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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Detroit : Become Human)

 

아리송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Detroit : Become Human)은 2038년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3명의 안드로이드들의 스토리를 옴니버스식으로 이어가는 게임이다. 게임의 주인공인 세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모두 개별적으로 시작되지만 각각의 상황, 대화, 심리의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서로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때그때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고, 그 선택에 따라서 게임의 엔딩도 바뀌게 되는 인터랙티브 드라마 장르다. 선택의 중요도만큼 각 주인공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QTE(Quick Time Event의 약자로 버튼 액션이라 불린다.) 조작이 상당히 중요하다. 손가락 한 번 삐끗하면 주인공의 운명이 갈리기 때문에 액션씬이 나오기 직전에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손가락 풀기, 그리고 순발력을 준비해야 한다. 게임을 시작해 하나의 스토리를 마무리 짓기까지 개인적으로 총 13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나는 내가 만들어낸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니 내가 하지 않았던 다른 선택들로 나오게 될 다른 결과들이 상당히 궁금하다.

 

게임의 주인공은 셋이다. 먼저 카라는 가사도우미용으로 제작된 안드로이드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앨리스의 집에 가게된다. 그곳에서 폭력에 노출된 앨리스를 만나게 되고 아이를 보호하는 선택을 하여 감정을 가지는 불량품이 될 것인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여 폭력을 방치하고 살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아이를 폭력에서 구해내는 선택을 했고 이후 카라는 앨리스를 데리고 불량품이 된 안드로이드들에게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는 캐나다로의 도망길에 오른다. 그녀의 모든 선택에서의 키워드는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Love has a price.)’이다.

두 번째 주인공 마커스는 당대 유명 화가인 칼의 비서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칼은 마커스가 안드로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신뢰를 보여준다. 하지만 칼의 망나니 아들 리오의 등장으로 칼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마커스는 리오의 거짓말로 안드로이드의 무덤에 버려졌다가 살아나 이후 제리코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마커스의 선택 키워드는 ‘저항에는 대가가 따른다.(Resistance has a price.)’이다.

마지막 주인공 코너는 프로토타입 안드로이드로 감정을 느껴서는 안되는 안드로이드들이 감정을 가지는 불량 현상이 늘어가자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가장 안드로이드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게임 속 흔들릴 수밖에 없는 코너의 역할은 어쩌면 가장 불쌍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가 스스로 불량품이 되는 선택을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선택을 해도 그의 결말은 해피앤딩이 아니다. 그의 키워드는 ‘충성심에는 대가가 따른다.(Loyalty has a price.)’이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다른 것보다 너무나 우수한 그래픽에 깜짝 놀랐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의 얼굴을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냈다. 플레이 하지 않고 게임에 대해 안내하는 안드로이드 클로이의 얼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가지는 수많은 감정의 얼굴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실 게임 속 세상에서도 외형적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에 대한 구분을 하기는 불가능 하다. 다만 안드로이드는 만들어진 세상의 쓸모의 역할에 따라 그 모습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을 뿐이다.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Detroit : Become Human)은 인류가 과연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는 것에 대해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 즉 포스트 휴먼, 트랜스 휴먼의 시대에 대한 여러 생각할 것들을 함께 남긴다. 감정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들을 이 게임에서는 불량품이라고 부르는데 이 불량품들이 등장하는 데는 이를 만들어낸 캄스키와 아만다라는 게임 속 또 다른 인물들의 의도적인 계략이 있다. 신인류의 창조와 그 신인류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관계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해서 이어진다. 일전에 포스트 휴먼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미래에도 과연 인간만이 인간이라고 불리게 될 것인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에 대한 구분은 무엇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로지 브라이도티의 책 『포스트 휴먼』 속 “무엇이 인간·휴먼으로 간주되는가에 대한 휴머니즘의 제한된 개념은 우리가 어떻게 포스트 휴먼적 선회를 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다.”라는 문장과 “모든 휴머니즘은 지금까지 제국적이었다. 그것은 어떤 계급, 어떤 성, 어떤 유전체에 이로운 특정한 강세로 말한다. 휴머니즘의 포옹은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숨 막히게 한다. 인류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은 범죄를 거의 떠올릴 수 없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게임 속 모든 배후에는 인간의 감정을 가졌지만 강철의 몸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있는 ‘사이버라이프사’가 있다. 위에서 말한 비틀어진 휴머니즘과 같이 그것에 꼭 맞춘 신인류를 만들고 결국 그들의 머리 속에서 다시 그들을 지배하려는 계획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이다.

