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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2

 집을 점유하고 있는 존재의 우위성은 사물보다 인간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남편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내가 결혼할 때 장만해왔던 장롱과 식탁을 이 집으로 이사올 때 버리자고 하였다. 그는 시야를 가로막는 건 무엇이든지 갑갑해하는 야생 동물과에 속한다. 하얀 정사각 식탁과 의자는 같은 부천에 살던 남편 친구네 주었고, 장롱은 중고가구상이 가져갔다.

서울로 오기 전 우리는 부천의 작동에서 6년 정도 살았다. 서울에 일터를 둔 신혼 부부들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부천이나 인천의 다세대 주택에 둥지를 틀던 시절이었다. 2호선 당산역으로 가는 연계 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동은 그린벨트 지역이었던 까치울을 택지개발한 동네로 마당이 있는 2~3층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어 인근 고강동 원종동과는 달리 편안한 분위기였다. 약수터가 있는 뒷산을 넘으면 서울 양천구 궁동, 오류동이 나오는 부천 동쪽 끝자락이다.

10년 전엔가 자동차로 부천 갈 일이 있어 우리가 살던 집을 찾아가 보려 했는데, 서울로 연결되는 터널이 뚫리면서 길도 새로 생기고 지형이 바뀐 탓에 그 동네조차 진입할 수 없었다. 아마 인간 내비게이션인 남편이 동행했더라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가 여름에 텐트를 치고 자연인처럼 혼자 지냈던 인근 야산은 아파트촌으로 바뀐 것 같다.

1992년부터 97년 봄, 아이는 안방 창문으로 마당의 살구나무가 보이는 전셋집 이층에서 돌 무렵부터 여섯 살까지 풍요로운 유아기를 보냈다. 세 살 된 아이가 삼단 서랍장 위에 올라가 앉아 아래층에서 잠시 데리고 온 노란 병아리를 보고 좋아하는 사진을 보면 창문 밖으로 살구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방 창문 밖으로 바로 보이는 꽃나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안방 창문을 열면 건너편 빌라의 창문이고, 조금만 각도를 틀어 윗 골목길 쪽으로는 내 방을 훤히 들여다보고도 남을 방범용 CCTV가 있는 동네에서 나는 현재 살고 있지 않은가!

그 시절 부천은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마을 보호수 같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는 둥그런 로타리가 있고 그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이동식 구루마에서 떡꼬치를 튀겨 고추장과 토마토케첩을 발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어른 입맛에도 잘 맞아서 아주머니는 얼마 후 그 앞에 조그만 분식집을 차릴 만큼 돈을 벌었다.

내가 살던 집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맨 위층은 30여평으로 중년의 공무원 가족이 살았고, 일층과 이층은 방 두 칸에 주방 겸 거실이 있는 15평 규모의 집이 두 가구씩 있었다. 3층을 제외하면, 여기서도 우리가 제일 오래 살았고, 다른 집들은 1-2년을 주기로 바뀌었다.

한 2년간은 강원도 철원과 홍천이 고향인 나보다 두어살 어린 애기 엄마들과 재밌게 지냈다. 그들은 나를 돌이엄마라고 불렀다. 내 아이 태명이 돌이였고, 어렸을 땐 줄곧 돌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을 누구누구 엄마라고 부르는 게 편했다. 음식 솜씨도 좋고 왈가닥인 그들은 자주 부침개를 부쳐 막걸리를 사놓고 이층에 있는 나를 불렀다. 돌이엄마~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놀았으며 엄마들은 둥그런 상에 둘러앉아 질펀한 수다를 떨었다. 그네들이 거침없이 뱉어내는 언어들은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이나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닮았다.

