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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캠핑 vs 함께 캠핑

 

이전엔 국내 여행에 ‘여행’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놀러 간다고 표현했다. 내가 여행이라 이름 붙인 해외여행에 나선 것은 탈혼 직후인 1995년이었다. 이전엔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던 해외여행은 88올림픽 이후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그건 나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직장과 집이란 직장을 오가느라 관심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직장에서 고위층에게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연수의 기회를 주었고, 때로 관리자라는 명목으로 하위직도 데려갔다. 물론 남자였다. 고위층이 되지도 관리자로 선택받지도 못한 여자 선배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급기야 목소리 큰 선배가 여행계를 조직하자고 나섰다. 1년 후인 95년 16명의 여자 직원들은 단체로 휴가를 내고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것이 첫 ‘여행’이 되었다. 이 경험은 이후의 삶에 꽤 영향을 끼쳤다. 사막에 세워진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은 상상을 초월했고, 낭만적인 해변이든, 두려움의 화신이라는 화산이든 자연은 살아 있었다. 10시간을 달려야 다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광활함과 본 적 없는 넓고 높은 나무들도 한국이란 나라를 시시하게 만들었다. 물론 좁은 공간의 다람쥐 쳇바퀴 삶을 살아왔던 나의 초라함도 자각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더 크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던 당시의 정확한 표현은 ‘과부 생빚을 내서라도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에 가리라’였다.

IMF와 코로나 시대를 빼고 나는 이 약속을 지켰다. 다행히 여행 마니아 남자 친구도 만났다. 그는 음악평론가였는데, 작가라는 핑계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라도 해외를 떠돌던 사람이었다. 비슷한 나이임에도 다양한 여행경험을 가진 그의 앞에서 첫 여행만으로 들떠 있던 나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리고 여행을 위해 더 용감해 졌던 것 같다. 1996년 그가 여행을 제안하자 나는 간 크게도 20일 휴가를 가겠다며 나섰다. 연휴가 있어 주말을 포함하면 28일간의 휴가였다. 목적지가 호주로 정해진 것은 순전히 값싼 비행기 표 덕분이었다. 광활한 바다와 다양한 특색으로 가득 찬 섬과 해양 활동으로 채워진 이 여행은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도 마르지 않는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어 주었다. 즐거운 경험은 둘의 애정도 깊게 만들었다. 나쁜 영향도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기보다 신나는 여행을 위해 휴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와 헤어진 이후에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상대가 딸로 바뀌었을 뿐이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유럽, 이집트, 터키 등 유적지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딸이 대학생이 되자 그는 더는 나와 여행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래와 함께 하는 유럽 자동차 여행을 선택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함께 간 인도에서 그는 나와 취향이 다름을 분명히 했다. 공동체를 체험하고 싶은 나를 두고 그는 2박 3일 기차를 달리고 싶다며 혼자 떠나 버렸다. 그가 의료시스템의 선구를 찾아 쿠바여행을 홀로 떠난 이후 우리는 다시 함께 여행할 일이 없었다.

나는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내 여행의 취향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이즈음이다. 갱년기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바글바글한 관광지의 복잡함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광활함에 매료되었고 남미의 이국적인 자연에 끌렸다. 아마 오로라에 홀려 북극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 관광은 여행사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언어도 다르고, 대중교통이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소규모의 일행 속에서 홀로인 나는 자유롭게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어 좋았다. 방을 홀로 쓴다는 장점도 있었다. 음악 볼륨도 높이고 방이 지저분해도 좋았다. 무엇보다 새벽 시간 홀로 여기저기 산책하다 지각해도 나 혼자 사과하면 끝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퇴직 후 떠난 남미여행은 28일간 이어졌는데, 여행사는 혼자 온 사람끼리 같은 방을 배정했다. 그런데 도저히 맞지 않았다. 말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팠고, 너무 활발해서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이 산만했다. 방을 바꾸었지만 한번 틀어진 감정은 끝까지 회복되지 않았고, 긴 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2019년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었다. 해외여행은 막혔고 국내로 눈을 돌려야 했다. 이때부터 나는 ‘여행’이라는 용어를 국내 여행에도 붙였던 것 같다. 역사를 전공했던 나는 국내에서도 유적지를 좋아했다. 딸이 중학생이 되어 휴일에 혼자 여행이 가능했고, 나는 당일 여행이 가능한 유적지부터 시작했다. 가까운 유적지는 많지 않았으므로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방문했다. 고대부터 근대 유적지가 모인 강화도는 10번 이상 방문했고 시간이 나면 고궁이나 조계사 등의 사찰을 기웃거렸다. 저녁이면 서둘러 돌아와야 해서 홀로 여행이 훨씬 좋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국내 여행에서도 유적지는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근처의 중랑천을 거닐다가 한강의 그늘막으로 옮겼다. 그리고 휴양림의 통나무집에서 숲속의 나무를 감상하다가 캠핑으로 옮아갔다. 통나무집 속에서는 숲과 내가 따로였던 것이, 텐트 속에서는 숲과 일체가 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혼자였지만 마음이 내킬 때 훌쩍 떠날 수 있어 좋았다.

