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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23년도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새해의 시작은 모두 잘 되어 가시나요?

 

7강 세미나는 8,9,10장을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양이 조금 있지만 지금 부터라도 읽으시면 금요일까지는 금방 끝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저는 이번 주는 사정이 있어 참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주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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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세미나는 진짜 엄청난 발제들로 시작을 했죠. 두 선생님께서 너무 발제와 설명을 잘 해주셔서 매끄러운 세미나가 진행된 것 같아요.

일단 저희는 들뢰즈의 욕망과 주체에 대해서 조금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들뢰즈의 철학에서 욕망은 관계와 더불어 작동하는 것이고, 주체와 대상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자 주체와 대상을 만들어 내는 힘이었죠. 욕망 개념이 왜 주체와 대상의 문제인지 생각해보면 주체의 결핍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과연 주체라고 하는 것이 진짜 있나?”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들뢰즈는 푸코의 권력 개념에서 이전까지의 권력 테제를 거부하며 이것과 마찬가지로 욕망은 흐름을 가질 뿐이고, 그것이 주체마저도 만들어 낸다고 말하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 봤습니다. 아래는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들과 대답, 이야기들입니다.

 

 

우선 상황마다 달라지는 주체들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신체 개념으로 돌아올 때 주체와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질문 1 : 아무리 특정 배치가 되었다고 한들, 예를 들어 아버지로서의 주체가 일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고 신체에서는 심지어 동일한 주체죠. 사실상 생각의 단절도 완전히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치면 신체와 주체는 다른 개념이지 않을까?

하얀 : 겹쳐있는 지점이지 않을까요? 혼합 되어진 주체가 같이 있는 것이죠. 단일한 욕망도 아니고 특정 욕망도 아닌 상태로요. 겹의 배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데 겹의 욕망들이 서로 교란시키기도 하고 종속시키기도 하면서 존재하는 것처럼요. 대기업에서 개인은 노동자이지만 하청 업체 사람들에게는 대기업 자본가처럼 굴 수도 있는 예시 같이요.

재은 : 융의 페르소나 개념이 떠올랐어요. 관계 속에서 나의 다른 모습들이 나타난다고 융도 이야기를 하거든요. 여러 페르소나가 겹쳐있다고(교수로서, 어머니로서) 말한 것 처럼요.

하얀 : 오 그쵸. 교수로서는 멋진 선생님인데, 집안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사람들도 있지 않나. 이런 경우에도 페르소나들이 서로 겹쳐져 있는 거죠.

재은 : 결국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개념이잖아요. 내 안에 있는 여러 페르소나가 관계지어진다는 말과 연결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느껴집니다.

하얀 : 그런데 신체도...어찌보면 하나의 유기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현재 세미나에서 느끼고 있는 몸의 상태와 움직임의 정도가 집에 누워있을 때의 상태와 움직임, 편안함의 정도와 엄청난 차이를 가지거든요. 또 누구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신체의 부분이 죽을 수도(긴장되거나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있게 될 수도 있으니 어찌 보면 부분 신체로서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질문 2 : 대상이라는 것이 과연 결핍을 배제할 수가 있나?

재림 : 우리의 표현 법에서 문법적으로 주어, 목적어, 동사... 가 영향을 엄청나게 미친다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내가 물을 마신다 라는 방식으로의 서술이 있죠. 이걸 다르게 표현한다면 ‘입술과 물이 만난다’ 혹은 ‘물과 식도가 접촉한다’라고도 할 수도 있죠. 욕망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물을 마신다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문제는 우리가 언어를 쓰지 않을 수는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모델이 대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지점은 비인칭적 특이점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주체를 생각해자면 결핍에서는 주체가 고정되어 있어요.

그 고정된 주체가 결핍을 욕망하는 거예요. 생산모델 같은 경우에는 어떠한 배치에 있는가가 먼저인 것이고 주체에 대한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죠. 즉, 조건을 먼저 묻고 욕망을 말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질문2-1 : 그러면 대상이 생산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배치 안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라고 하기엔 좀 어렵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필연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 똑같은 조건에 들어가지고 같은 행위를 모두가 동일하게 하지는 않죠. 너무 많은 배치에 우리는 중첩되어 있고, 그래서 각각 다른 행위자로 행동하는 것처럼요.

