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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문학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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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대상 위비아범, 그의 희한한 매력

 

 

                                                                                                                                                                                                                                                      * 알프레드 쟈리의 『위비왕』을 읽는다. 막무가내로 읽는다. 전통희곡의 갈등 구조와 비극적 인물 등을 염두해 두지 않는다. 위비왕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희극성을 만끽해 본다.  '위비왕'의 주인공 ‘위비 아범’은 왕이 되어도 끝까지 ‘아범’으로 호명된다. 폭력과 배반으로 신분이 상승해도, ‘아범’은 ‘왕’으로 불리지 못한다. 희곡의 지문에서조차 그는 일관적으로 무시당한다. 쟈리에게 위비는 애초에 왕이 아니었다. 아랫사람 부르듯이, ‘아범’으로 취급당한다. 대놓고 무시당하는 ‘아범’  역시 대놓고 세상을 무시한다.  그 화법 면에서도 무시와 조롱과 언어 파괴가 즐비하다. 『위비왕』 은 등장인물에 대하여 “전통극”에 기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위비 아범의 화법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고 비속하다. 저속한 표현, 의도적인 욕설, 말장난, 저속한 표현, 원초적인 단어의 사용 등을 통해 인물의 상스러움을 극대화한다. “똥같은merdre” “육시랄 돈의phynance”, “좆대가리배때기cornegidouille” 등 배설적인 단어와 성욕, 식욕과 물욕이 담긴 표현들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신조어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다. (청소년들이 급식체를 만들어내고,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자기들만의 은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폭력 교사를 조롱하기 위해 새로운 명명이 필요한 것처럼, 쟈리는 위비라는 인물을 언어로 파괴하며 언어로 그답게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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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태도로 세상과 대응하니, 속 편하다.  ‘나 나쁜 놈이요.’ 대놓고 과시하는 인물이기에, 그를 비판적 관점이나 합리적 시각으로 재단할 생각이 사라진다. 전통극의 갈등 구조나, 비극적 정조에 애써 휘말릴 필요가 없다. 그의 어이없음을 즐기면 될 일이다. 마치 판소리 <흥보가>에서 자진모리로 몰아치는 놀부심술대목을 떠올려도 좋겠다. 한 대목 인용해 볼라치면(판소리 어조로),

" (자진모리)놀보심술 볼작시면 대장군방 벌목하고, 오귀방에 이사권코, 삼살방에 집짓기고, 새 초분에다 불붙이고, 제궐할제 뼈감추고, 불난데 부채질, 소대상에다 제청치고, 야장헐제 외장쳐, 곤대사에 싸개치고, 다된 혼인은 파헤치고, 장에가면 억매흥정, 외상술값 억지써, 미나리광에 소몰아 넣고, 고추밭에 말달려, 애호박에 말뚝박고, 늙은 호박에 똥칠하고, 똥누는놈 주저앉혀, 우는 어린애 똥멕이고, 샘길에 허공파, 애벤 부인네 배통차고, 술잔든놈 멱살잡고, 봉사보면 인도하여 개천물에다가 밀어넣고, 길가는 과객양반 재울득이 붙들었다 해지면 내어 쫓고, 옹기장사 작대차고, 닺는 놈 다리걸고, 이 앓는 놈 뺨때리고, 배 앓는 놈 간지리고, 못자리에다 돌던지고, 차담상에 흙퍼붓고, 제주병에 개똥넣고, 소주병에 오줌싸고, 새망근 편자끊고, 새갓보면 철대띄고, 마른신 운두끊고, 짚신보면 앞총끊고, 앉은뱅이는 택견해, 꼽사둥이는 뒤집어놓고 다디미독으로 눌러놓고, 절름발이 딴 쪽쳐, 수절과부 모함하고, 중보면은 목탁뺏고, 이웃집 노인네 잠 곤히 들었을제 가만가만히 들어가 홀딱 벗은 이마빡을 대꼭지로 탁 쎄리고 먼산보고 웃고, 이놈의 심술이 이러허니 삼강을 아느냐 모르느냐 굳기가 돌덩이같고 모질기가 짝이없고 욕심이 쪽재비고. (판소리 <흥보가> 중 ‘놀부심술 대목’에서-박동진 소리)" 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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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웃길 작정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은 등장인물의 의상 설정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다. 위비 아범은 막과 장이 바뀔 때마다 의상이 달라진다. “강철로 만든 회색 옷 한 벌, 오른쪽 호주머니에 언제나 막대기를 꽂고” 있는 위비 아범의 의상 설정은 4막 5장에서 “두건 달린 외투, 챙 달린 모자, 무기도 없고 막대기도 없다.”로 바뀐다.  권력이 사라질수록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막대기가 사라진다. 막 중간중간에 "맨머리"가 등장하고, "모자 아래 왕관" 대신 "두건 달린 외투"로 바뀐다. 손에는 "여행가방"만 남는다. 위비 어멈의 의상 역시 일상적이지 않다. 능글능글한 위비 어멈은 아비 아범마저 속이는, 천연덕스러운 뺑덕어멈과 같다. “화장품 상인”의 복장을 설정하고 있어서, 위비어멈은 싸구려 장사꾼마냥 “챙 없는 헝겊 모자 또는 꽃무늬의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장바구니나 망태기”를 들고 있다. 왕비 역시 "어멈"으로 취급당한다. 그래서 위비 어멈은 연회장에서조차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러시아 군인들은 “두꺼운 종이로” 된 말을 타고 있고, (육시랄 돈의) 말 역시 “종이”인형극처럼, 가짜이다. 

