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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 4,5 장 메모

로라 2021.02.22 13:06 조회 수 : 45

생동하는 물질 4,5장                                                 창근 

 

생명력, 생의 약동, 강도적 개체화 

드리슈에게는 수동적 물질이 유기적이고 능동적인 물질이 되기 위해서 미리 결정된 방식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구조화 능력을 갖춘 어떤 보충물이 필요하다. 드리슈에게 그것은 생명력인데 생명력은 생명 현상을 유발하는 비-기계론적 행위자다. 생명력에 의해 유기적 체계와 비유기적 체계는 구별된다. 생명력을 통해 물질들은 유기적 형태를 형성할 수 있다. 이때 생명력은 단순히 물질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이외에도 형태를 배열하거나 구성한다. 생명력의 이러한 지시적인 힘은 체계 안의 물질들이 가지는 무수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완화하여 현실화한다. 생명력은 체계 내에 그 자체로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에 외부적으로 개입하여 가능성을 제한하고 현실화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힘이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 역시 비-기계론적인 생기적 행위자이다. 드리슈의 생명력이 물질의 배열을 구성해내는 추동적인 힘이 있듯이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은 이러한 촉발의 힘을 더욱 강조한다. 한편 드리슈의 생명력이 수동적 물질에 작용하여 유기적 신체라는 구성적이고 자기 보존적인 전체를 만들어낸다면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은 준-안정적인 개체를 만들어낸다. 물질적 형태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생의 약동은 미분화에서 분화로의 일방적인 경로가 아닌 창조 그 자체를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생명력과 생의 약동은 모두 공간적인 연장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잠재적 차원의 행위자이다. 생명력과 생의 약동은 모두 물질로도 에너지라는 실체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둘 모두는 생성적인 힘을 가진다. 하지만 둘 모두는 자신이 참여하는 물질에 대해 초월적인 것이고, 또한 둘 모두 수동적 물질에 가해지는 외부적 힘이나 반대로 둘 모두 물질성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질성에 의지하고 있다.

반면 금속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금속은 다결정 체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다양체이다. 결정들은 서로 접촉되면서 특정한 경계의 배열을 이루는데 각각의 결정들이 주변 결정들과 부딪치면서 금속의 공간을 채운다. 이때 각각의 경계에는 배열로부터 빠져나가는 원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배열에는 결함이 존재하고, 이 결함 덕분에 각 결정의 경계는 투과성을 지니며 진동하게 된다. 즉 원자의 이탈로 인해 금속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다양체가 된다. 그리고 원자의 이탈로 인해 생기는 금속의 생기적인 힘은 외부적인 생기적 행위자 없이 스스로 진동하며 만들어낸다.

더불어 금속의 생기적인 힘은 언제나 금속을 가공하는 외부적 활동과 관련되어 있고, 다른 신체와 함께 합금되며 다른 행위성을 통해 다뤄진다. 금속이 외부적 힘과 관련되어 특정한 개체가 될 때 금속은 하나의 개체로 개체화된다.

 

생동하는 물질 4, 5 장 요약                                                            로라                                   2021/02/09 

 

4장 금속의 생명

 

니체의 “ 권력에의 의지”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생기론

: 여러분은 내게 생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고 변전하기만 하는 것...

여러 힘과 파도의 유희로서 하나인 동시에 허다한 것...

흐르고 세차게 몰아부치며 영원히 변화하는 힘들의 바다다.

 

들뢰즈-가타리는 니체에서는 명백한 사건을 그 안에 작동하는 인간의 힘으로 환원하려는 언어적 구성주의 경향을 회피하려고 애 쓴다.

 

{아이스킬로스의 견고한 사슬의 중량}

 

금속은 전통적으로 수동성 또는 죽은 사물성과 연결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금속을 생기의 상징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 들뢰즈, 가타리 in 노마디즘

“금속은 생기적 물질성의 전형”

“생명으로 충만한 금속은 비유기적 생명에 대한 놀라운 발상을 낳는다.”

