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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 여행

lavabo 2023.01.03 13:55 조회 수 : 527

여행

나는 집을 나서서 걷기 시작하면 그대로 세상 끝까지 걷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바깥 공기와 걷는 동작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그런 충동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멀리로 시선을 향하면 대지와 하늘이 맞닿는 경계는 어김없이 여러 겹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은 멀어질수록 단계적으로 빛깔이 옅어지고 높아지는데, 나의 시선은 언제나 가장 멀리 있는 가장 높은 산에 붙들렸다. 그 아득한 능선을 보고 있으면 신비한 빛깔과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에 매혹됨과 동시에 가슴속에서 그 너머를 향한 동경이 차올랐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 너머에 대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바다.  

학력고사가 끝나고 친구 셋이서 무전여행을 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버스에서 처음 내린 곳은 강원도였다. 우리는 대자보 용지만 한 대한민국 전도를 접어 가지고 다니면서 국도를 따라 걸었다. 배낭에 부루스타, 코펠, 쌀, 김치, 고추장, 된장, 양파, 감자를 지고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개울이나 공용수도가 있는 곳에서 밥을 해먹었는데, 한번은 밥을 하던 일영이 비명을 질러서 뛰어가보니 얼굴이 피투성이가 돼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고추장 단지가 터지면서 고추장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눈이 매워서 우는 거였다. 우리는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히치 하이킹을 했고, 밤에는 지방 사는 친척집을 찾아다니며 잠을 잤다. 하루는 봉고차를 얻어 탔다. 운전사는 이십 대 중후반의 남자였는데, 우리를 유난히 반기더니, 우리한테 같이 비비러 가자고 했다. 춤을 추러 가자는 뜻이었다. 나와 일영이 그 말이 우스워 까르르 웃으니까 남자는 그걸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는 짝을 맞춰 같이 갈 친구들을 데리러 간다면서 차를 돌리려고 했다. 그때 경선이 다급하게 남자를 제지하면서 작은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서 못 간다고 잘라 말했다. 남자는 보기 안쓰러울 만치 실망한 얼굴로 우리를 원래 목적지에 내려줬다. 그가 우리를 꼬시고 싶었다면 비비러 간다는 표현을 쓰지 말았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차가 봉고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봉고차 괴담이 끊이지 않았다. 봉고차가 골목에서 여자들을 납치해 판다고 했고, 어느 시골에선 동네 여자들이 밭일 간다며 봉고차를 타고 갔는데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봉고차가 떠나자 경선은 인신매매 당하는 줄 알고 무서워 죽을 뻔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계령을 넘을 때 서로 무거운 쌀을 안 들겠다고 싸웠는데,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쌀을 들게 된 경선이 고갯길을 오르는 내내 골 난 얼굴로 뒤쳐지던 게 기억난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고개를 넘은 끝에 철 지난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했다. 방풍림 너머로 비릿한 냄새와 함께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뛰는 내내 배낭에서 코펠이 요란한 소리로 딸그락거렸다. 그 여행에서 우리가 바다를 향해 몇 번이나 뛰었을까. 모래 사장 너머로 파란 바다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나는 매번 처음처럼 가슴 설렜다. 마음 같아서는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물이 너무 찼다. 나는 파도와 마주서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는 수평선이 있었고, 나는 또 그 너머를 향한 아득한 동경에 사로잡혔다.

