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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하나일지도 모를 두 세계

아리송

 

 얼마 전 온 동네에 갑작스러운 정전이 있었다. 나는 마침 스터디 카페가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에 있었고 흔들림과 함께 불이 꺼진 채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갇혀버렸다. 순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낙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체험했지만 비상버튼을 한 번 눌러봤을 뿐이다. 의외로 굉장히 덤덤하게. 다행인 건지 전기가 끊어진 시점은 스터디 카페가 있는 9층까지 다 올라간 뒤였던 듯했다. 열림 버튼을 누르니 문이 열리고 바닥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각한 상황이 또 있었는데 유리벽을 두고 스터디 카페 안과 밖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키오스크에 아이디와 비번을 눌러야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고, 안에서는 문 열림 버튼을 눌러야 밖으로 나올 수가 있는데 전기가 나가버리니 아무것도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서 안쪽 유리문 앞에 모여 있었고 나는 홀로 밖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대치 상태로 있는데 안에 있던 한 남성분이 문을 수동으로 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고, 나는 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오늘 갑자기 이 사건이 떠오른 건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이던가. 죽을뻔한 경험이 있다. 트럭 후미와 건물의 벽 사이에 내가 껴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미세하게 트럭의 각도와 속도가 달랐다면 그 자리에서 가슴이 눌려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트럭 기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듯했고,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딱딱한 트럭의 모서리를 가까스로 빠져나오던 기억. 그리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가던 기억. 나는 왜 그때 소리조차 지르지 않았을까?

 

 트럭에 끼었을 때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홀로 갇혀있던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저 이렇게 죽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저. 죽는 건가. 삶은 산다는 것이고 죽음은 죽는다는 것.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저 잘 죽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스터디 카페의 유리 벽 사이에 있던 나와 사람들. 그들은 갇혀있던 그 공간을 황급히 나갔고, 나는 그들이 있던 그 공간에 유유히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폈다. 아마 나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저 죽는 건가 하고 죽음을 맞이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침인가 하고 일어나고 밤인가 하고 잠을 청하는 삶처럼.

 

 사는 게 지긋지긋해질 때가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연구해 보지만 잘 되는 것 같다가 또 어떤 때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통틀어 보자면 삶이 지긋지긋하고 재미가 없다는 쪽이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가 훨씬 많다. 아주 가끔씩 놀랍고 경이로운 삶의 때가 찾아올 때도 있다. 나는 그 작은 순간에 기대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죽는다는 건 또 어떤 것일까. 죽음의 세계는 삶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빠진 계속해서 지긋지긋한 그런 곳일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세계가 때론 많이 궁금해진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라는 영화가 있다. 신의 딸이 아버지 신의 비밀의 방에 들어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남은 수명을 문자로 보내버린다. 영화에서 그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간다. 나에게도 그런 문자가 온다면 삶과 삶을 생각하는 방식은 지금과는 또 달라질까? 죽는다는게 두려워질까. 그런 문자를 받고 나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해볼 수 있는 그저 패기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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