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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8 글쓰기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우리 동네

 

우리 동네는 산꼭대기에 있다. 산 아래까지는 걸어서 7-8분 거리인데 다리를 다친 뒤로는 그 길을 걸어서 내려간 적이 없다. 경사로를 내려가는 게 관절에 부담돼서다. 걸어서는 동네를 벗어날 수 없으니 섬에 사는 거나 다르지 않다. 버스정류장에 할머니들과 나란히 앉아 있으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어딜 가든 마을버스를 타야 하다 보니 웬만하면 외출을 안 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로는 더더욱 그렇다. 종일 집에만 있는 건 아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피곤해지면 밖으로 나간다.

 

뒷문을 나서면 야적장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며 달려든다. 산책하기 전에 고양이들의 밥과 물을 챙겨줘야 하는 것이다. 세 개의 골목이 만나는 야적장 앞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제법 있어서 고양이 밥 줄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

 

“괭이들 밥 주느라 수고가 많으요.”

 

윗집 할머니다. 할머니 인상이 무서워 처음엔 좀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를 좋아하신다.

 

“여기가 괭이들 놀이터야. 볕 좋은 날은 드러누워 볕 쬐고. 괭이야, 이리와. 괭이야. 너 왜 할머니만 좋아하고 나한텐 안 오냐?”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할머니가 설마 나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오십 대 초반에 할머니 소릴 듣다니 충격이다. 그런데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윗집 할머니만이 아니다.

 

“애기 아빠랑 같이 살지요?”

 

하루는 아랫집 할머니가 물었다.

 

“네?”

 

“애기 아빠. 고양이랑 다니는.”

 

“아, 네.”

 

“근데 색신가 할머닌가?”

 

“.......?”

 

“애기 아빠는 애기 아빠라고 부르면 되는데, 색신가 할머닌가 몰라서 부르질 못하겠네.”

 

질문이 선명하게 이해된 건 아니지만, 내가 J의 아내인지 J의 아기의 할머니 즉 J의 엄마인지 묻는 것 같았다. 설마 J의 할머니라는 건 아니겠지?

 

“걔 아기 아빠 아니에요. 아기 없어요. 그리고 저는 걔 여자친구에요.”

 

처음엔 할머니들이 연세가 많아 눈이 어두운가 보다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2년 전 이사 온 이 동네에선 모두가 나를 J의 엄마로 알고 있었다. 일일이 아니라고 하기도 번거로워 얼마 전부터는 그냥 엄마라고 하기로 했다.

 

집 앞에서 제일 자주 만나게 되는 건 앞집 목사다. 이 동네에선 양복 차림을 보기 힘든데 목사는 언제나 말끔한 양복 차림이다.

 

“안녕하세요!” 대문을 나서던 목사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사모 장례에 조의금을 낸 뒤로 목사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고양이. 쭈쭈쭈쭈”

 

목사가 내 발밑에 있는 찰리를 보고는 귀여워하는 시늉을 했다. 그가 ‘이놈의 고양이!’ 하면서 찰리를 향해 발길질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교회 다니세요?”

 

목사가 물었다. 목사는 장례가 끝나자마자 묵은 살림살이를 버리고 집을 수리한 뒤 대문에 교회 간판을 걸었다. 그 집에서 일요일마다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가 여간 신경 거슬리는 게 아니다.

 

“아니요.”

 

“교회 다니세요.”

 

“네에.”

 

찬송가 소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같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다. 진짜로 교회에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가까우니까 어떻게 하나 한번 와보세요.”

 

“네에.”

 

“천국 가셔야지요.”

 

“네에.”

 

목사는 깨알 같은 전도를 마치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는 늘 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그날은 전도하느라 시간이 늦어졌을 것이다. 목사가 잰걸음으로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멋진 폼은 아니었지만, 그 연세에 뛸 수 있는 관절을 가졌다니 부러웠다.

