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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학] 19. 산사의 공간 미학

oracle 2022.11.05 21:09 조회 수 : 94

[법보신문 2022-1011]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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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산사의 공간 미학

: 내·외부 하나인 ‘중심 없는 중심성’의 역설 공간

한국 산사는 대단히 이례적…일주문·금강문 등에 벽·문도 없어
환경과 자신 분리보다 외부로 열린 내부 만들려는 적극적 발상
산사는 금당 안에서 내다보는 시선 위해 외부 풍경화하지 않아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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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어디에나 경계가 있다. 경계란 무엇보다 영토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선이다. 내부자가 ‘나’나 ‘우리’라면 외부자는 ‘너’나 ‘그들’이다. 영토가 나와 남을 가르는 상(相)을 만든다. 건축은 물리적 장치들을 통해 영토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영토화 방법이다. 영토적 경계를 표시하는 가장 통상적인 장치는 벽이나 담이다. 이를 통해 영토의 내부와 외부는 뚜렷하게 구획되고, 그 내부에는 외부와 다른 어떤 질이 명확하게 부여된다. 영토는 그저 닫혀 있지만은 않다. 창이 외부를 내다볼 수 있는 시선의 통로라면, 문은 누군가가 드나들 수 있는 동선의 통로다. 그래서 종종 ‘열림’과 ‘개방’의 상징인 양 간주된다. 그러나 창은 안에 있는 우리가 밖을 내다보기 위해 열려 있는 것이고, 문은 들어와도 좋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선별한다. 벽 안의 ‘우리’를 보호하고 벽 안의 공간을 확장하는 장치다.

그러나 한국의 산사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일주문뿐 아니라, 금강문, 천왕문 등 모든 문에 벽도 없고 문짝도 없다. 내부를 보호하지도 않고 외부를 차단하지도 않으며, 드나드는 동선을 선별하지도 않는다. 문이기를 그친 문이다. 문에만 벽이 없는 게 아니라, 사찰 전체가 그렇다. 요사나 선방처럼 외부자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벽과 담으로 닫힌 부분도 있지만, 절 전체를 하나의 폐곡선 안에 가두며 외부와 내부를 물리적으로 가르는 벽이나 담은 없다. 건물 사이의 마당은 길을 통해 다른 마당으로 이어지고, 길은 다시 인근의 길로, 외부로 이어진다. 내부와 외부가 하나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공간이다. 내부가 외부인, 외부성의 공간이다. 

절이 모두 산사처럼 열려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많은 절은 사변형 담 안에 있다. 한국도, 경주의 황룡사지나 익산의 미륵사지가 그랬다 한다. 불국사 또한 담의 기능을 하는 사변형의 회랑이 대웅전, 극락전 등 중요 전각들을 둘러싸고 폐곡선을 이루며 하나로 이어져 절 전체의 내부와 외부를 뚜렷하게 가르고 있다. 어디나 도시 절은 닫힌 벽으로 둘러쳐져 있는 듯하다. 인근의 다른 건물이나 도로 등과 절의 영토를 뚜렷하게 구별하고, 절과 관계없는 동선을 차단하는 게 필요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산사라고 그런 방어장치가 무요했을 리 없다. 산속 외떨어진 곳이기에 오히려 동물이나 외부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산사에 닫힌 담이 없는 것은 그저 ‘자연스런’ 것만은 아니다. 환경과 자신을 분리하기보다는 그 속에 섞여들며 외부로 열린 내부를 만들려는 적극적 발상이 있었을 것이다. 내부와 외부, 우리와 남의 구별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열린 공간으로 만들려 했을 것이다. 이로써 우거진 숲과 구불구불한 길, 경사진 지형을 내부에 있는 그대로 담았고, 그 모두를 자신 내부로 슬그머니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다.

어떤 건축물이든 건물 주위에 ‘외부공간’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데 건축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관계 짓는 방식에는 상이한 유형들이 있다. 서양의 경우 건축의 중심은 건물이고 그 건물의 내부공간이다. 외부공간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려는 경우, 건물 앞에 광장 같은 넓은 공간이나 정원을 만든다. 혹은 건물의 채광을 위해 중정을 만든다. 어느 것이든 건물이 건축공간의 주인이자 중심이고, 외부공간은 그에 부속된 것이며 부차적인 지위를 갖는다. 드넓은 베르사이유 정원조차 건물 외부에 있지만, 내부에 속한 공간이다. 내부화된 외부다.

