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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104 인사원 [조르주 바타유 : 위반의 시학]
『폭풍의 언덕』 『문학과 악』 비평


히스클리프의 최후

김동현

 

히스클리프는 죽음에 다가갈수록 기쁨에 겨워한다. 히스클리프가 기뻐하는 이유는 복수의 완성 때문이 아니다.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를 괴롭혔던 언쇼 가문을 몰락시켰으며 그가 내쫓겼던 워더링 하이츠를 소유하게 되었고, 린튼 가문의 재산을 손에 넣었고 가족들을 파멸시켰다. 이제 마지막 남은 복수로 린튼 가문과 언쇼 가문의 후손들만 파멸 시키면 되는데 그 끝에서 그는 복수를 관둔다. 악마같은 복수를 감행하면서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던 히스클리프의 최후로는 너무나 싱거운 결말이다. 복수의 관둔다고 해서 그가 그동안 저질러 왔던 일들을 참회하고 회개하는 것은 아니다. 딘 부인은 그에게 지금이라도 교회의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성경의 말씀을 듣고 지난 일을 회개하라고 얘기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자신에게 성경이 필요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는 죽음이 다가올수록 희열을 느낀다. 죽음은 곧 사랑하는 캐서린에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나흘을 지낸다.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그는 눈빛이 빛나고 입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런 그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그를 악마에 홀린 미치광이로 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양을 치던 목동의 증언으로 히스클리프의 사후(死後) 세계가 확인된다.

“저기 절벽 밑에 히스클리프하고 어떤 여자하고 있어.” (521, 문학동네)

히스클리프는 왜 복수의 완성 단계에서 복수를 관두는 것일까? 또 그의 최후는 왜 이렇게 기괴한 것일까?

 

조르주 바타유는 『문학과 악』에서 『폭풍의 언덕』과 그리스 비극을 비교한다. 그리스 비극의 작가는 자신이 그 위반을 그려 보이고 있는 규범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가 규범에 대한 비극적인 위반이라고 할 때, 작가는 규범에 동의하는 동시에 위반하는 자들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정서를 구축해 나갔다.
『폭풍의 언덕』이 그리스 비극처럼 규범이 그 자체로서 공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지되어 있기에 신성한 영역이 생기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이를 위반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타유는 위반이 아니라 ‘금기’에 주목한다.


금지한다는 것은 하나의 장애임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은 권유이기도 하다. 『폭풍의 언덕』이 가르쳐주는 것―그것은 곧 그리스 비극의 교훈이기도 하고, 좀더 나아가서는 모든 종교의 교훈이기도 하다―은 바로,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가 견뎌낼 수 없는 신의 취기 (divine ivresse)가 일으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선과 대립되는 것이다. 선이란 공동의 이익을 배려한다는 기반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고, 이는 곧 본질적으로 미래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유년의 <과감한 움직임>(mouvement primesautier)과 닮은 데가 있는 신의 취기는 온통 현재 속에 머물러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악의 정의내림과 공통되는 부분을 지닌다. 어른들은 <성숙>에 이르러야 하는 이 아이들에게 신이 내려준 유년의 왕국을 금지한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이를 끝으로 본다는 것은 하나의 착오이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위험하고도 손쉬운 접근을 막아야 하는 것 못지 않게 순간의 영역(유년의 왕국)을 되찾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금기에 대한 일시적인 위반을 요한다. (25, 민음사)


바타유는 히스클리프의 최후에 그가 속죄한다고 보았다. 히스클리프의 위반이 금기하고 있던 영역이 선(善)의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그것은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정조를 깨트렸다는 것 때문에 히스클리프가 영원히 괴로워 하며 금기를 위반한다고 생각했다. 히스클리프는 <영원한 고통>에 빠지게 한 캐서린에게 다가가기 위해 복수와 위반을 감행했고 죽음으로서 상처가 봉합이 되며 금기를 위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던 히스클리프는 최후에 자신을 오랫동안 돌봐왔던 가정부 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내게 캐서린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고, 캐서린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겠어? 이 바닥만 내려다봐도 깔린 돌들이 모두 그 애 모습인데! 구름들이, 나무들이 모두 그 애 모습인데! 밤이면 사방을 그 애가 가득 채우고, 낮이면 그 애의 모습이 나를 둘러싸서 모든 것이 그 애로 보여! 더없이 평범한 얼굴들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심지어 내 얼굴까지 그 애 얼굴처럼 보이면서 나를 조롱해! 온 세상이 그 애가 한때 살아 있었지만 이제 내 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 끔찍한 비망록이야!” (501-502, 문학동네)

물론 표면적으로 히스클리프가 속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수의 완성을 위해서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는데 돌연 복수를 관둔다. 회개하거나 구원받으려 하지 않고 기쁨에 겨워 죽는 이유는 캐서린에게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캐서린과의 유년의 왕국에 거한다.

 

“속을 털어놔도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군. 하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변덕들이 이제 설명되었겠지. 맙소사! 나도 참 오래 싸웠구나!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는데!” (503)

라며 끝내 용서받지 않는 속죄를 하고,
얼굴과 목덜미가 빗물에 젖고, 침대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519)
살아 있는 듯한 환희의 눈빛으로, 벌어진 입술과 날카롭고 하얀 이까지 비웃는 듯한 모습으로 (519)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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