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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진단] 사뮈엘 베케트 <몰로이> 발제

라우승 2021.10.01 17:48 조회 수 : 98

의미없음에서 의미를 창출하다. 《몰로이》(사무엘 베케트, 문학과지성사, 2008)

 

작품 및 작가 평가

『몰로이』(1951), 『말론 죽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자』(1951)는 현대 문학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로 평가된다. 소설 작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메타 소설로써 누보로망의 선구적 작품이라 한다.

누보로망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조로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하는 소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소설을 목표로 하는 문학 현상이다. 소설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 창작기법 거절한다. 전통적인 소설에서 인간의 본성은 보편적, 일정 불변성이 있다고 가정하지만, 누보로망에서는 개별적이고, 가변성이 있다고 본다. 사건전개도 전통적인 소설에서는 시간적 순서로 진행하나, 누보로망에서는 현실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다. 또한 이 소설은 메타소설로 주인공인 화자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작가 역시 일인칭 서술자로 등장한다.


『몰로이』의 플롯은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몰로이에게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은 일생의 관심이다. 몰로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싶지만, 막상 만나게 되면 아무것도 진척시키지 못하고 만다. 즉, 그는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자신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 서게된다. 소설속에서는 그는 어머니를 찾아 길을 나서면서 겪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의 여정은 실패의 과정이다.

나는 스스로, 그리고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향해 가곤 했는데, 그런 것 같다. 그 목적은 우리의 관계를 좀 더 흔들리지 않는 근거 위에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어머니의 집에 있을 때는, 난 자주 그곳에 갔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떠나오곤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을 때는, 난 또다시 어머니를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다음 번에 더 잘하리라는 희망으로. (128)

어머니(혹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얼게는 여행의 서사를 그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유사하지만, 단선적이고 교훈적인 오디세이아와는 달리 『몰로이』는 명확하지는 않다. 그의 여행은 숲 가장자리 도랑에 빠지면서 끝이 났지만, 그것은 숲으로부터 벗어남이었지, 어머니와의 만남은 아니었다.

 

『몰로이』는 인간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적 자각을 소설로 표현한 작품이다.

배케트는 도덕적 가치관의 부조리함에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다른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 가치가 타당한지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은 무한이 반복되며,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조리하다. 즉, 진실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베케트는 이런 자각하에서 예술가의 길은 실패하는 것이라는 예술적 신조를 보여준다

베케트는 런던에서 머물고 있으면서 ‘무지’에 대해 자각을 겪고 자기 작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한다.

우리는 아는 것만을 말할 수 있는데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그것을 실패할 수 있다. (중략) 임의적 약속에 불과한 언어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진실의 근사치일뿐이므로 참된 자아를 표현하는 것 또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p.274)

그 뒤로 그의 작품은 획기적인 전환을 꾀한다. 그가 이상형으로 꼽고 있으며 넘어서고자 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서는 전지전능한 주인공이 등장했지만, 그는 1인칭 ‘나’를 통해 무지의 어둠에 휩싸여 있는 자아세계에서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술회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는 불가능과 무지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행위를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표현할 수단도, 표현할 능력도, 표현할 욕구도 없고, 다만 표현할 의무만 갖고 있는 존재'(p.275)가 작가이며,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감히 실패하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실패는 예술가의 세계’(p.274)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글쓰기라는 형벌을 받고있는 감옥에서의 탈출방법으로 '말로써 지면을 공백없이 꽉 채워버리는 쪽을 택'(p.275)한다. 채운 내용은 의미없음이다.

 

『몰로이』에서 작가는 세계에 대해 단정짓기를 거부하고, 주인공은 자아찾기를 실패한다.

의미없음의 첫 번째는 주인공의 자아찾기에서 보여진다. 인물의 내면과 외면의 자아분열로 인해 텍스트 안에는 한 인물의 모든 생각을 총괄하고 신체의 모든 부위를 주관하는 단 하나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면적으로는 회상하는 주체로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몰로이와, 과거 경험의 주체로서의 몰로이가 함께 등장한다. 또 '명령들'과 '목소리'들이 존재하며 그 중 두 녀석은 그에게 '정지'와 '전진'이라는 상반된 요구를 하고 몰로이는 그들의 요구에 차레대로 응한다. 외면적으로는 '나'와 '내 몸', '머리', '내 손', '내 다리' 같은 외면의 육체는 나를 진단할 줄 아는 개별적인 주체로서 존재한다. 이 모든 분열된 자아들은 모두 움직임의 주체이다. 전통적 방식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주인공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어 당황할 수 있다. .

