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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1.21]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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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둠 속의 산사와 어둠의 미학

: 산사 어둠은 상 지워 더 아름답게 드러내는 역설

상 없는 공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주는 미적 감응 돋보여
빛이 주었던 경계 지워지며 새로이 개화될 잠재성 향한 침잠
새벽어둠은 다시 시작하는 데서 배어 나오는 신선함 숨소리

 

2023-0127_불교를 미학하다26.jpg
운문사 저녁예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직지사 대웅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직지사 대웅전.

태초에 무명이 있었다. 12연기는 그 태초의 무명에서 시작한다. 그때 무명이란 중중무진으로 중첩된 무상의 카오스다. 무상하기에 포착할 수 없는 어둠, 그것이 무명이다. 그것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 무명이 아니라, 아무리 밝아도 안 보이는 근본무명이다. 그것은 빛을 비추어 몰아낼 수 있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비추어 상을 만들기에 놓치게 되는 무상한 실상이다. 석굴의 어둠은 그 자체로 무명이다. 빛이 들어서기 전의 어둠이다. 그건 물론 익숙한 것들이 지워지기에 우리를 방황케하는 혼돈이지만, 동시에 실상이라 믿던 상들이 지워지며 모든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어둠이다. 익숙한 세계 속으로 무상한 우주의 바람을 불러들이는 어둠이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 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릴케, ‘두이노의 비가’) 그 어둠은 봄날 꽃들로 피어날 새로운 상들을 품고 있는 겨울의 텅 빈 대지이다.

그런 무상의 어둠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조성된 깜깜한 어둠도 있다. 상 없는 여래의 어둠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상으로서의 여래, 미학적 여래도 있는 것이다. 어둠은 미감을 형성하는 감각적 상 또한 될 수 있다. 산사의 어둠이 그렇다. 어둠 속 산사는 대낮의 산사보다 훨씬 아름답다. 절이라는 건축물 때문인지, 산이라는 조건 때문인지, 혹은 적멸과 정적, 고요함과 평온함을 설하는 불교의 교의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사는 역시 어둠 속에서 ‘빛난다’. 문살이 드러나는 연한 불빛이 두드러져 보이는 어둠이어도 좋고, 불이 꺼져 그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윤곽선만 남기고 모두를 삼킨 야밤의 캄캄한 어둠이어도 좋다. 해가 지고 어스름하게 깔리며 절의 형상 속에 스며드는 어스름한 초저녁 어둠도 좋다. 거기에 묵직하지만 내리누르지 않고 몸을 감싸지만 휘감기지는 않는 범종소리라도 있으면, 그 어둠이 주는 적정의 감각은 더없이 아름답다.

산사의 어둠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가 지며 자연히 찾아드는 어둠이다. 그러나 그것이 산사와 섞이며 미적 대상이 될 때, 그것은 빛과 대비되는 어둠, 깜깜한 어둠이다. 상을 지우는 어둠이다. 이러한 어둠은 상을 지우는 대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상이다. 상 있는 것을 지워 더욱 아름답게 가시화하는 역설적인 상이다. 미적 형상으로 가시화된 어둠이다. 검은 여래다.

어둠 속에 있는 건축물이야 모두 나름 분위기 있고 멋있다 할지 모르지만, 사실 어둠과 손잡은 모든 건축물이 그처럼 아름답지는 않다. 어둠 속에 우쑥 솟은 도시의 건축물은 불이 켜진 상태라면 그저 화려하고, 불이 꺼진 상태라면 위압적이고 무섭다. 벽이나 담장을 둘러친 절이나 궁전이라면 그와 다르겠지만, 도시의 절에서조차 산사의 어둠이 주는 탁월한 미감은 얻기 어렵다. 미명의 어둠부터 칠흑의 어둠까지, 모든 상이한 강도의 어둠을 강도마다 다르게 감각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어둠의 미학이 산사에는 있다. 그러나 도시의 절은, 밤이 되어도 어둠을 충분히 얻기 어렵다. 도시는 어둠을 잃은 지 오래고, 밤은 어둠 때문에 더 반짝대는 수많은 빛들로 정신없다. 어디 구석이라서 어둠을 좀 얻었다 싶을 때에도, 담장은 절도 어둠도 담 안에 가둔다. 막아서며 거절하는 담장의 무뚝뚝함이 어둠의 아름다움을 잡아먹는다.

