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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본』을 읽자
:『자본』이 예고하는 기후위기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자본주의 운명
1.09(월) ... 1강 자본주의적 가치와 물신주의
1.16(월) ... 2강 화폐와 코뮨의 해체
1.30(월) ... 3강 자본과 노동가치설
2.06(월) ... 4강 자본주의적 노동과 번아웃
2.13(월) ... 5강 정보자본주의와 고용없는 착취
2.20(월) ... 6강 자본의 생산력주의와 기후위기
2.27(월) ... 7강 자본주의 운명과 노동의 종말
1. 왜 지금, 다시 [자본]을 읽어야 할까 :: 이번 강좌에서는 ‘다시’ 『자본』을 읽게 됩니다. 150여 년 전에 쓰인 『자본』이라는 텍스트를 2023년의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읽게 만드는 계기는 다양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지금 『자본』을 ‘다시금’ 독해하게 만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어느 때보다 우리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함께 시작된 ‘기후위기’는 인류의 종말을 향한 시한폭탄이 되었지요. 그리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실업이 증가하고, 우리 사회는 ‘노동의 종말’로 가고 있습니다. 한쪽은 일이 없어 실업자가 쌓이고, 다른쪽은 일이 넘쳐 과로사하는 아이러니가 자본의 선택입니다.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폐기처분하는 상품의 과잉생산을 통해서만 지속할 수 있는 체제, 대다수 사회구성원을 실업과 빈곤으로 내모는 생산방식! 이 모든 정황은 오직 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쁜 것들의 원천은 자본주의이며, 자본주의 해체 없이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말이지요. 이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무능한 체제이고 낡은 방식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ㆍ경제 체계이며, 그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우리 의식을 지배합니다.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일상을 채워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자본주의의 끝을 상상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영원한 자연법칙으로 만듭니다. ‘낡은 체제’가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데도, ‘새로운 이행’을 상상할 수 없는 사태! 이것이 다시 『자본』을 읽게 합니다. 칼 맑스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발견하고 명명했던 사람이며, 그 작동원리 속에서 해체원리를 보았던 사람입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자라나고 강화되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다른 미래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지요. 『자본』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해석하고, 그로부터 다른 사회로 이행하는 상상력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2. 자본주의적 가치생산과 기후위기 :: 기후위기의 주범으로서 자본주의를 지목하셨는데요, 강좌목차를 보니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기후위기와 ‘가치’의 문제는 어떻게 연관되나요? 자본주의에서 ‘가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당면한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데에까지 이어질 수 있나요?
가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를 말합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부는 넓고 기름진 땅, 수백명의 노비, 보석과 장신구로 가득찬 창고 같은 '재화'를 의미했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더미 혹은 화폐형태로 나타나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부에 대한 욕망이 이전 사회에서는 재화를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난다면, 자본주의에서는 가치를 축적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납니다. 흔히 물건에 대한 욕망과 구분되는 부에 대한 욕망, 즉 물욕과 구분되는 치부욕이 바로 가치축적을 향한 자본의 욕망입니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가치증식을 통한 이윤추구에 있습니다. 자본 혹은 이윤이란 ‘축적된 가치’에 다름아닙니다. 자본이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신체에 담긴 가치입니다. 이전 사회가 ‘재화의 증대’를 생산의 목표로 삼았다면,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가치의 축적’입니다. 단순히 재화를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가치 축적’에 방해가 된다면 멀쩡한 물건도 내다버립니다.
물욕에는 한계가 있지만 치부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상품생산의 목적이 물건의 효용이 아니라, 가치의 축적에 있는 한 자본의 욕망은 만족을 모릅니다. 축적의 규모가 클수록, 축적의 속도가 빠를수록, 자본은 더많은 가치를 욕망합니다. 이제 가치증식을 위한 자본의 욕망은 ‘축적을 위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치닫게 됩니다. 19C 기계제 생산은 자본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국내시장을 초과한 생산력은 넘쳐나는 상품을 팔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기에 이릅니다. 가치증식을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파괴하는 과정입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화와 함께 시작되었고,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은 자원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약탈하고, 과잉생산으로 지구 전체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연은 단지 생산을 위한 원료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기후위기는 비인간행위자인 자연의 역습입니다.
3. 노동의 종말 앞에 선 실업자와 자유인 ::『자본』이라고 하면 자본주의 경제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거시적인 차원을 다루는 작업이 일상적인 삶의 차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은 어떻게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관계를 맺나요?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근대철학이 삶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이 된 것에 반해, 맑스철학은 삶을 위한 실천과학임을 선언합니다. 무엇보다 『자본』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 삶을 조직하고 계급투쟁에서 사용할 무기로서 준비된 책입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에 대한 퍼스펙티브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먼저 자본주의를 영원의 관점 속에서, 보편적 형태로 간주하는 퍼스펙티브. 이때 자본주의는 인간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적 체계이며, 자본주의 체제는 가장 발전된 생산양식입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에게 자본주의 질서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합니다. 반면 자본주의를 이행의 관점 속에서, 역사적 형태로 보는 퍼스펙티브. 이때 자본주의는 역사적 형태의 하나이며, 자본의 방향은 역사의 필연적 경로일 수 없습니다. 이 관점은 자본주의가 품고 있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좀더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서 ‘노동의 종말’에 대한 퍼스펙티브는 우리를 다른 존재로 구성합니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이라고 합니다. AI로봇이 대체할 인간노동의 리스트가 매번 갱신되고, AI가 불가능한 직업영역으로 쫓겨나는 인간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 더 많은 사람이 노동하는 세상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퍼스펙티브를 전환하면, 노동의 종말은 노동해방을 위한 기쁜 소식일 수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은 노동 없는 생산을 말합니다. 즉 우리 사회가 인간의 노동 없이도 생각이 가능한 사회, ‘노동없는 생산’이 가능한 사회, 인간이 노동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이지요. 먹고살기 위한 노동,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보다 창의적인 활동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을 앞둔 우리 앞에 2가지 선택이 놓여있습니다. 일자리에서 쫓겨난 실업자가 될 것인가,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될 것인가.