 

내가 산책을 시작하면 고양이들이 줄줄이 따라나선다. 야적장 옆에 있는 공터는 고양이들의 나와바리다. 고양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공터를 누빈다. 공터 오른편으로는 가파른 비탈이고 비탈 밑에는 계단식 밭이다. 밭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는데, 그 길로는 고양이와 바람만 지나다닌다. 고양이들이 밭에서 어슬렁거리는 동안 나는 공터에 주저앉아 고양이들을 기다린다. 나는 진종일 앉아만 있으니 산책할 때라도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데, 고양이는 돌아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 또 줄줄이 따라온다.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만 없다면 우리는 꽤 멀리까지도 같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터는 얼마 안 가 끝나고 도로가 시작된다. 사람도 차도 띄엄띄엄 오가는 일방통행로지만 고양이들은 도로에 접어들자마자 불안에 휩싸여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차 밑에 숨어 나오지도 못하면서 내가 혼자 가면 같이 가자고 뒤에서 목을 놓아 야옹거린다. 그럴 땐 J에게 전화를 건다. 요다가 찻길에서 운다고 한마디만 하면 요다 일이라면 열일 젖히고 달려오는 J가 달려와 요다를 비롯한 고양이들을 공터로 데려간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마음껏 파워워킹을 하는 것이다.

 

공터와 일방통행로가 만나는 곳에는 슈퍼가 있다. 진열장에 술과 라면밖에 없는 구멍가게를 슈퍼라고 부르는 건 그곳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이 ‘슈퍼 앞’이어서다. 마을버스는 산꼭대기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 내려가는데, 그 안에 100여 미터 간격으로 세 개의 정류장이 있다. 팔각정, 슈퍼 앞, 노인정. 나는 ‘팔각정’ 쪽에 8년을 살다가 2019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했다. 전에 살던 집 주변이 경사가 심해 평지 쪽으로 집을 옮긴 것이다. 줄곧 가파르게 이어지던 산길은 ‘슈퍼 앞’에서 평평해진다. 정상에 이르자 오히려 넓고 평평한 땅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곳 정상에서 도로는 한쪽이 확 트인 스카이웨이가 된다. 맞은편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인 산과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동네가 보이는데, 거기가 예전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들이 전화 받으면서 ‘여보세요’라고 안 하고 ‘성북동입니다’라고 하던 그 성북동이다. ‘기생충’의 조여정네가 사는 성북동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는 그런 부촌은 아니지만 역시 성북동이다. 조여정네 성북동과는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야트막한 산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데, 우리 동네가 개발 안 되고 예전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 조여정네 성북동에서 자기들 전망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써서라고 한다.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는 그쪽 성북동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쪽 성북동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로를 넋 놓고 바라보곤 하는데 급하게 하강하는 직선의 도로는 철 지난 스키장 슬로프 같아 보다 보면 아득한 산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이런 풍경도 매일 보다 보면 무심해져?” 친구가 그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물었다. “아니.” 나는 대답했다. 다리가 아프기 전에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행진가를 흥얼거리면서. 한바퀴를 도는 동안 매번 같은 감정이 반복됐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며 스카이웨이가 가까워지면 마음 설레다가 스카이웨이에 접어드는 순간 숨이 탁 트이면서 마음 환해졌다가 거길 등지고 내리막길을 내려갈 땐 서운해 발길이 무거웠다. 스카이웨이가 좋아서 그 길만 왔다 갔다 하고 싶었지만,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경사로를 오르내릴 수 없게 되고서야 스카이웨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됐다. 어린 왕자가 작은 별에서 해지는 풍경을 따라 하루에도 몇번 씩 의자를 옮겨 다니듯이 좋아하는 풍경을 따라 스카이웨이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어디나 골칫거리는 있고 나의 스카이웨이도 예외는 아니다. 슈퍼 앞에 테이블이 놓이고부터 가게에서 술을 사가던 동네 아저씨들이 저녁마다 거기 모여 술을 마시게 됐다. 문제는 가게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 술이 취한 손님들은 오줌을 공터에 눈다. 나의 스카이웨이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참다 참다 한마디 하려고 뒤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어찌나 술을 많이 처드셨는지 기다리기 지루하도록 오줌을 길게 눈다. 한참 만에 바지춤을 추스르며 돌아서는 남자들은 제 몸도 못 가누니 그런 자들에게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만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왜 거기다 오줌을 누세요?” 한번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고 나서 도로를 왔다 갔다 걷는데 노상 방뇨 아저씨가 길가에 있는 자기 집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길에서 서성댔다. 나한테 욕 먹은 게 기분 나빠 뭐라고 하고 싶은 눈친데, 내가 그 앞을 몇 번이나 지나가도록 말을 못 붙이고 서성대기만 했다.

 

“여기 사세요?” 보다 못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시면서 집 화장실에 가면 되지 저기다 오줌을 누세요?”

 

“이 동네 오래 사셨어요?”

 

“네.”

