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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제 금요일 저녁 <신경과학과 철학 사이> 세미나에 처음 참석한 조 태진입니다. 우선 처음 뵙는 분들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그리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말을 많이 해 버린 것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에 찝찝하게 걸렸습니다. 사실은 신경과학과 철학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다시 말씀 드려서 철학의 형이상학적인 주장과 전제들을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좀처럼 인간의 인식으로는 반박할 길이 마땅치 않은 철학의 형이상학적 주장들과 전제들에 자연과학적 실증주의라는 엄격하고 칼 같은 방법으로 반박하고 도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직 연륜이 짧은 신경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둘이 어떻게 조심스럽게 손을 잡을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에 참석한 자리였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세미나가 끝나고 짧은 뒤풀이 자리에서 지하철 막차 시간 때문에 미처 마저 하지 못한 말들이 제 머릿속과 마음에서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어서 어제 제 예전 대학 동아리 밴드에 어느 늦중년 여자후베가 올린 글에 단 제 댓글을 어제 처음 참석한 세미나 후기 대신으로 올립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아직은 감질 나지만 밖으로 나가면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결에 선선함이 실려 있음을 느낍니다. 아직 여름이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이번 여름은 혹독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너무도 더웠습니다. 그래서 인간뿐만 아니라 소나 돼지 그리고 닭 같이 우리가 음식으로 쓸 용도로 기르는 가축들도 견디기가 너무나도 버거운 그런 여름이었습니다.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언어에 느낌과 감정을 실어주는 얼굴 표정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과 같이 고통스럽고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표정으로 "더워 죽겠다. 인간들 너희들은 정말 잔인하다. 누가 우리 안에 에어컨 달아 달라고 했나? 불볕 더위가 조금은 가라앉는 저녁 시간에 호스로 우리 몸에 찬물 좀 끼얹어 주면 안 돼?"하고 심한 짜증을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불가의 화두처럼 슬픔, 좌절, 우울 그리고 분노 같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담은 <불행>이라는 표현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곤 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 전부터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열악한 조건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 즉 고통들을 없애 버리려고 부단히 애써 왔습니다. 동어반복이어서 바보 같은 말이지만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고통을 피하고 행복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라는 선천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은 그러한 고통을 벗아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들을 찾아 오랫동안 헤매어 왔고 자주 길을 잃고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디즈니에서 만든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만화영화를 다시보기로 봤습니다. 그 만화영화의 포스터로 쓰인 듯한 그림에 인간의 뇌가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저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화영화를 보면서 저는 인간의 마음의 다양한 모습과 그 모습들이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마음의 결들을 상징하는 만화 속 캐릭터들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 만화영화를 만들기 전에 심리학자나 뇌 과학자들의 자문을 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만화영화에는 행복, 슬픔, 분노, 공포 같은 우리 인간의 감정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 나왔는데 그 감정들의 주인인 10대 초반의 여자아이가 익숙해서 행복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 환경에 처하게 되자 그 감정들이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의 마음의 결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주인공인듯한 감정은 행복이었습니다. 그 행복은 어떻게든 예전의 환경이 주었던 아늑한 행복을 되찾고자 애쓰는데 그런 행복 곁에 다름 아닌 슬픔이 바짝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다시 예전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웃겨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재촉도 해 보지만 낙담해서 풀 죽은 <우울>은 좀처럼 푹 숙인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슬픔이 그 우울 곁에 와서 "응, 그래. 우울하지? 그래, 슬플 거야. 나 너 이해 해"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우울이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행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슬픔에게 "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라고 묻자 슬픔은 "난 그저 우울하지? 나 너 이해 해라고 말했을 뿐인데?"라고 답합니다.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결만을 가지고 있는 단색(單色)이 아니고 여러 결을 가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색과 명도(밝음과 어두움)의 조합이다, 그리고 마음의 색깔과 명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밝고 화려한 색깔만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명도와 채도의 어우러짐, 즉 어둡다가 새벽 여명처럼 천천히 빛을 드러내다가 다시 천천히 어두워젔다가 저녁 어스름처럼 슬프면서 동시에 행복한 여린 빛을 띠다가 때로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처럼 또는 언제 그칠지 모르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같다가 다시 잔뜩 찌푸린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자연스레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다루고 로봇 장난감처럼 제 맘대로 조립하고 조작할 수 없는,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말이지요. 굳이 새삼스럽다는 표현을 덧붙인 것은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마징가 제트나 프란다스의 개 같은 만화영화를 보던 어린 시절 저는 이미 마음의 그 느낌을 느끼고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에게는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행복하고자 하는 삶의 나침반에 기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사용하여 헹복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슬프지만, 정말 이 슬픔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 슬픔에도 불구하고" 또는 "절망스럽지만, 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지로, 다시 말해서 어쩌다 그만 넘어져 버렸지만 그래서 살갗이 벗겨져서 상처가 나고 피가 조금 나기도 하지만 그 아픔을 느끼면서도 <땅>에 손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말이지요. 그와 함께 시간이 지나서 자기도 모르게 벗겨진 살갗에 새살이 다시 돋아나더라도 그 아픔과 낙담에 대한 기억과 그로 인해 다시 넘어져서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마음 속에 흐릿하게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려는 용기, 그러니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니 힘들고 때로는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면서 망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내고 싶다는 그런 용기를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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