4. 『자본』강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 강의목차를 보면 『자본』의 개념들과 현재적인 이슈들이 함께 보이는데, 강의가 전반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소개해 주세요. 이 강의가 『자본』을 꼼꼼히 읽어나가는 강독형식은 아니지만, 강의를 따라가면서 함께 『자본』 원전도 읽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 병행하는 것이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강의를 이미 신청한 혹은 신청을 고민하고 있을 수강생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강의는 2가지 방식으로 『자본』을 읽으려고 합니다. 강의 전반부는 자본의 개념으로 현재를 해석하는 것에 집중하고, 강의 후반부는 다른 사회를 준비하는 이행의 현실적 사례들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먼저, 『자본』의 현재적 강독. 기후위기, 노동의 종말, 공황장애 같은 현실의 이슈를 해석하는 수단으로서 『자본』을 읽는 것입니다. 『자본』은 150년 전에 이미 지금의 암울한 사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는 『자본』의 세기를 문명화된 형태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의 핵심개념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어떻게 자본주의 현재를 구성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강의에서 다룬 개념들이 『자본』을 읽는 기본가이드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다만 『자본』을 순서대로 읽는 것보다, 현재적 강독을 위해 현실과 긴밀한 텍스트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읽을 것입니다. 각 강좌와 관련된 『자본』 텍스트를 좀더 특정해서 알려드릴테니, 여러분들은 강의내용을 중심으로 『자본』을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이행을 위한 『자본』의 상상력. 자본주의에서 다른 사회로 이행을 위한 무기로서 『자본』을 읽으려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동시에 해체원리이기도 해서, 자본주의의 분석으로부터 이행을 위한 상상력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수유너머를 비롯하여 다양한 층위에서 시도되는 코뮨, 협동조합, 시간화폐, 공유경제, 카피레프트 운동 같은 비자본주의적 실험들을 찾아볼 것입니다. 이행을 기획하는 자는 현재에 들어와 있는 다른 미래의 흔적을 읽어내는 사람입니다. 자본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코뮨적 외부를 보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역사의 ‘이행’ 속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현재 안에 잠재해있는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발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미래는 자본주의 현재와 나란히 성장하는 잠재사회로 존재합니다.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야말로 집단지성이 필요한 작업일 것입니다. 이행을 위한 집단적 상상력에 동참할 분들을 기다립니다. [강좌소개 #클릭] [강좌신청 #클릭]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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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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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
한병철은 성과사회와 성과주체의 이상이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병철은 그것을 착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친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입니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한병철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 김태환 옮김/문학과 지성사/ 역자 후기 126쪽~127쪽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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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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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
더이상 이야기하면 실례될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짧게 말씀드립니다.
더이상 사람들은 삶이나 사회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재가공하는것에 그치는 책읽기나 글쓰기가 요즘 유행입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의심하고 새로운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나, 실천 자체가 부재한 현실에서 더욱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철학과 예술의 토대가 붕괴되는 현실을 자주 경험하면서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지식 자체가 철학적 사유나 예술적 창조로 이어질수는 없습니다.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먹고 살기 위한 노동,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보다 창의적인 활동을 기획할수 있습니다."[2023 겨울] 맑스의 자본 강사 인터뷰(류재숙) 중에서
저는 위의 글에서 말한 창의적인 활동이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1. 자본의 현재적 강독: 마르크스 경제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의 연장선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막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눈만 뜨면 제도권 경제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시장주의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케인즈주의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실패한 경제정책이라는 점을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가능하다면 숫자를 통해서( 역설적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위의 내용이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말한 구체적인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2. 이행을 위한 자본의 상상력: 과거 실패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이행이란 헤겔의 영향을 받은 역사적 유물론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자연법칙을 사회나 역사에 적용하여 역사적 법칙 자체가 초월적인 의미가 되는 목적을 가진 우리가 감히 선택할수 없는 필연적인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행은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행을 위한 상상력이 과거와 같은 의미의 법칙주의나 결정론이 아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건가요?
3. 마지막으로 근대와 현대가 물론 다르지만 근대에 모든 근대인들이 과학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제도와 의식의 성장 언론등 장미빛 미래를 꿈꿀때 철학자 니체는 홀로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터넷과 정보의 발전으로 현대는 근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되었습니다. 이미 와 있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좀더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경제적 관점으로 자본주의를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문화등의 상부구조의 분석과 좀더 복잡하게 나타날수 있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자본 강좌 참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위의 세가지 부분이 반영될수 있고 고민될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참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질문과 내용이 된 점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있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