 

“얼마나 사셨어요?”

 

“십 년이요.”

 

“십 년이면 이 동네선 애기요. 나는 여기서 62년을 살았어요. 여기는 우리 집이고, 저기는 우리 외삼촌집이고.”

 

“.........”

 

“아직 절 모르셔서 그러는데 내가 이 동네를 정말 아껴요. 이 앞에 나무랑 풀이랑 다 내가 베고 사람들이 쓰레기 함부로 버리면 뭐라 허고.”

 

“그런 분이 길에 오줌을 누세요?”

 

그때 J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 마. 그냥 가.”

 

“누구요? 아들이요?” 아저씨가 말했다.

 

J 꽁무니에 고양이들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저씨가 고양이를 가지고 트집 잡거나 나한테 기분 나쁜 걸 나중에라도 고양이에게 분풀이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고양이를 키운 이후로 이웃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게 겁이 난다. 교회에서 시끄럽게 해도 말 못하고 노상 방뇨하는 자들에게 열 번 말하고 싶은 걸 한 번만 말하는 건 그래서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가.” 고양이들이 아저씨 눈에 띄기 전에 다급히 J를 돌려보냈다.

 

“아줌마가 절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제가 이 동네를 정말 아끼는 사람이에요. 외지인들이 차 타고 와서 여기다 먹던 거 버리고 그러면 내가 뭐라고 막 해요.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J를 아들이라 했으니 이제 할머니라 불릴 일만 남았구나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라니, 그 호칭이 어찌 반갑고 고마운지 아저씨에 대한 마음이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급반전했다.

 

얼굴을 익히고부터 그를 자주 보게 됐다. 공터를 걸어 나가다 보면 그가 집 앞에서 쓰레기를 치우거나 눈을 쓸거나 동네 아저씨들과 수다 떠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인사하는 사이가 됐는데, 타이밍을 잡지 못해 서로 망설이기만 하다 인사를 못 하고 지나칠 적이 많다.

 

회색 고양이와도 자주 마주친다. 회색 고양이와 마주치는 건 ‘거주자 주차 가 27’ 근처다. 그는 검정 고양이와 같이 다니는데 내가 다가가면 검정고양이는 잽싸게 차 밑으로 숨는 데 반해 그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비킬 생각을 않는다. 그들이 거기서 죽치는 건 통장의 스포티지가 거기 주차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스포티지가 서고 통장이 차에서 내리면 그들은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도로는 ‘노인정’ 정류장에서 작은 광장과 합쳐진다. 광장 주위에는 마을버스 정류장, 공중화장실, 노인회관이 있다. 광장은 마을에서 사람과 고양이가 가장 많이 오가는 곳으로 통장이 나타나면 광장에 있던 사람과 고양이가 모두 그녀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녀의 쇼핑백에는 고양이 사료가 들어있다. 그녀는 광장 여기저기에 사료를 주며 돌아다니는데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무료하게 늘어져 있던 광장에 반짝 활기가 돈다.

 

통장이 나타난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디선가 삼색이 모자가 기어 나와 야옹야옹 아우성치며 그녀를 쫓아다닌다. 삼색이 모자의 식탁은 그들이 사는 정류장 옆에 차려진다. 통장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삼색이 모자는 안달이 나서 그녀 발밑을 맴돈다.

 

“새끼가 살아있었네.”

 

한 아저씨가 다가와 소리친다. 새끼가 한동안 안 보였나 보다.

 

“새끼 나왔어!”

 

아저씨가 정류장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외친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통장이 골판지 위에 사료를 쏟자 새끼는 달려들어 아귀같이 먹기 시작하는데 삼색이는 관심 없다는 듯이 저만치 떨어져 앉는다.

 

“왜 안 먹어? 배 안 고파?” 통장이 삼색이에게 묻자 아저씨가 대신 대답한다. “새끼 먹이느라 그러지. 사람보다 낫다니까.”

