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세미나] 그 1년의 후기

조정웅 2019.08.02 06:51 조회 수 : 117

잘들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백남준 세미나를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저의 그간의 근황과 후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뜨거웠던 날의 뜨거운 기억이네요. 제게는 아직도 멈춰있는 시간 같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신의 축복, 조울] 

제게 조울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하나의 사건입니다. 사건은 언제나 뒤를 덮치듯 찾아옵니다. 그것은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손을 쓸 방도가 없었지요. 조울은 신적인 폭력 그자체였습니다. 지켜볼 새도 없이 그저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꼭두각시가 되어 자제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없는 기쁨이 쓰나미가 되어 덮쳤고 저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분간 되지 않는 상태로 내던져졌습니다. 그것은 끔찍하다는 말로는 모두 표현될 수 없었지요. 몸은 결박당해 옴짝달싹 못하지만 영혼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듯 하늘을 향해 끝없이 비상했지요. 차가운 병동의 형광등은 눈이 부시게 찬란했고 한두방울 떨어지는 수액은 아름다운 운율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한계없이 날아오를 것만 같았던 비상의 날개는 강렬한 태양에 다다르자 잿가루가 되어 스러졌고 끝도 알 수 없는 추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멜랑콜리아의 강력한 중력은 바닥 그 아래 까지.. 또 그 아래를 경험케 하였습니다.
 
수 만 피트의 추락 후, 저는 완전히 으깨졌습니다. 사지는 이리저리 튀어 내동댕이 쳐졌고 온몸의 뼈들은 으스러졌으며 내장은 형체를 알아 볼 수도 없이 짓뭉개졌습니다. 미약하게 펄떡이는 신경만 남아 간간히 찾아드는 고통을 재현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막간 없이 반복되는 끝없는 연극과도 같았습니다. 흩어졌던 저의 일부들이 꾸물꾸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기괴한 형태의 모습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저였지만 제가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분명 살아 꿈틀대는 살덩어리였습니다. 미처 그것을 나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비상은 다시 시작되었고 이후 더 높이 그리고 더 깊이 오르고 떨어짐을 반복했습니다.
 
몇번의 조울을 경험하고 난 이후 저는 만신창이라고 하기도 부족한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잔인하게도 신은 제 모습을 직시하도록 거울을 비추었습니다. 절망 좌절 분노 저주 오열 탄식이 이어졌고 고통에 몸부림 쳐야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여전히 제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으스러지고 망가졌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살아 작동한다는 것, 그것은 생명의 놀라움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생명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생을 유지하려는 힘 그자체였습니다. 눈물겨운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모습이건 간에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나, 제2 제3의 나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나는 무엇이 되어도 나입니다. 그리고 그 각각이 모두 의미있는, 생명의 놀라움으로 가득찬 기적의 산물입니다. 
 
조울은 제 삶 깊숙히 파고 들어 끊임없이 여러 자아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망가트리는 것을 즐기는 림프의 짓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신의 부단한 설계 노력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위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내가 해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입니다. 
흉측한 모습을 하고 거울에 비친 새로운 자아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새 생명을 부여받은 일이기에 너무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위대한 신비를 증명하는 숭고한 임무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이 사건을 새로 규정하려 합니다.  이상 병적 자아를 움켜쥐고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생의 충만함을, 생의 숭고함을, 생의 신비로움에 기뻐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자아도 이러한 강렬한 경험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 백남준으로 부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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