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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자연학  세미나]     생동하는 물질 

                                                                                                                         저자 : 제인 베넷, 현실문화 2020

서문과 1장 메모                                                                                  2020/01/25 

 

1. 창근

사물은 인간의 주관적인 의미화 혹은 지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역량을 지닌다. 이미 파악된 의미화와 지각 속에서도 사물은 대상, 객체로 전부 환원되지 않고 그것에 저항한다. 주어진 배치 내에서의 연결에 저항하는 사물의 외부성은 이탈의 힘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물의 특성이 다시금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이탈의 힘으로 정의되는 사물의 특성, 즉 사물-권력은 더프리스의 절대적인 것과 아도르노의 비동일성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 특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주어진 배치의 의미화에 저항하는 사물-권력은 분명 이해가능성의 바깥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물의 외부성이 어떤 초월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해가능성의 한계를 지칭하는 더프리스의 절대적인 것은 인간의 바깥에서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여기서 다시 이해하는 인간과 그 너머에 있는 사물의 절대성이 부활한다. 아도르노의 비동일성은 인간의 지식에 종속되지 않고 모든 개념과 이질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

아도르노의 비동일성 역시 부재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정의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를 통해 현재 우리의 현재적 실천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우리의 개념화가 언제나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정된 가능성들을 향해 다시 우리를 추동해야 한다. 동일성에 대한 이러한 분노가 정치적 행위를 개선시키려는 의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더프리스와 아도르노의 설명과 달리 생기적 유물론은 사물의 초월성 없이 그 외부성을 설명한다.

사물-권력의 힘은 언제나 주어진 배치 안에서의 의미화에 대한 저항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모든 것들의 초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물-권력의 힘은 주어진 배치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사물들의 연결 속에서 나온다. 다른 경우에는 지극히 평범했을 쥐와 꽃가루, 플라스틱 병마개가 ‘그 쥐’, ‘그 꽃가루’, ‘그 플라스틱 병마개’가 되었을 때, 이들의 연결은 평범한 그것들을 하나의 특이점들로 만들어낸다.

쥐-꽃가루-플라스틱의 연결 속에서 나오는 사물의 역량은 기존의 배치에서 평범한 쥐-꽃가루-플라스틱을 거부한다. 이들의 연결은 우발적인 사건에 속하고 그것을 통해 주어진 배치에서 벗어나는 힘이 바로 사물-권력이다.

사물-권력의 역량은 감응을 통해 드러난다. 쥐-꽃가루-플라스틱의 연결 속에서 나오는 사물 신체들의 역량은 다른 신체의 감응을 촉발한다. 동시에 그러한 사물의 역량은 인간 주체 없이도 스스로 효과를 만들어내는 사물 자체의 행위성이다. 인간 주체에게서 독립적인 사물의 행위성은 버려지고 쓸모없는 사물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오히려 쓸모없고 버려진 사물들은 그로 인해 새로운 연결을 형성하고 새로운 역량을 드러낸다.(45)

 

사물은 이처럼 인간 혹은 누군가의 매개 없이도 스스로 행위하는 행위의 원천으로서 행위소 혹은 작용자이다.

작용자로서 사물의 힘은 사물들의 연결과 결합 속에서 나온다. 또한 그 연결 속에서 드러나는 사물들의 역량은 다른 신체를 촉발한다. 촉발되는 신체에는 인간도 포함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인간 역시 주체 이전에 작은 신체들의 복합체, 결합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 신체는 하나의 단일한 신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미시적인 물질들, 미시적인 힘과 의지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사물-권력에 의한 감응의 촉발은 ‘나’라는 주체 이전에 내 안의 미시적인 신체들의 반응을 겨냥한다.

지금 현재의 주체는 그것을 이루는 미시적인 힘과 의지의 특정한 결합에 따라 행동한다. 동시에 외부의 사물들이 주는 감응과의 연결 속에서 행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대상은 모두 사물 신체들의 특정한 결합 관계로 이해되고. 주체-대상의 이분법은 그러한 신체들의 감응의 관계로 바뀌게 된다.

 

2. 로라

 

1. 물질의 활력을 옹호해야하는 이유(물질의 행위성을 강조하는 이유) 는 무엇인가?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대한 관심사와 의지로부터 우러나온다.

