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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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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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결과 순결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토론 뿐 아니라, 후기도 그 깊이와 맛을 더해가고 있네요.
5장 문화에 대한 징후 부분은 읽는 내내 저를 둘러싼 여러 이슈들
- 평소 고민해오던 자녀 교육의 의미와 자세,
자유정신과 허무주의의 극복방안, 아름다움과 추함의 관계 등 - 에
대해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장이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충분히 저의 생각과 다른 분들의 생각을
충돌시켰고,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은 균열과 재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돌아오고 거의 일주일 동안을 산책할 때나
밥먹을 때나 심지어 작업 중간중간마다
'자유정신은 진보, 더 나아감, 발전, 더 높은 문화를
지향하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러다가 얻은 결론을 연두님의 후기에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길이는 도저히 줄일 수가 없어서요.......ㅎㅎㅎ
길이가 중요하신 분들은
이쯤에서 드랍하시길 권해드려요.^^)
1. 나는 왜 자유정신의 지향성을 고민하는가?
- 작업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니체는 진리를 논하기
전에 그 진리가 너에게 왜 중요한지를, 진리가 어떤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사유한 철학자입니다.
저 역시 왜 내가 자유정신이 지향성을 가져서는 안되는가를
고민하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 먼저 거꾸로 생각해봅니다.
왜 우리는 자유정신을 가지지 못하는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정신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기존 관습, 질서,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
은연중에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위험한가? 그건 이미 우리 사유체계가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뭔가를 시도할 때 우리는 이미 그 결과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야 하는데, 더 나아지지 않을 바에는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안전한 것이 아닐까?
하면서 결국은 시도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 우리는 왜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가?
저는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져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에 대해
거의 '공포' 수준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뭔가를 시도했을 때의 첫번째 감정은 성취감이 아니라
'불안감'이라는 니체의 말은 정말 현실감있게 다가옵니다.
저는 허무주의의 진짜 원인은 '기대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불안감을 무릅쓰며 실행에 옮겼는데,
그만큼 더 성공하고 더 나아져야 하는데......'
이런 기대감은 그 결과의 반대됨을 맞딱뜨렸을 때,
그 시도가 극적인 것일 수록 더욱 더 큰 실망감으로
실망감은 곧 허무함으로 변질될 수 있음에 주목하게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져서 더 예민하게 집착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정리해보면, 자유정신에 방향성 - 더 나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 및 그 결과를 포함하는 의미에서 - 을
부여하게 되면,
우리는 현실에서 실제로는 자유정신을 실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2. 자유정신은 말 그대로 '모험심'이다.
- 자유정신에 대한 니체의 표현 중
'정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에 관계 없이 그가 관습적인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자유정신의 본질에 속한다.'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곧 탈주인 것이지요.
마치 모험을 떠나면서 우리가 도달할 결과를 알고 떠난다면
그것은 진정한 모험이 아닐 것입니다.
그건 잘 짜여진 여행일정을 따라 다니는 일반적인 의미의
'여행'인 것이지요.
모험의 본질은 위험을 무릅쓰고 떠남에 있는 것 아닐까요?
- 여기에 니체는 한가지를 추가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유정신은 역시 진리를,
또는 적어도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편으로 삼게될 것이다.'
'반드시'가 아니고 '일반적으로',
'설령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라는 의미로 니체가 쓴 건 아닐까요?
저 역시 자유로운 탈주가 대체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모험을 떠났다는
그 정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에 실패조차 무릅쓸 용기가
이제는 생겼습니다.
3. 자유정신은 가벼움이다.
- 자유정신에는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자유는 소소한 일탈의 순간이
더 많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거창한,
나의 행동이 더 나은 미래와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바로 제가 경계하는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 우리의 일탈은 가볍고 소소하고 재미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주어지는 우연의 결과를
다시 나의 것으로 긍정할 수 있는 자세까지 요구하는 이유.
자유정신이 그 자체로 더 나은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에
니체는 결과에 대한 긍정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 아닐까요?
4. 일베에 대한 중요한 지점 - 우리가 놓친.
- '자유정신은 결과를 지향하지 않는다.' 는
명제에 집착한 결과, 저는 세미나에서 일베마저
자유정신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결론적으로 일베는 자유정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긍정의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결과가 아닌 그 욕망의 동기에
집중하는 철학자입니다.
자유정신에 있어서도 니체는 결과보다는 그 동기,
그것이 창조를 위한 긍정의 힘에서
나온 것인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일베는 자유정신의 사례로서
토론할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5. 사족 하나.
- 세미나 시간에 갖는 '충돌의 시간' - 포성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할 수도 - 은
그 세기가 클 수록 잔향마저 오래 가는 듯 합니다.
한 주일동안 이토록 한가지 주제에 매몰되어
생각하게 한다는 것.