 

나는 곁눈질로 아저씨를 본다. 우리 동네 사는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이 고양이를 예뻐하다니 뜻밖이다. 아저씨는 전에 살던 집의 옆집 아저씨와 비슷한 연배로 외모와 차림새도 비슷하다. 옆집 아저씨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아저씨뿐 아니라 그 집 식구가 모두 고양이를 싫어했다. J가 골목에 길고양이 사료를 줬다가 그 집 아들과 싸웠고, 나는 요다를 데려온 뒤로 그 아저씨와 마주칠 때마다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주눅이 들어 남이 길고양이 밥 주는 걸 봐도 내가 주위 눈치를 살피게 됐다. 통장을 보면서도 그랬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 데서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고양이에게 밥을 줘도 되는 걸까? 그러나 통장은 눈치 보는 기색이라곤 없이 큰 소리로 고양이들 이름을 부르며 광장을 돌아다닌다. 그때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데, 뜻밖에도 싫은 내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통장도 권력이라 사람들이 그 앞에서 싫은 내색을 안 하는 것일까? 통장과는 친한 사이라 그런 내색을 하기가 힘든 건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다들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 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나한테도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은 목사밖에 없는데, 최근엔 목사도 안 그런다. 그럼 이제 나도 눈치를 그만 봐도 되는 게 아닐까. 나는 통장에 비해 돌보는 고양이 숫자도 훨씬 적지 않은가.

 

“빨리 와 빨리. 뭔 사료를 시도 때도 없이 줘!”

 

통장이 사료를 주는 동안 아우성치는 건 고양이들만이 아니다. 건너 노인회관에선 한 할머니가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줄곧 통장을 부른다.

 

“이렇게 난리치는데 안 줘 그럼!”

 

삼색이 모자 식탁에 고등어 무늬 한 마리가 달라붙어 있다.

 

“앵앵이 너는 저리 가서 먹어야 돼.”

 

통장이 일어나며 앵앵이를 데려간다. 앵앵이는 이름대로 앵앵거리며 통장을 따라가는데 그 뒤로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앵앵거리며 따라간다. 앵앵이들의 식탁이 노인회관 마당에 차려지는 걸 보면서 나는 방향을 바꿔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슈퍼 근처에 이르면 어디선가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긴코가 공터 가장자리에 단정하게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돌아서는데 긴코가 뒤에서 야옹거린다. “집에 가!” 그러나 걷다가 돌아보면 긴코는 같은 자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한참 가다 다시 돌아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너네 때문에 운동을 못 한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긴코와 같이 집으로 향한다. 긴코가 줄곧 내 발밑을 맴돌기 때문에 긴코를 밟지 않기 위해서는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긴코는 중간에 자꾸만 배를 드러내고 눕고 나는 그때마다 주저앉아 긴코를 쓰다듬는다. 몇 발자국 가다가 쓰다듬고 몇 발자국 가다가 쓰다듬으며 야적장에 이르면 긴코는 나를 뒤에 남겨둔 채 사료 그릇을 향해 쪼르르 달려간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긴코가 서운하다. 나도 긴코가 기다리든 말든 모른 체하고 운동을 계속할 걸 그랬다. 와드득와드득. 긴코가 밥 먹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집으로 들어간다.

 

매일 같은 것들과 같은 장소에서 마주친다. 차들이 자기 주차구역에 서 있는 것처럼 회색 고양이는 ‘거주자 주차 가 27’에 엎드려 있고 목사는 슈퍼 앞에서 마을버스에 오른다. 야적장에 엎드려 있는 회색 고양이와 마주친다거나 광장의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목사와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을버스가 정해진 노선을 맴돌듯이 사람과 고양이도 정해진 장소를 맴맴 맴돈다.

 

구정을 앞두고 스카이웨이에 설 인사가 적힌 플랭카드가 붙었다. 하나는 대우건설에서 다른 하나는 롯데건설에서 붙인 것이다. 10년째 말만 무성하고 별 움직임이 없더니 정말로 재개발이 되긴 될 모양이다. 그런데 이 동네가 재개발되면 나도 그렇지만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재개발지역 고양이를 다룬 다큐를 찾아서 보았다. 철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지만, 고양이들은 떠나지 않았다. 먹이를 주던 마지막 사람이 떠난 뒤에도 고양이들은 떠나지 않았다. 철거반이 건물의 유리를 부수고 벽과 지붕을 때려 부순 뒤에도 고양이들은 깨진 유리조각과 건물 잔해로 뒤덮인 자기 자리를 지켰고 그것을 다른 고양이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다. 포크 레인이 고양이들이 숨어 있는 마을 잔해를 걷어내 트럭에 싣기 시작했다. 우리 집과 공터와 스카이웨이와 광장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고양이들은 마을의 잔해 곁을 맴돌고 있었는데 마지막 잔해가 사라진 자리엔 더는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를 빙 둘러친 철벽 안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들이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그곳이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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