자연 스스로가 만든 위협이 아니라 도구화된 물질들과 인간의 자만심과 정복, 소비등으로 키워온 지구 파괴의 환상 때문이다. 다른 존재들과는 특별히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들이 만든 인공적인 위협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다.

그리하여 물질에 대한 기존 인식론 철학들의 오류를 바로 잡으면서 이론화 수준으로 까지 끌어 올리려는 철학적이고도 정치적인 (실천적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물질성과 사물의 물질성 사이의 세심한 만남을 추구하는 접근과 더 녹색인 인간 문화를 촉진하고자하는 것이 베넷의 의도이다.

 

2. 감응 affect 이 정치와 윤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베넷은 정치 이론들이 더 큰 흐름 즉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전환을 통해

감응이 인간의 신체에 제한되지 않고 비인간 신체 내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촉매 (매개자) 에 초점을 맞추고자한다.

 

3. 방법론적으로는 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스피노자-디드로- 들뢰즈 의 흐름을 따라 갈 것이다. 그리하여 사물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응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고 탈신비화의 한계(비난과 비판뿐인)를 넘어서 비판 이후 개혁의 대상이 될 대안들을 실제적으로 체계화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4. 생기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사이의 차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다.

베넷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에 대한 자기도취적 반성을 논박하면서 비인간 힘들의 행위적 기여를 강조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행위성과 어느 정도 공명한다는 비인간 자연에 대한 의인관은 조금은 받아들여야 한다.

 

3. 유미

사물-권력(res-power, 사물의 역능, 사물의 힘)

- 저자는 사물-권력이라는 개념의 뿌리를 루크레티우스 스피노자 들뢰즈로 이어지는 생기적 유물론으로 부터 찾는다. 사물은 인간만큼이나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생기적 참여자이다. 행위자로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만의 것이 아닌 정치, 에콜로지로서의 정치.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폴리틱스(이자벨 스텡거스)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저자가 사물의 힘을 강하게 느낀 계기는 배수관 격자에 걸려있는 쓰레기들로 부터다. 저자는 버려진 것들을 서벌턴화하는 대신 거꾸로 그들이 자신에게 준 강한 감응, 그들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 두 번째로 저자가 포착한 것은 자연소재의 인공물, 오드라덱이다. 오드라덱은 배수관 거름망에 걸려든 까만 비닐장갑이나 병뚜껑 같은 인공물이다. 비유기적 신체인 이들에게서 자기-조직적인 활동(데란다), 즉 독립성오드라덱의 경우는 카프카가 포착했듯이, “이 맥대와 별 모양의 꼭짓점 하나를 통해, 오드라덱 전체는 마치 두 발위에 있는 것처럼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다.”

- 세 번째는 법적인 행위소로서의 사물이다. 살인 사건의 증거물로 제출된 피고인의 지문이 찍힌 금속제 뚜껑. 그것은 말없는(그러나 누구보다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목격자로서 법정에 있다. 그의 증언에 피고의 운명이 달려 있다.

- 네 번째는 걷고 말하는(소리내는) 생명체도 결국은 무기질의 구성 과정과 연속적임을 통해 사물의 권력을 말한다. 다윈의 가장 큰 공헌은 우리가 모두 공동의 조상인 돌멩이로부터 나왔다는 점일 것이다.

존재론적 연속성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지나치게 평평하기 때문에 인간의 안녕을 도모하고, 인간을 사물화하는 것을 비난할 도덕적 근거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생기적 유물론의 대응을 요약하면, ① 휴머니즘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것 ②하지만 이런 구도 자체가 비인간 자연의 도구화(사물화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라는 댓가를 요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③ 존재론적인 위계(목적으로서만 존재하는 인간)가 실제로는 인간을 위해 잘 작동해 오지 않았음을 기술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대응은 여기에 하나 더 추가 하는데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의 지위를 격상하는 것”(58)이다.

