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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1107]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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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전각들과 빈 공간의 이인무(二人舞)

: 건물과 빈 공간이 안고 감겨드는 ‘호옹(互擁)의 미학’

서로가 원인이면서 서로에 의한 결과가 되는 내재성의 장
마당과 길들은 서로 이어지면서 건물들을 하나로 묶는 끈
주인 아닌 객 위해 풍경의 다양체 마련하려는 외부성 미학

 

2022-1118_불교를 미학하다21.jpg
해장보각 뒤에서 본 용화전.

관음전 북동쪽에서 본 용화전.
관음전 북동쪽에서 본 용화전.

 

빈 공간과 건물이 있을 때, 건물이 시선을 당기는 주연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건물들이 마당을 확연하게 둘러쌀 때, 그 관계는 역전되기도 한다. 건물들이 둘러싸며 공간이 표정을 얻으며 마당이 주연으로 부상한다. 이때는 마당이 형상이 되고, 둘러싼 건물은 배경이 된다. 그러나 건물이나 담으로 닫힌 사변형의 마당은 그리 되기 어렵다. 사변형이란 어디서나 비슷한 형식이기에 독자적 표정을 갖는다 하기 어려운데다, 사변형의 여백이 갖는 프레임의 운명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경우 마당은 건물이란 형상이 들어서는 캔버스 내지 건물이 거느린 배경이 되고 만다. 역으로, 형태가 사변형이길 그치고, 옆으로 흐르는 길들이 평행성과 직각성을 벗어난 팔다리가 될 때, 마당은 표정을 갖게 된다. 좁아졌다 넓어지며 숨 쉬는 신체, 종종 움직이고 춤추는 신체의 표정마저 갖게 된다. 

이렇게 표정을 갖는 마당은 자신을 둘러싼 건물에 되먹임되며 건물의 얼굴을 바꾸어준다. 사변형의 프레임과 대칭성이 주는, 어디서나 봐도 유사한 하나의 얼굴, 정면상으로 수렴되는 단일한 얼굴이 아니라, 상이한 형상의 마당에 의해, 다시 말해 상이한 각도와 형상으로 모여드는 이웃 건물들에 의해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이웃한 건물과 함께 다른 형상의 마당을 만들며 다른 표정을 얻는다. 그 표정들은 하나의 정면상으로 귀속되지 않는 독자성을 갖는다. 가령 통도사 용화전은 같은 마당이지만 해장보각 쪽에서 볼 때, 개산조당이나 오층탑 쪽에서 볼 때, 관음전 쪽에서 볼 때, 장면 안에 참여하는 이웃건물로 인해 아주 다른 표정을 갖는다. 관음전이나 대광명전도, 상로전의 대웅전도 그렇다.

담장이 만드는 사각형의 프레임이 없을 때, 전각이나 담 등의 건축적 요소들은 마당을 둘러싸며 마당의 모습을 만들고, 마당은 그것들을 둘러싸며 다른 얼굴들을 만들어준다. 전각과 담장이 마당이나 길을 둘러싸는 것만큼이나 후자 또한 전자를 에워싼다. 양자는 그렇게 서로를 둘러싸고 품어주며, 또한 그렇게 둘러싸이며 안긴다. 양자 모두 서로가 기대는 조건이 되어주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며 함께 전체 건축공간을 만든다. 연기적 상호성 속에 서로 말려들어간다. 둘러싸고 품어줄 때, 각자는 상대의 배경이 되어 준다. 둘러싸이고 안길 때, 각자는 얼굴을 들고 주인공인 형상이 된다. 각자가 형상을 고집하며 상대를 배경화하지 않으며, 자신만이 주역이기를 고수하려 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채워진 건물과 빈 공간이 서로를 안고 감겨드는 ‘호옹(互擁)의 미학’이라 하면 어떨까? 자신을 끌어안는 상대에 응하며 그를 끌어안는, 그럼으로써 달라지는 형상을 얻으며 주는 ‘포응(抱應)의 미학’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원인이면서 또한 서로에 의한 결과가 되는 내재성의 장이 이렇게 펼쳐진다.

