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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세미나] 후기_월든 (김지호)

생강 2021.03.11 17:29 조회 수 : 1171

 글쓰기 세미나 I write...에서는 지난 두 달간에 걸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었는데요,

 오늘은 책읽기를 마치며 각자 쓴 감상문을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후기를 써서 스타일화 하신 김지호선생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

                                                         

                                                          월든을 읽고     

                                                              헨리 데이비스 소로 지음 (1854년 작)

 
: 안녕하세요, 소로 선생님.

소로: 어떻게 이 먼 곳까지.

: 제 눈으로 직접 월든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소로: 고맙긴 하지만 뭔가 오해가. 내가 정말 말하고자 했던 건 비자본주의적인 삶의 태도라네.

 

소로는 일군의 관광객들이 우리가 앉은 노상 카페를 지나 호반에 설치된 선착장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태양이 서서히 서쪽을 향해 움직이는 오후였다. 소로의 초상이 실렸을(공원 소개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았다!) 가이드북을 펼친 관광객들이 호수를 손으로 가리키며 지나갔다. 정작 내 앞에 있는 소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지다가도 우리의 평균적인 삶의 태도가 그렇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곤 씁쓸해졌다.

 

: 그게 가능할까요?

소로: 어렵겠지, ‘상품‘과 ‘돈’이라는 신화를 사람들이 버리지 않는 이상은.

: 그렇다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걸 하라고 하신 거네요.

소로: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게 게으른 인간들의 습성이라는 건 알고 있나?

 

올 것이 왔다. 래디컬한 중년 남자를 상대하기란 결재라인을 무시하고 예산을 타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준비한 대로 157년이라는 시차를 이용하기로 했다.(위키백과에 따르면 월든 출간일은 1854년이다)

 

: 지금의 물적 토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 봉건시대나 어울릴 목가적인 삶의 태도를 기대하는 일 역시 부지런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소로: 예상한 대로군. 내가 기분 나빠할 거라고 예단하지 말게. 나 역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야. 세상엔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게 있어. 예를 들면 인간성에 대한 탐구. 평화. 공존. 사랑. 같은 윤리 말일세. 자네는 이런 것 역시 ‘지금의 물적 토대’에서 추구하기에는 너무도 낡은 가치라고 생각하나?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성이 새롭게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지난 세기 인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문득 이게 아닌데 싶었다. 방금 우리의 머리 위로 지나간 새가 붉은개똥지빠귀냐고 물었어야 했다. 저기 서 있는 나무는 월귤나무인지 팽나무인지도.

 

: 편리와 이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공포’가 더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누리는 물질적 풍요를 빼앗긴다면 더는 누릴 수 없다면, 하는 두려움이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요?

소로: 같은 말일세. 나는 일찌감치 인류가 큰 전쟁에 휘말릴 거라고 생각했네. 자연을 착취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소비하는 행태가 언젠가는 인간 자신에 향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혹시 알고 있나. <월든>이 나온 지 10년이 채 안 돼 남북전쟁이 일어났네. 만약 목화를 더 차지하려는, 노예를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쌓으려는 백인들의 욕심이 아니었다면 그 전쟁이 일어나기는 했을까?

: (묵묵부답)

소로: 개개인이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하다네. 네가 사는 동양에서는 아주 예전부터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 자연파괴를 일삼는 기업이나 국가를 고발하고 육식을 줄이려는 노력들이 그나마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별화되고 윤리화된 지침들이 사실 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에요. 게다가 전, 그런 ‘믿음‘들 역시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구요.

소로: 의심은 자유.

: 네, 뭐, 물론. 좋습니다.

 

내가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을 때 아까 지나갔던 단체관광객들이 다시 몰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앞서 보지 못했던 쇼핑백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후 소로는 월든 호수에 자신이 매혹당한 이유에 대해 세세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아름다운 풍광과 자신이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충만한 기쁨을 주었는지. 또한 그는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월든의 지리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울한 얼굴빛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는데 아마도 내가 스마트폰을 꺼내 그의 말을 메모하려던 때였던 것 같다. 소로는 문득 자신이 21세기에 와 있음을 깨달은 듯 다소 의기소침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월든의 진면목은 그저 먼지 나는 도서관에 꽂혀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여 그의 책에 달린 무수한 서평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곧 혈기왕성한 19세기의 젊은 지식인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서쪽에서 떠오른 달의 윤곽은 점점 명료해졌다.

 

: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소로 선생님은 월든 호수에서의 자족적인 삶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셨는데요. 글쓰기에 관해 한 말씀 부탁 드려도 될까요?

소로: 글쓰기? 거기에 대해선 특별히 해줄 말이….

: 선생니임-

소로: 흠. 뭐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겠네.

: (아. 이번에도 추상명사로구나.)

소로: 나는 월든을 사랑했네.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호수의 내면에 자리 잡은 우주와 지구의 역사까지도 말일세. 나는 그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견뎌온 생명에 감동하지 않는 인간은 지구에 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월든의 작은 오두막에서 별빛아래 작은 등불을 켜고 책을 읽는 동안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네. 봄날의 꽃들과 사슴, 쓰르라미와 밤벌레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한겨울 꽁꽁 언 얼음 아래서 물고기들이 속삭이는 이야기까지 엿들었다네. 심지어 나를 원수 대하듯 하는 설치류 ‘우드 척’조차 자신의 친구들을 섭취한 나를 용서한다고 하더군. 자기도 그렇게 산다고. 다른 모든 동물들처럼. 모두가 사랑에 넘치는 말들이었어. 자네라면 그 이야기를 어찌 글로 쓰지 않을 수 있었겠나.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야.

: 너무 낭만적인 거 아니에요?

소로: 나 로맨티스트 맞네. 그러니 자네도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갖게. 자네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자네를 지지하고 있어. 다만 그걸 인식하지 못할 뿐. 모든 생명은 그래서 숨 쉬고 살 수 있는 거라네. 이 순간부터 산소와 수소가 1:2의 비율로 결합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며칠을 못 가 바싹 마른 오이처럼 쓰러지고 말 거야. 우연처럼 보이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야. 세상의 질서는 모두 사랑에서 비롯한다네. 그걸 볼 수 있다면 자네도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 사랑. 이었군요.

소로: 그래, 사랑. 내게 월든은 무지라는 숲속에서 잠들어 있던 내 삶을 깨워준 사랑이었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 끝.

 

왁자하던 호수 쉼터 노상 카페가 조금씩 차분한 시선으로 채워졌다. 멀리 거울처럼 빛나는 수면으로 노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마가 붉어진 사람들이 숨죽인 채 다가오는 밤의 발자국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우리는 길어진 그림자와 함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존경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 한 번 나와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겠다고 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마친 그가 화려한 주름으로 장식한 19세기 풍 셔츠 깃을 여미더니 등을 돌렸다. 꼿꼿한 뒷모습과 흐트러짐 없는 걸음이 모래 위에 남긴 흔적이 어둠에 완전히 묻혔다. 그는 월든으로 돌아갔다. □

 

                                                                                                                                                 -  2021.03.11.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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