>> 비인칭적 욕망, 비인칭적 죽음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어떤’ 배치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책에 쓰여져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인 듯 합니다. 주체와 대상으로 환원시키려는 것을 그래서 차단하려는 것이고요.

>> 주된 흐름에 따라가는 욕망이 있다면, 벗어나려는 욕망도 함께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 코인과 주식에 열광할 때 그러지 않은, 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죠. 근데 그 사람도 돈이 더 많으면 여윳돈이 있으면 주식을 할 수도 있죠. 그럼 상황(배치)가 달라지면서 욕망도 달라지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비인칭적 욕망이라는 것은 좀 더 거대한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욕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데, 하지만 여기서 행동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죠.

 

 

질문 3 : 선악 개념과 설득의 지점에서 보자면 들뢰즈는 이것에서 탈주하는 것인가요?

>> 네, 그래서 자본주의와 너무 쉽게 결탁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들뢰즈는 소수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고 읽히는데, 독해하는 방법의 차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 선과 악, 가치판단이 없다는 생각으로 자본주의의 축적을 발제할 때 자본가들의 탈취에서도 탈주성이 그려지기도 하는 것처럼요.

질문 3-1 : 방금 말씀하신 예시가 경제..라는 배치 속에서 우리가 집을 사고 싶다. 같이 욕망은 생산이 이런 자본에서 이해되는 것이란 건가요? 모든 욕망이 결국에 그래서 결핍에서 온다고 밖에 생각이 안되는데...

>>내가 희망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에 간극(차이)가 있다고 설명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질문 3-2 : 그러면 생산 아닌 것은 없다는 건가요?

>> 그쵸, 생산 아닌 것은 죽음뿐이란 것이죠. 죽음 이후에만 우리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 의미와 논리에서부터 들뢰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무언가가 발생하는가? 라는 것인데 프로이트의 이드 에너지 가지고 오면서 에너지 흐름은 항상 있는데, 이게 어떻게 무언가가 되는가가 욕망이론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욕망-에너지의 흐름이 프로이트의 성적 이론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결핍이론으로 설명하는 것도, 우리가 돈을 욕망하는 것은 자본주의 배치 안에 있기 때문인, 그래서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즉 관계와 흐름 속에서 욕망을 바라보는 것이죠.

>> 주체가 욕망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지점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주체일 수 있다는 것에서 유의미한 것 같아요. 그저 대상에 머물지 않았던 것-예를 들어 사물들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들뢰즈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인간중심주의 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점인 것 같아요. 무엇과 접촉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위계로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의 진정한 욕망에 대해서 그래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것이죠.

>> 배치라는 것은 분명히 특이점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특이점 중에 하나만 바뀌어도 주체가 달라지니까요. 탈주선도 배치 개념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푸코와 다른 지점인 것이죠. 권력을 생산함으로써 타자를 억압하는 점을 푸코는 이야기하는데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을 배치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질문 4 : 전쟁기계에서의 기계란 기계적 신체와 다른 것인가요?

>> 배치에서의 요소 각각을 기계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전쟁기계를 이야기할 수 도 있고 신체성을 가지는 것으로 기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신체도 탈영토화라는 개념을 가지면 전쟁기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역사적으로 전쟁 초기에서도 사람과 사람 간의 신체적 다툼, 전쟁이었던 것과 같이요.

>> 들뢰즈가 기계, 전쟁이라는 개념을 쓴 이유는 213페이지를 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우실 거예요. “전쟁 기계란 이러한 창조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 “새로운 가치의 창조,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창조된 모든 것이 전쟁 기계란 것이다.”

질문 4-1 :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전쟁 기계라는 개념을 쓴 것인지, 왜 하필 전쟁이란 개념을 쓰게 된 것인지 궁금하더라구요.