 

가짜들의 세계에서, 가짜 왕의 허풍과 잔혹함을 조롱하는 일.  어이없음에 실소를 터뜨려 보는 일. 

이것은 단순하고 쉬운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현실 세계 같지 않은 현실 세계 속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한 세계 속에서, 쉽고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쟈리는 자신의 연극을 ‘미를리통 연극’이라 부르기를 원하였다. “저속한 구절로 된 인형의 세계 같은, 어린아이들의 세계 같은 연극”이다. 가짜들이 가짜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러한 가짜가 가짜 같지 않게 실존하는 세계. (우리 근현대 속에서도 존재한다.)

가짜가 가짜가 아닌 것이다.

쟈리는 연극이 “볼거리”가 제공되는 “시민 축제”와 같기를 바랐다. 과거의 진실은 가짜가 되고 가짜는 진실이 되고 진실이 배반당하고 가짜와 진실은 뒤섞인다.  이 뒤섞임 가운데 그는 가장 솔직하고 단순한 눈으로,  거짓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고자 한다. 한판 축제를 벌이고자 한다.  여기서  작가가 해야 할 과업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논리는 쉽게 초월된다. 비합리적인 공간에서, 어디라고 정하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모든 곳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간단하고 쉬운 발상이 다다운동과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아이디어의 단초가 된 것이다.

우리 <문학 세미나>.

첫 번째 모임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쑥스러움과 긴장감은 “위비 아범” 덕분에 한방에 사라질 수 있었다. 희곡을 낭독하며, 희곡 지문을 빌어 대리 배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비 아범의 대사를 빌어 저속한 언어로 욕을 하고, 비아냥거리고 나쁜 놈이 되어 보는 쾌감을 (조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낭독을 하면서, 이  연극이 어떤 방식으로 공연되었을지 무대 장면을 상상해 본다. 세미나 구성원들의 목소리로, 그/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해 본다. 그/그녀의 목소리가 가진 일상의 드라마를 상상해 본다. 욕쟁이 할머니의 찰진 욕이 인간 관계의 벽을 단박에 허물어뜨리는 것처럼, "위비 아범"은 세미나 초반의 어색함을  허물어지게 하는  마법이었다. 첫 텍스트로서 훌륭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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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세미나 공지>
  •  텍스트 : 앙또냉 아르또, 신현숙 옮김, 『첸치일가』, 연극과 인간, 2004.
  •  발제 : 탄환 이혜진님
  •  방식 : 희곡 다같이 낭독하기
  •  일시 : 2018년 5월 28일 월요일 7시 30분
  •  장소 : 2층 강의실
  • ( , )
  •  후기 : 구르는 돌멩이, " "인용은 [위비왕] 책에서, 페이지 표시하지 않음.
  •  규칙 : 매 세미나 시간에 기본 발제와 세미나 후기 작성할 사람을 선정합니다.
  •  간식 : 세미나 발제자는 세미나를 보람차고 알찬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간식을 준비합니다.
  •  회비 : 2만원으로 수유너머의 모든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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