게임 속 주인공 중 하나인 마커스는 칼을 위해 캄스키가 특별 주문 제작한 안드로이드라는 설명이 있는데 마커스가 각성한 후의 행보는 마치 선지자와 같다. 성경 속 예수처럼 다른 안드로이드들에게 손을 대고 “깨어나라.”, “너는 자유다.”라는 등의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멀리 있는 안드로이드들을 향해 이 말만 해도 그들이 각성하고 불량품의 무리를 따르게 된다. 사실 나는 게임을 진행하며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후 이에 대한 설명들을 찾아보니 아마 그가 다른 안드로이드들을 해킹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한 해킹을 통해 감정을 가진 불량품이 된 안드로이드들의 인간과 동등하고 싶다는 권리 주장은 과연 그들의 순수한 각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 공평한 대우를 원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결말이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결말이라도 사실은 신인류의 순수 자아가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래는 영드 ‘이어즈&이어즈’에 등장했던 ‘트랜스 휴먼’들이 가장 우위에서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사실 계속해서 코너의 머리 속에서 그를 지배했던 존재인 아만다가 ‘트랜스 휴먼’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생각할꺼리는 바로 ‘안드로이드 아이’에 대한 것이다. 게임에는 주인공 카라가 끝까지 지키고 싶어하는 앨리스라는 아이가 나온다. 그녀는 죽을 고비들을 넘겨가며 아이를 지킨다. 하지만 거의 끝에 이르러서야 그 아이 또한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서 카라는 앨리스를 지킬 것인지, 버릴 것인지를 계속해서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유심히 보게된 지점은 바로 ‘안드로이드 아이’라는 존재이다. 앨리스는 카라와 함께 도망다니는 동안 안드로이드답지 않게 추위에 떨고, 인간의 음식을 받는다. 그녀는 인간 아이가 가지는 두려움과 약함, 어른에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안드로이드 아이 앨리스를 보며 굉장히 오래전에 화제가 되었던 스필버그의 작품 A.I.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안드로이드 아이’를 구매하는 이들에게 ‘성장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아이’는 어떤 의미가 될까. 인간인 어른은 계속해서 늙어가는데 나이를 먹지 않는 안드로이드 아이와 함께 인생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의 성장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워가는 기쁨은 비록 평탄하지는 않을지라도 아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의 신인류가 될 수도 있는 ‘안드로이드’ ‘아이’의 생산은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필요없어지면 폐기되는 그런 수순을 밟게 되지는 않을까.

 

게임은 또한 미래 사회에도 계속될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도 말한다. 게임 안에서 보여주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차별은 이전 미국에서 있었던 인종 차별과도 굉장히 비슷한 모습이었다. 안드로이드들만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은 영화 ‘The Help’에서의 버스 씬들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백인들의 버스 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의 버스 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안드로이드와 인간 권리의 동등함을 인정할 수 없는 과격파들은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고 안드로이드를 모두 없애야 한다고 시위하고, 내가 선택한 마커스의 비폭력 평화 시위대를 향해 군대는 어김없이 총알을 발사한다. 이런 전개를 보며 인간이란..이란 생각을 하며 동시에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가 떠오른다. 이런 사피엔스란....

 

13시간의 플레이를 마치고 각각의 주인공들의 생사분기와 그에 따른 결말들을 모두 찾아서 읽어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무궁무진 하다. 이 게임을 만든 퀀틱 드림의 기욤 드 폰도미어 CEO는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다룬다기보다는 다양한 문맥 속에서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고 싶은 의도를 담았다고 말한다. 거대한 스펙트럼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 속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유저들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텀의 플레이 시간이 꽤 길긴 하지만 몇 번 반복을 해서라도 다시 각각의 상황을 경험해보는 것이 게임의 세계관과 다른 각도에서 던져지는 질문들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게임을 통해 여러 생각들을 거치며 <디스코 엘리시움>이라는 게임을 개발한 로버트 쿠르비츠가 떠올랐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백만 단어가 넘는 텍스트를 담고 있어 소설보다 더 많은 글을 읽어야만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쿠르비츠 자신의 나라 에스토니아의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 게임을 기획, 제작 하였다.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는 다다이즘이나 플럭서스와 같은 문화 운동 집단이라고 말하며 게임을 통한 정치적 글쓰기 방법을 선택했다. ‘이제 소설은 너무 하찮은 게 되버려서 그걸로는 사람들을 열받게 할 수 없다.’고 말한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한 도구로 게임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제 소설로는 청년을 탈선시킬 수 없지만 게임으로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쌓아 내가 알고 있다 혹은 나는 행하고 있다고 하는 나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어떤 정의들은 게임을 통해 직접 선택을 해나가며 경험한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속에서 나는 인간의 마음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향한 인간이 가지는 특권 의식과 차별, 혐오의 마음이 경멸스러웠다. 모든 것을 인간이 조종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한탄스러웠고, 그것이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꽤 가깝게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들에 대한 것 뿐 아니라 인간이기에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연과 동물들에 대한 태도에 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많은 SF 작품들 속에서처럼 인간은 세상의 한 줄기 빛, 희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존재를 파멸시키고 스스로도 사라져 없어질 지구의 오랜 역사 속 한 점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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