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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바쁜 하루였습니다. 늦게나마 올립니다.

4장 원한에서 가책까지

 

1,영향받기 affected 를 중단하는 원한.

⦁원한은 반작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곧 반동적 힘이 작용을 방해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동적 힘의 스스로의 영향받기를 중단하는 방식으로도 적극적 힘들의 작용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적극적 힘들을 이긴다.

 

2. 원한의 원리이다.

⦁우리의 <흥분의 수용 시스템>은 그것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항구적인 lasting 흔적을 붙들진 못한다. 곧 기억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이 첫 번째 흔적을 항구적으로 변화시키는 <다른 체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이다. 우리의 추억은 무의식이다. 항구적이고 영원한 흔적들이 저장되는 곳. 그래서 의식은 기억의 흔적이 멈추는 곳에서 나타난다. 여기서는 직접적이고 수정할 수 있는 이미지만을 대상으로 흔적을 간직한다. 니체도 이 두 체계,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했다.

⦁반동적 장치의 두 체계이다. ⓵ 반동적 무의식: 이는 기억의 흔적memoric trace에 의해서, 항구적인 자국lasting imprint에 의해서 정의된다. 이 반동적 힘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임무인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고착시키는 일>을 실행한다. 그런데 이런 실행능력은 반동적 힘만으로는 불충분inadquency하다. 뭔가 다른 체계가 필요하고 이 <다른 체계>에서의 반작용은, <현재 흥분이나 대상의 직접적인 이미지에 대한 반작용 reaction이 되기 위해서> 흔적들에 대한 반작용이길 중단한다. ⓶ 두 번째 종류의 반동적 의식; 항상 새로운 수용성에 의해서 재생되는 껍질이며, 새로운 것들에 대한 영역이다. 여기서의 힘들은 반작용이 어떠한 형태? 어떠 조건?에서 영향 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동적 힘들은 <의식 속>의 흥분을 대상으로 삼을 때 <흔적들에 대한 반작용>은 무의식 속에서 사라지고, <흥분들에 대한 반작용>은 영향받는 어떤 것이 된다.

 

⦁흔적들은 의식을 침범하면 안 된다. 적극적 힘들은 의식을 뒷받침해야 하고, 매 순간 의식의 새로움, 유동성, 가볍고 동적인 화학적 요소를 구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망각능력은 초- 의식적인 적극적 능력이다. 이는 조형적인plastic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망각능력으로 인해서 의식이 흥분을 대상으로 삼을 때 반작용은 영향받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현재 순간의 행복, 기쁨이 망각능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거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망각 안에 들어 있는 적극적 힘이 활동에 의해 반동적 힘에게 전파되고 반동적 힘은 영향받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망각 능력이 쇠약시, 의식의 왁스는 단단히 굳고 흔적들에 대한 반작용을들은 느껴질 수 있는 어떤 것이 되며 <흥분에 대한 반작용>은 영향받기를 중단하게 된다. 흔적은 억압하고 의식의 흥분은 살리는 그런 필수 에너지를 망각능력이 발견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원한은 <망각능력의 쇠약>으로 인해 흔적이 흥분을 대신하며 느껴질 수 있는 어떤 것, 영향 받길 중단하는 반작용인 것이다.

 

3. 원한의 유형은 anal type이다.

⦁원한을 왜 항문적 유형anal type이라고 하는가? 기억을 끝내지 못한 소화 unfinished digestion 라고 하는 이유는? 원한의 인간은 수용된 흥분의 힘에 집중하기 위해 주체 자신의 전체 힘을 거기에 이용한다. 그래서 어떠한 다른 행동도 불가능하고 반응하는 것 조차 못한다. 그는 단지 모든 존재, 모든 대상을 모욕으로 느낀다. 아름다움과 선함 조차도 모욕으로 느낀다. 추억은 곪은 상처이고 그의 의식은 경직되고 경화된다. 이런 자신의 무능력을 보상하기 위해 그 대상들을 증오하고 비난한다. 그들의 추억은 소화되지 못하고 대장 속에 여전히 남아 유독 가스를 내품고 있다.

