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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외부 7장.
- 유목주의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


1. 방랑자와 유목민 (277)

 1.1 돌아다니며 하는 정착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나타난 방황하는 정착민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한결같이 떠도는 방랑자
  2) 일상적 삶에서 벗어난 탈주자
  3) 마을의 정착민들과 대비되는 위치

영화의 주인공 구양봉과 더불어 많은 이들은 그렇게 떠돌면서도 어느 한 곳에 붙박히듯 사로잡혀 있고 바윗덩이보다도 더 무거운 그 집착을 끝내 떨치지 못해 등에 진 채 방랑한다. 그는 고착된 과거의 실패와 상처에 사로잡힌 채 떠돌고 있으며 탈주선은 끊어져있고 유목은 중단되어 있다. 유목의 공간조차 정착과 멈춤의 공간이 될 수 있으며, 떠돌아다니는 자들도 멈추어 있는 자들일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가능함을 보여줌으로서 머묾과 떠남이 공간이나 사람의 속성이 아님을 밝힌다. 중요한 것은 탈주선을 그리는 것이다.


2. 정착과 유목 (278)

 2.1 유목을 오해하는 통상적인 경우
  단편적으로 정의내려보면, 유목이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정착이란 한 곳에 머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적 국지성을 벗어던지고 코스모폴리탄적인(*세계주의의 사상을 가진) 보편성을 획득한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유목민'이 다수를 점하고 일반화되어 유목주의라는 개념의 현실성을 상기시키고, 글로벌리즘(globalism)이나 지구촌화(globalization)에서 유목주의의 강력한 징표를 찾기도 한다.
*세계주의: 개인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함으로써 자신을 세계 사회의 일원으로 파악하는 사상 및 양식

 2.2 유목과 정착 개념 이해하기
  움직임과 멈춤, 이동과 정지, 영토와 길은 정착과 유목에 대응되는, 그것을 정의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착민은 멈추기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이고, 유목민은 이동하기 위해 멈추는 사람들이다. 유목민은 영토를 가지며 움직이는 관습적인 경로를 갖고 있으며, 정착민은 자신의 영토를 가지고 그 영토 사이를 이동하는 도로를 갖고 있다.

 2.3 앉아서 하는 유목
  유목민은 다른 세계, 다른 사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서 한 곳에 머무른 채 이동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토인비는 유목민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고 들뢰즈/가타리는 "유목민은 물론 움직이지만 앉아 있으면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앉아있는다. 유목민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를 안다. 그들은 무한한 참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4 유목민과 정착민 구별하기
 [유목민] 탈영토화에 종속되고 탈영토화하기 위해서 그때마다 하나의 영토로 영토화 내지 재영토화된다. 관습적인 경로를 가지며 특정한 장소들이 점과도 같이 그 경로를 결정하지만, 그 점들은 유목민 자신이 결정하는 경로에, 그 선 안에 엄격하게 종속된다. (ex. 오아시스는, 놔두고 떠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정착민] 자신의 영토를 재영토화하는 한에서만 탈영토화를 수행한다. 또한 경로를 영토로서 점에 종속시키고,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경로를 옆으로 샐 수 없고 경직된 도로로 만들어 버린다.
이를 통해 "유목민은 이주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했던 들뢰즈/가타리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으며, 유목적 궤적과 정착적 도로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5 유목주의는 무엇이 아닌가?
  유목을 지구촌화와 혼동하는 것은, 코스모폴리탄적 보편주의를 유목주의를 특징짓는 한 징표로 간주하는 혼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목 내지 유목주의는 그런 식의 보편주의에 반(反)하며, 보편적 포괄성(globalité)에 대한 비판을 중요한 요소로 하고 있다.


3. 유목주의와 전쟁기계 (281)

 3.1 유목주의란 대체 어떤 것인가? (Which one is? feat. 니체)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유목주의는 '전쟁기계'와, 따라서 '전쟁'과 결부되어 있다. 국가장치에 반(反)하며 군사제도와 구별되는 한,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고, "유목민적 존재는 필연적으로 공간 속에서 전쟁기계의 조건들을 유효화"하기 때문이다. 앞의 것은 "전쟁기계는 국가장치에 대해 외적이다"라는 주장과 더불어 유목주의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공리고, 뒤의 것은 이 공리에서 추론되는 중요한 명제 가운데 하나이다.

 3.2 왜 유목주의는 '전쟁기계'와 '전쟁'에 대해서 말하는가?
  유목민의 삶은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조차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찾아 끊임없이 탈영토화하는 삶 그 자체이다. 따라서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유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며, 그러한 삶에 부합하는 새로운 영토를 찾아내는 것이다. 유목은 창조와 생성(되기)이란 개념에 상관적인(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 개념이다.
반면에 국가는, 어떤 것이든 규칙적이고 동일하게 반복되도록 고정하고 통합하며 '제도화'한다. 그렇게 고정된 것에 '질서'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 질서를 당연시되는 도덕이나 가치, 규범, 의무와 권리의 형식으로 그 구성원에게 부과한다. 그리고 그러한 질서 아래 각각의 구성원이나 구성요소들(단체, 조직, 기관 등등)에 대해 '동일성' (정체성)을 부여한다. 국가장치란 '동일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상관적인 구체적 개념이다.


