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레비나스 세미나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강영안 선생님의 <타인의 얼굴> 서론부터 2장까지 읽었습니다. 반장님께서 발제문을 무려 11쪽이나 써 오셔서 다음 발제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한편, 여러 지점에서 참여하는 분들의 공감과 질문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반장님의 모범에도 불구하고 발제의 형식은 자유형식이니 이번 주에 발제 준비하시는 두 분은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더불어 그 다음주 발제인 저를 긴장 시키지 말아주시길 바래요...^_^ 헤헤)
레비나스는 주체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변호합니다. 그는 데카르트적 주체가 대상(Vorstellen)을 앞에vor 세우는stellen, 대상을 닦달하는 자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 제가 느끼기엔 " 데카르트적 주체는 굉장히 능동적이고 또 "생각하는 나"라는 인식에 있어서는 물러섬이 없는 고집이 센(?) 강한 (?) 주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 (좀 더 공부가 되어야하겠지만) 레비나스가 말하는 주체는 이와는 다른 모습인데요. 레비나스적 주체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세워지는 주체입니다. 연약한 얼굴을 드러낸 타인의 요청에 응답하면서 타인으로 인해 세워지는 이 주체는 수동적이고 연약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 아직은 어렴풋하게만 두 주체의 차이를 감지하는 정도라 오역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체 문제는 앞으로 레비나스 저작들을 읽어가며 계속 공부하게 될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함께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이 모두 수유너머엔 처음 오신 분들이라 자기 소개도 하고 레비나스와는 어떤 인연들을 가지고 계신지도 나누었습니다. 다들 레비나스 효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실 각자의 인연들이 있으셨어요 :)
레비나스와 인연이 있으신 분이나
인연을 만들고 가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니 세미나에 참여하시면 된답니다.
이번 주(벌써 내일이네요)에는
<타인의 얼굴> 3장과 4장을 읽습니다.
발제는 철학남매 두 분께서 각각 해주시고 간식두 간단히 준비해 주시기로 하셨어요.
세미나(매주 목요일 수유너머 1층, 7:30-)에서 뵙겠습니다.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에 첨부한 글은 스스로를 레비나스의 제자라 칭하는 우치다 타츠루의 <사랑의 현상학>에서 한 구절을 가져 왔습니다. 레비나스에게 애정을 느끼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구절 같아서요. 그럼 정말 이만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또 사는 거랑 떼어 놓지 못한다는 걸 결국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도, 언어는 환상이나 환각과 같고 실재하는 건 언어 이전의 따뜻함이라고 저는 믿고 있는 것 같아요.
후기도 써주시는 좋은 사람,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