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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악순환』 8∼9장 발제 2018, 12, 5(토) namu

❝광기 자체가 어떤 불행하지만 너무나 확실한 인식을 은폐하는 가면인 경우가 가끔 있다.❞ 『선악의 피안』

❝나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작업을 포기할 정도로 나의 사적인 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살든지 희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야콥 부르크하르트에게 보내는 편지」, 1889년 1월 6일)

 

8장_병자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

◎건강한 것과 병적인 것의 대비: 단지 정도들의 차이일 뿐. 예술가는 훨씬 더 강한 혈통에 속한다. 우리에겐 해롭고 병적인 것이 예술가에겐 본성이 된다.(253)

◎영원회귀: 이는 본래 먼저 체험되고 그 다음에 사유된 사실로서 특이적 사례에 속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사회적인 지성이 아닌, 감수성과 감동, 정서에, 바꿔 말해 각자와 모두의 충동의 삶에 호소한다. (255)

◎본질적인 것은, 명석함이 결코 삶을 버리거나 배반하지 않고 언제나 삶에 종속되어 그 가장 맹목적인 형태들 안에서 삶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밟아나가면서, 니체 자신은 “병자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에 복종한다, 즉 최고의 악의와 그에 따른 폭력성에.(256)

◎❝광대와 성자. 인간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두 부류./천재와 ‘위대한 모험가와 범죄자’ 사이의 긴밀한 유사성./병자와 약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이점을 지닌다. 이들은 건강한 자보다 더 흥미롭다./ 여자는 강자를 약하게 만들고, 강자를 사로잡는데 성공하면 지배해버린다.❞

「어째서 약자가 승리하는지 」니체 자신이 병들고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이 실존의 상태들을 재평가. 그리고 자신만의 구별을 수정하고, 거기에 뉘앙스를 부여하며 풍부하게 만든다.병자는 더 큰 동정을 사고 그와 동시에 악의를 ‘발명한’ 유일한 자가 되기 위해서 복권된다. 더 많은 정신을 지니기 위해서 늙고 퇴폐적인 종족은 복권된다. 어릿광대와 성자는 복권된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천재’, ‘범죄적 모험가’가 하나의 정서적 장르 안으로 모여든다. 이러한 역전은 니체에게 있어서 대부분 도스토예프스키의 발견 덕분이다.(257-259)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이 사람을 보라 』 확신은 착란의 공격성으로 드러난다. 어떤 확신? 환원불가능한 토대(그 침묵이 모든 등가물을 거부하는)에 대한 확신이다. 만약 확신이 착란을 만든다면, 그것은 상상된 기괴함이란 단지 범죄행위의 이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니체는 확신을 가졌음으로 착란을 받아들인다. 즉 환상적 현실은 현실 안에서 비전을 완성하는 힘을 전제한다는 것을. 착란은 기괴한 행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실천하는 힘이 그 행위를 표상하는 힘에 앞선다는 확신 안에 있다. 기괴한, 범죄적이란 말은 여기서 비전이 권력을 유발할 때의 과도함을 표현한다. (260-261)

인식은 기괴함의 숨겨진 힘이다.(261)

광기란 말은 동일성의 원리의 폐지로부터 출발하는 하나의 작용일 뿐.(262)

 

9장_토리노의 도취

◎ ❝니체에게는 ‘철학자에게 불가결한’, 이성적· ‘객관적’ 능력이 없다. 이 결여는 니체가 자신의 사유의 일관적 체계를 구축할 수 없었던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_에리히 포다흐 (273)

◎❝사상은 정서들의 유희와 투쟁에 관한 기호이다. 그것은 항상 그것의 숨겨진 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274)

◎ 강도, 자극, 음조, 이런 것들이 사유이다. 사유가 뭔가에 적용된다면, 다른 강도들·자극들·음조들이 생겨난다. 이제부터 니체는 개념적 능력이 아닌 정서적 능력의 관점에서 사유를 실천하고자 한다. 이 한계점에서, 앎은 스스로를 활동의 수단으로 제공한다. 그 수단은 지성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카오스의 유혹하는 힘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274)

