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을 읽자>세미나 3월 2일 발제:하얀
재일, 조선을 살다
시집《이카이노》의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 “없어도 있는 동네./있는 그대로인 채/사라지고 있는 동네./…/누구나 알고 있으나/지도에 없고/지도에 없으니/일본이 아니고/일본이 아니니/사라져버려도 괜찮”은 동네, 이카이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살면서 이 동네에 살던 일본인들은 떠나고 조선인들이 자리를 잡는다. 일본 안에 터를 잡았지만 그들의 삶의 풍습은 일본인들과 다르다. 소란스럽고, 냄새가 나며, 일본어도 아닌 일본어를 해댄다. 이카이노는 일본이지만 일본 아닌 것, 재일 조선이 된다. 일본어로 일본에 복수하기, 일본 안에서 일본을 뒤틀기, 이것을 김시종은 “재일을 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 그들은 ‘없는’ 존재로 취급 받으며, 일본이 그어놓은 경계의 선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한 재일조선인의 생생한 삶을 담고 있어 제법 유쾌한 편인 《이카이노》는 이 삶이 격자, 상자 안의 삶이라는 인식을 유지하고 있어 무게감 또한 유지하고 있다. “팽이의 삶”이라고도 말하는 이러한 삶은 역설적이게도 화자에게 조선을 살게 한다.
그렇다면 남북단독정부가 세워졌으며, 그 어느 곳도 선택하지 않은 김시종에게 ‘조선’이란 대체 무엇일까. 먼저 그것은 그에게 “쓸쓸하게 묻혀 있는 것”, “잃어버린 기억의 관”, 생계를 둘러싼 삶 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단란함 안쪽에서 “진좌하고 계시던 지지르는 어둠의 누름돌”, “잊어버린 제례가/기억의 바깥에서 응고된 것”<나날의 깊이에서>(1)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어둠, 기억의 바깥, 생계의 바깥,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이 바깥은 불현듯, 다시금, 우연하게도 나타나서 이어진다. 그가 살았던, 재일조선인들이 뿌리 내렸던 ‘이카이노’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어떤 하나’를 후손에게 말한다. 그것이 바로 ‘조선’이다. 일본에서 살았기에 한국의 문제와 상관없는 듯하지만 역시나 바라는 어떤 하나, 그렇다고 지금 한국도 아닌 곳, 장소 이어져있는 듯 하지만 끊겨 있고, 잃어버린 기억이기에 끊겨 있으면서도 여전히 튀어나오는 기억이기에 시간과도 이어져있는 듯한 것. “끊어져 있을 수 있는 이어짐”. 김시종에게 조선은 특정 시공간이 아니라 바로 ‘사건’<나날의 깊이에서(3)>이다. 늘 활성화될 준비를 하는, 화학물질. 어떤 발화지점에서 발화될 줄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