓에 <요세미티와 나>를 완성한 뒤 수명을 다했다.

 

연애에 관하여

요세미티와 만든 첫 번째 영화는 <연애에 관하여>다. 첫 촬영은 제작지원 받은 500만원으로 스태프를 꾸리고 장비를 빌려서 시작했다. 영화는 필름으로 찍는 걸로 돼 있던 시절이었고, 이 영화도 필름으로 찍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현상을 해보니, 전부 초점이 안 맞았다. 카메라가 고장 나 있었던 것이다.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날리고 나니 더는 필름으로 찍을 형편이 못 됐다. 비디오로 찍기로 하고 촬영감독을 바꿨다. 촬영감독이 비디오로 찍더라도 성능 좋은 고가의 캠코더로 찍어야 하고, 비디오일수록 조명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해서, 고가의 캠코더와 여러 대의 조명기구를 빌려서 재촬영을 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그날의 촬영분을 확인하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또 초점이 나간 게 아닌가. 게다가 카메라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 촬영감독은 나중에 상업영화로 데뷔했는데, 그 영화도 초점이 안 맞았다. 이제 남은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스태프 없이 조연출을 맡은 창익과 나 단둘이 촬영을 하기로 했다. 카메라는 내가 가진 것을 쓰고, 조명은 안 쓰기로 했다. 조명이 없으니 낮에 야외에서 찍어야 돼서 경인미술관 야외 카페를 빌렸다. 카페를 공짜로 쓰는 대신 아침에 문 열기 전까지만 촬영을 하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연애에 관하여 세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아침 8시,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은 한산한 인사동 길을 지나 경인미술관 정문을 들어서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딴 세상처럼 꽃이 피고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너른 마당이 나타났다. 창익과 내가 장비를 들고 제일 먼저 도착했고, 잇따라 배우를 맡은 선재, 현영, 성연이 도착했다. 창익과 내가 장비를 세팅하는 동안 배우들은 촬영할 테이블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고 나무에선 이름 모를 열매가 딱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장비 세팅이 끝나면 내가 카메라를 잡고 창익이 붐 마이크를 들고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슬레이트를 쳤다. 카메라를 두 대 썼는데, 두 대가 같은 기종이라서 이쪽 카메라를 켜려고 리모컨을 누르면 저쪽 카메라가 꺼지고, 저쪽 카메라를 켜려고 리모컨을 누르면 이쪽 카메라가 꺼졌다. 그럴 때마다 웃기 잘하는 현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끼리 하는 촬영이다 보니 카메라만 없으면 놀러 나온 분위기였다. 세 번씩이나 똑같은 장면을 찍다 보니 리허설도 필요 없었는데, 배우들은 “액션!”하면 수다 떠는 연기를 하다가 “컷!”하면 수다를 떨면서 놀았다.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를 잘 만드는 것만 중요해서 다른 걸 돌볼 겨를이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은 빛이 바래고, 곁다리로 여겼던 것들이 빛을 반짝인다. 영화를 하는 틈틈이 친구들과 놀았던 순간이 그것이다. 그 순간들은 긴 시간을 배경으로 점점이 이어져 성좌를 이루는데, 경인미술관의 사흘은 그 성좌의 밝게 빛나는 별들 중 하나다.

촬영이 끝나자 편집이라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세미티의 속도가 동영상 편집을 하기에 너무 느렸다. 돈 몇 푼 아낀다고 중고를 사는 게 아니었다. 요세미티는 간단한 랜더링을 하는 데도 두 시간씩 걸렸는데 그 시간에라도 끝나면 다행인 게 중간에 다운될 때가 많았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요세미티는 내가 잠깐만 한눈을 팔면 사운드 트랙을 제 멋대로 이동시켰다. 싱크가 자꾸 틀어졌다. 싱크가 틀어지더라도 일정하게 틀어지면 한꺼번에 맞추면 되는데 컷마다 틀어지는 정도가 달라 수많은 컷을 일일이 보면서 배우의 입 모양에 소리를 맞추어야 했는데, 그렇게 맞춰 놔도 얼마 못 가 또 틀어졌다. 러닝타임 30분 동안 쉴 새 없이 대사를 쏟아내는 영화라서 편집하는 시간보다 싱크를 맞추고 또 맞추는데 더 긴 시간을 쏟았지만, 영화는 군데군데 싱크가 어긋나는 채로 상영됐다.

 

뽀삐

세 번에 걸친 ‘연애에 관하여’의 촬영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각각 다른 제작방식으로 만들어 보며 내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소규모로 일할 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고 즐거웠으며 그나마 제일 잘 했다. 그러니 그 방식을 나의 스타일로 삼고 밀고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세번에 걸친 ‘연애에 관하여’의 촬영을 단지 실패로 평가했다. 그런 평가가 무리도 아닌 것이 <연애에 관하여>는 같이 상영하는 영화들과 동시대 영화라고 보기 힘들 만큼 화질이 좋지 않은 데다 싱크까지 안 맞아 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나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큰 돈, 더 많은 스태프, 더 비싼 장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준비하던 영화 <뽀삐>가 4천만 원의 제작비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나는 원하던 대로 제작 규모를 잔뜩 키워 촬영을 시작했다.