◎❝원환의 강도체험❞(결정적인 한 번의 원리 대체); 동일성이란 본질적으로 우연적이고, 이런저런 개인들이 우연이 필연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개인들이 각각의 개인에 의해 주파되어야 한다. 교의로서의 영원회귀가 내포하는 것, 그것은 지성의 기반인, 동일성과 비-모순 원리인 결정적인 한 번의 무의미 바로 그것이다. 만일 모든 사물들이 결정적인 한 번만 도래한다면, 그 사물들은 강도를 잃고 의미의 무의미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강도는 영원회귀의 영혼이므로, 모든 사람들은 원환의 강도에 따라서만 의미를 획득할 뿐이다. (275)

◎ 상승 또는 하강(도취-우울), 그 안에서 작인은 해체와 재형성의 상반된 운동을 보인다. 작인은 도취 안에서 사라지고 우울 안에서 재형성되기 때문이다. 마치 도취의 부재 또는 무능에 의해서만 작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들로부터 니체가 도출한 결론 도식 ①세계를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욕구. ②시각들의 복수성에서, 모든 것이 해석일 뿐만 아니라 해석하는 주체 또한 그 해석의 하나라는 결론. ③ 단지 사유될 수만 있는 모든 것의 가지성可知性은 진실성이라는 무리적 도덕으로부터 파생. “너는 인식가능해야하고, 명학하고 불변하는 기호들에 의해 너의 내면성을 표현해야 한다---진실성의 요청은 인물의 인식가능성과 지속성을 전제한다.” (278)

◎ 우연적 사례 그 자체는 창조적 충동들의 상호충동들일 뿐이다. (279)

◎ 모든 진정한 예술가는 가짜인 무언가를, 즉 시뮬라크르를 만든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런데 바그너는 거짓을 전혀 의식하지 않기 위해 시뮬라크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릿광대일 뿐이다. 사실 어릿광대는 니체에게 있어서 비밀무기 제조법이다. 그것은 앎의, 정확하게는 참과 거짓의 전통적 기준을 날려버릴 것이다. 배우의 현상은 니체에게 존재 자체의 시뮬라크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연극증은 니체에게 있어 인격의 해체라는 비밀스러운 고유한 작업과 밀접하게 관련. 이 동일한 동기(참된 것의 무의식적 시뮬라시옹과 의식적 시뮬라크르의)로부터 니체 안에서 가면의 환영이 성장한다. (283)

◎【스트린드베리】; 자신의 착란을 두려워해서 자신을 둘로 나누는 대단한 능력에 의해 광기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던. “상연 중에 한 노부인이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고, 다른 한 부인은 출산을 했으며, 구속복 장면에서는 관객의 4분의 3이 한 사람처럼 동시에 일어나서는 공포에 질린 소리를 내지르며 극장을 나가버렸습니다.(---)이 간통의 도시에서 전면적 출산을 야기할 것입니다.” (291) 그의 신랄한 아이러니는 니체의 격렬하면서도 도취적인 영혼의 음조와 특이하게 일치하며 상응한다.

【니체】❝그럼 안녕히! 사실 우리는 다시 만날 겁니다./유일한 조건. 이혼합시다.---/니체 카이사르.❞ (293)

【스트린드베리】❝나는 원합니다. 광기에 빠지기를/ 리키니우스여, 너의 삶은 시들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 폭풍우를 두려워하여 저 바다로 뛰쳐나가지도 못하고, 위험한 해변들을 품에 안지도 못한다면. / 스트린드베리(지고하고 지선한 신).❞

【니체】❝예?---이혼합시다는 더 이상 아닙니까?---/십자가에 못박힌자❞ (295)

◎【‘디오니소스’와 ‘십자가에 못박힌 자’】 이중의 신격화.