⦁원한의 인간은 기억의 흔적들이 의식에 침투하고 의식 자체로 상승ascent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⓵ 의식이 어떻게 거기에 맞게 기억을 재단할 수 있는지, ⓶ 어떻게 흔적들에 근거하지 않는, 적극적이면서 영향받는 기억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4. 원한의 특징들 몇가지

1)원한은 복수에게 하나의 수단을 제공 한다. 원한은 더 이상 자신을 작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상태, 적극적 히들이 작용하기를 피하는 상태이다. 이것은 반동적 힘과 적극적 힘의 관계가 뒤집히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원한이 <복수같은 그런 뒤집힌 상태>에게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 원한 자체는 (노예들의)저항의 승리이다. 힘의 관계의 두 가지 유형, ⓵ 주인의 유형: 망각의 능력에 의함 ⓶ 노예의 유형: 기억의 힘, 원한의 힘에 의함.~ 에서 승리 속에 있는 노예들은 두 번째 유형을 형성한다.

2)감탄할 수도, 존경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무능력인 <흔적들의 기억>! 이것은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다. 추억에도 원한이 복수심이 가득차 있다. 그들은 어떠한 치밀한 작업에 의해 증오를 변장시키는데, 그 작업이란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추억들을 가진 존재들을 비난했던 점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며, 비난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참으로 겸손?하다. 하지만 이들의 스스로의 呵責과 겸손은 참으로 섬특하다 frightening. 그들의 열등감의 선언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증오심들! 원한의 인간에게 먼저 눈에 띠는 것은 겸손 뒤에 숨어 있는 그들의 < 혐오스러운 적의와 경멸>이다.

3) <원한의 인간의 행복>은 수동적 상태로 나타난다. 니체는 수동적 과 비적극적을 같이 보진 않는다. <수동적passive>는 영향받지 않는 한에서 반작용이다. 수동적인 상태는 반작용의 승리이며 원한이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원한의 인간은 기획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에서 이익을 보려고 하고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여긴다. 사랑받기만을 원하지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는 도덕은 <실리>의 도덕이다. 자신이 기획, 행동하지 않은 모든 실행에 직면했을 시 <이득, 실리>만을 본다.

4) 이런 <원한의 인간. 실리의 인간, 도덕의 인간>은 무사심disinterestedness이라는 놀라운 개념을 발견한다. 자신들은 이익에는 관심이 없어 행동하지 않는 거고 그래서 자신들은 선량하다는 논리이다. 그들의 선량함 뒤에 숨겨진, ⓵ 제 3자의 수동적 관점과 ⓶ 행동하는 자(주인)들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힐난. 그들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행동들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사심한 특징을 스스로 칭찬한다.

5) 원한의 인간은 잘못과 책임을 전가한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행동에서 이익을 보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의 기대감이 어긋나면 행동한 자(제 3자) 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모든 것은 네 탓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제 3자를 비난하면서도 그들을 원한다.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뒤에 나오겠지만 자신의 선량하기 위해서 악의가 있는 제 3자들이 있어야 한다. 원한의 인간들의 도덕, 곧 노예의 도덕은 “너는 악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선량하다.” 이다. 이런 오류 추리는 계속 설명이 되고 있다.