윤혜 엄마는 철원 와수리 술집에서 일할 때 윤혜 아빠를 만났다고 했다. 그는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일하는 목수이다. 수줍게 배시시 웃는 윤혜엄마는 술이 취해 잠들었다가 난로 연통에 데여 작은 입술이 약간 이그러져 있다. 그녀는 내 아이의 귓밥까지 잘 파주곤 했다. 내가 서울 갈 일이 있어 가끔 그 집에 애를 맡길 때 그랬다. 아이는 윤혜 엄마의 날씬한 다리를 베고 누워 침을 지일 흘리며 잠들곤 했다. 윤혜엄마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귀티 나게 생긴 돌이가 겨울이면 엄마 없는 아이처럼 손등이 빨갛게 터 있다고 나를 흉보곤 했다. 그때까지 몰랐다. 밖에서 뛰노느라 까실까실해진 손등은 따뜻한 물에 담가 불렸다가 이태리 타올로 살살 문질러 씻어주고 바세린을 발라주어야 한다는 걸. 윤혜엄마는 나와 달리 바지런하게 집안 청소도 잘하고 김치도 잘 담갔다. 깍두기 무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인, 아빠를 닮아 씩씩하게 생긴 큰 딸 윤혜와 엄마를 닮아 갸름하고 예쁘장한 신혜, 연년생 두 딸은 잘 웃는 돌이를 좋아했다. 윤혜엄마가 어쩐 이유인지 윤혜아빠와 헤어지고 마석 친정집으로 들어갔을 때, 민기네와 함께 애들을 데리고 놀러간 적이 있다. 봄이면 부천 여동생 네 집에 와 며칠 머물면서 뒷산 산나물을 잔뜩 캐오곤 하던, 몸이 어딘가 아프다는 윤혜삼촌도 캠핑장을 운영하는 넓은 그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그 무렵 ‘윤혜삼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여전히 공책에 일기 같은 걸 쓰던 때였다.

보험외판원까지 하며 억척같이 돈을 모으던 야무진 민기 엄마와 달리 윤혜 엄마는 아무리 거친 말을 해도 어딘가 슬퍼보였다. 한번은 내가 갖고 있던 VHS비디오카메라로 윤혜엄마, 민기엄마를 재미삼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윤혜엄마는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눈시울부터 붉혔다. 그래서일까, 내가 촬영을 계속 했는지 그렇다면 그 테잎은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윤혜엄마의 슬픔만 남아 있다.

80년대 말 영화운동단체에서 비디오물을 만들며 심장 뛰는 삶을 살았던 나는 하루 아침에 애엄마가 되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마냥 힘들었다. 낮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부천 다른 동네까지 한바퀴 돌다 오기도 하고, 아이를 유모차를 태우지 않아도 되었을 무렵부터는 70번 버스를 타고 버스 종점인 동네 어귀에서부터 당산역까지 한바퀴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는 어서 시간이 가기를 바랬다. 인터넷 소통이 활발한 때도 아니었고 서울의 변방 부천에 별다른 커뮤니티도 없던 시절이어서, 사회로부터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에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웃들의 눈에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먹물이었다. 반면 내 눈에 그들은 억척같은 민중 그 자체였다. 민기엄마가 돈을 모아 지층에서 일층으로 이사 가고, 윤혜네도 마석으로 간 후에도 나는 몇 년을 거기서 더 살았다. 어딘가로 넓혀서 이사 가거나 집을 불리고 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우리 부부였다. 남편은 프리랜서 영화 평론가로 정기적으로 보장된 수입이 없었고, 나도 백수나 다름 없었기에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남편은 보험이나 저축, 예금에 대해서 끔찍이 싫어했다.

아이가 너덧 살 될 무렵, 나는 경력 단절기의 우울을 끝낼 수 있었다. 남편에게 들어온 방송 다큐 연출을 내가 맡게 되면서 다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서른 중반의 애엄마인 나는 마치 애 엄마가 아닌 듯, 마치 결혼하지도 않은 듯 활동했다. 그때는 아줌마 티를 내면 사회에서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수퍼우먼 커리어우먼이 부상하던 90년대, 나는 다른 이들처럼 밤늦게까지 일하고, 심지어 밤샘 편집을 하기도 하면서 내 능력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무렵 영화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주목받던 위치에 있던 남편은 영화평론 일을 때려치고 3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내게 양해를 바라며 선언했다.

                                                                                                                                                        (다음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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