세미나의 진정한 목적은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하기 위함이라고 볼 때,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길이 옳다면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부작용들은 '용기있게'
지나쳐 버리고 그냥 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니체가 '그냥 지나쳐 가라.'고 말한게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연두님의 좋은 후기에 덧붙여 남긴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심심한(深深)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럼 월요일에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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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댓글이 정말 기네요. ㅋㅋㅋ
엇결과 순결님이 텍스트를 아주 깊이 읽어오셔서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1. 거꾸로 하신 질문 좋았어요.
왜 그것을 위험하다고 느끼는가. 우리는 왜 성공과 실패를 기준으로 생각하는가.
아마도 시도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도록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서 조건지어졌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라고 5장에 맞춰서 다시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5장은 내내 근거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를 떠올리게 했어요.
아이들이 끊임없이 '왜'냐고 질문할 때가 있죠. 그 때 대부분들의 어른들은 말문이 막히는 많은 지점이 있잖아요.
왜냐면 원래 그런 것, 그냥 그런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 때의 어린아이와 같이 계속해서 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근거를 파헤지고 자기 근거를 찾아가는 것.
여튼 그 모든 시작은 근거에 대한 '물음' 이것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러한가'
그 다음은 다른 것의 생성을 위한 방법론.
'어떻게 다른 것은 가능한가'
2. 자유정신의 모험심
이 부분은 엇결과 순결님과 저는 여전히 해석에 좀 차이가 있어요.
'정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에 관계 없이 그가 관습적인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자유정신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유정신은 역시 진리를, 또는 적어도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편으로 삼게될 것이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의 이미지는 우리 시대에 가지는 성공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절대적 보편 진리를 부정하고 있는 그로서는 수많은 진리의 가능성을 사유했을 것이고, 그런 증거가 5장 곳곳에도 있어요.
속박된 정신 때문에 상상력이 억제되어 있다는 얘기들이 있죠.
엇결과 순결님이 자유정신을 '실패를 감내하는 모험심'의 이미지로 그리신다면
저는 자유정신을 하나의 유일한 태양이 아니라 '천 개의 별을 띄우는 일, 태양은 그 별들 중 하나임을 인식하는 일'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 우리의 상상력은 억제되어 있다 (#236 238p 4)
- 성격이 강한 사람에게는 행위할 수 있는 수맣은 가능성과 그 방향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228 231p 5-6)
- 나는 다양한 의견이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개인은 스스로 다른 모든 사물에 대해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위치를 차지하는 자기만의 그리고 일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의견의 자유는 건강과 마찬가지다 : 양쪽이 모두 개인적인 것이며,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되는 보편 타당한 개념은 세워질 수 없다. (#286 16-20, 22-24)
이 맥락에서 '반드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인 것은 자유정신이 정당성 획득에 실패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고,
'적어도' 진리탐구의 정신을 자기편으로 삼게 되는 것은 '진리탐구의 정신'이 자유정신의 원칙이라는 말이죠.
3. 후기에는 놓쳤지만 니체의 여성과 아시아에 대한 비하는 참 봐주기가 힘드네요.
이것 역시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조건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대를 넘어서는 '비시대'를 주창했던 그에게도 여성과 아시아는 사유의 외부였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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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결과 순결
1. 자유정신에 대한 이미지는 연두와 제가 일치한다고 생각해요.
- 성공과 실패라는 '저들의' 잣대로는 자유정신을 측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자유정신은 '저들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성공과 실패와는 관계없다고
한거라고 생각해요.
- 그 이미지는 연두님이 표현한 천개의 별과 같아요.
그래서 방향성이 없는거죠.^^
다양한 방향을 가지니까.
그 말은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어디로부터 출발했느냐가 중요한거라는 의미입니다.
'나로부터', '기성으로부터'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에서 니체가 말하는 진리는
삶이 너무나 긍정할만한 거라는 거, 용기내어 도전하고 변화해보고
그 결과를, 우연한 결과를 다시 필연성으로 만들어내는
또하나의 긍정의 태도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다면 자유정신이 이러한 인생의 진리를
지향하는 - 아니 지향이라기 보다는 자유정신이 가져야 할 태도 -
원칙이 있다는 연두님의 표현에 저는 공감하게 되는데요.
2. 말의 미끄러짐
- 이거 화해모드를 억지로 조장하는 건가요? ㅎㅎㅎ
아침에 연두님과 톡하면서 순간, 우리의 말이 미끄러지고 있음을,
사실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살짝 다르게 표현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 사실 자유정신과 보다 높은 문화를 통해 결론적으로
우리가 몸으로 실천해야 할 것은
두려움 없는 자유를 향한 날개짓,
그 도약이 보다 높은 문화를 지향하기를 바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2. 여성과 아시아에 대한 비하
- 그냥 지나가기 신공이 필요한거 같아요. ㅎㅎ
니체도 일반적인 시대의 관습에 의존한 생각, 표현이
아닐까? 하고 애써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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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스
좋네요
어찌 보면 부정적인 것들...상처 감염등을 통해서 개선(계량. 진보)되어 나간다는 니체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토론 했던 것을 정리도 잘하시고 본인의 생각도 잘 밝혀주어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토론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