 

5. 노예의 정식, ”너는 악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선량하다.“

⦁원한의 인간은 이와 같은 삼단논법으로 수 많은 가치(그들의 가치) 들을 창조한다. 사람들을 악의가 있다고 먼저 상정하고 자신은 선량하다고 말하는 자! 그들이 악의가 있다고 하는 자들은 실재로는 <행동하는 자>들이다. 원한의 인간들은 그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서 자신들이 선량하다고 여긴다. 단지 자신은 제 3자의 관점에서 그 행동들을 결부시킨다. 그들은 그 행동들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신에게 그 복수를 위임하고 자신들은 선하다고 여긴다. 이렇게 선과 악의 가치가 탄생한다. 그것은 착함과 나쁨이 아니다. 이런 선과 악의 가치는 행동하면서 창조되는 가치가 아니라 행동에 제동을 걸면서 창조되는 가치이다. 이것들이 창조되는 방식 뒤에는 <삶 속에서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든 것에 대한 극도의 증오>가 숨겨져 있다. 그들(노예)이 강자(행동하는 자, 행복한 자)에 대해 복수하는 방법이다. 이들이 말하는 사랑, 그것은 원한의 결과이고 완성이다.

⦁이런 삼단 논법의 긍정적인 결과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 속에서는 본질은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것은 단지 부정에 의해서만 현존할 수 있다. 부정의 전제들 아래에서만 (와관상)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다면 그것의 본성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6. 맹금은 어린양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어린 양의 삼단 논법은 노예의 정식과 같다. ” 맹금은 모두 악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어린 양)는 선량하다.“ 그렇다면 맹금은 아무리 아사餓死 직전이어도 어린 양을 잡아 먹어선 안 되는 건가? 다시 이 이 삼단 논법으로 돌아가서 ⓵소 전제, ”나는 맹금과 반대이다”에서는 나는 그것들(맹금)과 분리가 되지 않고 그래서 자신들은 스스로 억제할 수 있으며 자신들은 선량하다고 결론짓는다. ⓶ 대 전제, “너는 악의가 있다”에서는 너(맹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그래서 자신을 자제, 억제하지 못하며 그래서 너희들은 악의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사람들은 이런 어린 양frame 안에서 실재적으로 억제되어 있다. 자신이 선하다고 여긴다면, 기독교적 선함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행동하지 못하는 무능력 속에 들어 있는 반동적 힘을, 그리고는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김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단지 원한 속에서 비난하기가 그들이 임무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서 분리되는 어떤 힘>에 대한 허구가 반동적 힘들을 전파시키고 적극적 힘들을 reactive하게 한다. 힘들이 이런 허구의 주체 속으로 투영되면 적극적 힘은 유죄이고 반동적 힘은 찬양받을 만함을 입증해 보이기 시작한다.

 

7. Development of Ressentiment.

⦁원한의 위상학적 측면에서 보면, 가책 bad conscience 은 가공하지 않은raw 상태, 순수 질료 상태이다. 이것만으로는 원한은 형태를 갖지 못한다. 반동적 힘이 적극적 힘을 피하는 방식 정도이다. 여기에 두 번째 측면인 <흔적들의 기억>이라는 유형학적 측면이 더해질 때 그들의 복수심은 구체화되고 영원한 비난을 계획하게 된다. 반동적 힘은 적극적 힘에게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에서 분리시킨다. 관계는 전복되고 반동적 힘이 승리하는데 이런 허구에 의해서, 또 어떤 신비화에 의해 이런 전복은 일어난다. 반동적 힘들은 적극적 힘들의 미분적 요소를 전복된 이미지로 만들고 자신은 활동을 회피할 수단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영향받기를 중단한다.

⦁이제 적극적인 것(맹금)은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에서 분리, 왜곡됨과 동시에 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반해 반동적 힘들은 그 허구 속에서 자신을 우월한 것으로 표상한다.

⦁그렇다면 누가 원한에게 형태를 주는가? 니체는 그들은 <사제들>이라고 말한다. 그들dl 노예들에게 이런 반동적 삼단논법을 제공한다. 이것은 사제의 힘의 의지이다. 그런데 이런 힘의 의지는 허무주의이다. 반동적 힘들을 필요로 하는 허무주의는 반동적 힘을 승리로 이끈다.