사물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의 이점은 모둔 신체가 관계들의 네트워크에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고, 연결망에 해가 되는 것은 자신에게도 해가 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윤리적 동기로서의 이기심에 대한 긍정)

  - 다섯 번째로 저자는 사물-권력에 대한 포착은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생동하는 물질이라는 아이디어는 아도르노가 말했던 비동일성을 기어코 극복해내려는 폭력적인 열망이 아니다. 아도르노의 윤리적인 기획의 시작은 개념에 온전히 동화되지 않는 대상의 비동일성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저자의 기획은 공유되어 있는 생기적인 물질성에 인간도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배양하고, 그것에 지각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물론 아도르노에게 이런 비동일성을 알아차리는 사람ㅡ“물질에서 또 그것의 개념에서 가장 미세한 것 내지 개념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까지도 구분할 수 있는 사람”(62, 재인용)ㅡ은 “사물들을 향해 손짓할 수 있는 사람”(62)이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을 하나의 교육학으로 파악한다. 다가갈 수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동일성에 거듭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릿광대처럼 그 과정을 유희해야만 거부된 것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다.

 

- 저자가 보기에 아도르노는 “대상 우선성”을 말하면서 사물-권력을 긍정하고 있으나 “충분히 다루고 유희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듯하다.”(65) 아도르노는 비인간의 생기를 말하는 것이 페티시로 흐르는 것을 염려한 듯하다 ㅡ“주체가 차지했던 빈 왕좌를 대상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으며 그럴 경우 대상은 우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65 재인용) 그렇지만 아도르노는 불가지한 신을 찬미하듯이(부정신학) 비동일성의 대상을 찬미하고, 그것을 초월적인 것, 부재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생기적 유물론은 영적인 힘에 기대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저자는 사물들의 낯선 권력을 인간의 행위성으로 모두 회귀시키는 구성주의적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인간의 사회경제적인 구조의 문제로 환원하는 구성주의적인 시각은 자연에 대한 도덕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접근을 정치화하지만, 그것은 인간만의 정치일 뿐이다. 오히려 이런 접근은 사물이 있을 법했던 자리를 흐릿하게 만들어서 사물의 정치를 막는다.

저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우선 대상에 매료되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더 오래 머무르려고 하고 그 순간들을 대상과 공유하는 물질의 생기에 대한 단서로 간주한다ㅡ““미신, 애니미즘, 생기론, 의인관 그리고 다른 전근대적인 태도에서 기인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69) 이 문제에 천천히 접근한다.

 

4.진경

 

[실존능력의 증가]

 

1. 물질들 또한 안정된 상태를 ‘추구’/‘지향’한다. 산소는 수소나 탄소 등 외곽전자궤도가 상보적인 것과 결합하여 안정된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 이렇게 안정된 상태에 이른 것을 실존능력의 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여기상태처럼 불안정상태, 그대로는 있을 수 없어서 강력한 반응능력을 가진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실존능력의 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2. 여기서 차이의 힘, 포텐셜을 증가시키는 것이 고양이라면, 안정화는 포텐셜의 감소란 점에서 고양이라고 하기 어렵다. 열역할적 안정성의 증가란 엔트로피 증가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차이의 힘의 감소... 그렇다면 반대로 불안정한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 반응능력의 고양이고, 반응능력이 실존능력이라면 이를 두고 실존능력의 고양이라 해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 따르면 실존능력은 실존을 지속할 능력이니 반대로 말해야 할 것 같다. O --> O2

 

3. 물질과 생명 

물질들이 안정적 상태를 추구하는 것을 두고 ‘탈지층화의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것, ‘일관성의 이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가령 산소가 수소나 탄소를 산화시킨다 함은 이전의 어떤 상태(지층)에서 떼어내 자신이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란 점에서 탈지층화의 잉여가치를 획득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 탈신비화와 신비주의 

탈신비화에 대한 베넷의 비판(20-23): 물화 비판이 그러하듯 탈신비화 비판이 모든 사태를 인간적인 것, 인간이 분석적으로 포착가능한 것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적이라는 비판은 매우 적절하다. 신비주의란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힘의 실존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존중이라면, 그저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단지 물러섬이나 스스로 은닉되는 존재라는 하이데거적 신비주의와는 같다고 할 수 없다).

 

5. 유물론 

“왜 신체와 쾌락에 대한 푸코의 관심이나 기계적 배치에 들뢰즈/가타리의 관심은 유물론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일까?(24) 유물론 개념의 편협성. 베넷은 이를 생기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간의 대립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역사유물론)과 배치의 유물론이 다르지 않음을 보지는 못한 것 같다. 외부성의 유물론. 수많은 유물론들이 있다. 외부성의 유물론은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관성의 평면이다.