“활동” : 물질의 모호한 본질

 

토마스 홉스의 생명 : 움직이는 물질, 신체들에 의해 “한 장소로부터의 이탈과 다른 장소의 점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

->형상을 갖춘 신체들이 공간의 공백을 통해 움직일 때의 신체 활동에 주목

 

들-가는 온전히 신체적이거나 공간적이지 않은 활기를 강조 !

->진동, 소실, 미규정적이고 목적성이 없는 모호함 등의 용어를 사용

 

들가의 생동하는 생기성

-신체에 선행하거나, 그 안에 존속 또는 단순히 형성된 신체 그 자체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용어 : “ 어느 날, 어느 계절, 어느 해, 어느 삶 등의 개체화의 형식을 부여받지 않은 입자들 사이의 빠름과 느림의 집합

=> 강도들의 활동 ( 연장된 사물이 아닌), 잠재적인 물질, 물질 에너지의 순수한 생산성

: 질료 형상의 모델에 숨겨져 있거나 은폐되어 인식할 수 없다.(들-가)

“질료 형상”

: 질베르 시몽동의 용어

 

생동하는 물질 5장     생기론도 아니고 기계론도 아니다.

물질을 자아의 안과 밖에서 작동하는 생기로 간주하는 베넷은 어떠한 목적성도 갖지 않는 중요한 힘으로 작동하는 유물론을 원한다.

인간의 사회 경제 구조에 초첨을 맞춘 사적 유물론과도 구별되며 전통적인 유물론의 개념에서 몇가지 요소들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기존의 유물론(기계론적, 결정론적 유물론)과는 다른 생기적 유물론을 제안한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생기론자’라고 불린 ‘비판적’ 또는 ‘현대적’ 생기론자들인 베르그송과 드리슈와는 교류할 수는 있다. 그 들은 과학적 탐구와 경험적 탐구로부터 영향을 받아 과학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의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생기론을 형성하였고 정신적인 힘이나 영혼을 상정한 생기론자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적 과정으로부터 그들이 식별해낸 생기(베르그송은 생의 약동, 드리슈는 생명력)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유물론을 상상하지 못하고 완전히 물질적이지는 않은 생명의 힘을 생각하는 것에 그쳤다.

비판적 생기론

1910년대 초반 1차세계대전 직전의 미국에서는 생기론이 태동했다.

우주“끊임없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가능성의 세계로서, 막 태동하려는 세계로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와 드리슈의 [유기체에 대한 과학과 철학]이 큰 역할 을 했다.

이들 생기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생명은 기계론적, 결정론적 물질로 환원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물질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명의 원리(그 자체로서는 물질적이지 않다)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과 드리슈의 생명력도 몇몇 부분에서 충돌하지만 이들의 생기론은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서로의 입장에도 동의하고 기존의 유물론자들의 입장에도 동의한다.

즉, 물질이 궁극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고 기계론적이며 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적 생기론자들은 기계론적인 세계의 밖 (외부)에 있는 생명에 대한 예시를 가져왔고 유물론자들은 모든 실체나 힘이 아무리 복잡하고 유기적이며 미세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기계론적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우주의 성장을 추동하는, 게산되지 않는 또한 물질적인 자극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생기적인 힘 또는 생명의 원리라고 확인한 베르그송과 드리슈는 생명과 물질에 대한 칸트의 통찰에 영향을 받았다. 칸트는 “형성충동”으로 무력한 물질과 유기적인 생명 사이의 차이를 설명했다.(판단력 비판)

베르그송과 드리슈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위하여 칸트의 사고를 따라가면서 당시의 경험 과학이 이룩한 성과에 대한 통찰을 함께 엮어내는 것에 애를 먹었다.

그들은 생명과 물질의 강력한 이원론자인 칸트의 철학을 완화시키기는 했으나 칸트의 “무기력한 물질” 이미지는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물질과 수동성을 같이 떠올리는 관점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이 것은 우리가 사물의 힘을 식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베넷은 이 비판적 생기론자들의 관점인 “생기적인 힘의 창조적인 행위성” 개념에서 “물질성 그 자체를 창조적인 행위자”로 간주하는 관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형성충동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생명과 물질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상정한다. 이 것은 유기체의 사례에서 물질과 생명이 긴밀하게 결합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난제로 연결된다.