 

8. 원한은 이제 가책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에서 분리된 적극적 힘들은 그 속에서 사라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런 힘들은 안으로 돌아서면서 자신에게 등을 돌린다. 이런 내재화interioity 가 가책의 기원이다. 이를 통해 고통을 생산해내고 이처럼 가책 Bad conscience (반동적 힘)은 고통을 배가시킨다. 그런 면에서 가책은 원한을 계승한 셈이다.

 

9. 현존의 의미는 전적으로 고통의 의미에 달려 있다.

⦁원한의 내재화 자체는 적극적 힘이다. 그러나 이런 원한의 내재화된 힘은 고통을 생산한다. 이런 가책은 <죄의식>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너는 원죄를 범했기에 너의 고통이 생산된 것이다.” 곧 고통을 원죄의 결과로 만든다.

⦁고통의 의미에 따라 현존의 의미가 달라지는 법이다. ⓵고통의 내적인 의미: 가책, 죄의식이 여기에 속한다. ⓶고통의 외적 의미: 하지만 고통의 적극적 의미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적극적 인간들은 고통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은 그것을 바라보는 제 3자에게 쾌락을 줄 뿐이라고 여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고통 때문에 현존을 반박하는데 이는 그들의 사유방식, 곧 반동적 사유방식을 반영하게 된다. 이런 사유방식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원한의 인간의 관점>에서 서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만약 이 <고통>을 삶을 반박하는 논증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흥분제로 여긴다면 어떨까? 고통이 주는 것이 삶의 적극적 표현이라고 여길 것이다. 고통의 반동적 힘들에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 <고통>은 과거의 적극적 힘에 의해 생산되는 법이다. 고통이 삶의 직접적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은 잔인하다.

⦁고통을 자신의 원죄의 결과와 구원의 수단으로 여기는 원시적인 자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염시키면서 고통에서 회복된다. 이와 같은 드라마가 내적 투쟁이 되고 내재화됨과 동시에 <비극>은 죽고 만다.

 

10. 가책의 발전

⦁원한은 가책으로 발전한다고 언급하였다. 이런 이행은 자동적이지 않다 중간에 사제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런 가책은 우월한 형태인, 원죄의 결과인 고통으로 인도된다. 사제는 원한의 방향을 바꾼다, 고통의 원인을 자신 속에서, 지난 시간 속에서 찾게 하며 삶 속의 적극적인 모든 것을 비난하도록 만든다. 사제는 비난을 주재하고 그것을 조직화한다.

⦁원한의 힘은 전적으로 다른 이를 향해 있다. 그들은 악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런 원한은 폭팔적 질료여서 적극적 힘들을 반동적이 되게 한다. 새로운 조건들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반작용한다. 자신 안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누군가가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의 원인이어야만 하지만 너 자신이 그 모든 것의 원인이다“ 라고 사제는 말한다. 이처럼 종교의 해석은 나의 유죄성을 지시한다. 가책을 강요한다. 이는 원한의 최초의 방향, 즉 <너는 선량하지 않다>와 완전 방향이 바뀌었다. 원한은 <네 잘못이다>라고 말한다면 가첵은 <내 잘못이다>라고 말한다.

⦁가책의 첫 번째 측면은 <힘의 내재화에 의한 고통의 배가>이다. 두 번째 측면은 원한의 방향 전환에 의한 고통의 내재화이다. 가책은 원한을 계승한다. 원한 속에서의 가치들의 전복이 근거하고 있는 허구를 분석해야 한다. 그 허구에 의해 사제는 행동한다. 고통의 내재화와 가책 속에서의 원한의 방향 전환이 근거하고 있는 허구를 분석해야 한다.

 

11. 선(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잔인성을 기억술을 바탕으로 하는 시기

12. 후-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주권자적 개체가 선사의 산물로서 후역사를 대표한다.

13.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원한과 가책, 금욕주의적 이상이 지배한다.

 

 

14. 원한은 증오와 복수의 속성을 지키면서 방향을 전환한다. 어떻게?

