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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 <사랑의 고고학> 영화 후기

Ming 2023.01.13 16:13 조회 수 : 677

<사랑의 고고학> 영화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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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이 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예의를 다 하는 영실이 있다. 천천히 숨을 쉬고 느리게 움직이면서 더딘 시간을 살아내는 그녀가 있다.

 

물이 되어 같이 흘러요

영실은 이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남자 인식과 8시간 만에 연인이 된다. 시작부터 절대적 사랑을 약속하라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 인식이 작업한 음악이 ‘유약하기 때문’ 이다. 사람들 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의 눈치마저 살피는 영실에게 유약함은 자신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을 닮아 유약한 남자에게 물이 되어 같이 흐르자는 영실, 그들의 유약함은 ‘절대’와 ‘물’의 언어처럼 얼개가 틀어져버린 동일시이다. 너의 전부를 갖겠다던 제 말 대로 인식은 이내 그녀를 제 것 마냥 흔들어댄다. 첫 잠자리에서 인식이 영실의 ‘과거들’을 추궁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너절한 관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어느새 ‘헤픈 여자’가 되어있는 영실과, 그녀의 ‘활성화’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인식, 연인의 거듭되는 짜증에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는 영실의 이야기… 8시간의 기대는 8년의 위협이 되어버리고, 고고학자인 영실은 유물처럼 놓인 이 8년의 기억을 거슬러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비단 인식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녀에게 무례하다. 조롱하듯 영실의 마흔 나이에 대해 질문하지만 정작 그녀의 답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영실에 대해 알려고 들지 않으면서도 멋대로 그녀를 단정하고 쉽게 수군댄다. 그래서 영실은 서동요의 이야기가 싫고, 뭇사람들의 오해와 조롱에 속수무책인 선화공주가 불쌍하다. 영실의 집에 빌붙이 중인 동거인의 신경이라도 거스를까 방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어려운 그녀는 이 숨막히는 조심을 ‘인간적인 예의’라고 설명한다. 인간적인 예의…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그녀의 예의, 영실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내어줄 때에 아끼는 법이 없다. 8년의 습작시를 인식에게 통째로 내어줄 때에도, 인식이 만든 노래에 작사가의 흔적 하나 넣을 수 없을 때에도 영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그녀는 이 예의로 인해 무시당한다. 사람들은 이 만만한 여자에게 쉽게 무례하고, 그녀의 느릿한 흐름은 웅덩이를 늘리듯 조롱으로 귀결된다.

 

있는 걸 어떻게 없는 척

영실의 유약함이 완고함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정직하고, 지루할 정도로 고지식하다. 인식이 ‘영원’의 약속을 먼저 깨어버리기까지, 영실은 매장돼버린 화석처럼 8년을 인식에게 묶여있었다. 4년은 연인이었고, 이별 후 또 4년은 무엇인지도 모를 관계로 약속을 지켜내는 일, 영실이 인간에게 갖는 예의이자 타협을 모르는 완고함이다. ‘더럽게 힘들지만’ 끝까지 약속을 지켜내는 일, 일방적인 이별의 통보를 ‘차분히’란 메모로 다독이는 일, 그녀의 고집이다. 영실은 유연하지 않다. 인식의 유약함을 읽어내지만 자신과 닮아있는 유약함 만을 읽어낼 뿐이다. 이별 뒤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의 말에 오랫동안 관계를 헷갈려 할 만큼 민감하지 못하고, 매일 인식과 통화를 하면서도 그가 이미 오랜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한 사실은 결국 타인을 통해서야 듣게 된다. 사람들의 비틀린 악의에 망연한 영실을 두고, 상대방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한다는 심리상담사의 진단은 맞지 않다. 오히려 그녀는 너무 영실인 채로 굳어져서 타인의 경망을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의 예의가 번번히 무례로 돌아오는 시간을 반복할 뿐이다. ‘본성을 거슬러도’ 지켜내겠다던 연인과의 약속은 그녀의 본성으로 인해 굳건하다. 그녀를 마음껏 누비는 군상들이 실현해내는 찌질함을 떠올리면 영실의 예의는 미덕 역시 되지 못 할 것이다.

있는 걸 없는 척 할 수 없고, 없는 걸 꾸며낼 줄 모르는 영실에게 인식은 엄연히 놓여진 시간이다. 처음 인식의 유약함을 발견하고 잠시 가뿐하게 흐르던 영실의 시간은 연인의 무시와 짜증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고인 듯 느리게 지속된다. 제자리에서 한 걸음을 떼지 못 하게 되풀이되는 비난과 사과의 말들, 동어반복의 피로함으로 가득한 스크린의 시간들…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버리고 싶은 충동은 수 만 배로 영실이 감당해낸 시간이기도 하다. 3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에서 몸을 뒤채며 그녀의 지리한 시간을 느껴내는 동안, 영실이 지층의 저 어딘가에 박혀 제 몸에 켜켜이 시간의 흔적을 쌓아올리는 무거운 유적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완고하게 제자리에 박혀 더디게 흐르는 시간들을 견디고, 뭇것들이 함부로 드나들며 가하는 생채기를 감내한다. 그리고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묵연히 응시한다, 날 것의 말들을, 지난한 기억들을, 상처의 흔적을, 영실이 누구인가를.

 

 어떤 작가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최선을 다했대

 그치, 뭐라도 하게 되지, 불안하니까

 불안함? 호기심이 아니고?