혼자 차에 짐을 싣고 텐트에서 밤을 보냈다. 여름엔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젖었고, 가을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코로나로 한정된 공간에 질릴 무렵이라 홀로 캠핑은 숨통을 틔워주었다. 그러나 홀로 캠핑의 불편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집단의식이 투철한 한국에서 여자 홀로 캠핑하는 눈은 곱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은 “혼자세요?”라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고, 꿋꿋하게 혼자 장작을 피워도 뭔가 쓸쓸함이 묻어났다. 하하 호호 옆 텐트 속 대화는 물소리를 즐기는 나의 낭만을 쑥스러움으로 둔갑시켰다.

사람이 그리워졌고 사람을 찾아 나섰다. 5060 여자들의 여행밴드에 공지를 띄웠다.

“캠핑 소모임을 만들면 어떨까요?”

몇 명이 연락해 왔지만, 당장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날짜를 공지하세요. 그날 일정이 맞으면 함께 갈게요.”

“떠나는 사람끼리 준비물을 분담한다고요? 그럼 빠질게요.”

심지어 “침낭만 가지고 가면 되나요?”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1명만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카톡으로 계획을 주고받으며 야영장을 예약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일기예보도 챙겼다. 하필 그날의 일기는 전국적으로 비, 영동지방의 폭설이었다. 다행히 우리의 목적지 춘천은 비였고, 밤에도 1.7mm의 눈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날 날씨는 일기예보와는 아주 달랐다. 초저녁의 눈비에 이어 함박눈이 밤새도록 쏟아졌기 때문이다. 야영장에서 처음 만난 그는 큰 키에 어른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함께 텐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혼자 낑낑대며 텐트를 쳤던 경험, 작은 텐트 속에서 보냈던 갑갑한 밤을 떠올리며 함께 해준 그에게 감사했다. 음식이 푸짐해진 것도 함께 여행의 장점이다. 나는 음식에 서툴렀고, 야외에서의 한 끼 식사를 위해 주방용품을 챙기는 것도, 장시간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햇반 2개와 라면 2개, 파김치는 제가 챙겨갈 테니, 나머지 드시고 싶은 건 챙겨오세요.”

햇반과 파김치만 나열된 저녁상에 더하여 그가 챙겨온 과일과 간식을 보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날따라 환상적인 경치로 감탄사를 나눌 사람이 생기니 마음도 따뜻해졌다. 눈 감상을 위해서는 오돌오돌 떨 망정 텐트 문을 닫을 수 없다는 감정이 통하니 웃음도 풍부해졌다.

그러나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1인용 전기장판을 나누기 위해 몸을 밀착시키기가 조심스러웠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가치관의 차이도 드러났다. 농촌에서 시부모 모시고 큰 살림을 해 온 그는 끓는 물을 물통에 담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다며 불편해했고, 나는 그가 준비해온 음식물의 방대함에 기가 죽었다. 초라한 저녁 식사에 이어 아침에도 라면과 파김치만이 놓인 밥상을 보며 만족스러움이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에 눈치도 보였다. 계속 쌓이는 눈을 보며 내일 귀갓길을 계속 걱정하는 그가 나는 못마땅했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풍경만 즐기는 나를 답답해하는 듯했다. 감정의 차이도 드러났다. 밤새 내린 눈으로 산속은 눈이 부셨다. “너무 좋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무 실컷 봐서 그런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의 대답에 내심 섭섭함이 느껴졌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그의 얼굴에는 지친 표정도 느껴졌다. 결국, 나는 홀로 산책을 나섰고 함께 머물렀던 캠퍼들의 동향을 살폈다. 그중에는 귀가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었다.“이런 풍경을 언제 또 구경하겠어요? 하루 더 머무르고 싶은데 먹거리가 없어서 고민이네요.”

건너편 텐트의 남자가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이런 경치는 날이면 날마다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 그도 동의했다. “특별한 일은 없어요. 하루 더 묵어도 괜찮아요.” 그러나 그 말 뒤에 그는 덧붙였다. “오늘 드럼도 연습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해서 걸리긴 해요.” 그의 결심에 찜찜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관리 사무소에 하루 더 머무르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모자라는 식량을 구걸하러 다른 텐트를 기웃거렸다. 겨우 확보한 쌀과 김치를 양손에 들고 텐트로 돌아와 보니 그는 짐을 챙기고 있었다. “관리 사무소에서 떠나라고 통보해 왔어요.” 그래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와 달리 그는 자신의 차가 미끄러운 길에 취약하다며 서둘러 차를 피신시켰고, 그 과정에서 길이 막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그가 떠난 후 나 역시 관리 사무소로부터 쫓겨나 텐트를 챙겼다. 둘이 와서 혼자 텐트를 걷는 마음이 묘했다. 도중에 나는 설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차를 몰다가 미술관이 보이면 들르고 맛집이 보이면 식사도 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급하게 집으로 돌아간 그의 안부 전화를 받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홀로캠핑이 좋은지 함께 캠핑이 좋은지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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