이에 칸트는 죽은 물질에 다가가 활기를 불어넣는 특수한 ‘형성충동’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형성충동은 단순한 물질의 집합 내에는 없으나 유기체 내에는 존재하는 불가해한 자기-조직적인 힘을 뜻한다. 이것은 “한낱 기계적인 형성력과는 구별되는 “능력”이다. 칸트에게 물질은 지성에 의해 목적들로만 파악될 수 있는 산출이라는 전제를 가진다.

형성충동은 물질에 기능적인 일관성과 유기적인 특질을 부여하는 비물질적이고 목적론적인 충동을 뜻한다.

칸트는 형성충동과 영혼을 구별하는데 영혼은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반면, 형성충동은 오직 신체 속에서만, 기계적인 물질의 활동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래도 형성충동이 물질에 의존한다는 칸트의 관점은 당시의 투박한 생기론자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관점이었다.

“자연의 모든 산물들과 생기들은 가장 합목적적인 것일지라도 기계적으로 설명해야한다.”는 절차를 어기지 않는다. (판단력 비판)

블루멘바흐에게서 빌려온 이 형성충동이란 개념은 칸트도 블루벤바흐의 생각처럼 규정적인 원리라는 것에 동의한다. 유기체의 유기적인 활동을 오직 기계론적인 법칙을 통해서만 설명하도록 제한하며 인간으로부터~~모든 살아있는 생물 안에 존재하는 선천적이고 평생 지속되는 능동적인 충동 인 것이다. 그리고 칸트는 블루멘바흐가 말하는 형성충동의 모호할 수 밖에 없는 인과성, 불가해한 본성에 동의한다.

즉, 칸트와 블루멘바흐, 드리슈에게있어 형성충동은 그것이 구성해낸 특수한 유기체를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것인 것이다.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은 유기적이든 비유기적이든 물질 모두의 인과성을 상정하고 이러한 인과성은 어느정도 불가해한 것이며 기계론적 모델을 통해 그 것들을 다루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본다.

블루멘바흐의 유기체 개념은 뉴턴 식 힘으로 지배된다는 점에서 기계론적이며 뉴턴이 무력한 물질에 대해 수행한 작업을 유기체의 신체에 대해 수행하고자 했다.

칸트와 블루멘바흐는 생기적인 힘을 물질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시키려고 노력했고 물질의 공간성이 형성충동에 부여하는 제약 즉, 형성충동은 자신 안에 제약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에 잠재적이고 합목적적 소질에 의해 부분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칸트의 형성충동은 물질성과 원기 모두에 묶여 있기에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낼수 없다.

칸트의 물질성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물질성은 활기가 없는 기계적 물건이며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위하여는 보충물을 필요로한다.

형성충동은 유기적으로 조직된 신체에 자동으로 깃드는 비인격적 행위성이기도 하며 모든 유기체에 공평히 분배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 유기체에서는 자유로운 의지와 형성충동이 함께 공존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칸트는 비유기적 물질/ 유기적 생명/ 인간 사이의 간극과 벽을 세우고자 했다.

칸트는 에피쿠로스학파가 과학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합목적성에 대한 발견적 원리가 없기 때문에 자연 현상을 우연이라고 간주해야하는 것은 그 통일성에 대한 선험적인...근거를 결여한 것이며 이것은 칸트에게 과학적 설명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칸트는 형성충동이 목적론적 설명과 기계론적 설명을 결합시킬 수 있어서 좋아했다.

그 개념은 인간을 추동하는 비인격적이고 비역사적인 행위성과 자극을 가리키고 있는데 베넷은 이 지점에 주목한다.

