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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모임에서 저희는 제18절 처음부터 85쪽 두 번째 문단까지 읽었습니다.

이번에 읽었던 곳이 세계 현상을 다루는 부분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네요.

책의 구성을 보시면, 15절부터 제18절까지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가수는 항상 마지막 무대에 등장하듯이,

하이데거는 비장의 무기를 마지막 절에 숨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8절은 앞 절들의 내용을 단순히 총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로 삼아서 바닥 모를 심연의 사유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 절들의 논의를 따라가지 못하면 본 절은 매우 이해하기 힘듭니다.

본 절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사용사태와 유의미성; 세계의 세계성

제목만 봐도 세계의 존재론적 구조(세계성)가 사용사태와 유의미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죠.

 

세계란 용재자가 용재적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근거이다.’

우리가 도구를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도구가 도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 먼저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이미 발견하거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선행적 세계 발견/이해에 기반하여 우리는 망치질을 하고 시계를 보고 이정표를 확인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는 우리가 용재자를 만나도록 해주는 것일까요?

어떻게 세계는 용재자를 그 존재에서 자유롭게-내줄(개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앞의 절들에서 용재자의 도구 구성틀이 지시로서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시의 방식들로서 유용성, 유해성, 사용 가능성 등이 거론되었지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유용성의 어디에Wozu와 사용 가능성의 무엇에Wofür

지시가 어떤 식으로 존재적 차원에서 구체화될지를 미리 밑그림 그려준다고 합니다.

예컨대 휴대폰은 사람들과 연락하는 데 사용되고, 이를 통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인간관계의 유지라는 Wozu연락이라는 Wofür만으로도,

지시의 존재론적 구성틀이 어떤 식으로 존재적 차원에서 구체화될지, 그 가능한 범위와 한계가 미리 한정됩니다.

이를테면, 편지나 전화기는 그 범위 안에 속할 수 있어도 책상이나 침대 같은 것은 속할 수 없죠.

 

지시가 구체화된 것들로서 기호의 가리킴과 망치의 망치질은 용재자의 속성이 아닙니다.

속성이 용재자가 자체적으로 소유한 어떤 본질적 특징을 뜻한다면 용재자는 속성을 갖지 않으며,

그것은 기껏해야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데 적합하거나 적합하지 않을 뿐입니다.

유용성(지시) 또한 존재론적 구성틀이기에 존재적인 적합성, 부적합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유용성은 일종의 가능 조건으로서, 그 덕분에 용재자가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그런 조건이죠.

 

용재자는 그 자체만으로는, 단독적으로는 아무런 존재론적 본질도 자기 안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용재자의 존재는 지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명제를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용재자는 그 자체에 (다른 것으로) 지시되고 있음(Verwiesenheit)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용재적 존재자가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즉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언제나 이미 다른 어떤 것으로 지시되고 있어야 합니다.

(역으로,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지시되고 있다면, 이는 바로 그것이 용재적으로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용재자의 본질적 구조에는 언제나 다른 것과의 지시 관계가 속해 있는 것이죠.

이런 관계가 용재자를 바로 그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근거입니다.

 

예컨대, 휴대폰은 연락하는 데 사용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용하다는 지시 관계에 의거하여,

즉 휴대폰 자체 내부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어떤 외부적 관계에 의거하여 바로 그 휴대폰으로 존재하는것이지,

그것 자체에 포함된 객관적 특징이나 본질적 속성에 의거하여 휴대폰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데거 특유의 관계론적 사고를 엿볼 수 있고요,

또한 여기서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의 본질 중심적 사고방식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런 맥락에서 드디어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사용사태(Bewendtnis)’

소광희 본은 그것을 적재성(適在性)’으로 옮기고 있네요.

영역본도 번역이 두 가지로 나뉘는 데요,

하나는 ‘involvement’로 다른 하나는 ‘relevence’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기상 교수가 사용사태로 옮기고 있는 것은,

아마도 동사 bewenden사용하다는 뜻이 있고, 명사 Bewendtnis사태, 사정, 상황의 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용사태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핵심 사항은,

어떤 것을 가지고 어디에 사용토록 해줌(bewenden lassen mit etwas bei etwas)’이라는 본질적 구조입니다.

어떤 것을 가지고(mit etwas, Womit)’ : 사용사태에는 수단에 해당하는 것(사용하는 도구, 용재자)이 본질적으로 속해 있습니다.

어디에(bei etwas, Wobei)’ : 사용사태에는 목적에 해당하는 것(Wozu, Wofür)이 또한 본질적으로 속해 있습니다.

지시라는 용어가 이미 이런 관계적 구조를 함축하고 있죠.

지시란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지시하는 것이니까요.

결국 우리가 도구를 사용한다 함은, ‘그것을 가지고 어떤 목적에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의 절들에서 용재적 존재자의 존재는 용재성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논의가 더 심화되어, 용재자의 존재는 이제 사용사태로 규정됩니다.

사용사태는 그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입니다.

이 사용사태에 의거하여 세계는 용재자를 그 존재에서 자유롭게-내주는(개현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용사태에서 수단과 목적은 불변적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전에 Wobei 자리에 왔던 것이 언제든 Womit 자리에 올 수도 있지요.