전각이나 탑, 담 등에 둘러싸인 마당은 마당 좌우의 건물을, 혹은 누각이나 지붕의 처마와 기단 등 상하의 사물 사이를 통과한다. 이웃한 다른 마당과 길로 이어지며 그 사물들에 의해 커졌다 작아졌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허공의 연속체를 이룬다. 선암사처럼 열린 담장이 만드는 길이나 마곡사의 다리처럼, 다른 공간으로 유도하는 유혹의 동선을 가동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마당과 길들은 이웃한 길들과 이어지며 절 안의 건물들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된다. 그렇게 하나로 이어지며 건물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역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건물들에 의해 하나의 형상을 얻는다. 그렇게 이어지며 하나가 되는 두 연속체의 이인무(pas de deux)가 산사의 전체 건축공간을 빚어낸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지는 형상 전체는 사실 하늘을 나는 새의 눈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 걷는 우리는 좁아졌다 넓어지며 이어지는 그 마당과 길의 연속체를 통과하면서, 때론 길이 주인공이 되고, 때론 건물이, 때론 트인 마당이 주인공이 되는 상이한 풍경의 연속체와 만날 뿐이다. 이 연속체 속에서 마당과 길, 그리고 길을 둘러싼 환경(‘자연’)은 그저 건물들에 부수된 잔여나 배경, 캔버스가 아니라 건물들과 대등한 공간적 형상들의 주인이다. 부석사, 선암사, 통도사, 내소사 같은 하나의 이름에 의해 하나로 묶여 명명되는 절 전체의 풍경을 이룬다. 아주 상이한 풍경들로 이루어진 형상의 다양체를 이룬다. 

이는 건물과 담장으로 닫힌 하나의 얼굴, 아무리 시점을 달리해도 정면상의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확고한 통일성의 건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각형의 닫힌 프레임 안에서 중심의 건물과 담장이 만드는 ‘풍경’ 안에서 우리는 형상과 배경, 주인과 종의 관계를 그저 다른 위치, 다른 각도에서 확인하게 될 뿐이다. 누각에서 보이는 풍경이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이는 주인의 자리를 항상-이미 확보한 내부자의 시선을 위한 것이다. 그 건축물의 풍경을 이루는 게 아니라, 그 건축물에서 바라본 풍경, 그 주인이 영유한 단일한 풍경일 뿐이다. 

산사는 형상은, 또한 산사의 풍경은 보는 곳마다 달라진다. 그 다른 모습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확고한 전체상은 찾기 힘들다. 보는 각도의 삐딱함이나 서 있는 위치의 치우침 등을 빠르게 교정하며 하나의 중심이나 축으로 이끄는 통일성 대신, 구부러지고 빠지고 삐딱해지는 위치와 각도마다 달라지는 상들을, 다른 모습 그대로 놓아둔다. 그렇기에 보는 곳마다 전체라 해도, 전체는 하나가 아니라 보는 지점들만큼 많다. 그래서 하나의 상으로 기억하기 힘들다. 각각의 상이한 장소나 동선에 따라 보이는 상들 모두가 전체다. 전체라는 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권적인 어떤 상이 아니라, 그 다른 상들 모두가 ‘하나’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뜻할 뿐이다. 흐르는 물과 지는 꽃, 새싹과 낙엽이 모두 하나의 법신의 표현이듯이, 색신들과 법신이 따로 있지 않듯이, 형상 없는 ‘여래’가 중생의 형상들과 따로 있지 않듯이. 그러니 멋지고 오래된 탑이나 전각, 거기 소장된 불상과 그림들 이상으로, 가람 배치에 의해 조성된 건축공간의 다양한 모습들, 그 공간에 의해 내부와 외부가 하나로 묶이며 만들어지는 형상과 풍경 모두가 그 절에 속하는 ‘작품’이라 해야 한다. 

‘산사의 미학’은 이렇게 ‘산사의 철학’과 이어진다. 절들이 불교적 사유에 이어지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겠지만, 모든 절들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미학은 평지 아닌 산비탈, 자리 잡고 건물 짓기 힘든 지형적 조건을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를 미학적 강점으로 변환시킨 연기적 사유의 산물이다. 외부자들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선을 극소화시킨 열린 사유의 부산물이다. 안에서 내다보는 ‘주인’을 위한 풍경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객들을 위해 풍경의 다양체를 마련하려는 외부성의 미학이다. 확고한 통일성 대신 가변적인 다양성의 연속체와 손잡고, 복수의 중심을 통해 하나의 확고한 중심성을 제거하고, 비대칭성과 모호성을 통해 위계적 배열을 깨면서, 건물, 마당, 길은 물론 석단, 담장 모두를 각기 다른 얼굴을 갖는 만남의 동료들로 만나게 하는 수평적이고 횡단적인 감각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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