 3.3 창조하는 방식의 전쟁
  따라서 기존의 것의 동일성을 뒤흔들고 전복하는 유목주의는, 국가장치나 기존체제에 반하기 떄문에 존재 그 자체가 국가장치에 대한 '전쟁'이다. 유목이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 창조에 의해 낡은 모든 것을 위협하고 파괴되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유목민이 수행하는 전쟁은 창조에 의해 수행되며, 어떠한 전투도 수반하지 않는 전쟁이다. (벤야민 식으로는 '절대적 폭력')
전쟁기계란 이러한 창조하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전쟁을 수행하는 모든 종류의 '기계'들을 지칭한다.  유목민이,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 새로운 삶의 창조자가 사용하고 그가 만들어내는 것 모두가 전쟁기계인 것이다.


4. 유목주의의 공간 (284)

 4.1 유목민의 '매끄러운 공간' (espace lisse)
  여러 방향을 동시에 향하는 유목민의 궤적은, 정해진 경로를 가는 경우에도 하나의 길을 그대로 밟지 않으며 언제든 옆으로 벗어나면서 간다.  더불어 다양한 조건 속에서 삶의 흐름, 사람의 흐름이 흘러가는 대로 간다. 다시 말해 유목민은 여러 지점을 동시에 점하는 방식으로 나간다. 그래서 유목민의 과학은 일차적으로 흐름을 다루는 유체역학과 같은 것이었다. "유목적 공간은 매끄럽고, 궤적들에 의해 지워지고 자리를 바꾸는 '자질'들에 의해서만 표시된다" 매끄러운 공간이란, 리만(Riemann) 공간처럼 하나의 척도를 갖지 않으며 척도 자체가 장소에 따라 가변화되는 공간이며, 방향을 갖는 무수한 힘들이 전체를 동시에 채우는 백터장과 같은 공간이다.
- 두 선 사이에 점이 있으며 점에 대해 선이 우위를 점하는 공간
- 열린 간격을 갖고 있음
- 신체로 직접 달라붙어 직접적으로 감응(affect)하는 근거리 공간
- 시각조차 촉각처럼 만지고 직접적으로 느끼고 감응하는 촉감적 공간

 4.2 정착민의 '홈 패인 공간' (espace stri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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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데카르트 좌표

  정착민은 물의 흐름을 결코 그대로 방치하지 못한다. 홈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 그 홈을 따라서만 흐름이 흐르게 한다. 사람들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길에다 돌을 깔고 테두리를 둘러 도로로 만든다. 정착민은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홈을 파서 흐름의 범람을 막는다. "정착적 공간은 벽, 울타리, 울타리 사이의 길들에 의해 홈패어진"다. 홈패어진 공간이란, 데크르트 공간처럼 어떤 척도에 의해 분할되고 척도에 따라 움직임이 분배되는 공간이며, 어떤 움직임도 점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선(이 경우 선은 '홈'이 된다)을 따라 측정되고 계산되며 조절되는 연장적, 좌표적인 공간이다.
- 두 점 사이에 선이 있는 공간
- 닫힌 공간
- 구획하고 계산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두는 원거리 공간
- 시각이 특권을 점하는 광학적 공간

 4.3 포괄적인 것(le global)과 국지적인 것(le local)
  홈 패인 공간에서 포괄하는 것(지평선이나 배경)이 지배적인 지위이기에, 절대적인 것은 중심이나 소실점처럼 특권화된 장소에만 할당된다. 그 점에서만 시선이 모든 곳으로 향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소실선을 침범하는 것, 소실선의 흐름을 깨는 방향으로 누운 것은 치워버린다. 따라서 포괄적인 광학적 공간이 특권적인 어느 점만이 모든 영역을 싸안는 포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상대적인 포괄성' (global relatif)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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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사다리꼴로 배치된 카피톨리네 광장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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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소실점


매끄러운 공간은 극도로 국지화되지만 시선은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절대적 위치(투시법에서는 소실점만이 갖는 특권적 위치)를, 그 공간 안 어디에서도 확보한다. 따라서 눈 가까이 달라붙어 국지적으로 제한된 촉감적 공간에서는 모든 지점이 동시에 어느 방향을 향해서든 움직일 수 있는 '절대적인 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국지적 절대성' (absolu local)을 갖는다.

 4.4 홈패인 공간과 매끄러운 공간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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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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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패치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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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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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바둑

 


5. 유목주의는 무엇을 보증하는가? (288)

 5.1 유목주의는 언제나 창조와 생성을 보증하는가?
  전쟁기계, 매끄러운 공간은 우리를 동일성과 고착, 통제와 강압의 메커니즘들에서 구해내는 데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매끄러운 공간은 홈패인 공간과 섞이고 겹쳐지며 포섭되기 때문이고, 전쟁기계는 창조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리하여 전쟁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파괴하며 죽음의 선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기계를 작동시키고 매끄러운 공간을 만들면서도, 그 양자 사이의 이행과 결합을 놓치지 않는 것이고, 창조와 생성의 자유로운 공간, 해방적인 공간을 그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5.2 유목과 전쟁기계, 매끄러운 공간이 중요한 이유
  유목과 전쟁기계, 매끄러운 공간이 그 자체로 해방적인 것은 아니지만, 바로 거기서 활동은 창조력을 가동하고 전쟁조차 창조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기왕의 목표조차 재구성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하기에 중요하다. 탈주나 매끄러운 공간 없이는 어떠한 창조도, 새로운 삶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것의 변환과 포획에 대처하여 새로운 삶과 활동을 창안하는, 탈주-유목-전쟁-혁명의 자세와 태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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