주인공 몰로이 자신 조차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가까스로 생각해 내며(p.33), 어머니를 찾아 가는 길을 잊고 있지는 않으나 그의 의식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으로 더 이상 어머니 찾아가기를 포기한다. 그가 어떤 의식/목적을 가졌는지 판단하기 곤란하다.

그는 자신의 단일한 자아를 찾지 못했다. 그의 여정은 실패였을까? 여행 마지막에서 그의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다행히 내가 그 모든 비참함을 꺠닫지는 못했어도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던 그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걱정하지말라고, 나를 도와주러 오고 있다고, 내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p.134)왔다. 그는 다중의 자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여정은 성공한 것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진실을 재현하기에 부족한 언어로 작업해야하는 작가로서의 자각은 확고한 의미생산을 거부하는 글쓰기로 이어진다

언어가 진실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그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의 모든 요소들을 불확정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다중의 자아가 등장하면서 누가 몰로이인지 알 수 없고, 그가 만나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또한 글의 전개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 읽으면서 일관된 의미를 찾기 어렵다.

들뢰즈는 베케트가 무의미 기법을 이용해 언어의 영토를 확장한 창조적 작가라 평가한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이상적 문학은 원본에 대한 성실한 모사를 실현하는 '재현의 문학' 아니라, 실페한 모사가 만들어내는 '차이의 문학'이다. 미세한 차이들을 긍정하면서 그 차이들이 공명하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를 일궈내는 문학을 말한다.

'차이의 문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과 사물사이의 유사관계를 뛰어넘는 언어의 표면 곧, '언어의 바깥'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의 바깥은 사회적 규약에 지배받는 일상 언어 속에서가 아니라 언어의 '반통사적이고 비문법적인' 특성 속에서만 체험될 수 있을 뿐이다.그때서야만이 언어는 일상의 의미를 벗어던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일상의 언어는 사회적 규약과, 문화적 간섭을 받고 있으므로 임의적 약속에 불과한 언어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진실의 근사치일뿐이므로, 베케트는 재현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언어의 표면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케트가 추구한 방법은 목록을 열거하여 소진시키는 방법, 목소리 흐름을 고갈시키는 방법, 공간의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방법, 이미지의 모든 권능을 소진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몰로이』에서 사용한 방법은 우선 사물의 모든 가능성들을 열거한 다음 소진시키는 방법이다.

소진이란 모든 가능성이 고갈된 상태로 들뢰즈는 베케트가 『몰로이』에서 작품의 서사, 생각 들에서 의미를 제거하는 작업이 그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베케트의 작업은 언어의 모든 가능성을 버리도록 하는 소진이며, 소진은 결국 그의 작품의 목적으로 무(無)를 향한다. 몰로이가 루스의 집에서 본 달의 모습에 대한 묘사(p.58)는 달과 창살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묘사를 통해 의미를 소진시키는 작업이라고 보여진다. 다른 실례로서 그가 말하는 폐허라는 장소에 대한 묘사를 보면 장소에 대해 가지는 기대감을 모두 열거하는 방법으로 그 의미를 소진하고 있다.

그 장소는 우리가 찾아가는 그런 곳이 아니라, 때때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와 있으며, 원하는 대로 떠날 수도 없는 그런 곳이며, 또 우리가 아무런 기쁨은 느끼지 못하지만 어쪄면 노력하면 떠날 수 있는 장소들, 잘 알려진 신비들로 가득 찬 신비로운 장소들에서보다는 불만을 덜 느끼는 곳이다.(중략) (p.59)

또 다른 예로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그의 마음자세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의미를 소진하는 방법이다. 베케트는 어떻게 표현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기 떄문에 말로 꽉 채우되 침묵의 상태로 빠져버리게 하는 것, 즉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규약으로 둘러쌓인 말의 표면에 구멍을 뚫게 된다. 즉, 구멍은 그 없음의 경지를 볼 수 있게 하며 우리는 그곳에서 자신만의(혹은 새로운 창조적) 의미를 읽어낸다.

 

독자들은 어떤 몰로이를 만나고 있을까?

그렇지만 인간은 무질서에서도 질서를 찾는 자가 아닌가. 베케트는 읽는 독자에게 읽는 독자에게 자신만의 몰로이를 만들게 하여, 작품의 생명을 무한하게 연장시키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몰로이를 만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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