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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

아리송

 

2020년 7월,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7월이 끝나기 불과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불러 해고 통보를 한 것이다. 그때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밖으로의 출입을 자제하고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무서워하던 때였다. 내가 일하던 곳은 평화와 ooo 정의 패러다임 운동, 갈등 해결 등을 주업무로 하던 곳으로 끊임없는 강의와 모임, 기부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벌어들이던 수입이 줄어들어 회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에 해고한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계속해서 이어지던 2021년, 2022년 그 이후의 기간 동안에도 나 말고 그곳에서 해고를 당한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가 부당 해고를 당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당시 내 상사는 정신적 문제를 들먹이며 함께 일하는 공간을 불편하고 공포스럽게 만들었고, 내게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메신저를 통해 폭언을 보내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단체는 가해자인 상사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나는 책임질 가정이 없는 싱글이라는 이유로 그를 이해하고 감싸는 방법을 선택했고 나는 이러한 부당 대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이들 또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불편하고 힘들어했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그 상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일하지 않았고, 그러한 메시지를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무시하거나 마주치는 동안만 잠시 참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사무실 옆자리에서 내내 붙어 일을 해야 했고, 폭언의 메시지를 받는 것도 나뿐이었다. 상사는 나의 업무 시간, 업무 내용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있지 않은 일에 대한 확증을 홀로 키워나갔고, 한편으로는 내가 마치 자신의 부인인 것처럼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과 힘듦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몇 개월 동안 이어지며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단체의 이사장에게 그 상사와의 분리를 요청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상사는 더욱 심하게 괴롭힘을 더해갔고 나는 이런 상황을 이사장에게 전하며 더 이상 그와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사장은 상사의 편이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감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단체에서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그들의 평화를 깨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단체나 기관에 갈등 조정을 하는 전문인으로 나가 일을 하고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자신들의 공동체가 외부에서 볼 때 평화롭고 닮고 싶은 모습이기만을 원했다. 그러니 결국 나는 그들에게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나와 마주치기를 피하거나 조직의 평화를 깨지 말라며 충고할 뿐이었다. 매일 ooo 정의와 평화로운 사회 만들기를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말하던 이사장은 내게 이곳은 일하는 곳이고, 일이 되게 하는 곳이므로 둘의 관계가 어떻든 일만 되게 하라고 내게 요구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자기에게 이 문제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이미 이사장의 눈밖에 난터라 코로나가 터지고 얼마 안되어 단체의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유를 들어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대전의 한 교육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지방까지 내려와 설득해 단체로 스카웃해 간 건 바로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해고가 이루어진 과정에 대해 이사장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피해 다니다 안식년을 핑계로 미국으로 가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ooo 정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학교폭력의 해결을 이야기하고, 조직에서의 갈등 해결을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모두 마지막 날까지 내게 수고했단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부 협력자 선생님들에게는 자신들이 해고한 것이라 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자주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 느낌이었고, 지금까지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선택했던 모든 것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조직의 부속물로 여기는 자본주의 기업의 문화가 싫었고, 조금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왔던 길이었다. 좀 더 풍요롭게 살수도 있었고, 좀 더 나만 위해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한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실 부당해고 따위는 큰 일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 방송국에서 선배들이 나를 두고 언제 그만두나 내기를 하며 괴롭힘을 일삼았을 때도 그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었다. 그곳은 원래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행하는 행동이나 말은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좀 더 나은, 좀 더 희생하는, 좋은 세상을 위한과 같은 타이틀과 기대를 담고 선택해 온 맘을 바쳐 달려온 곳이었다.

 

이후 일년 반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을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인생에서의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무엇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외부 활동을 차단하고 집 안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의 마음이 멈추지 않았고 몸도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에 오십보도 걷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리고 혼자 울기만 했다. 그래도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지라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짧은 논문 한 편을 하루 종일 읽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용을 정리해야 했지만 모든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파편이 되어 날아다녔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시간은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포기하려던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빨간펜 지도교수님의 빨간펜을 한 글자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논문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때쯤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한 분의 연락을 받았다. 나의 부당 해고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고 했다. 그 선생님과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사건 당시에는 내게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받으며 작은 쾌감이 있었다. 모든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ooo 정의와 평화의 이름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서기가 너무 부끄러워졌다며 심사숙고 끝에 퇴사를 결정하셨다. 그리고 그분 말고도 나의 퇴사를 통보했던 소장도 단체에 대한 수치심으로 인해 결국에는 단체를 떠났다고 했다.

 

그 단체는 여전히 활발하게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아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때는 내가 좀 대단한 사람이 돼서 더 이상 그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기부금과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더욱 그들은 잘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운동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 이 둘의 적당한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 등에 의해 단체는 계속해서 평화와 정의의 이름을 외치며 운영되어갈 것이다. 단체를 운영해 나가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적당한 자기만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것이다. 다만 나는 이제 세상의 변화니 사회를 위한 정의 구현이니 하는 것들에 이제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이 일을 하는 건 결국 먹고 살기 위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연구소를 퇴사하기 위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표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이 일을 참 잘해요. 일하는 속도도 빠르고, 필요한 자료와 방향을 잘 알아서 사실 연구소의 일이 참 수월해졌어요. 꼼꼼하고, 정확하고.. 그런데 맡겨진 일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하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우리 연구소가 하고 있는 수업 운동에 애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달까..”

 

맞다. 나는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일 이상의 것을 하지 않았다. 대표가 교수직도 포기하고 시작한 수업 운동에 대해서 크게 관심 가지지도 않았고, 오로지 연구소의 사업이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이다. 입사 초 이전 단체에서의 해고 경험을 이미 이야기했던 나는 대표에게도 솔직하게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전 단체에서의 부당한 경험으로 인해 사실 나의 몸과 정신을 다 바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고, 일로서 수업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역시..그랬군요...”

 

대표가 말했다. 이어 대표는 그래도 내가 가진 스킬과 능력이 연구소에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초의 고민도 없이 퇴사 의사를 밝혔다. 더 이상 자신이 희생하며 이끌어 가고 있는 일이기에 함께 하는 사람 또한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미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최악의 경기 상황이라는 지금 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버티고 버티다 이전 직장보다 더 조건이 좋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김홍중의 『은둔기계』 속 문장처럼 살아보려고 하는 중이다.

 

‘치열하게’와 같은 오만한 말에 속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을 버리지 않는 것.

용기 따위로 두려움을 이기지 않는 것.

방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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