 

6. 사물-능력과 코나투스 

사물-능력: 생명권력biopower의 power가 능력보다는 권력에 가깝다면 사물-파워에서 파워는 능력에 가까운 듯하다. “이 사물-힘은 생기를 불어넣는, 어떠한 행위를 하는 극적이고 미묘한 효과를 생산해내는, 활기 없는 사물들의 기이한 능력이다.”(46) 베넷은 이를 코나투스, 야생성, 외-부와 연결하는데(38)생성이나 외-부는 인간과 관련해서 사물들이 갖는 힘의 방향성을 함축한다면 코나투스는 관성적 지속력을 포함하기에 야생성과 다른 중성성/양방향성을 갖는다. 이는 물질의 힘을 안정성에서 찾는가 여기상태에서 찾는가와 마찬가지의 두 방향과 관련되어 있다. 사물의 힘을 야생성으로 본다 함은 안정성과는 다른 힘으로 이웃한 것들, 인간세계에 밀고들어오는 뜻밖의 힘으로 본다 함이고, 이는 안정성과 반하는 힘이다. 

베넷은 이러한 사물의 힘을 소비를 자극하는 상품들의 힘과 대비한다(44). 확실히 소비를 자극하는 상품들의 힘은 그것이 사물에 속한 것 이상으로 자본에 속한 것이고 패턴화된 소비, 생활, 감각을 유지하는 힘이란 점에서 야생성에 반한다. 그렇지만 이 힘 또한 사물과 무관한 힘이 아니라 사물의 힘임을 부정할 순 없다. 사물의 힘을 ‘좋은 힘’으로만, ‘야생성’과만 관련짓는 것은 힘을 일면화하게 될 수 있다. 반대로 안정성과 보존의 벡터를 갖는 힘과 동시에 그것을 깨는 힘의 공존, 그리고 거기서 깨는 힘의 일차적이나 우위성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7 . 봉납

 

법적 행위소와 봉납deodand의 개념을 연결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52) 사물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 그것은 사물이 갖는 힘의 법적 확인이니까.

 

8. 아도르노와 초험적 경험론 

베넷에 따르면 아도르노는 대상과 사물 사이의 간극을, 사물과 그 표상 사이의 간극을 ‘비동일성’이라 명명한다. 이는 지식에 종속되지 않으나 모든 개념에 이질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60-61). 아도르노는 표상의 부적절성을 환기시키고, 지식과 통제를 넘어서는 삶의 초월성에 대한 감각으로 전환시켜 화해를 거부하는 세계와 싸우길 중단하고자 한다(61). 아도르노는 이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통해 비동일성이란 개념을 발달시켜 사물이나 개념에서 가장 미세한 것 내지 개념에서 빠져나가는 것까지 구분하는 것(62)을, 동시에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키워서 개념화의 왜곡에 가리진 것을 재창조하며 어릿광대짓 같은 유희하는 것을 제안한다(62-63). 이를 통해 비동일성에 대한 분노를 그에 대한 존중으로 전환하자고 한다(63). 

이러한 문제의식은 들뢰즈가 말하는 초험적 경험론과 유사한 계기를 포함한다. 그러나 비동일성이나 대상 바깥의 자연을 강조하며 그에 개념을 일치시켜가려는 그의 미메시스 개념도 그렇지만, 여기에는 라투르라면 혼성성이 사라진 ‘자연’이나 ‘사물’이 개념과 대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헌법 안에 있다고 할 것 같다. 또한 긍정적 생성의 관점이 아니라 부정을 통한 반성이라는 부정변증법은 그 틈새에서 새로운 생성의 지대를, 되기를 형성하는 긍정적 탈주선을 보지 못한다. 들뢰즈는 양식과 공통감을 파괴하는 강도적 생성을, 그것을 통한 초험적 개체화와 초험적 사건화의 길을 찾지만, 아도르노는 한없는 부정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도 개념이나 감각의 발전을 말하는 이율배반 속에 있는 것 같다. 

(들뢰즈의 초험적 경험론과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윤리학과 비교해보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레비나스에게서 타자성의 경험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양식과 공감 안에서 시작하고 무한의 초월조차 그 안에서만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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