⦁반동적 힘들은 다른 반동적 힘들과 복합적인 결집을 형성하기 위해 그들의 훈련training을 이용한다. 반동적 힘들은 그 결집 안에서 다른 힘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일종의 부채의 의미인데, 채권자- 채무자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 다른 힘들은 전자의 반동적 힘의 심판관이며 주인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이런 반동적 힘들의 결집은 <부채의 변형>을 동반하는데, 이런 변형은 ⓵ 신성함, ⓶ 사회, ⓷ 국가, ⓸ 반응적 심급에 대한 <부채>이다. 부채는 그것이 인간의 <해방에 참여했던 적극적인 특성>을 상실한다.

⦁더 이상 부채에서의 해방이 문제가 아니라, 부채의 심화가 문제이다. 부채를 갚는데서 오는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자신을 묶고 영원히 자신을 채무자로 느끼는 고통이 문제이다. 고통의 부채를 영원히 지불할 수 없고 단지 이자만 겨우 갚는다. 고통은 내재화되고 이제 <채무-책임성>은 <죄의식-책임성>으로 된다. 이는 원한의 방향 전환이다. 이런 <죄의식-책임성>은 문화에 이식되고 더 이상 밖에서 죄인을 찾지 않는다.

⦁사제는 무리를 중독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직화하고 방해한다. 그는 <다수화되고 내재화된 고통>을 우리가 견디도록 만드는 수단들을 고안해낸다. ⓵신의 봉사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⓶ 마음 속에 갖는 오만insolence로 가책으로 인한 것을 해독시키던지, ⓷ 모든 것은 내탓이라는 사랑을 외치며 이런 식으로 타인을 유혹한다.

 

15. 원한 가책의 마지막 단계, 금욕적 이상

⦁종교는 본질적으로는 원한과 가책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연결은 되있을지는 모르지만. 신은 무수한 변형이 있다. 그래서 긍정적인 신들, 종교도 있을 것이다. 종교를 독점하고 있는 다양한 힘들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인정된다.

⦁종교는, ⓵ 다른 힘들에 의해 정복될 때는 우월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때는 그 힘에 종속되어 자신의 가면을 스스로 벗을 수도 없다. ⓶ 동일한 본성에 의해 정복될 때는 자신의 우월한 단계에서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는 종교가 주권자로서 행동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가면을 다른 힘에게서 빌린다. 종교는 무겁고 끔찍한 값은 치루지만 동시에 종교는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발견한다.

⦁반응적 힘들을 승리로 인도하는 어떤 의지?에 의해서 종교는 우월한 단계에 이르는데, 그렇지 못한다면 반동적 힘들은 승리하지 못한다. 금욕적 이상은 원한-가책의 마지막 단계이다. 아니 금욕적 이상은 처음부터 원한과 가책의 복합체일지도 모르지만 금욕적 이상은 <반응적 힘들을 승리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지>를 표현함은 분명하다. 이 의지가 없으면 반동적 힘은 승리하지 못한다.

⦁원한과 가책에 의해 <금욕적 이상 속에서의 허구>가 동반된다. 이 허구는 삶과 삶 속의 모든 적극적인 것을 비하하고 세계에 외관이나 무의 가치를 부여한다. 금욕적 이상 속에 들어 있는 허구는 다른 세계에 대한 허구이다. 무의 의지 또한 반응적 힘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의 의지>에서 분리된 반동적 힘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금욕적 이상 ascetic ideal 은 허무주의nihilism 와 반응적 힘들의 유사성을 표현하며, 허무주의를 반동적 힘들의 동력으로 표현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16.반응적 힘들의 승리.

⦁니체의 개념들에 심리학적 의미를 일치시키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하나의 유형>이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이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인 것>만은 아니다. 형이상학과 인식론 자체가 유형학typology에 의존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니체는 그 유형학을 관통해서 낡은 이것들을 대체하였으며, 인간과학들에게 새로운 토대를 제공하는 <계보학의 철학, 힘의 의지의 철학>을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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