불안과 호기심,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의미일 것이다. 삶을 미지로 살아내는 우리에게 시간이란, 어느 날은 신경증적 불안으로, 또 어느 날은 근거 없이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얼굴을 바꿔 다가온다. 불안해서든, 호기심에서든, 찰나마다의 변화를 넘어, 아무것도 안 하려는 최선까지를 포함해 뭐라도 하게되는 것은 생명을 가진 자들의 숙명이다. 천천히 움직이는 영실은 빠르게 걷는 이들에게 연신 어깨를 채여가면서, 더 많이 소모되면서 산 자의 몫을 치르는 중이다. 이제 ‘쉬고 싶다’고 말하는 영실의 희망은 경쾌한 흐름, 바위처럼 박힌 자리에서 물이 되어 흐르는 일이다. 그래서 영실이 놓을 수 없는 호기심은 굳어버린 시간을 도란도란 흐르게 해줄 정다운 사람이다. 제 발에 꼭 맞는 운동화를 맞춰 신고 해변을 가볍게 달리던 날처럼, 느리게 흐르는 자신의 유속을 닮아 서둘러 앞서가지 않으면서도 함께 가뿐한 시간을 살게 해 줄 누군가이다.

영실은 굳어진 채로 흐르고 싶고 묵직한 채로 가볍고 싶다. 이 모순을 가능하게 할 엄청난 행운은 차라리 환상에 가까울지 모른다. 고양이의 배설물 하나에 문득 희망을 떠올리던 어느 날, 영실은 우도를 생각한다.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을 닮아 식재 일을 하고,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으려는 자신처럼 벌목을 대신해 옮겨 심는 노력을 마다 않는 남자, 우도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기대는 불안의 얼굴을 잊지 않는다. 호기심이 새겨놓은 상처의 기억들은 이 회귀의 패턴을 깨어내는 사치가 환각과도 같은 일임을 경고한다. ‘지겨워졌어.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거, 추잡한 거 같기도 하고,’ 이내 실망으로 바뀌어버릴 꿈을 꾸느니 영실은 홀로 가벼워져 보려고 노력한다. 분리수거로 짐들을 덜어내고, 제 목소리를 담은 잡지를 기획하고, 자신을 위한 노래를 만들면서 혼자 걷는 일에 집중해본다. ‘두 발로 걷고 싶어. 환상 없이 살고 싶어. 그럴 만큼 강하게 환상 없이.’ 그녀가 만든 유쾌한 멜로디의 가사처럼 혼자 달려보는 영실, 이제 그만 일어나라며 그녀를 꿈에서 흔들어 깨우는 다음 씬이 야속할 따름이다. 자신의 두 발로 걸어보는 꿈, 환상 없이 살아보는 환상을 디뎌본 것도 잠시, 홀로 버텨보던 영실의 발걸음은 어느 새엔가 우도의 작업장을 향하고 있다.

 

영혼이 닮았다 해서 우린 서로를 보완하지 못 했어

‘이런 데서 뭔가를 찾을 가능성이 커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만.’ 오늘의 발굴을 위해 유구의 실마리를 찾고 또 찾는 고고학자, 발굴하기를 바라는 고고학자가 되어, 발견되기를 바라는 유적이 되어 기대의 끝을 확인하고야 마는 지난한 작업들이 쓸쓸하다. 영실은 우도의 공간에서 8시간을 함께 머문다. 또 8시간… 그녀는 이미 우도가 자신의 시간을 흐르게 해 줄 미래가 아니란 것을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자신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남자일지라도 기대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을런지 모른다. ‘영혼이 닮았다 해서 우린 서로를 보완하지 못 했어… 우린 그것을 함께 봉했어 이미.‘ 엔딩 크레딧을 느리게 맴돌던 노래가사처럼, 지층처럼 쌓인 그녀의 시간은 다시 한 번 무겁게 봉해진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 자신의 집에 홀로 들어가는 영실과 가두듯이 쿵 무겁게 닫혀버리는 문. 집에 들어서기 직전 건물 밖 세상을 향하던 영실의 마지막 응시, 바깥 먼 데를 향해 잠시 고정되던 그녀의 시선이 머물던 곳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이 영화는 영실을 꼭 닮아있다. 애써 꾸미려 들지 않고 제게 없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각색을 택하지 않은 대사는 날것이고, 모노톤의 화면은 변화에 고집스럽다. 짜임새 있는 구성의 센스는 없어도 각인된 기억들을 정직하게 내어놓을 줄을 안다. 흙을 막 털어낸 날얼굴 그대로, 박물관의 아련한 조명 필터도 없이 기억의 편린들이 관객들에게 나열될 뿐이다. 시간에 바랜 듯, 피로한 듯, 숨을 죽인 기억의 유물들은 전시까지가 제 몫이었던 듯 이제는 적막하다. 발굴해 보여주는 일에 몰두하던 영화는 다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침묵의 말들이 무거워서일까, 받은 백지 위에 무어라도 채워야 하는 학생이 된 것 같은 곤궁함이 일어난다. 뭇사람의 오해에 지나지 않는 말이 될지라도 대답하기 위해 그녀가 내어놓은 사금파리들을 먼 데서 다시 한 번 쓸어본다. 이제는 백지 위에 영실을 따라 느릿하게 애틋하다, 라고 쓴다. 어제의 편린들을 낱낱이 응시하고 오늘을 살아낼 숨소리를 고르는 이의 집중이 애틋하다. 그러니 오늘의 그대는 살아있다,라고 쓴다. 함께 시간을 호흡할 이를 기다리는 오늘의 기대가 맥동하는 고요처럼 서럽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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