하이데거가 들고 있는 사례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망치를 가지고(Womit) 망치질 합니다(Wobei). [사용사태 A]

우리는 다시 망치질을 가지고(womit) 무엇인가를 고정합니다(Wobei). [사용사태 B]

우리는 다시 고정함을 가지고(Womit) 악천후에 대비합니다(Wobei). [사용사태 C]

우리는 다시 대비를 가지고(Womit) 우리 자신인 현존재가 안전하게 머무릅니다(Wobei). [사용사태 D]

사용사태의 수단-목적 연쇄 관계는 사용사태 D’에서 종결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안전하게 지내기 위하여, 즉 우리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을 위하여 망치를 사용하는 것이죠.

 

사용사태 A, B, C, D를 합하면 사용사태 전체성이 되는데요.

각 단계에서 우리가 어떤 수단을 가지고 어떤 목적에 사용할지는, 즉 어떤 사용사태가 관계할지는,

이 사용사태 전체성에서 미리 밑그림 그려져 있습니다.

안전하게 머물고자 하는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과 관련된 사용사태 전체성에 의거하여,

각각의 사용사태가 어떠한 사용사태가 될 수 있을지, 그 가능한 범위와 한계가 미리 한정되는 것입니다.

가령, 초강력 태풍을 피하고자 하는 전반적 목적에서는,

집을 보수한다든지, 아이를 일찍 귀가시킨다든지 하는 사용사태는 의미를 갖지만,

김장을 담근다든지, TV연속극을 시청한다든지 하는 사용사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요.

따라서 우리는 각각의 사용사태에 앞서서 사용사태 전체성을 먼저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펜, 잉크, 책받침, 의자, 책상, , 문 등의 개별 도구에 앞서서 도구 전체성을 먼저 경험하듯이 말이죠.

 

그런데,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사용사태 전체성은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에서 종결되어야 합니다.

그 최종 목적은 더 이상 또 다른 Womit로 변경될 수 없습니다.

그 단계에서는 사용사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이것을 위에서는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과 연관지었죠?

그렇습니다.

사용사태 전체성의 최종적 Wobei, Wozu는 용재적 존재자와 관계하는 목적이 아니라,

세계--존재로서 규정되고, 세계성이 그 존재 구성틀에 속해 있는 존재자”,

즉 현존재라는 존재자와 관계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최종적, 일차적 Wozu를 하이데거는 궁극목적(Worum-willen)’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 궁극목적은 언제나 바로 현존재의 존재와 관계하는 것이죠.

우리는 <존재와 시간> 첫머리에서 현존재를 자신의 존재에서 바로 그 존재가 문제시되는 존재자로 정의하였습니다.

이 때, ‘문제시되다에 해당하는 독일어 표현이 ‘es geht um ~ ’라는 관용어구인데요.

우리는 여기서 ‘Worum-willen’um‘es geht um ~’um 간의 개념적 연관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 동안 배웠던 모든 um적 개념들, Umwelt, Umgang, Umsicht, Um-zu 등등의 개념들과의 연관성도 확인할 수 있고요.)

현존재는 바로 자신의 존재가 문제시되며, 동시에 바로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목적이 되는 그런 존재자인 것이죠.

 

하이데거에 의하면,

사용토록 해줌(Bewendenlassen)에는 존재적 의미와 존재론적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1) 존재적 의미 : 용재자가 수단wie과 목적damit의 양 측면에서 이러저러하게 존재하도록 해줌(sein lassen).

여기서 존재하도록 해줌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하고 제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존재자로 있는 어떤 것을 그 용재성에서 발견하여 용재적 존재자로 만나도록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어떤 존재자를 용재자로 만나지 않는다면, 가령 그것을 전재자로 만나고 있다면,

그 경우에 그것은 용재자로 존재하지않는다고 말할 수 있죠.

우리가 그것을 용재자로 만나고 있을 때,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은 도구로 존재하는것입니다.

이런 선험적인존재하도록 해줌이,

현존재가 용재자를 만날 수 있기 위한,

그래서 현존재가 그것과의 존재적 교섭 속에서 존재적 의미에서 그것을 사용할bewenden 수 있기 위한 가능 조건이 됩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사용사태에 의거하여 자유롭게-내주면서(개현하면서) 그때마다-이미-사용토록-해주-었음이라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2) 존재론적 의미 : ‘모든용재자를 용재자로서 자유롭게-내주는(개현하는) .

용재자는 사용사태와 무관하더라도 용재자일 수 있습니다.

가령 망치를 못 박는 데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고치거나 부숴버리거나 할 때도

망치는 여전히 용재적인 존재자로 남아 있죠.

왜냐하면 뭔가를 고치거나 가공하거나 깨부수는 행위는 모두 배려함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적으로 이해되는 사용토록 해줌은 이와 같이 사용사태에 있는 용재자 뿐만 아니라

사용사태에 있지 않은 용재자도 모두 용재자로서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자를 그 용재성에 의거하여 선행적으로 자유롭게-내줌(개현함)”이라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는 외계어(?)로 요약하고 있네요.

 

 

다음 모임에서는 교재 85쪽의 세 번째 문단부터 읽을 예정입니다.

아마도 제18절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 다음 주에, 922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연구실에서 뵙겠습니다.

 

세미나 문의는 O1O-7799-O181 또는 plateaux1000@hanmail로 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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