반면 산에서는 절이 어둠 속에 묻힌다. 그로 인해 어둠 속의 산사에는 상 없는 공적(空寂)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주는 미적 감응이 있다. 마른 가지 끝에 하나 남은 감처럼, 고요하기에 더욱 강밀한 어떤 감응이. 그렇게 어둠에 잠겨 사라지는 감응에는 대개 소멸되는 것의 고독함이나 쓸쓸함이 쉽게 섞여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산사의 어둠에도 그런 감응이 없다 할 순 없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산사를 둘러싼 나무와 숲은 어둠 속에 둘러싸이며 함께 소멸하는 친구가 되어, 개체의 경계가 지우는 어둠 속에서 하나로 섞여든다.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쓸쓸함과는 반대되는 따뜻한 우정의 감응이 그 적막함 속에는 있다. 그처럼 있는 그대로 사라지며 모든 개체들을 삼키는 하나 속으로 스며든다. 소멸의 어둠은 모든 경계를 지우는 ‘하나’인 것이다. 소멸하는 것이 느끼게 마련인 미소함과 동시에 거대한 하나가 되는데서 오는 편안함이 그 ‘하나’에는 있다.

어둠 속에서 산사는 미분화된 어둠으로 ‘되돌아간다.’ 그렇다고 알로 되돌아가고 유아기로 되돌아가는 퇴행이 아니라, 빛이 주었던 경계가 지워지며 새로이 개화될 잠재성을 향해가는 침잠이다. 거기에는 어떤 평온함의 감응이 있지만, 이는 유아적 퇴행에 환영처럼 달라붙어 있는 미숙한 것의 평온함이 아니라, 죽음마저 재탄생으로 수긍하는, 소멸의 때를 기다릴 줄 알 만큼 충분히 성숙한 것의 평온함이다. 거기에는 어떤 적적함의 감응이 있지만, 이는 갖고 있던 것들이나 현행의 형상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빛나는 것들의 화려함과 소란스러움이 사라질 때 그것들의 강도만큼 반대 방향에서 감지되는 고요함이다.

충분히 캄캄하지 않은 어둠, 방안의 빛이 아름다운 어둠은 산사의 어둠이 갖는 또 다른 얼굴이다. 해가 진 뒤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윤곽만 간신히 남은 모습은, 그렇게 어둠으로 소멸하고 사라짐에 대한, 아직 다는 지워지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이 주는 아스라함의 그림자다. 도량석을 도는 소리와 함께 밝아오는 새벽의 어둠은 새로이 탄생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에서 배어나오는 신선함의 숨소리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문살 사이의 빛조차,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나 어둠을 배경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빛이 아니라, 모든 형상이 어둠 속에 사라져도 아직은 소멸하지 않은 존재의 ‘양각화’된 잔영이고, 어둠과 우정을 나누며 겸허하게 사라져가는 외로운 불빛이다.

어둠의 미학은 대낮의 산사를 미감에서 밀쳐낸다. 특히 이런저런 장식들로 대낮에도 반짝대는 산사는 더욱 그렇다. 답사를 한다며 얼마 전에 갔던 해인사가 그랬다. 대적광전마저 가릴 만큼 방문객 앞에 나서는 응진전의 거대한 카페, 그에 질세라 절 구석구석에 있는 동물 모양의 철골에 꽃을 둘러 사진을 찍도록 만들어놓은 장식적 설치물들, 그 옆에 세워놓은 ‘보시함’들로 절 전체가 대낮에도 반짝대고 있었다. 화재가 잦아 장경판전이나 희랑(希朗)대사상 말고는 미술사에선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몇 차례 묵으며 강의도 했던 곳인지라, 나로선 애정하는 절이어서 일삼아 갔던 것인데, 전에 알던 그 절이 아니었다. 절이라기보다는 유원지 같았다. 미학을 위해서라면 가보지 않는 게 좋았을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건 사물을 미추로 분별하는 ‘속인’의 관점일 뿐이리라. 하트를 만드는 두 꽃 오리 사이에서 사진을 찍던 이들에게 그곳은 멋진 유원지였을 것이다. 누구에겐 부처의 길을 닦는 수행처였겠지만, 내겐 아름다운 절이어야 했듯이. 여기저기 만들어놓은 반짝이는 것들은, 내가 가진 절의 형상을 지우며 거기 있었던 것인데, 나는 거기서 내 상 속의 절을 찾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미학은 상 없는 여래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인지도 모른다. 어디엔들 부처가 없을 것인가. 우아한 불상은 부처고, 싸구려 불상은 부처가 아니라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상에 갇힌 어리석은 상들일 뿐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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