<뽀삐>는 뽀삐라는 개에 관한 이야기다. 뽀삐 역에 스컬리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를 캐스팅해 조련사에게 조련을 맡겼다. 그런데 첫 촬영에서 뽀삐가 짖는 장면을 찍는데, 스컬리는 짖는 거는커녕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앉고 서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스컬리와 조련사를 자르고, 뽀삐 역에 마르치스 잡종견을 새로 캐스팅했다. 이 개는 애견센터에서 데리고 있던 종견으로 이름도 없어서 피디가 붙여준 ‘빠삐’가 그의 이름이 됐다. 빠삐는 케이지 밖에 나와본 적이 없고 길거리에서 오줌 누는 게 처음이라 전봇대에서 다리 들고 오줌 누는 장면을 찍는데, 수캐인데도 쭈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눴다.

개만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는데 촬영 규모가 큰 만큼 실수의 비용이 같이 커졌고 내가 이 산이 아닌가 보다고 할 때마다 스태프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제작 기간 내내 스태프들을 동료가 아니라 적으로 봤고 그들과 싸우는데 기운을 다 썼다. <뽀삐>는 <연애에 관하여>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았다. 재촬영이 거듭될수록 제작 규모가 점점 작아지면서 대부분의 스태프가 떠났고 결국은 친구들 몇만 남아 내 카메라로 찍고 요세미티로 편집해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제작방식이란 원하는 결과에 따라 거기에 맞게 선택되어야 하는 요소다. 그림처럼 색이 풍부하고 섬세한 영상을 원한다면 그에 맞는 규모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다큐처럼 날 것의 거친 영상을 원한다면 보다 소규모의 시스템, 때로는 일인 제작방식으로 충분하다. 전자의 영상이 후자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없는 것처럼 후자의 영상도 전자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없다. 두 방식의 차이는 스타일의 차이일 뿐 거기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줄곧 전자의 방식을 우월한 것으로 여겨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그것을 따라 하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에 왜 가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남들이 가야한다니까 무조건 가려고 했던 것처럼 남들이 상업영화의 제작방식과 퀄리티를 기준 삼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무조건 따라하려 한 것인데, 해야 할 생각을 건너 뛰면 맹목적으로 되기 마련이라 나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그 기준을 놓지 못했다.

뽀삐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렇게 평가했다. 겨우 4천만 원으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다니, 나 자신이 한심했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충분한 제작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목표로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2년을 거기에 매달렸다. 내 생각에 내가 쓴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내 시선을 피했다. 친구들이 맞았다. 나는 모든 공모전에서 떨어졌고 시나리오 쓰기를 그만뒀다.

직장에 다니게 됐다. 방송다큐를 만드는 외주제작사였다. 나는 AD였는데, 나처럼 나이 든 AD를 밑에 둔 피디들은 나이가 많았고 그만큼 베테랑들이었다. 머리 복잡한 생각은 피디와 작가가 도맡아 했고 나는 모처럼의 빡센 단순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청량해졌다. 나이 든 남자들은 모였다 하면 음식 얘기로 거품을 물면서 맛집 기행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나는 그 덕에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는 호사까지 누렸다. 그러나 그 일에도 명암은 있었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모두 쉴 새 없이 일했고 공장에서 물건 찍듯이 프로그램이 생산됐다. 긴 시간을 들여 연구 조사할 시간과 경비와 열의가 없다 보니 베스트셀러의 저자를 섭외해 그가 가진 전문성과 인기에 의존하거나 다 아는 얘기를 다 아는 수준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말은 해야 되는데 할 말이 없으니까 남의 말을 가져다 생기 없이 따라 하는 프로그램들. 나는 점점 그 일이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경험과 느낌에 맞는 말을 찾아 그 말을 친구들과 나누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싶었다. 내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앞산전

방송일을 그만 두고 강원도 사는 진경의 집에 지내러 갔다. 진경이 오는 김에 전시 메이킹을 찍어 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챙겨갔다. 진경은 마을 창고에서 앞산전이란 제목의 전시를 했는데 나는 전시 메이킹을 찍다가 진경의 그림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걸 만들려고 집에 가서 요세미티를 마저 챙겨갔다. 그렇게 <앞산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세미티와 내 카메라가 없었다면 그처럼 쉽게 영화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진경의 도움도 컸다. 그의 집에서는 ‘앞산전’ 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제공됐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겠다.