인간이 특정한 목적 아래 투입한 에너지로는 환원할 수없는 행위적인 힘을 가진 형성충동에서 칸트와는 달리 베넷은 신성한 원천 따위는 없으며 비인격적 행위성이 물질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생기가 인간이나 신성한 합목적성과는 구별된다는 생각 모두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유기체 내부에서 작동하며 유기체가 죽은 물질과는 다르다는 것을 형성충동을 통하여 설명한 칸트의 영향으로 베르그송과 드리슈가 생명과 물질에 대하여 탐구할 수 있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유물론]

물질을 무력한 것으로 보는 것을 거부했고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 유기체와 기계의 차이를 질적인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로 바라보았다.

그 차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고 형성된 물질들이 다르게 구성된 결과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클리나멘을 물질에 추가된 것 또는 물질과 이질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물질성 그 자체에 내재한 활력적 자극이라고 여겼다.

루크레티우스의 자연학에서 그가 바라본 우주는 죽은 물질과 살아있는 존재로 나누어 이루어져 있지 않고, 격동적이고 생산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이탈하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형성충동이나 다른 추가적 보충물을 포함시킬 필요가 없었다.

=>생기적 유물론자의 입장과 같다.

 

생명력

발생학자 드리슈 그리고 그가 선택한 철학

물질에 대한 생명력을 논하려면 생명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유물론에서는 없던 개념인 창발성이다.

생명의 발생을 연구했던 드리슈로서는 없던 것이 생겨나는 다양체의 형성에 대해 물리-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생기적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당연한 것.

물론 이 다양체의 형성이 기계론적 인과성이나 단일한 인과성으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방법, 또는 부정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지만.

그 생기적 원리는 그 자체로 공간 내의 다양체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행위하는 행위자가 되어야한다. 즉, 공간 내에 있지 않은 복합체이다.

그렇다면 생명력의 정의는 “성숙한 유기체의 연장적인 다양체가 그로부터 창발하는 강도적인 다양체이다.”

생명력이 비물질적이고, 비공간적이며, 기계론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정신적이라거나 영혼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드리슈는 작업의 목적, 그리고 경험과학의 방법론을 엄격히 지켰는데 그 이유는 유기체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기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식별하는 것에 있었다.

그 생명력이라는 것은 실체도 아니고 에너지도 아니다.

생명력은 생명 현상을 유발하는 비-기계론적 행위자이다.

 

유기체에서 유일한 생성 양식인 형태 발생 과정을 관찰한 드리슈는 형태 발생이 배반포가 덜 분화된 형태에서 더 분화된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개체 발생)과 완전히 발달한 유기체가 충격이나 질병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재-형성하는 복구과정 모두를 의미한다고 했다.

부분이 전체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인 유기체는 조화로운 통합적 반응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변용되기도 한다.

드리슈는 여기서 유기체와 기계의 차이를 더 강화한다.

또한 비유기체는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학습해낼 수 없다.

개별적 자극에 대한 개별적인 ‘응답’을 할 수 없다.

이 것이 드리슈가 상황에 맞추어진 개별화된 행위에 대한 생명력의 지시 행위라고 말 한것이다.

이 지시 능력(directing power)는 일종의 문지기로서 유기체 내부에서 창발하는 수 많은 형성의 가능성 중에서 무엇을 현실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생명력의 힘이다.

(유전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생성하기도하고 억제하기도 하는 인접한 유전체들

*드리슈가 칸트의 물질 개념에 동의한 것:........................

*드리슈가 칸트의 생기적 원리에 반대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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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물질               4,5장 발제                                        최유미               2021-02-09 

 

4장 금속의 생명

물질의 생기성을 어떻게 이론화 할 것인가를 위해서 1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유기체의 생명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는 생기성의 의미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그리고 죽음과 대비되는 생명, 지고의 선으로서의 생명이라는 유기체 중심의 접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일 것이다. 이를 위해 베넷은 생명을 유기체에 국한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들-가의 생명에 대한 접근에 의지한다.