 “대학 붙었어.”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가 대문을 열며 말했다. 그때 나는 대학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난 건 발표까지의 불안을 견디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불안이 엄습하면 그것을 피해 도망칠 궁리부터 했다. 대학만 들어가면 걱정이 없을 것 같더니 4년 후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자 또 앞날이 막막했다. 학교에 계속 다니는 게 제일 쉬운 선택이라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동해에서 바라보았던 수평선 너머, 대륙의 반대편에 가게 된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여행을 더 열심히 다녔는데, 이집트의 피라미드 앞에 섰을 때는 내가 이런 곳까지 오다니 정말 멀리 왔구나 하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카멜의 광고 사진에서 보던 거대한 삼각뿔이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나는 19살 때 국도변에서 본 석양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시골길을 걷다가 논두렁에 주저 앉았다. 나는 짚단에 기대 앉아 그것이 소파처럼 푹신하고 따뜻하다는 데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 빈 논의 손바닥만 한 물웅덩이에서 오리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는데, 해가 넘어가면서 물웅덩이와 오리가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것을 본 적 없었고 감동한 나머지 죽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흔하디 흔한 시골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피라미드의 석양 앞에서 그때만큼 감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우리는 더 귀하고 화려한 걸 경험할수록 감동의 크기가 커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감동의 크기는 외부 자극보다 우리가 지닌 센서의 감도에 더 크게 좌우되는데, 우리의 센서는 최초의 자극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 나이 들수록 둔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강렬한 감정적 경험은 인생 초반에 몰리기 마련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가는 장소마다 거기서 느낀 감동을 논두렁의 그것과 비교하다가 기억이 흐릿해져 논두렁의 감동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게 되고서야 비교를 그만 뒀다.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이면, 피라미드의 석양이 그것을 보다 죽어도 좋을 만큼 좋지는 않았다는 거지 좋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한국에 돌아와 영화를 만들었다. 나는 영화 한 편을 만들 때마다 그게 완성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뭘 기대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나의 시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향하고 있었으나 정작 그 너머에 대한 상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죽을 동 살 동 해가며 산봉우리를 넘는 데는 그 너머에 뭔가 좋은 게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충분했다. 영화를 완성했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하나의 봉우리를 넘으면 다음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영화를 만들려면 시나리오를 써야 했는데, 그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진부한 아이디어만 떠오르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걸 뜻했다. 시나리오 이후의 제작과정도 쉽지 않지만, 그 막막한 시간에 비하면 어떤 것도 견딜만 했다. 나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목적으로 영화를 끝내자마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잠시도 한곳에 머물지 못했다. 여행 내내 나를 끌고 다닌 건 미지에의 동경과 현실도피 욕구였다. 미지에의 동경이 당근, 현실도피욕구가 채찍, 나는 당나귀였다. 내 눈 앞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당근이 매달려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종일 지치도록 걸었다. 가다가 언덕이 나오면 그 언덕을 넘어가보지 않고는 못 배겼고, 길 모퉁이가 나오면 그 모퉁이를 돌아가보지 않고는 못 배겼다. 나는 잠깐 앉아 쉴 자리를 찾을 때도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하면서 언덕을 넘고 모퉁이를 돌았고 중간에 맘에 드는 데가 있어도 가다 보면 더 좋은 데가 나올 지 모른다는 기대로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중에야 아까 거기 자리를 잡을 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온 뒤였다. 얼마나 많은 언덕을 넘고 얼마나 많은 모퉁이를 돌았을까. 언덕 너머엔 언덕 이편과 비슷한 마을이 펼쳐지고 모퉁이 너머엔 길 이편과 비슷한 길이 이어진다는 걸 수도 없이 확인했지만, 나는 그 너머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당근의 유혹만으로는 나를 그처럼 가고 또 가게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불편한 감정을 피해 그 먼 곳까지 도망쳤으나, 그것은 내가 어딜 가든 나를 따라다녔다. 어디에 도착하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나는 텅 빈 한글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인터넷을 열면 좀 전까지의 현실을 까맣게 잊게 되는 것처럼 그곳에서 나의 현실을 잊게 되길 바랐다. 그러나 어떤 장소도 인터넷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내가 여행 내내 가장 열을 내서 한 일은 다른 곳으로 갈 차표를 구하는 거였다. 차표가 늘 쉽게 구해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때마다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다는 절박한 심정이 돼서 차표를 구하는 데 매달렸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도망치다 보면 늘 너무 빨리 최종 목적지인 출국 장소에 도착하게 됐다.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집에 돌아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린 꼴이 된 것이다.

