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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긴코

지현 2021.09.03 11:33 조회 수 : 457

제목-긴코 

<등장 고양이>

요다 : 중성화된 수컷. 태비. 우리 집에 사는 외출냥이. 새끼 적 얼굴이 스타워즈의 요다와 닮았었다. 

고소영 : 수컷. 태비. 우리 집 옆의 야적장에 산다. 고소영처럼 미인이고 코에 까만점이 있다.

긴코 : 수컷. 치즈. 우리 집 옆의 야적장에 산다. 

찰리 : 수컷. 턱시도. 우리 집 옆의 야적장에 산다. 찰리 채플린처럼 코 밑에 까만 수염이 있다.

  

봄에 이사 왔을 때 야적장엔 검정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창문으로 들어와 요다 밥을 훔쳐먹곤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겨울부터 보이지 않았다.     

 

다음 해 봄 야적장엔 새 입주자가 들어왔다. 긴코와 고소영이다. 둘에게 밥을 줬다. 밥 주는 건 고양이와 친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밥 준다고 꼭 친해지는 건 아니다. 고소영은 항상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를 보는 크고 둥근 눈이 얼마나 깜찍한지 몰랐다. 나는 그 눈을 매번 감탄하며 마주 봤는데, 나중에야 고양이가 그렇게 쳐다보는 건 경계심 때문이고, 고양이는 자기를 똑바로 마주 보는 걸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는 고소영과 같이 있을 때 야단맞는 학생처럼 눈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고소영은 좀처럼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고소영과 달리 긴코와는 쉽게 친해졌다. 긴코는 나와 있을 땐 항상 눈을 가늘게 뜨고 졸린 듯 껌벅인다. 고양이 특유의 깜찍함을 포기한 영감 같은 표정인데, 알고 보니 고양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짓는 표정이란다. 알면 다르게 느껴진다. 그 뒤론 그 표정이 영감같이 보이지 않고 부드럽고 다감하게 느껴졌다. 긴코는 나와 같이 있으면 가만있질 못하고 담벼락이며 전신주에 계속 몸을 비볐다. 그 모습이 등을 긁는 것처럼 보여 여간 우스운 게 아닌데, 그 역시 애정표현이다. 우리가 서로를 만질 수 있게 되면서 긴코는 담벼락이 아니라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내 손에 머리를 맡겼다. 긴코의 오렌지색 털이 곱슬머리처럼 까슬까슬했다. 

 

긴코는 같이 있는 내내 내게 말을 걸곤 했다. 나는 긴코와 말을 주고받는 게 좋았다. 긴코는 말할 때 소리를 거의 안 내고 샹송 가수처럼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속삭였다. 소리 없이 속삭이는 긴코와 말을 주고받노라면 우리 둘이 듀엣으로 남녀 가수가 번갈아 노랫말을 속삭이는 샹송을 부르는 것 같았다. 주땜므 주땜므 오위주땜므 무아농플리. 말을 못 알아들어도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마음이 전해졌다. 아니 말을 못 알아듣기에 오히려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야옹

긴코

야옹야옹

긴코긴코

야옹야옹

예쁜긴코     

 

긴코도 내 이름을 부르는 걸까? 우리는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긴코는 담배를 문 험프리 보가트처럼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고 다녔는데, 찌푸린 눈 탓에 첫인상이 불량해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긴코처럼 점잖은 고양이가 없다. 그의 점잖은 태도는 찰리 고소영과 비교돼 한결 돋보였다. 둘이 아침저녁으로 마당에 들어와 밥 달라고 아우성쳐도, 호시탐탐 집안에 들어와 요다 밥을 훔쳐먹어도 긴코는 한 번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긴코는 항상 밥을 줄 때까지 점잖게 기다렸다. 식탐이 없는 건 아니다. 긴코는 볼 때마다 밥을 먹고 있었다. 긴코는 밥을 다른 고양이들 보다 몇 곱절 오래 먹었는데 그렇게 오래 먹고도 쉬었다 먹고 또 먹고 했다. 긴코는 점점 살이 찌더니 배가 임산부처럼 커졌다. 그런데 고양이는 살이 좀 쪄야 예쁘다. 긴코는 배를 드러내고 발라당 드러눕길 잘했는데, 희고 풍만한 배가 어찌 유혹적인지 안 만지고는 못 배겼다.      

 

긴코는 사려 깊은 성격이다. 고양이는 배를 만지면 앞발로 장난치는데, 찰리는 그럴 때마다 흥분해서 발톱으로 내 손등을 박박 긁어놓는다. 그러나 긴코는 내게 발톱을 보여준 적이 없다. 행여 나를 다치게 할 새라 발톱을 깊이 감춘 긴코의 발은 솜뭉치 같았다. 긴코는 늘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는데, 나를 경계해서가 아니라 나의 상황이나 감정을 존중해서 그런다고 느꼈다. 자꾸 비교해서 미안한데 찰리가 나를 보면 무턱대고 달려들어 쓰다듬어 달라고 조른다면, 긴코는 멀찌감치서 담이나 차 바퀴에 몸을 비볐다. 다가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일방통행로를 걷고 있으면 긴코는 멀찌감치서 나를 불렀다. 나와 거리가 멀다 보니 화통 삶아 먹는 소리로 악을 썼는데 늘 조용조용하던 긴코에게 그런 소리가 나는 것에 나는 매번 어리둥절했다. 내가 쳐다보고 아는 체하면 긴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수줍게 차 바퀴에 몸을 비볐다. 걷다가 돌아보면 긴코는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짝짓기 철이 시작되면서 긴코를 보기 힘들어졌다. 며칠 만에 돌아온 긴코의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긴코는 볼 때마다 상처가 늘어나더니 하루는 털이 뭉텅 빠져서 돌아왔다. 내가 아는 긴코는 바스락 소리만 나도 도망치기 바쁜 겁쟁인데 누구랑 싸우고 다니는 걸까. 긴코는 눈에 누런 눈곱이 끼고 살이 빠져 배가 홀쭉한 게 몸이 안 좋아 보였다. 눈곱을 떼줬다. 눈가가 충혈되고 야위어서 그런지 그 순하던 인상이 날카로워 보였다. 낯설었다. 그날 이후 긴코가 보이지 않았다.     

 

일방통행로를 걷는데 공터에 긴코처럼 보이는 고양이가 지나갔다.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를 따라갔더니 돌아보는데 눈이 동그랬다. 긴코가 아니었다.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웠다. 그 고양이의 모습도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고양이가 집을 나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던 것만 기억난다. 사람은 몸집이 크고 전산망이 잘 돼 있어 사라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고양이는 자꾸 사라진다.      

 

다시 봄이다. 찰리와 고소영마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야적장이 텅 비었다.      

 

(202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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