 

들뢰즈는 ‘하나의’ 생명을 순수 사건으로서 ‘순수한 비-주체적인 흐름’으로 이해했다. 아직 개인이 되지 않았지만 유아들은 이러한 미소, 이러한 찡그린 표정, 이러한 제스처라는 표현으로 반복되는 특이성들이다. 내재적인 생명이자 미규정적인 생명은 이 아이를 가로지른다. 생명은 지복으로서, 또한 형언할 수 없는 폭력으로 현시된다. “하나의 생명은 어떤 개인의 고유한 생기가 아니라 ‘순수한 내재성’ 또는 실재이긴 하나 현실적이지는 않은 변화무쌍한 무리”(149)이다.

 

이런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인 접근을 금속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금속은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단단하다. 금속은 사물=견고함=생명없음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듯이 보이고, 이는 살아있는 프로메테우스의 활력을 굴복시키는 생명과 대립하는 힘이다. 이에 베넷은 들-가가 금속을 생기물질의 전형이라고 하면서 “비유기적 생명에 대한 놀라운 발상”을 낳는다고 한 것에 주목한다.(151) 베넷은 물질성이란 형상의 명령에 의해 주조되는 무력한 실체가 아니라 강도의 독특한 운동성(들-가)이며, 물질-에너지의 ‘지속적으로 창발하는’ 특질(앨런 랜섬과 데릭 매코맥)이며 “발단과 경향성이 압박하는 무리(브라이언 마수미)”임을 주장한다.

 

베넷은 과학사가인 시릴 스미스의 연구로부터 단단함, 고정됨을 표상으로 갖는 금속을 다시 고찰한다. 스미스는 금속이 다결정성으로 금속에 가해지는 압력에 따라 매우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갖게 되고, 결정들의 배열에는 결함이 있고, 결정체 구조는 구멍들로 가득하다는 기술을 주목한다. 금속의 생기(비인격적인 생명)는 자유원자들의 진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데란다는 “균열이 퍼져나갈 때 보이는 복잡한 동력”에서 금속의 생기성을 찾는다. 균열들이 퍼져나가는 선은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창발적인 인과성이 표현되는 것이고, 주변부의 움직임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불활성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낸다-변화무쌍한 능동성)

스미스는 물리학의 우주론이나 원자론보다 야금학을 찬양했다. 금속은 그것을 가공하는 활동돠 언제나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금속이 무엇인지 아는 과학자의 욕망보다 금속이 할 수 있는 것을 아는 장인의 욕망이 금속과 더 잘 협력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테크노사이언스로서의 과학을 보지 못하는 너무 고전적인 과학의 도식에 의거하고 있음. 베넷은 왜 시몽동을 참조하지 않았을까?

 

불활성의 사물성과 대결해야 하는 베넷의 문제의식은 이해가 되지만, 그는 능동과 수동,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것으로 보임. 이 이분법이 유지되는 한,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생기는 위계를 피할 수 있을까?

 

5장 생기론도 아니고 기계론도 아니다.

- 비-인간 물질성을 인간의 사회나 경제의 구조로 환원시키지 않고 진정한 행위소로 보기 위해 베넷은 20세기의 비판적 생기론자들―베르그송(생의 약동)과 드리슈(생명력)―을 참조한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모델을 거부했고, 과학적인 탐구와 무관한 정신적인 힘이나 영혼을 상정한 ‘원시적?’인 생기론과도 거리를 두었다. 요컨대 이들에게 자연은 기계가 아니고 물질은 양화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베넷은 과학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느정도의 예측불가능성을 인정하는 비판적 생기론자들, 특히 드리슈에 의지해서 나아가고자 한다.

