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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말 아름다운, 기온마저 너무나 쾌적한 '올해의 하루'라고 꼽아도 될 그런 아름다운 날이었다. 근사한 구름에 매료되어 경의선 숲길을 한참 거닐다 세미나에 참석했고, 세미나를 마치고는 그 길을 반대로 걸어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 각자 인상적이었던 부분,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번 장을 읽으며 니체가 '강자(강한 정신)란 무엇인가', ' 어떻게 강자가 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강한 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스스로 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4장에서 예술적 천재가 기적도 은총도 아님을 밝히면서 천재'됨'에 대해서 말했던 그는 5장에서 강한 정신'됨'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포리즘 #263이 인상적이었음을 얘기했었다. 이뿐 아니라 여러 아포리즘에서 강인함, 인내심, 활력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만이 강인함, 인내심, 활력을 타고 나며 또 습득한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재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재능을 작품과 행동에서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263 20-25)
 
 
교육자가 인간의 상처를 이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녀가 있는 분들은 교육과 '교육자'를 특별히 구분해서 읽으셨다고도 했다.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태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교육자가 교육 대상의 상처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잠시 있었다. '교육자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아니면 운명이 그에게 입힌 상처를 이용해야 한다'는 표현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과연 이것이 가학적 태도까지 포함하는 것인가. 어려서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으면 개인의 인생의 치명적이므로 트라우마를 남길 만한 상처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떤 과정에서의 탈피, 변태의 과정으로 그림그려졌었는데 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처란 필요하며, 살아가면서 상처받을 만한 일이란, 개인이 몰락을 경험하게 될 만한 일이란 많으므로 미리 예방접종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니체가 교육자가 교육받는 이의 단련, 혹은 새로운 감염을 위해서 그에게 의도적 상처를 입히는 일을 긍정하고 있다고 보았다. 
 
새로운 것의 감염 
니체에게 한 가지 단어에는 여러 가지 용법이 있다. 그리고 그는 통념적 긍정 부정의 이미지를 뒤집는 데도 능하다. 감염과 접종이라는 단어가 그러했다. 이 장의 첫 번째 아포리즘 #234에 매우 선명하게 등장하는 이 단어들은 새로운 것과 다양한 것의 시도와 확산은 공동체, 개인에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다. 상처로 인해 약해진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전체로 접종된다. 그것이 바로 퇴화를 통해 고상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 내용이 인상적이었다고 모두들 말했다. 니체는 공동체가 더 높은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 개인이 강한 정신이 될 가능성을 지금은 퇴보로 보이는 그 혼란, 몰락 그리고 약한 개체, 약한 본성에서 보고 있다. 왜냐면 속박받지 않은 것들은 더 불안정하며 그들은 도덕적으로 약한 존재들이며, 대개 이들만이 새로운 것과 다양한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자유정신, 이것은 결과적 진보를 담보하는가 
엇결과 순결님이 의문을 제기하신 덕분에 자유정신은 과연 더 높은 문화를 생성하는가, 자유정신은 앞으로 나아가는가(진보적인가)라는 열띤 토론이 20분 이상은 이어졌던 것 같다. 시대정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자유정신이라는 오라클님의 자유정신의 정식에 따라서 그렇다면 일베도 자유정신인가라는 다소 엉뚱한 연희님의 질문이 우리에게 던져졌다. 엇결과 순결님이 '그렇게 본다'라고 얘기하심으로 인해서 토론이 뜨겁게 타올랐다. 
 
후기를 쓰느라 정리하며 토론 주제 관련 부분을 다시 들춰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 맥락이 좀 더 잘 잡히고, 꼼꼼하게 읽혔다. 니체는 자유정신과 속박된 정신을 대비시키며 근거와 근거 없음을 초반 여러 아포리즘을 통해서 매우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니체는 개인에게 주어진 혈통, 환경, 신분과 지위 또는 지배적인 견해에서 자유롭고, 다르게 사유하는 사람을 자유정신이라 불렀다. 반면 속박된 정신은 그저 습관, 주어진 조건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 속박, 관습으로부터의 탈주 그 자체를 자유정신이라 할 수는 없다. 니체의 자유정신은 '그것은 왜 그런가'라고 끊임없이 묻고, '근거'를 찾고,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 편으로 삼기 때문이다. 
 