⑴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관점; 음모의 관점. 편집병적 체계의 논리적 연장. 희생자는 판단의 힘. 니체의 판단 기준은 그가 위장하면서 느끼는 강도, 황홀경까지 이르는 강도 안에 있다. (296)

(2)‘디오니소스’의 관점; 바그너에 대한 복수인 동시에 코지마를 노린 일종의 특이한 전투. 디오니소스란 서명우주의 카오스와 동일시. (299)

◎‘현실원칙’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외부세계에 대한 의식의 정지나 소멸에 있다면, 그와는 반대로 니체가 이 토리노에서의 최후의 날들만큼 명석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가 의식하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그가 니체이길 그만두었다는 것. 그로부터 니체라는 인격이 비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동일성의 부재는 엄청난 변덕스러운 발언에 의해 표명되고, 이 발언은 이러한 변덕 자체의 신의 모습을 요구한다. 이는 신들의 보편적 몸짓에 필적하는 발언이다. 자신의 발언을 누구도 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면, 니체는 어떻게 고의적으로 구경거리로 만들 수 있었을까? 두 개의 동기; ①자신을 우롱하고 동시인대들을 우롱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다고 느낀 권위.②우연한 사례(니체의 사례로써 유일한 현실이거나 또는 파악할 수 있는 현실의 완전한 부재로써 이러한 권위는 자기 마음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과 융합해서 그 왕국을 서립할 수 있을 정도. 298)―실제로는 의식적 자아의 완전한 공허 안에서 겪은 카오스 ―의 연출이 제공한 관능적 쾌락. 연출자는 물론 아직은 니체의 의식이었지만, 더 이상 니체의 자아도, 니체라고 서명한 나도 아니었다. 이 의식에 의해 니체의 표현, 니체의 어휘는 존속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직접적으로 충동들이고, 기분의 운동들이다. 이 충동들과 운동들은 나에 의해 행사되던 현실원칙의 검열로부터 해방되어, 의식을 니체적 담론의 잔재라는 형태로 활성화하고, 그리하여 이를테면 그의 연극증의 레퍼토리가 된다. 그리고 그 부속물들은 영혼의 음조에 따라 조합된다. (297-298)

◎객관성의 기준(니체의 토리노 시절의 행동에 대한 제도적 규범들로부터 성립하는 ‘임상적 정의’; 편집증 치매, 조발성 치매, 편집병, 정신분열증)은 순수하게 예술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스트린드베리에 의한 무한한 아이러니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정상적 사유로부터 너무나 멀어진 아주 특이한 정신의 표현들조차도 정신적 삶의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들로부터 파생됐다.❞  프로이트의 가설 (301)

◎ 니체의 토리노에서의 행동은 ‘억압된’(트립센의 실패와 바그너와 코지마와의 결별 이후로) 반-니체의 분출로서 ‘설명되거나’ 증명될 것이다. (---)반-니체의 출현은 명석한 니체로부터의 해방으로 체험되고, 그로부터 도취가 발생한다. 명석한 니체의 파멸 자체는 니체의 파토스 전체에게는 이를테면 특권이 된다. 그리고 세계의 변화, 천상의 기쁨, 십자가에 못박힌 자와 디오니소스의 대치의 화해, 이 사람을 보라 에 대하여 거둔 승리 같은 것, 다라서 체험된 불가능한 것, 이 모든 것이 토리노의 황홀을 형성한다. (301)

◎니체의 명석한 자아로부터의 해방은 너무 강력해서, 그 해방은 자신에 대한 조롱의 쾌락 자체가 된다. 니체는 항상 ①자신의 연극증을 고백했다. 그리고 ② 그것을 자신을 용서하는 방법으로,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권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여겼다. (303)

◎토리노의 기념비적인 양상 아래에서 니체에게 나타난 세계. 무수한 강도들의 비연속성. 그 강도들은 단지 니체의 메시지들을 수신하는 자들의 해석에 따라서만 이름들을 갖는다. 이 수신인들은 아직 기호들의 고정성을 표상하지만, 니체에게 이 고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도들의 파동은 스스로를 가리키기 위해 반대편의 말을 너무나 잘 차용할 줄 알았다. 그것이 기적적인 아이러니이다. 환영과 기호의 이러한 일치는 언제나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지성의 길로 우회하는 노력은 ‘초인적’이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니체라는 작인이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시작되는 것은 며칠, 몇 시간 또는 잠깐 동안의 축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생의 축제이다.(319-320)

❝화재와 연소, 그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오 진리의 설교자들인 그대들이여! 그리고 희생자보다 더 오래 희생의 증기와 향연이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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