칸트의 형성충동: 칸트는 유기체 내에는 불가해한 자기-조직적인 능력이 있고, 이를 형성충동이라고 했다. 이는 ‘유기적인’ 특질을 부여하는 비물질적이고 목적론적인 충동이다. 형성충동은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이 아닌데, 그것은 기계적인 힘(즉 물질의 활동)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형성충동이라는 개념을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괴팅겐대학 의대교수)에게서 빌려왔는데,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원리와 유기적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인 설명 방식을 통합한 것이다. 형성충동은 기계적인 힘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신체에 깃든 비인격적 행위성이다. 칸트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목적론적인 형성충동과 모순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경우는 자유의지와 형성충동이 공존한다고 덧붙인다. 베넷은 칸트의 이 개념이 유기체와 비유기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깊은 간극을 상정하고 있지만, 인간을 추동하는 비인격적이고 비역사적인 행위성과 자극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드리슈의 생명력 : 드리슈의 생명력 개념은 칸트의 형성충동에 기대어 있다. 생명력은 물질에 깃든 “미리 결정된 방식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구조화 능력”이다. 드리슈는 주로 수정란의 발생과정에 주목했다. 분화되지 않은 배아가 다양한 기관으로 분화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공간내의 다양체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추동하는 행위자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드리슈에게 이것은 생명력이고 베넷은 이를 들-가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강도적 다양체라 부른다. 하지만 드리슈는 유기체를 상정하고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력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이를 생명력을 강도적 다양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임] 드리슈의 생명력은 현실성의 입구로 나가는 일종의 문지기 즉 도토리가 상수리 나무가 되어야지 호두나무가 되지 못하게 하는 문지기다. 드리슈에게 생명에 고유한 생성양식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조차 복잡한 전체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변화이다. 베넷이 드리슈에게 주목하는 지점은 생명력을 양화가능한 무엇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생명-물질의 관계를 매우 밀접한 것으로 다루려는 노력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구성하고 발달시키는 기계의 가능성을 제기한 바흐친은 드리슈가 물질성의 개념을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개념과 결합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 베르그송에게 생명은 ‘가능한 최대한’의 능동성에 대한 특정 성향을 뜻하고, 물질은 수동성에 치우친 성향이다, 그는 연장으로서의 물질이라는 개념에 대해, 공간 내에 완전하게 연장된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즉 공간화를 향한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손에게 생의 약동은 내적 방향의 원리이고, 그것의 과제는 게으른 물질의 뼈대를 흔들어 깨우고 그것에 어느 정도의 놀라움을 삽입하는 것이다.(203) 그러니까 베르그손에게 생의 약동은 결정성을 흔들어 버리는 힘이다. 드리슈의 생명력처럼 생의 약동은 그 자체로 단일하거나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생의 약동은 흐르면서 스스로 분화한다. 이 자기-분화는 요소들의 연합과 축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리와 이분에 의해서 진행된다. 드리슈의 생명력과 베르그송의 생이 약동이 다른 점은 전자는 유기체 전체를 보존한다는 목적추구가 분명하다는 점(구체적인 개별적 대응이 다양하고 다소 우연에 열려 있다고 하더라도)이고, 후자는 생의 약동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들이 선행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우연에 열려 있다. 즉 베르그송에게 생기적 충동의 목적은 전체를 보존하는 갓이 아니고 그 결정성을 뒤흔드는 것이고, 그로부터 현재의 자신을 초과하게 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은 목적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그것은 주파하는 행위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고, 설계없는 충동이고 암중모색의 탐색과정이다,

베르그송도 활력을 에너지와 동일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드리슈와 공통적이나 베르그송에게 생의 약동은 오히려 조화로운 전체의 생성을 막는 몇몇 장애가 내재한다, 생의 약동이 초래하는 베르그송의 우주는 불가분의 연속체이나 조화롭지 않다. 각 종이나 개체는 생명의 전체적인 충동으로부터 일정한 약동만을 취하여 자신의 고유한 이익에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화는 전면이 아니라 배후에 존재한다. 공통에 대한 열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충동의 동일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베넷이 보기에 베르그송의 생의 약동은 활기 넘치는 창조적인 능력인데 반해 드리슈의 생명력은 자유롭게 작동하는 범위가 더 좁다. 드리슈의 생명력은 다른 것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 자족성을 띠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베넷이 보기에 “활기는 언제나 활기들의 체계에, 그것을 연결하고 강도들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배치에 관여해야만 한다.”(209) 그럼에도 베넷이 베르그송보다 드리슈를 더 집중해서 살펴본 것은 드리슈가 생물학을 근거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에 생기적 행위자를 영성으로 해석하는 생기론의 유혹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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