>> 유목민은 유목하던 존재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유목민이 어떤 곳에는 정착을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잠을 자더라도요, 그럴 때 어떤 국가 장치가 있을 때는 그걸 파괴할 수밖에 없잖아요.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역사적으로 그래왔고, 난민을 대하는 현재적 태도로 보더라도요.

질문 4-2 :>그러니까 대립, 갈등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굳이 전쟁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들뢰즈가 그냥 선택한 용어 같아요.

기계라고 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기계와는 다른데, 데카르트는 개도 기계라고 생각했어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는 기계인 것이죠. 들뢰즈에게 기계는 오르간-기관-유기체의 신체 속에서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라는 의미가 큰데, 각 각으로서 작동하는 무언가의 합으로서 신체를 기계라고 한 것 같아요.

>> 유목민에 대한 항이 있는데, 예시로 징기스칸에 대한 항-유목이 있는데 이것이 전쟁기계와 정확하게 대입하는 부분이라고도 알 수 있어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없앴다는 점에서 저징기스칸을 전쟁기계라고 한 것 같거든요. 결국 기존의 것을 전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tmi로 말씀드리자면 기마민족이었던 몽골인들은 어디를 가든 평평하게 만들어버렸데요. 말이 빨리 가려면 평평하게 해야하니까요

 

 

질문 4-3 : 징기스칸을 설명을 보다가 유목민들의 본 목적은 결국 정착이라고 알고 있는데, 수많은 아시아의 종족들이 부족을 통합하고 힘이 생기면서 제국을 만들고 정착을 하게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유목이란 체제를 전복하고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까지 설명하는 것인가요?

>> 국가 체제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있는데 그걸 뿌수면 다시 재영토화 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또다른 탈영토화가 일어나는 것과 연관시켜 이해하시면 되는 것 같아요.

>> 들뢰즈에게 징기스칸이 유목의 전형일 수 있다는 점이 유목민의 기본 사유는 동일성에 대한 반대이잖아요. 유목민의 사유는 결국 기존의 것을 부수는 것인데 이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 그리고 유목주의-탈주와 정착주의가 함께 한다는 지점을 잊으시면 안 돼요. 하나에만 집중하면 분명히 힘듦이 발생하잖아요. 그래서 반대적 이미지고 하나만의 선택이라고 보실 필요는 없어요. 홈 패인 공간이라고 해서 도로라고 하는데, 말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가다가 펼쳐지는 공간을 살았다는 점을 유목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질문 4-4 : 기록들을 보자면 왕조들의 것이고 왕조가 국가잖아요. 유목민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쟁기계일 수밖에 없어요. 무언가가 부족하니 국경을 넘는 거잖아요. 그리고 실제 몇몇 사례에서는 대제국을 만들기도 했어요. 근데 여기서 유목이 목적이었다면, 의아한 건 결국 징기스칸도 커다란 국가를 만들고 몽골중심주의를 만들었는데, 이게 제가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정착과 이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공감하는데, 제가 혁명가라고 하자면 성공하였을 때 바로 구체제가 되는데. 그 자체로 구체제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무너져야 하는 대상이 될 뿐, 성공 이후의 삶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었거든요.

>> 탈주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들뢰즈도 탈주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도 해요. 술도 있고 마약도 있잖아요.

>> 아르토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이 사람이 정말 전쟁기계 같이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글이 되지 않는 것을 써요. 그러면 탈주인 것이죠. 적어도 작가에겐 글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선과 악으로 읽다보면 들뢰즈는 머리가 아파져요. 선악에서 벗어나야 하잖아요.

>> 마지막 말씀에 생각난 것이 체 게바라는 성공하고 콜롬비아로 갔잖아요. 그 사람 눈에게는 또 다른 혁명 대상이 보이지 않을까요.

>> 그쵸, 그것이 정말 영원회귀인 것이죠. 내가 성공했어, 그럼에도 난 언제든 깨질 수 있어. 갱생 될 거야. 라고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 들뢰즈의 유목주의를 읽으면서 가장 신선하다고 느낀 것이 유목을 낭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목민은 정착하기 위했을 때 언제 이동을 선택하느냐 했을 때 풀이 없을 때인데 이것이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것에 우리는 힘을 좀 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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