여행이 재미없었던 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쫓아다니거나 피해 다녔든 그건 맥거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쫓거나 피해서 전에 가본 적 없는 곳까지 멀리 갔고, 그 과정에서 세상 구경을 실컷 했다. 그런 여행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리를 다쳐 몇 년을 집에만 앉아 있게 됐다. 장소라도 바꿔 앉아 있으려고 여행을 갔다. 앉아만 있으려고 했지만, 거기까지 가서 앉아만 있는 건 케이크를 손에 들고 안 먹는 것처럼 불가능했다. 나는 하던 대로 저 모퉁이만, 저 언덕만 하면서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다녔고, 방콕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너덜너덜해져 더 걸을 래도 걸을 수 없게 됐다. 마침내 계획대로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됐다. 나는 종일 방에 있다가 답답하면 마당에 나가 앉아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면 동네를 살살 걸었다. 숙소는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었다. 숙소 옆에 한강공원 같은 공원이 있고 공원 입구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는데, 나는 거기 드나들며 동네 사람들과 친해졌다. 여행 다니며 현지인과 친해진 건 처음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에 들러 사람들과 어울렸고 아침에는 그들을 따라 공원에서 운동했다. 방콕의 아침은 해뜨기 전부터 후덥지근했는데 강가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공원을 도는 동안 나는 정자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했다. 강물을 마주하고 앉아서 요가를 하노라면 강물이 수없이 많은 붉은 색으로 붉어지다가 강 건너로 붉은 해가 쑥 올라왔다. 나는 해가 빌딩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고 나면 매트에 누웠다. 누워서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으면 강물 쪽에선 파도 출렁이는 소리가, 공원 쪽에선 새들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고, 머리 위론 정자의 천장 위에 꼼짝 않고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이 보였다. 더는 어딘가로 가고 싶은 조바심이 들지 않았다. 빨간 구두의 소녀를 쓰러질 때까지 춤추게 한 게 빨간 구두의 욕망인 것처럼 나를 지치도록 걷게 한 건 다리의 욕망이었을까. 나는 잘 걸을 수 없게 되고서야 한 자리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곳 생활을 숨막혀 하다가 집을 떠나 동경하던 세계로 향한다. 수많은 성장서사의 원형적 이야기다. 주인공이 그곳을 떠나려는 건 자신의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한때 젊고 싱싱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믿기 힘든 뚱뚱하고 푸석한 외모에 무표정한 얼굴로 종일 집에 있거나 시계추처럼 직장을 오가고 저녁에는 만나는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술을 마시다 잠드는 생활을 한다. 주인공의 눈에 그들은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지만, 그들은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조차 상실한 지 오래다. 나는 주인공 나이 때 주인공과 나 자신을 동일시했고, 주인공의 시선으로 그의 부모를 봤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는 그 부모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어 보니 내가 그 부모를 오해했다는 걸 알겠다. 그들이 주인공처럼 어딘가로 떠나려 들지 않은 건 그 생활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생활은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서울에 돌아왔고 다시 집에 앉아 있게 됐다. 방에 앉아 있다 답답하면 집 앞에 나가 앉아 있었는데, 집 앞에 앉아 있다가 집 앞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해졌다. 밖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해진 건 처음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밖에 나가 고양이들과 어울리다가 고양이 반상회 멤버가 되었다. 고양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하는 일 없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고양이 반상회라고 부르는데, 전문가들은 고양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미스터리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다년간 참석해본 바에 따르면 그 모임은 동네 할머니 모임과 다를 게 없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매일 동네 입구에 있는 팔각정에 모여 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고양이를 일일이 쳐다보고 한마디씩 하면서 음식을 나눠 먹고 화투 치고 논다면, 우리는 우리 나와바리에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고양이와 사람을 살피면서 가로등에 꼬여 드는 나방을 잡아먹고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며 밤공기를 즐기는 것이다.  

사람도 곤충처럼 탈피하고 탈피할 때마다 신체가 바뀌고 서식지가 바뀌고 먹이가 바뀌면 우리 삶은 지루할 새 없이 다채롭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생각했다. 그러나 곤충에 비해 그 과정이 점진적이다 뿐 사람도 일생동안 적지 않은 폭의 변화를 겪는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가로질러 돌아다녔지만 나를 돌이킬 수 없이 먼 곳으로 데려온 건 시간이다. 시간은 장거리 기차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나는 줄곧 새로운 것 타령을 했지만, 그건 더 좋은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의 응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은 정색을 하고 내가 쥐고 있던 것을 빼앗아 차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내가 원했던 변화는 가진 것 위에 새 것을 더하는 거였다. 그러나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하는 법이다. 세상 끝까지 가고 싶던 충동, 바다를 향해 같이 뛰던 친구들, 물웅덩이에 노을이 지던 기억, 영화를 향한 짝사랑의 마음이 눈앞에서 과거형으로 바뀌어 갔고 지치도록 걷는 일마저 과거형으로 바뀌자 나는 그제야 모든 게 창밖으로 던져지리라는 걸 실감했다. 권력만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빈 자리는 득달 같이 채워지기 마련이고 나의 일상은 빠르게 생소한 것들로 채워졌다. 나는 어느새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졌고 또 그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그것도 머지 않아 과거형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모든 게 애틋하다. 매일 밤의 고양이 반상회는 물론이고 한글 빈 화면의 깜박이는 커서까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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