동아시아의 건축물은 대개 건물과 외부공간인 마당을 하나의 담으로 둘러싼다. 건축공간 전체는 중심 건물을 둘러싼 또 다른 담들에 의해 다시 재분할된다. 가령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는 절이 영토를 표시하는 벽과 담 안에서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고, 각각의 부분공간들도 다시 벽과 담으로 재분할된다. 불국사도 그렇다. 이 경우 마당이나 통로 같은 공간은 건물의 외부지만 전체 건축물 내부임이 뚜렷하게 표시한다. 이 또한 내부화된 외부다. 여기서 마당은 건물 사이에서 그것들을 관계 짓지만, 건물에 부수된 공간으로서의 부차적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독자적 건축대상도, 적극적 구성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건물들이 들어서는 터일 뿐이다.

이는 산의 경사면에 짓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서원 역시 대개 산비탈 경사면에 지어진다. 산사처럼 석단과 계단을 사용하지만, 산사가 지형을 살리며 자연스레 생겨난 길을 따라 흐르는 공간 속에 외부로 열린 공간을 만드는 반면, 서원은 담으로 닫힌 사변형의 공간으로 자신을 주변과 분리한다. 경사면의 높낮이는 건물의 위계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절에 비해 마당은 대체로 좁고, 꽉 짜여 있고, 닫혀 있다. 여기서 마당은 분명 서원의 내부에 속하지만, 건축의 ‘주어’가 되지 못한다. 그건 그저 건물들 사이에 있는 간격일 뿐이고, 건물 간 관계에 따라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잔여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사변형의 담으로 둘러친 건축물에서, 중요한 건물 앞의 마당은 대체로 비어 있다. 마당이 형상적 요소로 채워지면, 주인인 건물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마당은 형상의 뒤에 물러선 배경, 아니 사변형 담장으로 형상을 담는 캔버스 내지 스크린에 가깝다. 이런 건축물이 사변형을 유난히 선호하는 건 이 때문이기도 하다.

건축공간은 중심성과 통일성을 갖는다. 산만할 뿐이면 아름답다 하기 어렵기에. 건축공간에 중심성을 부여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에, 누가 보아도 분명한 물리적-객관적 중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원을 포함한 베르사이유 궁전 전체에서 중심은 궁전이라는 건물이고, 그 건물의 중심은 중앙에 있는 왕의 방이다. 서원의 강당영역에선 강당이, 전체로는 사당이 그렇다. 이는 건축물들 간의 객체적이고 ‘신체적’ 관계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객체적 중심화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건축공간의 주인이라는 주체의 시선을 위해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중심되는 건물 안에서 밖을 보는 그의 시선을 위해 건축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그것이다. 앞서의 방법과 대비해 이를 주체적 중심화라 할 수 있겠다. 이는 특히 정원처럼 열린 외부공간을 갖는 경우에 중요하게 사용된다. 베르사이유 정원은 왕의 시선을 위해 풍경화되고, 서원에 내다보이는 풍경은 서원의 중심에서 내다보는 시선을 위한 것이다. 벽 없이 열린 정자의 풍경도 그렇다. 

산사는 금당 안에서 내다보는 시선을 위해 외부를 풍경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을 방문하는 외부자의 시선을 향해 절의 건물이나 마당, 길이 풍경화된다. 공간의 중심축마저 복수화 하여, 중심을 복수화한다. 부분적 중심들을 통합하는 위계마저 없이 각각을 중심이기 충분하게 놓아둔다. 부분들을 장악하는 확고한 중심성 같은 것은 갖지 않는다. 김제 금산사의 경우 본당인 대적광전 못지않게 옆의 미륵전 또한 중심성을 갖는다.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 부분적 중심들이 있고, 전체란 그런 ‘부분들의 연결’들, 연결되는 양상에 따라 달라지는 전체가 된다. 중심 없는 중심성의 역설적 공간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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