일베는 자유정신인가 
엇결과 순결님은 자유정신은 속박된 정신으로부터의 탈주, 관습에서의 해방 그 자체이지 아무런 방향성이 없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처츰엔 많이들 반대의견을 제기했다가 관습에서의 해방 그 자체가 더 높은 문화를 결과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게 되었다. 왜냐면 니체가 실패까지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맥락을 좀 더 꼼꼼하게 볼 필요가 있었다. 
                                  
자유정신에는 원칙이 있다
자유정신은 (그에게 주어진) 관습, 믿음, 도덕에 대해서 근거를 요구하고 자신의 근거를 찾아나섬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니체가 진리 탐구의 방법론으로 실증과학을 택하고 있다는 얘기는 지난 세미나를 통해서 여러 번 이야기되었다. 이번 장에서 그것은 자유정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자유정신이 관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자신의 물음에 대해서 니체는 '지성의 비범한 우수성'과 '예리함', '근거', '진리탐구의 정신'을 들고 있으므로 관습으로부터의 자유정신의 탈주는 일관되게 '진리 탐구'라는 원칙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정신은 일반적으로 진리를, 적어도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 편으로 삼는다. 따라서 시대정신으로부터의 탈주도 아니며, 자신의 근거도 빈약한 일베를 자유정신으로 볼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자유정신의 얼굴에는 보통 속박된 정신도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지성의 비범한 우수성과 예리함'이 '증거'로서 역력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226.1-3)
 
일반적으로 자유정신은 역시 진리를, 또는 적어도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 편으로 삼게 될 것이다 :
자유정신은 근거를 요구하고 다른 정신들은 신앙을 요구한다. (#226 15-17) 
 
 
관습적인 것에서 해방이 곧 자유정신인가
진리에 이르른 자유정신은 정당하다. 타당한 근거와 함께할 것이므로. 동시에 속박된 정신은 정당성을 잃는다. 자유정신이 어떻게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어떤 충동이 자유정신에게 진리를 추구하게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가령 부도덕에서 진리에 이르렀는지 따위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자유정신의 진리 탐구는 실패할 수도 있다. 이 때 자유정신은 정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정신이 '진리에 이르르는 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와 관계 없이 그가 관습적인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자유정신의 본질이다. 자유정신이 진리를 찾아나섰다면 말이다. 따라서 자유정신이 관습적인 것에서의 해방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정신은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에 근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256 아포리즘도 언급할 만하다. 니체는 여기에서 엄밀한 학문의 가치는 그 성과에 있지 않고, 능력의 훈련에 있다고 했다. 활력, 추진력, 인내력의 증진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어떤 목적을 합목적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니체의 진리와 인식에 대한 태도 
자유정신과 진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이 장에서 니체가 진리, 인식을 강조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깨뜨리고 생성과 창조를 얘기하는 니체가 진리 인식을 이토록 중요하게 했었나, 이 저작이 초기작이라 후기작과는 역시 입장이 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었다. 그러나 진리, 인식에 대한 언급들을 다시 살펴보니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는 입장은 여기에서도 선명한 듯하다.
 
학문의 미래 - 학문은 노력하고 탐구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만족을 주고, 그 성과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극히 적은 만족밖에 주지 않는다. (#251 1-3)
그리스인에게서 일어났던 일, 즉 모든 위대한 사상가는 자신이 절대적 진리의 소유자라는 믿음 속에서 폭군이 되었으며......(#261, 260p 24-25)
 
 
뜨거운 논의들을 머리에 담아 두고 다시 책을 펼치니 텍스트들이 매우 다르게 읽혔습니다. 엄밀한 세미나의 가치는 텍스트를 읽고 사유하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데 있네요. 몇 가지 논의에만 집중한 후기입니다. 쓰고 보니 이번 장에서는 상처, 접종과 감염에 대한 주제, 더 높은 문화와 진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했었나 싶은 생각도 습니다. 지난 시간 모두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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