첫째, 영화 장비와 자료 영상. 진경은 누가 뭘 준다는데 사양하는 법이 없고 사기도 많이 산다. 또 한번 들인 물건은 절대 안 버리는데 그러다 보니 집안이 물건으로 꽉 차 있다. 컬렉션의 종류는 두서없이 방대하다. 다룰 줄도 모르는 악기부터 병원에서 쓰는 의료기구, 폐그물과 부표, 먹고 버린 라면 봉지까지. 나는 그 집에 갈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을 싹 내다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그런 걸 어디에 쓴단 말인가. 그런데 <앞산전>을 만들며 내가 그것들을 쓰게 됐다. 집에서 장비를 챙긴다고 챙겨갔지만 일하다 보면 없는 게 많았다. 서울 같으면 나가서 사면 되지만, 산골에선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걸 말하기만 하면 진경이 집안 어딘가에서 그걸 찾아줬다. 모니터, 카메라, 삼각대, 공테이프, 각종 케이블 같은 영상 장비도 진경의 소장품 중 하나였다. 진경의 소장품 중에는 자신의 일상과 전시를 기록한 비디오테이프 여러 상자도 있다. 진경은 뭘 하든 그걸 비디오로 기록하는데, 그 중에는 내가 찍은 것도 꽤 있다. 나는 찍어 달라니까 찍기는 찍으면서도 그걸 나중에 보거나 쓸 일이 있을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앞산전은 진경이 20여년에 걸쳐 그린 그림을 다루는 영화라 과거의 기록이 필요했고, 진경이 소장한 비디오는 영화 곳곳에 알차게 쓰였다.

둘째, 출연진과 촬영 스튜디오. 영화에는 진경과 그의 지인들이 출연하는데, 진경은 물론이고 그의 지인들도 대부분 그 집에서 찍었다. 진경은 집에 사람 부르길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팀씩 손님이 드나들었고, 나는 리스트를 만들어 가지고 있다가 기다리던 사람이 집에 오면 촬영했다. 그 집은 배경이 다양하고 그림이 좋아서 촬영 스튜디오로 나무랄 데 없었다.

셋째, 협조적 분위기. 앞산전은 그 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시나리오조차 없었다. 방향도 모른 채 무작정 찍어서 버리고, 찍은 걸 또 찍는 날들이 계속됐다. 메인 출연자인 진경이 눈치를 줬으면 그 짓을 계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경은 나와는 다른 차원에서 실수가 많은 사람이라 내가 하는 정도의 삽질은 삽질로 여기지도 않았다. 진경은 오히려 나를 계획성 있다고 칭찬해서 나는 덤이 더머 앞에서 브레인 행세를 하는 것처럼 그곳에서 실수를 모르는 계획성 있는 사람 행세를 했는데, 그런 분위기야 말로 그곳만의 혜택이었다.

넷째, 휴식을 위한 산책로. 나는 작업실 구석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일했는데, 아침이면 그 자리로 출근했다가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산골의 자연은 숨 가쁘게 변화무쌍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나무들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성큼성큼 짙어지며 무성해졌고 일주일 간격으로 릴레이 하듯 새로운 꽃들이 피어났다. 초록이 절정에 이르자 잠시 변화가 주춤한 듯했는데, 태풍이 불자 산골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극적으로 변모했다. 나무들이 가지를 미친년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다 쩍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고, 개울은 도로를 집어삼킬 듯이 불어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거대한 스펙터클에 날마다 황홀했다.

내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산골에 박혀 있는 동안 촬영한 테이프가 116개나 됐고, 요세미티는 그것을 편집하느라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그런데 요세미티가 수명이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부팅조차 안 되는 날이 많았다. 나는 매일 아침 요세미티의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두둥’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밝아지면서 요세미티가 ‘안녕하세요, OS입니다’라고 아침 인사를 하면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나는 편집 프로그램을 열자마자 싱크부터 확인했다. <연애에 관하여> 이후로 나는 줄곧 싱크가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한 시간 넘는 이 영화의 싱크를 일일이 맞추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요세미티는 매번 끝내는 부팅에 성공했고 웬일인지 싱크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편집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와 후반작업을 하려고 보니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세미티가 오래돼서 다른 후반작업 장비와 호환이 안 됐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세미티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다들 요세미티를 보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옛날 거다.” “이걸 여태 쓰시네요?” “잘 돌아가긴 해요?” “바꾸는 게 나은 시점이 한참 지났는데, 왜 이걸 쓰느라고 고생을 하시는지.” 다행히 유능한 기사를 만나 호환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사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요세미티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요세미티가 예쁘다고 느꼈다.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 같은 파란색에 각진 데 없이 둥글고 사랑스러운 형태가 너무 예뻤다. 요세미티가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여태 모를 수 있었을까. 나는 사랑에 빠지면 갑자기 상대가 예뻐 보이는데, 요세미티가 예뻐 보인 게 그래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앞산전을 마치고 준비하던 영화가 제작지원금을 받았는데, 나는 그 돈으로 컴퓨터부터 샀다. 책상 밑에 있던 요세미티를 치우고 그 자리에 은색 티타늄 케이스의 맥프로를 놓았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안 그랬다. 요세미티와 나는 10년이나 영화를 같이 만들어온 둘도 없는 동료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의 이별을 기념하고 싶어졌고 우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요세미티와 나

이 영화에서 요세미티는 편집이 아니라 주연을 맡았는데 그 호소력 있는 푸른 눈은 카메라 앞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요세미티는 촬영이 끝날 때쯤 수명을 다했다. ‘두둥’ 시동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안녕하세요, OS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요세미티 덕분에 연애에 관하여, 바다가 육지라면, 뽀삐, 앞산전, 요세미티와 나를 만들 수 있었다. 요세미티야,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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